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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peomi
Subject   NARA의 모든 것
다음 자료는 한국언론재단 후원으로 NARA에서 1년동안 연수중인 부산일보 김기진 기자가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www.kpf.or.kr)에 연재하는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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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Archives & Records Administration (NARA)

reported by 김기진


1. 시설 개요 

 NARA는 한국의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에 해당하는 미국 정부기관으로, 각종 공공기관에서 생산된 문서들을 보관, 관리하는 시설이다. 이곳에는 행정부 뿐 만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의 문서도 소장돼 있다.
 NARA는 워싱턴 D.C.에 제1관을, 매릴랜드 College Park에 제2관(이하 2관)을 두고 있다. 제1관에는 1930년 이전에 생산된 문서가, 제2관에는 이후 문서가 있다. 따라서 한국과 관련한 문서를 찾기 위해선 2관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2관은 지하를 포함해 6층 규모이며, 문서검색과 열람은 'Steny H. Hoyer Research Center'에서 하게 된다. 


2. NARA의 중요성

1) 방대한 자료
 NARA에 있다보면 한국의 기록보존 정책이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에 불리하다 싶은 문서는 불태우기에 급급했는데 반해 미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다른 나라 문서들까지 철저히 수집해 이를 '역사'로 축적해오고 있다.
 따라서 NARA에는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등 동북아 지역 국가는 물론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국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 그리고 심지어 콩고 등 아프리카 지역까지 세계 각 국에서 입수된 문서들이 거대한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래서 열람실에선 다양한 언어를 들을 수 있고 군인 기자 교수 공무원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은 '과연 얼마나 많은 문서가 이곳에 보관돼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는 역설적인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그 양이 너무나 많아 수 십년동안 일해온 전문 Archivist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서의 양과 관련해 예를 들면, 한국전쟁과 관련해 중요 문서들이 소속된 Record Group(이하 RG) 338에는 '196'번이란 번호를 가진 박스가 200여개에 달해 이를 모두 열어보기 위해선 몇주, 몇달이 소요될지 모를 정도다.
 또 미군이 해외에서 노획한 문서가 있는 RG 242의 경우에도 한국전쟁 중 평양 등지에서 수집한 북한 문서가 7천여박스, 약 160만 페이지에 이르는데, 이는 이 RG에 속한 다른 많은 문서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미국 AP통신에 의해 노근리 사건이 불거졌을때 미국 국방부도 NARA에서 관련 자료수집을 시도했지만 3개월만에 포기하고 돌아갔다는게 이곳 Archivest의 설명이다.
 
2) 문서의 원본을 볼 수 있다.
 NARA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는 문서의 원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50여 년전에 만들어진 문서의 원본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에게 정말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RG 242 노획 문서 중에는 국민 보도연맹 가입원서가 있으며 전쟁의 화염 속에서 인민군이 남긴 작은 일기장까지, 생생한 기록들로 가득하다. 
 NARA가 문서의 훼손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본을 공개하는 것은 연구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문서의 양이 너무 방대해 이를 복사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출창구 입구에는 '당신의 손에 문서의 원본이 있다. 문서가 손상이 되거나 분실되면 회복할 길이 없다. 역사가 영원히 사라진다.'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3) 청구자격에 제한이 없다.
 문서 청구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 또한 한국과 비교할 때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자료에 관심이 있으면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누구나 문서를 볼 수 있다. 여행을 목적으로 입국했다 하더라도 여권만 보여주면 대출카드가 바로 발급되며 미국 시민권자와 다름없이 문서를 신청할 수 있다.
 이는 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청구자격을 '직계'가족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호적등본 등 증명서류까지 제출해야 하는 한국의 정부기록 관리정책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국에선 정보공개법 등에서 '(문서를) 공개할 수 있다'라는 규정은 '공개하지 않는다'로 해석되는데 반해 미국에선 '국가안보 등에 특별히 위해가 되지 않는 한 공개해야 한다'라는 상식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3. 소장 자료 

