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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퍼오미 (http://jungpd.co.kr http://jungpd.co.kr)
Subject   "中.日민족주의,한민족통일 방해우려"

<연합초대석>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


"中.日민족주의,한민족통일 방해우려"
외국인 근로자 10여년째 돕는 실천가

    (서울=연합뉴스) 이명조 기자 =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의 총성 없는 `역사 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이만열 국사편찬 위원장
이만열 국사편찬 위원장이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www.yonhapphoto.co.kr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고,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거듭되는 야스쿠니신사참배에서 알 수 있듯이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어 새해벽두부터 주변국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우리 나라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독도 우표를 발행해 국내에선  순식간에 동이 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한일 양국의 네티즌 공방과 일본의 항의를 촉발시켰다.

    한.중.일 3국의 팽팽한 역사 힘겨루기를 지켜보는 원로 국사학자의 심중이 궁금해 이만열(李萬烈. 66) 국사편찬위원장을 찾아 `현대판 삼국지'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들어봤다.

    한국사 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연구.편찬하는 정부기구인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7개월째 맡고 있는 이 위원장은 1980년 신군부 세력 등장을 비판해 숙명여대  교수직에서 해직되기도 했던 비판적 지식인.

    스스로 `열린 민족주의자'라고 규정하는 이 위원장은 기독교 보편이념과 인류애에 기반해 외국인 근로자 돕기를 10여 년째 해오고 있는 `실천적 지성'이기도 하다.

    대학강단에 막 섰던 젊은 시절에는 한국교회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을  지지하는 암담한 현실을 접하고 기독교인들의 반봉건.항일 운동을 조명한 `한말  기독교인의 민족의식 형성과정'(1973년)이란 논문을 발표해 진보적  기독교  사가(史家)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해직시절인 1982년부터 매일 써왔다는 일기를 인터뷰 도중에 양해를 구하고  군데군데 들춰봤더니 작년 새해 첫날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주권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란 구절이 눈에 띄었다.

    그해 12월 어느 날 일기에는 "국사편찬위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연구 등에 대처하는 능력이 민첩하지도 못하고 대응 내용 또한 신통치 않다.  내가  봐도 그런데 하물며 국민의 눈으로 볼 때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라는 국사편찬위원장으로서의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일기 끝 부분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퍼온 그 날의 주요뉴스 검색어 등이 굵은 활자체로 덧붙여져 하루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중.일 3국에서 내셔널리즘의 파고가 높은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신지요.

    ▲일본은 전후 50여 년 간 안정적으로 지속돼 온 자민당 정권과 경제 성장이 무너지면서 정치.경제적 불안이 나타나자 이를 회복하려는 의미에서 우파  내셔널리즘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정권수립 과정에서 나타난 변방문제와 개혁 개방의 자본주의 시도에 따라 나타난 민족적.사회적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동북공정'(東北工程) 같은 내셔널리즘을 내세우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 중국이 국내 문제 때문에 내셔널리즘의 파고를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는 것이죠.

    반면 한국은 일제시대와 해방 후 일본 등 강대국에 대한 저항적 혹은 방어적 성격으로 내셔널리즘이 나타난 것이 사실이지만, 4.19를 기점으로 통일을 위한 내셔널리즘의 성격을 띠게 됐습니다. 한국이 자기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중국과 일본은  패권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죠. 한반도가 그동안 중국과 손을 잡고  일본의 극우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지만 최근에는  중국  민족주의의 파고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전쟁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인 만큼 과거사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독도 문제, 동북공정의 고구려사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 한민족의  통일지향 민족주의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민족의 통일을 방해하려는 세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대처해야 할  남북의 7천만 한민족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좀 더 분명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중국이 뒤늦게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나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이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지향하면서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 등장하려는 패권국가적 야심이 중요한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그동안 인도, 베트남, 티베트 등과 분쟁을 거치고 주변 민족과 갈등을 겪으면서 변방지역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을 겁니다. 그리고  1991년 한.중 수교이후 한국인들이 동북3성에서 조선족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불안감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에다 900만 만주족이 고향땅(故土)에 대해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경제적 실익도 얻고, 동아시아에서의 위치도 확보하고, 중국 영토에 있는 인민들의 결속도 다지기 위해 내세운 이론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입니다. 다시 말해 소수민족의 이탈을 방지하려는 데서 동북공정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무엇입니까.

