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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글화 (http://jungpd.co.kr http://jungpd.co.kr)
Subject   ☞  짝퉁 상가에서의 단상
오리지날 원고 첨부

짝퉁 상가에서의 단상




  서울의 이태원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드높은 곳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장 말로만 듣던 쇼핑의 천국 이태원으로 직행하기 위해 서투른 발음으로 이태원을 외치는 외국인도 더러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이태원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를 나는 정확히 몰랐다. 몇 번 이태원을 가보았지만 처음에는 그저 외국인들에게 영어가 통하고 물건값이 싸서 그러려니 하였다. 필자는 이태원에서 쇼핑을 한다 해도 그저 보세품 청바지 정도 말고는 뭘 사본 적이 별로 없다. 뱀장어 가죽 물건이니 담요, 모피가 인기품목이고 오래된 양복점도 성업중이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외국인들 상대일 것이고 내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태원에서 대대적인 가짜상품 단속이 있었다는 TV뉴스를 본 적이 있다. 화면에는 구찌니 버버리니 하는 상표의 압수된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옆에는 흔히 사건 사고 기사에 나오는 '피의자'들처럼 그 물건들에 연루된 듯한 일군의 한국인들이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었다. 이들의 죄목은 진짜와 흡사한 유명 상표의 물건으로 해당 국가와 회사의 상표권, 특허권을 침해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가짜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한 것이다. 이러한 물건을 전문용어로 짝퉁이라고 한다는데 - 이 말의 어원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품은 진퉁이라고 한다... - 이태원은 바로 이 짝퉁의 천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태원이 쇼핑의 장소로 유명한 것은 기본적으로 값싸고 질좋은 상품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세계적인 브랜드의 물건을 파격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매력이 한때 이태원을 그렇게 이름나게 했을 듯하다. 품질과 디자인 면에서 진짜를 뺨치면서 가격은 몇 십분의 일이라면 웬만하면 그 물건을 사고 싶을 만도 할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명품 브랜드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 등 사실상의 신분을 드러낸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경제원칙에 딱 들어맞는다. 명품과 거의 근사방불한 물건을 아주 적은 돈으로 사서 진짜 브랜드가 갖고 있는 품질을 취하고 나아가 어떤 과시효과까지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요새도 이태원이 그같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듣기로는 WTO 체제 출범 이래 상표권, 지적 소유권 등에 대한 선진국의 압력이 날로 드세져 우리 당국도 종전의 '면피용' 체면치레가 아닌 실질적인 단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전에 방송되는 어떤 탐사 프로그램을 보니 요즘은 이 짝퉁 물건들을 드러내 놓고 팔지는 않고 고객의 신뢰성(?)을 검증한 뒤에만 안전하게 물건을 판다는 내용도 있었다. 최근에는 선진국의 압력과 당국의 단속으로 짝퉁의 유통기지가 한국에서 동남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짝퉁은 어느 정도 기술 수준을 갖춘 나라에서 만들어진다. 수출 위주의 제조업 기반을 갖춘 나라, OEM 제품 정도는 충분히 만드는 나라, 그러나 브랜드 파워에서는 선진국에 현저히 밀리는 나라가 모방 복제품을 만드니 그것이 짝퉁이다. 일조일석에 선진국 제품의 유명세를 따라잡을 수는 없고 브랜드 유지비나 디자인 개발비를 감당할 수는 없는 나라들이 진품과 아주 비슷하게 물건을 만들어 유명 상표를 부착하면 그것이 바로 짝퉁이다. 한국, 중국, 홍콩, 타이완 같은 나라들이 짝퉁의 본산처럼 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가짜 상표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 제조업 기반이 없어 못 만드는 나라도 있다. 그래서 일정한 수준의 개도국이나 선진국 진입 목전의 나라들이 이들 상품을 만들게 되고 따라서 유명브랜드를 가진 나라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짝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필자의 옷매무새로는 명품을 입으면 짝퉁으로 보이고 짝퉁을 입으면 그냥 짝퉁으로 보인다. 이러니 굳이 명품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명품은 비싸서 못 사고 짝퉁은 어차피 짝퉁이라 안 산다. 그래서 웬만한 국산 브랜드로 버틴다. 이것이 중국에 오기 전까지의 나의 소비패턴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지금은 어떤가. 리두(麗都) 상가, 쉬우쉐이지에(秀水街), 홍치아오(紅蛟) 시장.... 베이징에 사는 사람이거나 중국을 자주 오는 사람이면 방금 나열한 이 지명들이 매우 낯익을 것이다. 혹여 반가운 사람도 있겠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베이징의 대표적인 짝퉁 상가다. (물론 짝퉁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홍치아오는 수산물, 진주, 완구 등의 종합상가로도 유명하다...) 목하 나의 단골 쇼핑 장소이기도 하다. 계절이 바뀌어 옷이 필요하면 이 곳으로 나가서 쇼핑을 한다. 그렇다면 필자가 중국에 온지 여섯 달만에 사람이 달라진 것인가. 이즈음은 내가 짝퉁을 입으면 그것이 명품으로 보이기라도 한단 말인가. 단연코 말하건대 그런 것은 아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겠지만 베이징에서 살며 내가 즐겨 짝퉁을 입는 것은 먼저 경제적 이유에서이다. 가족과 함께 온 연수생의 형편은 뻔하다. 생활비 절감을 위하여 먹고 입는 것에서부터 줄일 것은 줄여야 한다. 명품 브랜드의 상표라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다. 살 수 있는 물건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시 옷장을 뒤져본다. 버버리, 구찌, 폴로, 아르마니, 발리 등 ‘전통의 명가’에다 팀버랜드, 더노스페이스, 토미힐피거, 페라가모, 바나나 리퍼블릭, 펜디 등 한국에 있을 때는 이름도 모르던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중국에 와서 삶의 질이 이렇게 오르다니(?)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

