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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글화 (http://jungpd.co.kr http://jungpd.co.kr)
Subject   에필로그 - 베이징 택시와 돌아온 지갑
정피디의 중국엿보기 12

  필자는 드디어 1년간의 중국 연수를 마쳤다. 이제는 원대복귀하여 일상으로 돌아왔다. 1년 동안의 베이징 생활은 무서운 기세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을 현지에서 체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동 기간중 뜻하지 않은 사스 사태로 불안과 불편도 많았다. 이로 인하여 연수 후반기에 들어 현장 중심으로 체험을 하고자 했던 필자의 계획은 대부분 포기되어야 했다. 이 점은 지금도 특별히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도리어 사스 사태 덕분에 이에 대응하는 중국 사회의 작동방식과 그들의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기대 이상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1년 정도의 연수 생활로 거대한 중국을 정면으로 응시하기에는 내공이 모자랐음을 자인한다. 그래서 나의 <중국 엿보기>는 대부분 변죽을 울리는 관찰기이거나 외곽을 돌면서 디다우보(地大物博) 혹은 디다런두오(地大人多)의 중국사회를 글자 그대로 엿보는 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이런 기회를 준 편집진과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제 시리즈를 마쳐야 할 때가 왔다. 연재를 마치는 이 순간 뇌리에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소품이지만 작금 중국과 중국인의 변화를 ‘엿볼 수’는 있어 이를 정리하고자 한다.  

에피소드 1 - 어떤 근무자의 파워 꺼버리기

   13억 인구의 중국. 당연히 온갖 사람이 다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간해서는 친해지기 힘들고 공적으로 한두 번 만나는 사람들의 불친절과 오만함은 때로는 역겨움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중국에서의 좋은 기억을 종종 훼손한다.
   프로그램 관련 화면을 확보하기 위해서 모 기관의 자료실을 갔을 때의 일이다. 자료화면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찾고 있는 내용이 보유 화면 중에 있는지 그 중에서도 적확한 장면이 얼마나 있는지를 검색을 한다. 그리고 난 후 시간을 엄정히 체크해서 요청을 해야 한다(무수한 해적판의 범람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지적 소유권 시비에 휘말리는 중국이 정작 자기들이 보유하고 있는 이런 자료화면의 대가는 철저하게 챙기는 편으로 그 비용은 매우 비싸다). 이후 원본에서 복사된 자료화면에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일을 추진된다. 공교롭게도 이날 꽤 많은 분량의 테이프에서 화면을 검색하려니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그림을 아카이브에서 보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나올 때도 있어 피디 욕심에 일이 얼른 끝나지 않는다. 쾌재를 부르며 정신없이 화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자료실 편집기의 파워가 나간다. 이게 웬 일?
   알고 보니 아까부터 옆에서 불편한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던 자료실 담당자가 편집기의 파워를 꺼버린 것이다. 중국에서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점심 시간이 적용되는 곳이 많은데 아마 그 곳도 그러했던 것 같다. 그 때 시간이 11시 40분이 채 못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성미 급한 이 사람이 기다리다 못해 파워를 꺼버리고 식사를 나간 것이다. 그 때의 당혹감과 불쾌감이란....자료실 담당자라면 나같은 구매자를 상대하는 것은 그의 고유 업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소정의 비용을 내고 일을 보는 고객에 대한 대접이라고 보기에는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소행이다. 아무리 그의 점심시간에 좀 차질을 빚게 했다고 해도 말이다.  
  황당한 채 망연자실하고 있는 내게 동행의 코디가 위로를 해주었다. “중국인들에게 점심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점심 시간이 넘도록 일을 한 당신의 잘못이 없지 않으니 그렇게 이해해라...”운운.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일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소정의 자료비용을 낸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인 업무이니 막말로 개인 수입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그래서 그 때 나는 ‘그래 이해하자. 13억 중국인이 모두 친절하고 이른바 고객 마인드로 열심히 일을 하고... 이러면 그 옆의 4천 5백만 인구의 대한민국이 뼈라도 추릴 수 있겠어....’ 하고 위안 아닌 위안을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중국에서의 1년 동안 중국인들로부터 이런 저런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필자는 ‘중국이, 중국인들이 저러고 있는 것이 차라리 한국에게는 다행이다.’며 심사를 달랬다. 더욱이 민주화의 결과로 ‘관의 위력’이 현저히 감퇴한(?) 나라인 한국 땅에서 온 처지에 위압적인 공안, 불친절한 공무원들으로 인한 분노와 스트레스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중국에 온 한국인이 느끼는 이런 저런 불편은 그만큼 한국의 시스템과 문화가 중국에 앞서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곧 한국의 경쟁력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상당히 타당하다. 중국인들의 오만함이나 배타성도 알고 보면 아편 전쟁 이래 지난 150년 간 외국으로부터 당해온 피해의식이 그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에피소드 2 - 돌아온 지갑