    ▲`동북변강사지여 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史地與 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입니다.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 지리와 여러 민족의 현상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란 뜻이죠. 동북공정에서 고구려 역사문제가 클로즈업된 것은 북한이 2001년  평양지역의 고구려 고분군과 벽화 등의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유네스코에 신청한 것과 결부돼 있습니다. 중국도 작년에 전격적으로 만주지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해 등재신청을 했습니다. 중국은 고구려사가 중국 변방의 역사이고 고구려를 세운 민족은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역사에 통합시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도 대부분의 중국 역사책에는  `고구려사는  조선사다'라고 기록돼 있었습니다. 1990년대 이전에도 그런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은 1993년 중국의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 열린 고구려사 국제학술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시  학술회의에 참석했던 북한의 박시형은 "땅의 주인이 바뀐다고 땅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중국측은 2000년대에 들어서서 아주  공격적으로 `고구려사=중국사'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의 논리적 모순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민족이 삼국사기에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정리해 놓았다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중국의 역사책에도 동이(東夷), 북적(北狄), 서융(西戎), 남만(南蠻) 등 사이(四夷.중국이 주변민족들을 사방 오랑캐라 하여  낮춰  이르던 말)를 뜻하는 주변민족 역사를 자기 나라 역사책에 쓰기는 했지만,  자기  민족사로 정리하지 않고 다른 민족사로 떼어 놓았습니다. 그런 중국이 주변민족 역사를  중국역사로 정리한다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 제국주의, 역사 패권주의라고 봅니다. 제국주의와 패권주위를 제일 싫어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역사문제에서는 제국주의화, 패권주의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 부설기관으로  `고구려사연구센터'를  설치키로 했다는 정부발표가 있었습니다만, 국사편찬위가 적극적으로 이런  문제를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고구려사연구센터'를 민간기구로 설치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방침인 만큼 정문연은 그 민간기구를 만드는 준비 역할을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는 사료의 수집, 보관, 편찬뿐만 아니라 연구도 하도록 관련 법령에 규정돼 있으나 연구기능이 약화돼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동북공정 문제나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국민들은 당장 `정부는  뭐했느냐,  국사편찬위원회는 뭐하느냐'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적 요구 속에서 국사편찬위원회가 위상을 정립하기 힘들었지요.

    저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국가기관인 만큼 민간기구나 개인이 할 수 없는  역사관련 사업, 국책사업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연구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안위, 영토, 역사 정통성의 체계에 관한 연구는 국가기관이 관여해야 합니다. 독도문제나 간도문제 등 영토와 관련된 문제는 민간기관이나 개인이  자료를 지속적으로 모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기관에서 자료를 축적하고 문제가 터지면 신속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국사편찬위원회는 예산의  뒷받침을  받아 최소한 국책과제라고 생각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정부는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이 오는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북한과 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북공조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남북기본합의서에 의하면 경제협력 분과는 물론 사회문화협력분과위도 구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남북 경제협력분과위는 작년 말까지 꾸준히 열리고 있습니다만 남북간 역사문제나 유적문제를 논의할 사회문화협력 분과위는 구성조차 안 돼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권이 적극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주어야 합니다. 사회문화협력 분과위가 가동되면 남북간 역사, 유적의 연구와 복원을 위해 남북이 공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공조에 앞서 국사편찬위는 북측에 대해 민족사  연구에  도움이 될 편찬위 간행 자료와 고고학 자료 등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분단  전후의  남북의 역사는 다르게 본다 하더라도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꾸준히 합의점을 찾아  올바른 역사를 후세들에게 남겨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사학 분야에서 남북간에 긴밀히 협력해 나가려고 합니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측 자료제시와  역사연구가 미흡한 것 아닙니까.