 게다가 짝퉁 상가에서 물건을 사면 중국어 회화실습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대개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기에 적정한 가격선까지 내려오려면 할 수 있는 중국어를 총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기실 실습치고는 매번 비슷한 표현을 구사하는지라 학습진도는 매우 더디다. 매양 타이꿰이(太貴) 피에니 이디알(便宜 一点兒)...만 반복숙달한다. 상인이 가격을 부르면 일단 값을 30%, 40% 이하로 깎는데서 흥정은 시작되고, 바야흐로 고객과 주인의 타오지아후안지아(討價還價 가격흥정)는 불꽃이 튄다. 중국인들도 한국 사람들의 작전을 알고 그것까지 감안해서 가격을 부르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최근엔 중국 상인들도 상당히 세련된 전법을 구사한다. 이름하여 '니슈오바(你說 口+巴) 작전'이다. 네가 생각하는 적당한 가격을 먼저 얘기해보라는 식인데 이때 잘못 액수를 불렀다간 자진해서 바가! 지를 쓰게 된다.

 여기에 대응하려면 여러 가게를 돌아다녀 내가 원하는 물건의 대략적인 시장조사를 한 뒤 전투에 임해야 한다. 그 다음은 상인과 수읽기, 기싸움, 버티기 작전으로 가야 한다. 돈은 내 손에 있고 아쉬운 것은 상점 주인이라는 것을 끝까지 견지하지 않으면 흥정에서 실패한다. 그래서 중국어를 못할수록 배짱으로 임할 수 있기 때문에 물건을 더 싸게 잘 산다는 말도 있다.

