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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peomi
Subject   럼스펠드 장관께 드리는 편지

럼스펠드 장관께 드리는 편지  
[교양PD 김환균 피디의 세상읽기] 한국의 한 젊은이는 미국을 어떻게 자각하게 되었는가?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자유를 위한 전쟁'

3월 19일자 뉴욕타임즈에는 "고귀한 이라크의 자유"(The Price of Freedom in Iraq)라는 글이 게재되었다. 이라크전 개전 1주년을 맞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기고한 글이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모든 평화적 수단이 소진된 후에야 비로소 동맹국들과 더불어 이라크 해방에 나섰으며, 이라크에서 자유와 자치가 뿌리를 내릴 때 미국이 기울인 모든 노력이 정당하다는 것이 분명해 질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국을 본보기로 든 점이다.

럼즈펠드 장관의 글 중 한국 관련 부분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얼마 전, 한국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나는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전쟁에 대해 직접 경험한 적이 없을 한국 여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나에게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구 반 바퀴나 멀리 떨어진 이라크에 보내 죽이거나 다치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날 한국전쟁에서 죽은 모든 미국 병사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을 방문했었다. 거기에는 나와 친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친구 이름도 있었다. 그는 전쟁 마지막 날 죽었다. 나는 기자에게 "정당한 질문이다. 그리고 50년 전 '왜 젊은 미국인들이 지구 반 바퀴나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죽거나 다쳐야 했는가?'하고 묻는 것도 정당한 질문일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울의 커다란 호텔 고층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창밖을 보라고, 불빛, 자동차들, 약동하는 한국 경제의 에너지를 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펜타곤의 내 책상 위에 있는 밤에 찍은 한반도의 위성사진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무장지대 위쪽에는 평양 주위의 바늘 끝같은 불빛 말고는 온통 어둠뿐이다. 반면 남한의 전역은 밝게 빛난다. 그것은 자유의 불빛이다.

한국의 자유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서 얻어진 것이다. 작전 중에 숨진 33,000 명의 미국인을 포함해 수 만 명의 목숨을 댓가로 치렀다.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었는가? 맞다. 2차 대전 중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태평양에서처럼 가치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그것은 가치 있다."

그는 전쟁을 상기시킴으로써 자유의 가치를 변호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대한민국에 바친 미국의 희생을, 그 결과로 얻어진 눈부신 자유의 빛을. 여기자가 그의 이야기에 수긍했는지, 아니면 반박했는지는 더 이상 없다. 나는 이 글에서 그 여기자를 위해 변명하거나 변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바로 럼즈펠드의 논리대로 교육받고 믿어온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어떻게 미국에 대해 다르게 자각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경우를 통해서. 럼즈펠드가 고등학교 친구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듯이 나도 내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하려고 한다.

달콤한 미국 - 곶감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점방에 가면 껌이 있긴 있었다. 진열된 물건이 얼마 안 되고 그나마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먼지가 쌓여가는 허름한 점방이었다. 하지만 눈깔사탕이 1원에 두 개 했다는 것은 기억나는데, 껌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씩 낱개로 팔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일 거다.

껌 만들기는 봄철 아이들의 재미있는 놀이였다. 형이 가르쳐 준대로 삘기를 뽑아서 잔뜩 입에 몰아넣기도 했고, 밀이삭이 차오를 때쯤이면 생밀알을 한 줌씩 입에 집어넣었다. 삼키지 않고 오래오래 씹어야 껌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껌을 만든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뭔가 진득진득한 게 없어서 그럴지 모른다며 송진을 따서 입에 넣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공터에서 놀다가 형이 낱개로 떨어진 껌을 하나 주웠다. 아이들은 우∼ 몰려들었고, 형은 이리저리 도망다녔다. 나중에 동생이랍시고 형이 조금 떼어주었다. 껌 포장지는 노란색이었고 영어글씨가 씌어 있었다. 형은 미국에서 만든 '미제'라고 했다. '미제'가 아니라면 이렇게 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롯데에서 만든 '쥬시 후레시 민트' 껌이었다.

내 기억 속의 미국은 이렇게 추잉껌에서부터 시작된다. 미국은 내 유년의 곤궁함과 남루함에 대비되어 달콤한 것이었다. 곶감처럼. 그 이미지는 어머니가 가끔 동각에서 배급받아오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서로 악수하는 밀가루나 분유, 그리고 학교에서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아우성치던 옥수수빵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무서운 미국 - 에비

이발소에서였다. 동네 어른들 두셋이 이발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눈치라도 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하던 아저씨들이 딱 말을 멈추었다. 한 마을에 사는 동수 아버지가 들어온 것이었다. 동수 아버지는 순경이었다.

좀 어색한 침묵이 계속됐다. 그런데 순경 아저씨가 뜬금없이(내가 뜬금없이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어쩌고저쩌고 했다. 또 미국이 어쩌고저쩌고 했다. 다른 어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경 아저씨가 간 다음에야 어른들은 우리가 했던 말을 들었던 모양이라며,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쑤군댔다.

내 기억 속의 두 번째 미국은 이발소에 있었다. 미국은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서운 '에비'였다.

입양아 잘 기르기

내 유년시절의 미국은 흐릿하다. 하지만 달콤하고 무서운 이미지는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내가 미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이, '달콤한데 왜 무서울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해서 그것이 지나친 과장이나 억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의 이미지는 그 후로도 계속 뒤섞여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수호자와 후원자였다가, 독재와 압제의 후견인이었다가….

