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Name |
 정길화 |
|
| Subject | 다시 전진 배치된 시트콤 |
|
‘쉽고 싼’ 재미에 완성도는 뒷전
어리석은 질문을 한 번 던져 보자. “시트콤은 ‘흥행의 보증수표’인가, 아니면 ‘빛 좋은 개살구’인가.” 아직은 역사도 일천하고 제대로 된 틀거지도 갖추지 못한 마당에, 개별 프로그램도 아닌 전체 장르를 두고 도매금으로 가타부타 떠들어대는 것은 분명 무리가 따르며 적절치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운을 떼보는 것은 우리 방송에서의 시트콤의 만만치 않은 포진과 부푼 기대감, 그리고 거듭한 실패와 포기하지 않는 미련이 엄연한 현실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 비평의 대상으로 시트콤을 택한 의미도 바로 거기에 연유한다.
가을 개편에서 재신임
미국에서 1930-40년대 정착된 라디오 시트콤이 1950년대 텔레비전으로 그 터전을 옮긴 후 탄생한 TV 시트콤은 그 후 오랜 기간동안 장르적인 관습의 변화와 다양한 가치지향을 거치면서 발전돼온 서구, 특히 미국적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1993년 2월 처음 ‘오박사네 사람들’(SBS)로 시작한 우리의 시트콤은 사실상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 숫자에 비해 성공작이라고 선뜻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성과는 빈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트콤은 이즈음의 방송 프로그램 시장에서 논의의 핵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다. 예컨대, 몇 차례의 정기 및 수시 프로그램 개편에 있어 시트콤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99년 봄 개편 당시 9개에 이르렀던 시트콤은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겪긴 했지만 다시 재도전하자는 의지의 다짐이었지 퇴출의 뜻은 아니었다.
그 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망감 때문인지 잠시 드라마와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 밀려나는 듯 보였지만 가을 개편에서 재신임을 받으면서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였다. 이는 해가 바뀐 2000년에도 이어진다. 처음 그 물꼬를 트면서 나름대로 비법을 터득해 온 SBS는 ‘순풍 산부인과’, ‘LA 아리랑’, ‘행진’ 등을 통해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남자 셋, 여자 셋’으로 한 때 커다란 영화를 누렸던 MBC가 다시 재기를 다짐하며 승부수로 던진 ‘가문의 영광’과 ‘세친구’, 그리고 시트콤시장에서 한번도 제대로 재미를 본 적이 없는 KBS가 절치부심하여 내놓은 ‘반쪽이네’와 ‘러브보트’(4월 방송 예정) 등 꽤 풍성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풍요’의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트콤 장르의 전략적 강점에 힘입은 바 크다. 저렴한 제작비(회당 1,200-1,500만 원대), 기본 시청률의 담보(약 20% 내외), 효과적인 편성 전략(띠 편성을 활용할 수 있어 주 중 지속적 시청을 유도), 초저녁의 선점에 따른 사후 효과(동반상승의 인접효과), 그리고 재방송이나 윈도우 효과의 창출에 적합한 컨텐츠 등은 대단한 상품적 가치로 비추어졌다. 여기에 IMF라는 상황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시트콤의 ‘저비용 고효율’의 특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IMF가 해동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그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시트콤은 코미디와 다르다
사실 시트콤의 기본적인 성공요건은 여타의 허구적 프로그램의 경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우선 뛰어난 주제의식과 극적 구성을 갖춘 시나리오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화면에 옮기는 솜씨 있는 연출력이 뒤따라야 하고, 거기에 각각의 자리에서 충실히 제 몫을 해주는 등장인물의 생생한 연기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아우르며 거의 모든 시트콤 제작진들이 예외 없이 출사표로 내세우는 것이 있다. “웃기려고 오버하고 웃음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자연히 웃음이 나오게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시트콤이다.”(‘세친구’의 연출자 송창의). “말초적인 감각을 좇아 매회 강도를 높이다 보면 자연히 억지 웃음과 실소를 강요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건강한 웃음’에 있다.”(‘반쪽이네’ 연출자 이재영). 말하자면 시트콤의 요체는 철저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움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몰라서 안하는 것인가 알고도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론과 현실의 차이인가. 현 단계의 한국의 시트콤이 이러한 기본 원칙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는 게 우리 월평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마디로 ‘풍요’ 속의 ‘빈곤’인 셈이다.