  문제는 중국이 여기에 머무르고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위의 에피소드도 사실 정확히 1 년 전의 이야기다. 요즘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출근은 오전 8시, 퇴근은 정확히 오후 5시라는 중국 공무원의 근무시간도 옛날 이야기가 되고, 최근에는 밤 10시가 되도록 일하는 정부청사도 있다는데 비록 그것이 보편적인 변화는 아니라 할지라도 매우 시사적이다.
  필자는 지난 8월에 중국의 IT 산업을 취재하였음을 본란에서 말씀드린 바 있다. 문화방송의 8.15 특집 <엎그레이드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한국을 추격하는 중국의 IT계의 현장을 연수생의 신분으로 현지취재를 했던 것이다. 이때 필자는 베이징의 실리콘 밸리라는 중관춘 일대를 비롯해 샹디 첨단산업 단지 등을 답사를 했다. 또한 특별히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의 실태를 살피면서 이를 위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센터를 방문했다. 베이징의 MS아시아연구센터는 시애틀・캠브리지에 이어 세번째로 생긴 MS사의 R&D센터다. 취재 마지막 날 이곳의 소장인 중국인 장야친(张亚勤) 박사를 인터뷰한 나는 일이 다 끝났다는 기분에 코디와 함께 우다코에서 술을 한잔 걸친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의 사건은 이 때 일어났다.
  귀가 후 마누라의 호통에 쩔쩔매며 이취(泥醉)의 매무새를 수습해 보니 아뿔싸 지갑을 분실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우다코의 식당이나 다른 곳을 생각해 보았지만 필경 택시안에 두고 내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중국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찾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떠올랐다. 실제로 나는 그때까지 중국에서 이미 핸드폰을 두 번이나 분실했고 이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7월의 윈난지역 여행 때에는 백주의 베이징 공항 청사에서 쿤밍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분실하여 비싼 돈을 주고 쿤밍행 비행기표를 다시 샀던 뼈저린 경험이 있던 터였다. 후회해봤자 때는 늦었다. 기억을 되살려 지갑에 속에 든 물건을 생각해 보니 약간의 현금과 신용카드 그리고 주민등록증 등이 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피해는 선물로 받은 지갑 그 자체였다. 어쨌든 중국 생활 1년에 이른 자 답게 숙련된 솜씨로 신속하게 신용카드 분실 신고를 한 뒤, 나의 부덕과 불운을 탓할 따름이었다. 고유번호가 들어있는 칩만 빼내면 바로 중고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핸드폰은 한번 분실하면 여간해서는 주인의 손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할진대 분실사고의 고전적인 품목인 지갑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렇게 지갑을 잃고 불의의 ‘국부유출’을 안타까워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귀국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중국 MS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방송 나간 프로그램의 테이프를 보내달라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것으로 보이는 지갑이 신고되었으니 찾아가라는 전갈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지갑을 찾았다는 것도 신통했지만 그 연락을 다른 곳도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주는 것도 이채로웠다. 사연을 알고 보니 그 날 내 지갑에는 방문지였던 MS사 관계자의 명함이 들어있었던 것. 지갑을 습득한 택시기사는 한국 사람의 주민등록증으로는 연락할 길이 없자 때마침 지갑에 있던 MS사의 명함을 보고 그리로 찾아갔던 모양이다. 그렇게 돌고 돌아 우여곡절 끝에 MS사는 한국에 있는 나에게 지갑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히 감동의 전율이 엄습하는 순간이었다. 핸드폰을 잃고 비행기표를 분실하고 할 때에는 나의 부주의 이전에 중국인들의 ‘비문명적’ 태도에 분개하고 있었다. 베이징 공항에서 비행기표를 잃었을 때에는 증거는 부족하지만 정황으로 보아 두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 거의 도난을 당한 것이었다. 그런 식이었는데 완전히 포기했던 지갑이 황해 바다를 건너 다시 돌아오다니....(지갑은 마침 한국을 오고가는 지인 편에 부탁하여 고스란히 전달받았다.) 이 에피소드를 통하여 나는 중국인의 문명 수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제비 한 마리로 봄이 온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어떤 제비도 엄동설한에 섣불리 나타나 얼어죽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上海)시의 각급 학교에서는 ‘학생 수칙(守則)’의 내용을 바꾸면서 ‘외국 손님을 존중하라’는 수칙을 새로 넣었다는 소식이 있다. ‘국제적 시야를 넓혀라'는 내용도 새로이 들어갔다고 한다. 마약을 멀리하고 신용을 지키라는 수칙은 그대로 남겨뒀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수칙을 개정한 것이다. 이미 해외투자가 중국 경제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눈길을 끈다. 그러나 내가 지갑을 찾았던 ‘미담’이 이런 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필자가 외국인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택시기사도 세계 굴지의 MS사를 알아모시고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그 기사가 양심적이어서 그랬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돌아온 지갑 사건’은  지금도 내게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에피소드 3 - 베이징 택시, 서울 택시

