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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사스와 중국언론
사스와 중국언론

피디연합회보

갈수록 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미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이나 교민이 부지기수다. 내가 사는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에도 드디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 중국의 공항이나 항만이 사실상 봉쇄될지 모른다는 얘기도 있다. 자고 나면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늘어난다. 두꺼운 마스크 아래에는 필경 근심어린 표정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결코 내가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사스 덕분에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복은 지지리도 없어, 고르고 골라 연수를 중국으로 와 이 지경이다.
  
  중국 당국이 사스를 인정하고 기자회견을 한 것은 4월초다. 지난해 11월 광동성에서 발발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무려 5개월이 지난 뒤에야 공식 인정한 것이다. 그 사이 광동성과 홍콩을 비롯한 중국 남부지방에서 사스는 계속 전염되고 있었고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정체가 판명되지 않은 이 병은 처음에 괴질로 불렸고 이제는 사스(SARS), 글자 그대로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라는 처음 듣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에서는 ‘비전형(非典型) 폐렴’이라고 부르는데 무엇은 전형이고 무엇은 비전형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전형 폐렴은 좋은 것이라는 얘기인지. 저들의 작명에 어떤 의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름부터 못마땅하다. 본질을 호도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그동안 사스를 은폐해 왔다. 최초 발병 이후 춘절 휴가와 전인대가 있었다. 휴가 기간중의 소비 경기와 후진타오 체제의 출범을 위하여 그들은 언론을 통제하고 사스의 공표를 막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사스를 통제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들의 계산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는 쉽사리 통제되는 대상이 아니었다. - ‘쥬라기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생명은 통제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살아있는 그 무엇이다.- 춘절 기간중 대규모 이동으로 병은 전중국으로 확산되고 지구촌 시대에 쉽사리 국경을 넘었다. 광동성과 인접한 홍콩은 중국이 일찍 사스를 공론화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을텐데 유감스럽게도 최대의 피해지역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중국 당국은 공식 발표하는 감염자 수나 사망자 수도 축소해 왔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베이징 모 군병원 의사의 양심선언 등이 외국 언론에 보도되는 등 시비는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중국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다. 마침내 지난 18일 후진타오는 사스에 관해서 은폐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 지시가 있고 나서 당국의 새로운 발표가 나왔다. 베이징의 경우 이전 수치와 비교해 환자 수가 물경 8배나 늘어났다. 은폐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러려니와 후진타오 지시 이후 새로운 수치가 바로 나오는 것부터 충격적이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위생부장관과 베이징 시장을 전격 경질하였다. 그들이 축소은폐의 장본인이란 말인가? 완벽한 언론 통제를 근간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중국에서 그들은 한마디로 속죄양일 뿐이다.

  사스 사태는 16대와 전인대를 거치면서 공식 출범한 후진타오 체제의 최대의 시련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스는 이제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혁개방 이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이후 중국이 걸어온 길에 대한 총체적인 시험으로 생각된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중국의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를 지적한다. 최근 수년간 중국이 거둔 경제부문의 고속 성장의 이면에서 선진화되지 못한 시스템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요인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인민을 통제와 순치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오로지 당의 결정이 지고지선이라고 여기는 그들의 일당독재 관료주의와 도구적 언론관이다.

  사스가 발병한 초기에 언론이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공개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겠느냐고 내가 아는 어느 중국 기자에게 떠듬떠듬 말했더니 그가 대거리했다. 미국, 일본이나 한국의 언론처럼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병원, 환자, 유가족들을 마구 들쑤시면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 당국이 사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과되지 않는 보도에는 인민들이 패닉상태에 빠질 것이다. 권력에 저항하고 정부와 다른 비판적 의견을 가지는 것이 저널리즘이라고 알아온 내가 놀란 것은 그가 가진 정부와의 자기동일시였다. 그것이 사회주의 언론의 본령이라면 유규무언이다. 권력과 언론의 잘못된 자리매김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작금의 사태는 극명히 보여준다.

추신> 지금 한국에는 이번에 사스 사태로 대거 귀국하는 유학생들을 장기간 격리수용하거나 아예 봉쇄해야 한다는 일부 한국 사람들의 말이 베이징에 전해지고 있다. 전염을 우려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입맛이 쓰다. 긴급피난 차원에서 조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사갈시(蛇蝎視) 하다니... 지금 중국을 비판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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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04.22 - 22:55
LAST UPDATE: 2003.04.23 -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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