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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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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시론］부끄러운 역사, 진실된 고백(경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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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16
［시론］부끄러운 역사, 진실된 고백
지난 2002년은 과거사 청산 작업에 전기가 마련된 의미있는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발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문학계에서도 친일 문인들의 작품 목록을 공개하고 선배 문인들의 굴욕적인 삶에 대해 참회하는 문학인 선언을 발표, 지성계의 과거사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였다. 친일과 독재로 얼룩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이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나 총리 등 고위 공직자 인선에서 역사인식의 문제가 새로운 잣대로 제시된 것도 사회 전반에 걸쳐 건전한 가치관과 역사관이 자리잡은 징표로 해석할 수 있다. 반민특위의 친일파 숙정이 좌절된 이후 금기시되어 왔던 친일문제가 반세기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공론의 장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학계의 과거사 청산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과거 주류 학계의 외면으로 재야 연구자나 일부 진보적 학자들에 의해 어렵사리 이루어져 왔던 친일문제 연구가 폭넓은 연구자군에 의해 그 지평이 한층 확대되고 학문적인 시민권을 확보해가고 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지난 한해에만도 십여차례의 학술 심포지엄, 전시회 등이 개최된 것이 그 방증이라 할 것이다.
특히 학계의 전문가들을 망라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구성되고 편찬사업 원년의 일차적 결실로 전 3권 2,7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편-중앙)’의 집필이 완료된 것은 역사 청산 작업이 구체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진전으로 평가된다. 보고서에는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기구와 관변단체는 물론 일제에 협력한 각 부문 민간단체들의 연혁, 성격, 주요활동, 사업내용, 구성원 등이 상세하게 수록되었다. 이 편람집은 일제 식민통치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상황론, 민족 전체 책임론을 들먹이며 과거사 규명을 저지하려는 세력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친일파와 그 추종자들은 학연·혈연·지연 등으로 맺어진 굳건한 인맥으로 언론과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주류로서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민족사 정립을 위해 민간연구기관과 시민단체들이 노력하고 있는 다른 한편에서는 친일파를 기념하고 그 영향력을 유지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 청산에도 많은 저항과 방해가 따를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에 비례하여 과거사의 진실 규명에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제시와 엄정한 사료 비판이 필수적이다. 자료의 수집·정리·정보화에서부터 집필에 이르기까지 편람집과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막대한 재원이 소용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민간단체가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큰 민족적 과제인 만큼 국가적, 범국민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판단이다.
과거사 청산운동은 결코 과거에 얽매이는 퇴행적 사고에서 추진되는 운동이 아니다. 올바른 가치관의 확산, 통일 지향의 역사인식 등 우리 민족사의 재정립을 위해서도 역사의 치부에 대한 객관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민족 내부의 화해와 통일의 토대 구축에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진실 규명과 상호 이해는 불가피한 전제조건으로 다가와 있다. 그 중에서도 공동의 역사인식이 가장 용이하면서도 상징성이 있는 과제가 친일파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묻혀진 역사, 왜곡되고 감추어진 부끄러운 역사를 과감히 발굴하여 온전한 민족사로 복원해야만 한다.
우리 민족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격동의 20세기를 겪었다고 한다. 새로운 세기를 설계하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새 시대를 규정할 지난 100년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진단이다. 자랑스럽든 치욕적이든 역사의 진실 규명은 새로운 출발과 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당당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진실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조세열/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최종 편집: 2003년 01월 14일 18: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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