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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퍼오미
Subject   절망의 힘 - 자유언론실천선언 30년
절망의 힘 - 자유언론실천선언 30년
(김환균 피디)

지난 10월 22일 자유언론실천선언 30주년 기념 행사가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다. 매년 10월 24일에 가져오는 행사였지만, 올해는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금요일로 앞당겨 행사를 가졌다. 그 행사에서는 전국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한국프로듀서연합회 등 언론 3단체가 주관하는 통일언론상, 그리고 동아자유수호투쟁위원회(약칭 동아투위)가 주관하는 안종필 자유언론상 시상식이 함께 열린다. 안종필 자유언론상은 안종필 동아투위 제2대 위원장을 기리는 상이다. 그는 동아일보 편집부 차장으로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함께 참여했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되어 1년 여의 옥고를 치르다 구속정지로 풀려났지만, 옥중에서 얻은 간암으로 1980년 2월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안종필 자유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한 '2004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진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상을 받는 자리에 내가 끼일 수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영광이다. 나는 상이 주는 기쁨과 함께, 수상의 기쁨만큼이나 벅찬 감동을 그 행사장에서 받았다. 두 개의 상을 받은 것이다. 그 행사 내내 내가 느꼈던 감동을 기록함으로써, 30년을 한결같이 '자유언론'을 위해 싸워 오신 위대한 선배 언론인들에 대한 나의 애정과 존경을 바치려 한다.


1974년 10월 24일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동아방송의 젊은 기자 180여 명이 편집국에 모여,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시 상황이 어땠는가는 1975년 4월 11일 서울대 농대 교정에서 유신 체제에 반대해 할복 자결한 김상진의 양심선언문에 섬뜩하게 지적되어 있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김상진의 양심선언문 중에서)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 이 말은 유신체제의 본질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주 인용되곤 한다. 초법적인 긴급조치를 동원한 유신 체제의 파시즘적 탄압 밑에서 비판하는 민주 시민들의 목소리는 질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탄압이 거세면 저항도 드세지는 법, 1974년 9월 중순부터 대학생, 종교인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들이 엄혹한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저항운동을 애써 외면하거나 축소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선언문은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천명하고 그것은 정부 당국이 허용하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언론종사자들 자신의 실천 과제"라는 각오를 밝힌다. 기자들은 이 선언 내용을 신문과 방송(당시 DBS 동아방송)을 통해 보도할 것을 사측에 요구했지만 사측이 거부하자 제작거부로 맞섰다. 결국 경영진은 최소한 1면 3단의 보도라는 기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것을 시발로 10월 30일까지 서울과 지방의 35개 언론사가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했다.
그러나 유신 정부의 보복적인 광고 중단 조치로 동아일보의 경영진은 기자들을 다른 명분을 내세워 무더기로 해임 또는 무기 정직시켰다. 해임된 기자가 49명, 무기 정직이 85명이었다. 병영국가에 맞선 자유언론실천운동은 이렇게 해서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리고 30년 후
2004년 10월 24일, 오늘은 그로부터 30년이 되는 날이다. 한 세대가 흘렀다. 그때 혈기 넘치고 열정으로 뜨거웠던 그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노년이 되었다. 22일 기념식에서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장이 기념사에서 말했듯이, 수많은 동지들이 해직 이후 투옥과 병고 등으로 사망하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한 세대에 걸친 긴 세월동안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한 의지를 단 한번도 꺾은 적이 없었다. 문 위원장의 기념사에 '희망'이란 말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을까. 그렇다면 그 30년의 세월동안,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했을까.
이기형 시인은 길다란 기념 축시 '동아투위, 그 이름 영원하리'를 열정적으로 낭독했다. '정말 멋진 분들, 내가 여자였더라면 멋지게 연애 한번 해보고 싶은 동아투위'에 대한 찬사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질타였다. 올 봄 그가 원고지에 시 쓰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나이 탓에 손이 심하게 떨리고 힘이 없어 두 손으로 펜을 붙들고 안간힘을 써야만 비로소 한 글자가 써지는 그의 시작(詩作), 그는 그 긴 시를 또 그렇게 썼을 것이다.
백기완 선생은 30년 전 보았던 젊은 기자들 중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회한으로 말을 시작했다. 30년의 세월은 그런 것이다. 젊음도 가고 목숨도 가고…. 백 선생은 30년 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해야겠다고 했다. 개성에 박연물떨기(폭포)가 있는데 그 물떨기의 우레와 같은 소리에 맞서 한 소리꾼이 수련 끝에 소리를 얻었다. 의기양양해 산을 내려오는 그에게 밭에서 일하는 농부가 말했다. 네 놈의 소리가 소리냐, 네 놈의 소리에는 쇳소리가 없어. 쇳소리가 무엇인가. 노동자들의 호미 끝에 서리는 노여움의 소리가 바로 쇳소리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언론에는 쇳소리가 없다, 그래서 동아투위는 여전히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는 말로 그는 끝을 맺었다.
함세웅 신부는 언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을 깨우쳐 준 게 바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이었다고 했다. 동아일보 광고 탄압 때, 동아일보를 살리기 위해 성금을 내고 했었는데 한 기자가 했던 말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자는 '지금은 정부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성금을 내고 정부를 성토해야 하지만 동아일보도 본질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뒤늦게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문영희 위원장의 기념사 중 한 대목과 일치하는 말이었다. '동아일보사는 30년 전 투위 동지들을 집단 해고하면서 광고 탄압에 의한 경영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회사측은 박정희 유신 독재와 밀약에 의해 광고 게재를 다시 허용받는 대신 우리들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자, 죽어야 한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를 그 자리에서 본 것은 정말 의외였다. 2000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하면서 자료화면을 뒤지는데 내 눈길을 잡아끄는 장면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서너 사람이 미국 대사관 앞쪽으로 가더니 검은 복면을 하고 뭔가를 적은 종이를 드는 것이었다. 카메라 위치가 멀어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종이에 뭐라고 써 있는지는 화면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이 시노트 신부였다. 그는,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지 10시간 만에 관련자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민혁명당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그런 시위를 한 것이었다.
시노트 신부는 거대한 체구를 이끌고 연단에 서서 30년 전 그날 밤을 회고했다. 성직자인 그가 처음으로 사회에 발언한 때였다고 했다. 그날 밤 전기도 난방도 끊긴 사무실에서 젊은 기자들과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로 시작되는 찬송가를 불렀다고 했다. 그 찬송가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진실을 말하겠다는 결단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노트 신부는 그 찬송가가 함축하는 의미는 "진실을 말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진실을 말하는 자는 죽어야 한다, 당시의 상황을, 또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한 기자들의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참고로 그 찬송가의 가사 전체를 여기에 옮겨 놓는다.


