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은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축복받은 땅 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수도다운 명당이라는 그럴싸한 수식어는 아예 언감생심이고 사람이 인간답게 살만한 도시로서도 부족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황사가 그렇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특단의 대 책이 없는 한 미국 마이애미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이 봄의 불청 객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게 솔직히 어쩌지 못할 운명인 것이 다. 황사가 기승을 부릴 비슷한 시기에 어김 없이 나타나는 화펀 (花粉·꽃가루)의 날림 현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감한 호흡기 를 지닌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전 도시를 뒤 덮는 지저분한 모습은 확실히 수도의 체면을 깎아내리기에 부족 함이 없다. 그렇다고 비가 자주 내려 황사와 화펀으로 지저분해 진 도시를 자주 깨끗이 청소해주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1년에 50 0㎜ 남짓 내리는 강수량 탓에 적지 않은 시민들이 신체 건조증같 은 질병에 시달리는 것이 베이징의 현주소이다. 미국 등의 선진국 기업들이 베이징을 특수 지역으로 분류, 주재원들에게 생명 수당 등의 명목으로 각종 위로금을 듬뿍 안겨주는 데에는 충분한 까닭 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베이징은 수도로서의 최소한 기본 조건 도 갖추지 못한 도시라는 악명으로 예부터 유명하다. 예컨대 시 내를 관통하는 폭 10m에 불과한 인공 수로 량마허(亮馬河)의 존 재는 대체로 바다에 면해 있거나 큰 강을 끼고 있는 고전적 의미 의 수도같은 모습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한다. 더구나 음기가 너무 강해 양기가 기를 못 편다는 풍수(風水)는 수도로서는 최고 의 부적격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대륙 통일 을 눈앞에 둔 1949년 수도를 상하이(上海) 인근의 저장(浙江)성 우시(無錫)로 옮길 것을 신중히 검토한 것은 이런 사실들을 상기 할 경우 그저 한귀로 흘려버릴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 어렵다.
요즘 베이징에 거주하는 중국인들과 약 10만명의 외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기존의 황사와 화펀, 건조한 기후 외에 전혀 예상치 못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이라는 복병까지 돌연 출몰, 전 시내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식 표현을 빌리면 ‘사스라는 유령이 베? 兼÷?배회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이는 본국으로 대피하는 적지 않은 외국인들의 엑소더스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실에서도 아마 잘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문제는 이 엑소더스에 대해 중국 정부가 대단히 불쾌해하고 있다 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특히 5만명 가까운 거류민들의 상당수가 본국으로 귀환한 한국에는 주중 대사관을 통해 서운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태도는 솔직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 측면이 있다. 자신은 불행을 당하고 있는데 환난지교(患難之交)를 나눴다고 생각해온 친구들이 나몰라라 떠 나가니 야속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잠시 누그러뜨린채 다시 한번 생각하면 반드시 그 렇게 야속하게 볼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이번 사태를 전기로 베 이징의 외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전반적인 열악한 환경과 해결 책에 대해 곰곰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을 마련해볼 경우 의외의 전화위복도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특히 사스 창궐의 원인이 되고 있는 위생 시스템에 대한 획기적 개선책을 차제에 마련한다면 베 이징과 중국은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현대 도시 및 국가로 탈바 꿈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일류 국가로 가는 지름길은 어려울 때 일수록 네 탓보는 내 탓을 더 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겸허한 정신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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