    ▲여러 자료에 의하면 20세기 초에 이미 독도는 우리 나라 관할이었던 것  같습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전 한 일본 어부가 독도 근처의 특정어종을 잡아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일본 정부에 어획권을 신청하자 일본 정부는  조선  땅임을 알고 외무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러일전쟁을 전후해 일본은  전략적인 필요에 의해 `독도를 일본에 편입시킨다'고 시마네현(島根縣) 청사 앞  게시판에 일방적으로 고지했습니다.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조선은 독도를  강탈하는 일제의 만행에 항의할 길을 잃게 되었지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맥아더 연합군 사령부는 독도와 울릉도, 거문도와 제주도 등을 일본 관할 하에서  배제시킨다는 문서를 남겼습니다만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에는 독도 조항이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전후사정을 감안한 우리 정부는 이듬해 이승만 라인을  선포,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게 됐습니다.

    정부는 몇 년 전 일본과 신어업협정을 맺으면서 독도와 울릉도 사이를 중간수역으로 설정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독도를 관리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만, 학계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가 당시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지 않았나 하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의도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로 넘기기 위해 계속 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본은 그 동안 국제사법재판소를 지원하여 일본인 재판관을 둘 정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로  넘어가기만 하면 유리한 판결을 받아낼 수 있다고 보고 있겠죠. 일본의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역사적, 국제법적, 지리적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로 연초부터 한국과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신 내셔널리즘, 우파 민족주의에 편승해 정권을 잡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과거 범죄행위를 정당화한다면 앞으로도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일본의 방위비가 GDP의 1%를 넘은 지  오래됩니다. 실제로는 국방비인 방위비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나라죠. 무력의 힘과 신민족주의가 결합하면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펼치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모금 캠페인이 네티즌의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역사청산을 위한 국사편찬위원회의 역할도 요구되고 있지 않습니까.

    ▲국사편찬위원장을 맡기 전까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연구와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지원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그 법에 근거해 예산을 배정해 연구조사 및 편찬작업이 진행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국내 역사학계에서 `민족주의적' 학자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저 스스로는 `열린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열린  민족주의'란 우리 민족이 중요한 만큼 다른 민족도 똑 같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10여 년째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과거 한국인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제로부터 핍박받았습니다. 그런 설움을 경험한 한국인이 1988년 올림픽 개최 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몰려든 외국인 근로자들을 차별하고 인권을 박탈했습니다. 제3세계 근로자들에게 한국은 과거 한국인을 차별하고 냉대하던 일본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우리의 행태에 대해 분노하고 경고하고, 뭔가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외국인근로자를 돕고 있습니다.

    --국사학자로서 현 남북관계와 한미, 북미관계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습니까.

    ▲세계 4대 강국의 힘이 한반도에서 어느 정도 균형이 이뤄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 민족은 가능한 한 빨리 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민족은 민족적 우수성과 지정학적 위치를 내세워 세계에 봉사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남북간 화해와 평화를 기조로 안정을 이룩하고 통일한국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나 전쟁의 위협이  있어선 안됩니다. 이를 위해 때로는 주변국을 이용하고 때로는 호소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당분간 안정을 찾는 데 문제가 있겠지만, IT 산업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지혜와 순발력을 토대로 한반도가 동북아 허브, 동북아 중심국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동적이고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춘 한국민이  세계에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되는 것이지요.

    --위원장님의 역사관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간단하면서도 어렵습니다. 저는 수많은 좌절과 비극에도 역사에서 진보와  발전을 믿고 있고 그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비관적인 낙관론자라고 할 수 있겠죠. 역사의 발전이란 역사의 주인공인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더 자유로워지고 사회적으로는 더 평등해지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때문에 역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자유와 평등의 양 축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건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가 고난이라는 터널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고난이란 터널을 통해 인간은 순간과  찰나에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영원에 사는 인간으로 성숙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공한 사례 못지 않게 실패한 사례가 역사에서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 자체가 복되다고 했습니다. 실학시대의 정약용 같은 이는 정조 때에 출세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된 것은 19년 간 귀양살이를 하는 등 고난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민중과 더불어 살면서 우리 역사에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지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젊은 세대들이 취향에 따라 너무 찰나에 산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지나치게 감성에 충실하고 감성에 호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먼 역사를 보고,  역사적 전망을 하면서 자기존재를 수립해 가는 역사에 사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mingjoe@yonhapnews.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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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1.22 -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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