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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다시 보는 중국인] 8. 왕조까지 뒤엎는 '순민(順民)'의 힘
[다시 보는 중국 중국인] 8. 왕조까지 뒤엎는 '순민(順民)'의 힘




 
▶ 중국 경찰들이 15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행인의 소지품을 조사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광장 인근 인민대회당에서 중요한 정치 행사가 열릴 때마다 광장을 찾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위를 벌이곤 한다. [베이징 AP=연합]
 
중국 정치의 상징인 베이징(北京)의 천안문(天安門)광장은 늘 한가하고 여유롭다. 그러나 갑자기 소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가 광장에 접한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을 향해 뛰어간다. 손엔 유인물이 들려 있다. 목청껏 "웬왕(寃枉.원통하다)"을 외쳐댄다. 얼마 뛰지 못해 경찰에 붙들린다. 구경꾼들은 이내 흩어지고 광장은 평온을 되찾는다.

이 같은 소란은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국회 격)가 열리는 3월이나 당 대회가 열리는 가을에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다. 억울한 일, 가슴 아픈 일, 부패한 지방관리에게 당한 사연을 가지고 베이징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상팡(上訪.윗 기관을 찾아 투서하거나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다.

베이징 남부역 주변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초라한 행색과 뭔가 주눅이 든 표정, 보잘것없는 짐 보따리를 멘 사람들이 어슬렁거린다. 3위안(약 420원)에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상팡'하는 사람들의 숙소가 있는 곳이다.

"남편이 물건을 조금 훔쳤는데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어요. 하도 억울해서…." 엊그제 베이징에 올라왔다는 20대 후반의 주부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공장에서 횡령죄를 뒤집어쓰고 1년 옥살이를 했지요. 이대로는 분해서 살 수가 없어요." 60을 넘긴 나이에 8년이나 상팡을 하고 다녔다는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팡하는 사람들이 베이징에 올라와 처음 찾는 곳은 천단(天壇) 서쪽에 있는 신방국(信訪局)이다. 원통한 사연을 담은 서류를 중앙정부에 공식 제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길이가 400m쯤 되는 이 거리엔 각 지방의 사복경찰들이 쫙 깔려 있다. 고향 출신 민원인들을 사전에 제지하기 위해서다. 자기 고장의 문제가 중앙에 알려질 경우 문책이 두려운 지방관리들이 베이징에 올려보낸 것이다.

따라서 갈 데 없는 상팡 민원인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방법이 유인물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그래서 천안문 광장이 종종 소란스러워지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상팡이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억울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많고 적고 간에 중국 사회엔 이 같은 억눌림이 늘 존재했다. 왕조(王朝)시대의 전제적 통치, 또 그 밑에서 횡행한 지방관료들의 부패와 학정 때문이다.

순항 중인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패하고 무능한 지방관료, 그로부터 생겨나는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악순환에 희생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중국의 백성들은 대부분 말을 잘 듣는 이른바 '순민(順民)' 스타일이다. 열차표 예매장에서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경찰이 몽둥이를 휘둘러도 대드는 사람 하나 없다. 10시간 넘게 비행기가 연발해도 창구에 가서 따지는 사람이 없다. 모두 꾹 참고 기다린다. 중국인들의 이런 모습은 보통 '순민 의식'으로 불린다. 그러나 속으로야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겠는가.

중국의 TV 드라마에는 주인공들이 연(鳶)을 날리다 연줄을 끊어 버리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억울하고 답답한 사정을 주인공 스스로 삭이는 대목이다. 아니면 맺어지지 않은 사람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에게 연은 생활 속의 괴로움과 억울함 등 답답한 심사를 털어내는 수단이다. 그래서일까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에선 연을 날리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바람 부는 날이면 예외가 없다. 정월에 잠시 연을 띄우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중국 당국은 최근 상팡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의 순민들은 때론 '폭민(暴民)'으로 변하고 왕조를 뒤엎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눌림의 극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16일 개막된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중국 공산당은 농촌 문제와 빈부 격차,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중요 국정과제로 토론 중이다. '순민의 폭민화'를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kjyoo@joongang.co.kr>

2004.09.17 18:33 입력 / 2004.09.18 07: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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