1) 자료 분류
 문서들은 문서군, 즉 Record Group으로 분류돼 있다. 전체 문서군은 2003년 10월 현재 554개에 이른다.
 각 RG는 생산기관을 기초로 하되, 주제보다는 특정 시기, 해당 기관의 역할 등을 중심으로 한다. 또 해당 RG 내에서는 해당기관의 조직 단위 혹은 시기에 따라 시리즈로 엮이어 피라미드식으로 가지가 뻗어나 하나의 거대한 문서군을 형성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미국 국무성 문서는 RG 59에 집중돼 있는데, 장관과 차관, 국장, 등의 직책별로 문서 분류가 나뉘어지고, 다시 인물과 시기에 따라 매우 세분화돼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문서군을 소개하면 한국전쟁 전 미국 군사고문단 문서 RG 554, CIA 문서 RG 263,국무성 문서 RG 59,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원조 RG 407 등이다.  그러나 한 기관이 생산한 문서가 반드시 하나의 RG에만 소속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종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예를 들면, 한국전쟁 당시 G-2, CIC 등 정보기관의 활동보고서는 해당 부대원의 당시 소속이 어디냐에 따라 319 ,338, 331 등 도처에 흩어져 있다.
 또 1949년 경찰 일일보고서의 경우 당시 경찰이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전혀 엉뚱하게도 RG 407에 배치돼 있는 등 기록분류가 혼란스럽다.
 결국 이곳에서 문서검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외에 검색방법에 대한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 
 문서 검색작업이 전문성을 띠다보니 이와 관련한 상당수 논문이 발표됐으며 한국에서도 이곳을 다녀간 몇몇 학자들이 논문을 내기도 했다. 
 기록은 종이로 된 문서 이외에도 사진, 영화 등도 방대하게 소장돼 있다. 사진이나 영상물은 분류 체계가 알파벳 순 등으로 구분되어 있어 별도의 접근방식이 요구된다.
 또 최근 이관되고 있는 CIA 기록은 CD형태로 되어 있어 center 3층에 별도로 마련된 컴퓨터를 이용, 검색어로 접근해야 한다. 
한편 문서는 정보의 성격에 따라 top secret, secret, confidential 등으로 구분된다.

2) 자료 검색과 신청 

(1) 검색
 한국의 일반 도서관처럼 개가식으로 되어 있지 않아 직접 서고에 들어가 문서를 열어 볼 수는 없다. 
 또 CIA가 최근 이관하고 있는 CD자료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이용한 키워드 검색이 불가능하고 일반인들에겐 매우 낯선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문서 검색과 열람은 NARA 2층에 위치한 research room에서 이뤄진다. 이 공간에는 'Researcher Assistance'란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으며 이곳에 문서의 구체적 위치를 알려주는 'Finding Aid'와 'Master Location Register'(MLR)가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문서검색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우선 문서의 위치를 찾기 위해선 Finding Aid로 접근을 시작해야 하는데 문서 분류가 매우 복잡해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한국과 관련한 문서들이 수많은 RG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한국 현대사 연구와 관련해 주목되는 주요 RG만 해도 59  84 112 153 159 218 242 247 263 330 319 335 338 342 389 407 469 554 등 40여 개가 넘는다.
 문서검색은 전문 Archivist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다. NARA에 근무하고 있는 Archivist는 Military Record 전문가(34명)와 Civilian Record 전문가(46명)로 대별되며 그들은 국가, 기관별로 다시 전문화되어 있다.  