 여하간 베이징에서는 한국에서보다 짝퉁 물건을 쉽사리 구입한다. 그것은 아무래도 가짜 상표에 대한 불감증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중국에는 이런 물건이 너무 많다.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널려 있다보니 아무도 여기에 대해 달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 보면 너도 입고 나도 입고 다 입고 있다. 브랜드상표 옷을 입고 억지로 폼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당연히 입는 옷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 덕에 베이징에서의 의류생활은 남부럽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짝퉁이 패션, 의류, 잡화 등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WTO 체제하에서 더욱 강화된 것이 지적 소유권 상품인데 짝퉁은 여기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바로 해적판의 출몰이다. 컴퓨터 게임, 프로그램, 영화, 방송, 음반.... 원저작자가 와서 보면 눈에서 열불이 날 정도로 이른바 다오반(盜版)이 범람하고 있다. 개봉 직후의 영화 심지어 중국에서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한국영화도 DVD로 나온다. 장이모 감독의 최근 화제작 ‘영웅’이니 첸카이거 감독의 ‘투게더(和你在一起)’니 공리의 최신작 ‘조우위의 기차(周漁的 火車)’니 하는 작품도 다 이 다오반 DVD로 염가에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못 보았던 ‘YMCA 야구단’과 ‘취화선’도 같은 방법으로 보았다. 베이징 시중의 DVD는 거의 다오반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얘기도 있다. 심지어 한국의 정? 걋?중국에서 다오반으로 복제된 뒤 한국내로 반입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짜 브랜드 의류를 사입을 때와는 달리 사실 무단 복제 DVD를 염가로 살 때는 좀 켕긴다. 짝퉁옷의 경우 값은 브랜드에 비해서는 파격적으로 싸지만 그래도 대충 물건의 실제작비에 근접하는 대가를 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솔직히 짝퉁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잘 사는 선진외국이 아닌가. 이에 비해 다오반의 경우는 기분상 물리적인 물건의 값(디스켓 값?)을 치를 뿐 프로그램의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내는 것 같지는 않다. 또 한국의 문화 상품이라면 피해를 보는 쪽이 한국쪽의 제작자이거나 가수, 연기자일 것이다. 모름지기 영상문화와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품을 사야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당장은 싼 맛에 구입해서 좋겠지만 이것이 장차 관련 업계의 창의성을 위축시키고 소프트웨어 개발 의욕을 압박한다. 이 경우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물론 중국 정부당국도 지난해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래 수시로 해적판이나 가짜 상품에 대해 단속을 하고 있다고는 한다. 국제적인 압력이 거세지면서 ‘지적 재산권 보호’ 방침을 천명하고 중앙 정부 차원에서 해적판에 대한 전면적인 소탕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2002년에는 압수해서 태워버린 다오반이 6백만 달러어치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해적판과 가짜 상품 시장의 전체적인 규모에 비하면 이는 턱없는 수치다. ‘작전’도 거의 일과성이다. 단속반이 전격적으로 들이닥친다는 서울의 이태원 상가의 긴장되고도 은밀한 분위기에 비하면 베이징의 그곳은 너무도 공공연하고 거리낌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짜 상품은 중국이 더한데 만만한 한국에게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가짜상표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그리 자랑스런 일은 아닐 터이다. 선진국들이 정작 '짝퉁의 왕국'인 중국은 젖혀 두고 한국을 자주 타게트로 삼는 것은 우리를 속죄양으로 해서 중국측에 경고를 보내는 성동격서의 그것은 아닌지 심기가 불편해진다. 중국도 이미 WTO에 가입하였지만 선진제국에서는 이들 중국내 다오반을 아직 단속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그래도 한류 상품이 중국에서 다오반으로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역설적인 생각도 든다. 안재욱, 장동건, 김희선, 전지현, 김남주, 이정현...이 공연히 다량 복제되겠는가. 한국의 영화와 방송프로그램 그리고 음악이 시장성이 있길래 다오반씩이나 만들지 않았겠는가. 이 물건의 고객으로 중국에 와 있는 한국인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중국 고객을 타게트로 하였다는 것은 그동안의 무수한 한류 붐에서 증명된다. 이같은 다오반의 범람으로 인해 정작 그걸로 돈번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는 말도 있다. 어떻든 다오반이 나오게 할 정도의 문화 콘텐츠가 있는 것은 특기할 일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카피해서 만들어낼 가치가 있는 콘텐츠와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 짝퉁 상품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쉬우쉐이지에의 그 많은 가짜 상표 물건 중에 한국 브랜드의 상품은 드물다. 이는 한국 상품 가운데 패션, 의류, 잡화 중에서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별로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유일하게 이랜드 상표의 의류를 우리 딸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반면 중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신라면과 초코파이는 가짜가 있다고 들었다. 중국의 가짜 상품 리스트는 달리 말해 그 상품의 경쟁력과 세계적인 유명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단기적으로는 한국상품의 짝퉁이 범람하면 중국시장에서의 기회이익을 박탈당하는 점에서 속상할 일이다. 하지만 역으로는 상품의 인지도를 확인하고 확산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의 물건을 빨리 잘 베끼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아시아 국가에서의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와 그 서구의 또다른 모델인 일본에 대한 모방과 복제의 역사다. 반면 왕년에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였고 아무리 못해도 동양문화의 원류는 능히 되는 중국이 오늘날 짝퉁의 본산이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산업화가 늦고 문명화가 뒤졌기에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단계라 해도 말이다. 특히 이들은 여기에 대한 특별한 문제의식도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중국이 가짜 상표의 오명에서 언제 벗어날지는 기약하기 어렵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자체 브랜드 상품이 하나씩 둘씩 세계시장에 늘어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 저울추가 언제 평형을 이루고 또 역전이 될지 미상불 주시할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오늘 쉬우쉐이지에를 갈 이유가 또 생겼다. 중국 시장에서 짝퉁 브랜드가 얼마나 늘어났나를 통해 시장의 동향을 점검(?)하는 것이 그것이다. 속으로 사용해야 할 중국어를 점검해 본다. 뚜오샤오첸? 헌꿰이! 피에니 이디알.... 오늘도 중국어 늘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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