우선 시트콤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시트콤을 코미디의 연장선상으로 손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대체로 예능국에서 시트콤을 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시트콤은 코미디와 다르다. 거기에는 코미디의 작위성 내지 과장성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이를테면, 코미디에서는 가능한 ‘현실에서 불가능한 사실의 현실로의 환치’가 시트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폭탄을 안고 터진 심형래가 머리만 부스스하게 그을릴 뿐이지 멀쩡하게 일어나도 우리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마음속에서 그것을 용인하고 시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트콤은 사정이 다르다.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더라도(반쪽이네) 그것은 과장 연기나 억지 설정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물론 시트콤이 코미디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현장성과 즉흥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호흡이 가능한 코미디처럼 상황에 따른 연기자의 임기응변에 그저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시트콤의 순발력있는 애드립은 완전한 콘티를 전제로 부가되는 것이며 심지어 그것조차 계획되고 연출되기도 한다(‘개그 콘서트’에서는 할 때마다 버전이 달라지기 때문에 앵콜개그가 가능하지만 ‘세친구’는 다시 해도 재방송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이다).
친근한 소재로 ‘동조’ 유발해야
그렇다고 시트콤이 드라마라고는 할 수 없다. 시트콤이 드라마(특히 멜로드라마)와 가장 크게 구분되는 특성은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내러티브 구조에 훨씬 더 의존한다는 점이다.
멜로 드라마가 계속적인 시간적 전개의 의미를 공들여 유지하고 새로운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시트콤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의 끝이란 처음 상황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즉 종결부분에서 등장인물들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자리로 되돌려놓음으로써 상황은 변화가 허용되지 않는다.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네는 독립해서 나가는 듯 보이지만 전세사기를 당해 결국은 다시 처가에 더부살이를 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이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웃으로 시작하였다가 결혼까지 이르게 되는 이덕화와 임예진의 관계 변화(LA 아리랑)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시트콤의 상황근거를 파괴하거나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시트콤을 두고 보수적인 양식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도 바로 새로운 발전의 여지를 주지 않는 이러한 순환적 내러티브구조에 기인한다.
요컨대, 시트콤은 코미디적 발상과 드라마적 구조의 절묘한 결합이 요구되는 별도의 독립 장르로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시트콤 고유의 특성이자 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드라마적 틀을 유지하면서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치밀함과 정교함이 필요한 ‘이성적인’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트콤의 ‘리얼리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끄덕거림의 ‘동조’를 낳는다. 그것은 신기함을 주는 의외적인 것이나 진기한 것이 아닌 우리 실생활과 밀착된 친근한 소재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몇 안 되는 성공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순풍 산부인과’의 비결은 ‘똥’이나 ‘방귀’와 관련된 아주 자질구레한,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봄직한, 그러면서도 감추고 싶은 경험을 풀어냄으로써 일상성과 현실성을 획득한 것이다.
스토리보다 종종 캐릭터의 정형화를 통해 승부하는 시트콤은 드라마와는 또 다른 연기 역량이 요구된다.
실내 제작의 장점 활용을
그러나 시트콤을 소화할 유연하고 순발력 있는 배우가 현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여기에 탤런트들이 시트콤을 대체로 기피한다는 점도 또 하나의 애로점으로 지적되었다. 캐스팅 후 인터뷰에서도 그들 스스로가 밝혔듯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경우 이미지만 버리거나, 잘 되더라도 이미지가 고정되고 굳어진 이미지를 털어내기가 일반 드라마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시트콤의 배역진 구성은 탤런트을 중심으로 한 경우(세친구, 가문의 영광)와 탤런트와 코미디언을 결합시킨 경우(반쪽이네, 행진)로 나뉘어진다.