우리 현대사에 대해서 차츰 알아가면서 알게 된 것은 달콤함보다는 무서움이었다. 한반도는 잘해야 미국의 입양아 정도였다. 이 녀석이 잘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사람들은 나를 칭찬할 것이다. 즉, 미국 시스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실험 재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분단은, 간단히 말하면 미국과 소련 사이의 입양아 잘 키우기 경쟁의 결과였다. 때로 미국의 자선은 경제 원조, 한국의 독재에 대한 견제와 인권 상황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서 미국의 시혜적 태도를 읽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더 긴 역사를 갖는다. 한반도 분단의 최초의 씨앗이 되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한반도 신탁통치안은 그 명분이 '오랜 식민통치로 조선 민족이 자치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신탁통치를 통해 자치 능력을 과외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과외비를 안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장학금까지 주면서. 미국의 또 다른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는 복잡한 논의는 여기서는 하지 말자. 다만 바튼 번스틴(Barton Bernstein) 교수가 지적한 신탁통치안에 숨겨져 있는 인종주의만 짚자. "그 시대의 전형적인 미국인답게 루즈벨트는 유색인종들은 민주주의를 곧바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꽃놀이 패, 혹은 사석

'입양아 잘 기르기'보다 더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한반도는 기껏해야 꽃놀이 패거나 사석라는 것이다. 보다 다급한 사태가 벌어지면 한반도는 언제든 버릴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태평양을 수호하는 방파제로서의 일본을 지켜주는 제2의 방파제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태평양의 방파제로서 든든한 역할을 해 준다면, 한반도는 언제든지 버려도 괜찮은 것이다. 1950년의 애치슨 라인은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을 적절하게 드러내 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중생 사망 사건과 2002년 대선 이후에 행해진 미국의 발언이다. 광화문의 촛불 시위를 '반미'라고 규정짓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미국에 대한 자각, 달콤함만은 아니라는 자각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아무튼 미국은, 아니 럼즈펠드가 그랬다. 원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거기에는 '어쭈, 많이 컸군'이라는 불쾌감이 배어 있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애치슨 라인'을 떠올렸다. 그것은 엄포가 아니다. 한반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한국전쟁 때도 B-29 등 미 공군 폭격기의 작전반경은 만주와 시베리아에 이르렀다. 지금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인들의 한국 인식

나는 취재차 만나는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하는 것이, 프로그램과 직접 상관이 없는 경우라도 늘 궁금했다. 2002년 대선 직후 취재갔을 때, 나는 내가 만나는 미국인들로부터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뭔가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이를테면,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실수에 대해서 비판적이던 사람들조차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분은 워싱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며, 자신은 한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서 몸을 바쳤노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젊은 나이에 머나먼 이국 땅에서 피를 흘린 사람이 그런 자부심이나 사명감이 없이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취재에 만났던 한 분은 1999년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서 몹시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감동의 진정성을 믿는다. 자신이 피 흘리고 동료들이 죽어간 땅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분명 감동적일 것이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요는 자신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젊은 시절의 순수한 사명감을 잊지 말아달라는 얘기였다. 나는 한반도에 와서 헌신한 미국인 개개인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들 정부가, 혹은 사령관이 일본군을 무장해제하러 진주하면서 "조선의 국민을 해방국민이 아니라, 적국의 국민으로 간주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을 알면, 밴플리트 장군의 말처럼 한국전쟁 기간 동안 한반도는 온갖 신무기들이 실험된 '신이 허락한 은혜의 땅'이었다는 것을 알면, 2차 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맺어진 대일강화조약에 대한민국이 초청되지 못한 이유로 미국이 든 것이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것을 알면, SOFA가 일본의 그것보다 더 불평등한 이유가 '제국이었던 일본과 제국의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을 같이 대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면,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이 일본 제국 군대와 맞서 싸우다 피 흘리며 죽어갔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이라크 파병, 다시 논의하자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나는 자신의 피가 한국인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다고 믿고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숨져간 미군 병사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럼즈펠드의 말에 동의하더라도 그의 말이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쯤은 우리가 자각하고 있다고 말해야겠다. 아마 그 여기자도 그랬을 것이다. 럼즈펠드가 말하지 않은 것은, 미국이(미국 병사가 아니라) 한국에서 피를 흘린 것이 단지 한국의 자유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 크게는 미국의 야망을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또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은 지난 세기 가장 많은 전쟁을 벌인 나라가 미국이고,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의 이름으로 죽어간 무고한 생명들이 33,000의 몇 십 배는 족히 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생명의 가치가 이렇게 무참히 짓밟힌 세기는 없었다는 것이고, 그 중심적인 역할을 미국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기가 바뀌고 나서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라크 파병은 지금이라도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내 자유가 소중하고 내 생명이 가치있다면 남의 자유와 생명도 소중하므로. 이렇게 말하자. 미국이여, 우리의 자유를 위해 흘린 피에 감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부자유하게 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피 흐르는 상처를 감싸고 치료함으로써 미국의 젊은이들이 흘린 피에 보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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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3.23 -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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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기롸용, 필자를 밝혀야 쓸 것 아닙니까? 감삼다.
2004.03.31 -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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