  내친 김에 택시 이야기 하나 더. 베이징의 택시는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운전기사의 행색은 꾀죄죄하고 시트는 세탁을 언제 하는지 냄새나고 더럽다. 게다가 강도 사건을 예방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택시가 운전석과 승객 자리를 기역자형으로 창살 또는 아크릴로 막아 놓아 답답하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현대 소나타가 베이징 택시로 공급되면서 좀 나아졌지만 이들도 새 차라서 그렇지 언제 그 신세로 전락할지 알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온 날 인천공항에 즐비한 택시들을 오랜만에 보니 안팎 모두 세련되고 쾌적함에 다시금 ‘선진 한국’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한국의 문명 수준은 중국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내심 뿌듯함도 가졌다. 그러나 오랜만에 한국의 택시를 타면서 무언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것은 바로 서비스의 차이다. 중국에서는 비록 기사가 몰골은 남루하지만 짐을 든 승객이 있으면 꼭 내려서 트렁크를 열고 짐을 싣는다. 목적지에 닿아 하차할 때도 마찬가지. 반드시 내려서 짐을 인도에까지 들어다준다. 아 그런데 산뜻하고 넓은 한국의 택시들. 차만 좋으면 뭐 하나. 유감스럽게 내가 탄 택시의 어떤 기사도 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중국 생활 1년에 내가 승객으로서 버릇(?)이 잘 못 들어서일까. 무심코 기사양반이 어떻게 해줄 때까지 있다가, 뒤늦게 눈치를 채고 낑낑거리며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은 귀국짐을 혼자서 나른다.    
  베이징 택시는 골목길을 들어가자는 승객의 요청도 군말없이 들어준다. 베이징의 그 유명한 좁은 후통 골목길을 잘도 들어간다. 내가 보고 듣기로 대체로 그러했다. 서울 택시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미터기도 그렇다. 베이징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하는 대로 길 건너 지나가는 택시를 부르면 재빨리 ‘무단 유턴’을 해 승객 앞에 선다. 그리고 승객이 타고 난 뒤에야 미터기를 꺾는다. 서울의 택시는 미터기부터 꺾고 유턴을 해서 승객 앞에 선다. 베이징 택시는 손님이 타야 요금이 발생한다는 학설이고, 서울의 택시는 손님이 택시를 부르는 순간부터 요금이 발생한다는 학설을 채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베이징 택시는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바로 미터기를 올리고 그러면 영수증이 자동으로 인쇄된다. 서울의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해 지갑을 내려고 승객이 꾸물거리는 시간에도 미터기가 올라간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터기에 홀드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적어도 내가 탄 택시들은 거의 그러했다. 내가 부덕하고 불운해서 일까.
  그래서 요즘은 한국에서 택시 타는 요령이 생겼다. 최근에는 택시를 타게 되면 목적지 도착 직전에 영수증을 요구한다. 그러면 곧장 영수증 인쇄가 시작되면서 미터기 요금은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미터기가 또 오를 수 있다. 그 차이가 액수로는 적은 돈일지 모르지만 기분이 그게 아니다. 물론 베이징 택시와 서울 택시가 처한 제반 조건이 여러 가지로 다를 것이다. 섣불리 단선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필자는 갓 돌아온 입장에서 승객으로서 단번에 느끼는 차이를 얘기해 보았다. 택시의 성능과 제원을 개선하고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비스하는 이의 성의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택시업계에서 오해 없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흔히 중국인은 과거를 가지고 한국인을 무시하고, 한국인은 현재를 가지고 중국인을 무시하려 한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반면 현재의 격차라는 것은 언제라도 줄거나 뒤집힐지도 모르는 것이다. 산업의 구조가 유사하고 충돌하는 품목이 많은 한국과 중국의 경제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그런 위기 의식 때문에 한국인들이 작금의 중국을 더욱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의 대두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성큼 성큼 세계의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의 경제는 거대한 대륙풍으로 커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게 위기가 될 것인지 기회가 될 것인지를 따지는 요즘 유행하는 질문에 필자가 아는 한 중국인은 일언지하에 잘라 말하였다. “중국은 이미 한국을 상대로 하고 있지 않는다. 위기인지 기회인지 그 답은 한국인들이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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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10.11 - 02:15
LAST UPDATE: 2003.10.13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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