1.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2.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
3.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좇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의무를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
4.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시노트 신부는, 공포가 지배하는 유신 치하의 인권 유린과 언론 탄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국인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고 자신의 조국은 그 일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 특파원이었던 돈 오버도퍼와 함께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전념했다. 그러나 시노트 자신도, 돈 오버도퍼도 다 틀렸다. 그 무렵 뉴요커(New Yorker)지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 권력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그는 인혁당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부당함을 국제무대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결국 유신 정권에 의해 강제추방 당했다. 한국 사법사상 가장 어두운 암흑의 날, 인혁당 관련 피해자들이 사형당한 날로부터 20여 일 만의 일이었다.


절망의 힘
6시부터 시작한 행사는 8시 반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머리 희끗희끗한 노년이 되신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며 혼자 속으로 30년의 세월을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투쟁의 인생으로 몰아왔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사실 그들의 투쟁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 것이었다. 민주언론운동연합을 만들고, '말'지를 창간하고,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투쟁을 끌어온 게 무엇인가를 다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것은 '절망 그것'이었을 것이다. 너무 단단해 소리조차 날 것 같지 않던 유신의 병영국가, 모든 꿈들이 사라지고 땅은 얼어붙어 새싹이 나리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80년 신군부의 겨울공화국…. 희망만이 사람을 투쟁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절망이 하게 하는 투쟁이 훨씬 더 강력하다. 희망이 하게 하는 투쟁은 그래도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아무런 전망이 없는 깜깜한 절망, 그런 때 투쟁은 존재의 단 하나의 이유가 된다. 무엇이 이루어지리라는 보장도 가망도 없지만 어쨌든 하지 않으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싸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 그래서 그 싸움은 훨씬 더 비장하다. 희망이 타협하는 순간에도 절망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아마 동아투위의 긴 투쟁의 세월도 그랬으리라. 짧은 희망의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더 길고 깜깜한 절망이 그들의 열정을 활활 피워 올리는 땔감이었을 것이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것은 동아일보, 동아방송만은 아니었다. 같은 날 조선일보 기자 150여 명도 선언을 했고, 또 기자들이 파면 당했다. 다른 언론사의 자유언론 선언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지금 사라졌는가. 아마 절망과 희망의 차이가 그 답이 될지도 모른다. 희망은 현실을 대충 짚어도 희망일 수 있지만, 절망은 꼼꼼할 수밖에 없다. 절망은 시대를 날카롭고 예리하게 짚어내고 거짓을 키질해 낼 수 있는 자만이, 거짓 희망으로 위안을 삼을 수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투위의 투사들은 30년이 지난 오늘, 언론 자유의 비약적인 성취라고 평가하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정치 권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정치 권력도 어쩌지 못하는 또 다른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함세웅 신부에게 알려주었듯이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정치 권력과 함께, 그들의 애초 투쟁의 대상이었던 자본 권력이 이제 더 막강해졌다는 점에서 30년 전의 절망은 아직도 유효하다.
문영희 위원장의 기념사 마지막 부분은 이랬다.
"족벌언론의 폐해를 지금 척결하지 않는다면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 자리를 통하여 언론 관련 3대 입법을 시민단체의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 동아투위는… 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하나됨을 위하여 우리의 여생이 다하는 날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하며…."


선배 어르신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30년이 아니라, 300년, 아니 3,000년이라도 쇠하지 말으소서. 내내 절망하소서. 그래서 쩌렁쩌렁 쇳소리로 거짓 희망을 호령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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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0.25 -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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