그 모두 연기자의 퍼스낼리티가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얼마나 녹아드는 것이 관건이 될 터인데(‘세친구’는 연기자의 퍼스낼리티는 확보한 것으로 보이나 아직 캐릭터의 정착은 미지수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출신배경이 다른 두 연기자군의 조화 혹은 부조화의 결과가 전체적인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청춘 시트콤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된 ‘남자 셋, 여자 셋’은 양자의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진 예이며, ‘반쪽이네’는 아직 서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형국을 보인다.
우리 시트콤에 대한 아쉬움의 하나로 실내 제작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스튜디오 촬영은 단지 제작비의 절감이라는 차원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스튜디오 제작은 공개녹화를 통한 현장감과 입체감을 살릴 수 있으며 보다 선명하고 밝은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선을 제대로 확보함으로써 다양한 카메라워크를 유도하여 역동성을 가질 수 있다. 이를테면, 시트콤의 주무대인 거실과 침실, 식당의 장소전환에 따른 장면의 전환을 컷트 편집만이 아닌 보다 긴 호흡으로 패닝(panning)과 같은 카메라워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모두 기뻐하는 농담 문화를
스튜디오라는 제한된 공간을 무대로 한다는 것은 가능한 사건의 장소는 크게 벌이지 않고 단순화하면서 치밀한 구성의 대본과 동선이 활발한 연기 외에 필연적으로 섬세한 심리묘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것은 시트콤만의 독특한 특성이나 맛으로 작용한다. 드라마와는 달리 시트콤에서 등장인물의 독백이 다양한 방식으로 종종 등장하는 것은 그러한 심리묘사의 한 방법이라 하겠다.
시트콤에 대한 가장 커다란 비판은 결국 그것이 천박한 일회용 배설문화를 양산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득세는 시사풍자 등 고유기능을 갖고 있는 전통 코미디와, 삶의 진정성을 그리는 드라마의 약화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트콤의 본원적인 성격과 기능에 대한 진단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것이 텔레비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면 폭력성과 선정성이라는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자연식품으로서의 시트콤의 존재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형적인(stereotype) 인물 설정, 정상성(normality)을 근간으로 하는 내러티브, 공통경험(common experience)을 통한 유머유발과 가족화(domesticization)의 결론추구,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순환성 등의 시트콤의 구성요소는 태생적으로 시트콤에 “새로운 일을 생기게 할 수 없는 형식”의 보수적 성격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고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다분히 현실안주적이고 소시민적 행복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재미의 질이 항상 문제이긴 하지만 시트콤이 지향하는 세계는 민주주의적이고 평등주의가 깔려 있는, 가족 성원들이 같이 농담하고 까불고 노는, 어른도 어린이도 동등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사극의 카리스마적 주인공이나 멜로 드라마의 멋쟁이 남녀, 홈드라마의 궁색한 꼴이 아닌) 다 함께 주인공이 되는 사회를 그려주는 데 있다면 그것 자체의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상대방을 상처주어 희열을 얻는 가학적이고 척박한 유머문화가 아닌 다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농담의 문화, 즐거운 말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시트콤의 진정한 본질이 아닐까 하는 평가이다.
이는 예의 오락 프로그램의 재미와 감동의 공존논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라는 또 다른 쟁점을 제기하는 것으로 다른 자리가 필요한 부분이나, 다만 재미가 그렇듯이 감동도 하나의 틀에 가두어 놓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와 시간을 투자해야
지금 시트콤을 대하는 방송사들의 사고에는 분명 이기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자리잡고 있다. 주 5일 방영하는 살인적인 제작 시스템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시트콤의 경제적 측면은 ‘쉽고 싼 맛’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머리와 시간을 투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재정적, 물적 지원으로도 작품의 ‘완성도’를 획득할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폐쇄되고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풍토에서 시트콤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자면 일면 대견하고 유별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 시트콤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풍토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된다.
그러나 더 발전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장차 그것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보다 커다란 장르적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시트콤은 우리의 풍토를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방향으로 끌어나갈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대표집필·하종원 /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토 론·정 훈 / 문화·예술TV 방송본부장
정길화 / MBC 프로듀서
신문과 방송 2000. 03
|
  |
|
|
|
|
| | |
| | |
|
|
|
|
|
|
|
|
|
이름검색
55
1
3
KBS2TV 영상기록 병원24시
밀레니엄 특집 방송과 2000년 10대 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