(2) 대출신청
 문서를 보기 위해선 'Reference Service Slip'(이하 slip)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는 우편 주소와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다. 
 즉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선 주소와 우편번호, 그리고 수신자의 이름을 정확히 기재해야 하듯이 원하는 문서의 위치를 연구자가 직접 찾아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Slip에는 RG Number, Stack Area, Row, Compartment, Shelf,그리고 Entry number, Box number를 기입해야 한다.
 RG는 '한국'에 해당하며 Stack Area는 '부산',Row는 '동구',Compartment는 '수정동', Shelf는 '부산일보' 격이다. 또 Entry Number는 우편번호, Box number는 수신자 이름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결국 slip 양식을 통해서도 RG가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slip 작성에 필요한 이 같은 정보들은 Finding Aid에서 찾아 낼 수 있지만 Entry Number가 없는 경우가 많아 MLR을 다시 뒤져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문서는 한번에 24개 박스(FRC 박스는 8개)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신청 후 2시간 가량 지나면 문서를 받아 볼 수 있다. 박스는 가로 15㎝,세로 35㎝ 정도(FRC는 3배 크기)로 박스 하나에 적게는 수 백장에서 1천 여장까지 들어있다. 따라서 NARA가 문을 여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20∼30상자를 열어 보기가 매우 벅차다.


 3. 한국과 관련한 문서

 1) 개관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과 관련한 기록이 NARA 2관에 소장돼 있다. 미국의 각종 공공기관에서 문서를 계속 이관하고 있어 가장 최근의 문서가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서에 대한 기밀 여부를 재심사하기 위해 생산기관이 문서를 되가져 가는 경우도 있고 또 새로 이관됐다하더라도 NARA에서 이에 대한 정보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지도 않다. 필자가 본 가장 최근 것은 1979년 한국의 경제상황을 분석한 자료였다.
 NARA에 소장된 한국 문서 중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생산된 문서가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사를 통틀어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가장 관심을 두었던 사건이 바로 한국전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기록은 일반 군사작전 기록을 비롯해 당시 방첩활동과 포로 심문 등 특수임무를 수행한 CIC 기록도 상당수 있다.
 해방이후 한국 군과 경찰 조직을 재건하고 경제적 원조를 했던 미 군사고문단(KMAC)의 기록과 전쟁당시 주한미군이 극동사령부에 보고한 작전 및 정보 보고서, 그리고 주한 미 대사관과 국무성 사이에 오간 통신문 등이 주목된다. 
 또 G2,CIA 등 미 정보기관들이 일일 상황을 종합, 정리한 Daily Report도 그 분량이 상당하다. 다만 필자의 경우 한국전쟁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한 문서발굴에만 매달려 있다보니 1949년 6월부터 1951년 사이의 군 작전기록과 첩보보고서만 집중적으로 검색, 주제나 조사 시기 등이 매우 한정돼 있다. 
 군 작전기록의 경우 daily report 형태가 많으며 그 내용 대부분이 접전 상황과 피해 상황, 적군의 동향 등에 보고서로 구성돼 있다.
 정보기관의 기록 중에는 두꺼운 책자형태의 분석 자료도 발견되는데 그 주된 내용은 한국의 지하자원 분포와 도로, 철도 등 경제적 상황, 또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정권의 대공자세 및 정치적 안정성 등에 대한 분석 등이 실려 있다.
 이 같은 보고서는 월별로 작성됐으며 다시 연도별로 종합돼 거시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했다. 정치인의 경우 그들의 출생부터 성장과정, 가족사항, 그리고 정치적 성향, 비위사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정보가 수집됐다.
 다만 인물 파일의 경우 시기적으로 1949년 중, 후반기에 작성된 것이 많아 전쟁당시 역할이나 행적에 대한 정보는 없다. 더구나 이승만, 김일성 등 극소수 인물을 제외하고는 기록의 분량 자체가 미미하다. 

 2) 한국 관련 주요 문서 군과 내용


 (1) 개요

 `한국전쟁과 관련해 어떤 문서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은 NARA에서 결코 통용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한국'은 동북아의 여러 국가 가운데 일본, 중국 이외의 국가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이 자국의 관심도에 따라 자료를 만들고 축적한 만큼 한국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한국에서 온 연구자 중에 한국 관련 자료 현황을 말해달라고 요구했다가 Archivist들 사이에게 웃음거리가 된 사례가 있다.
 결국 NARA에서의 작업은 연구자 스스로 해야 하는데, 특히 필자의 경우처럼 특정된 주제 하나를 찾기 위해 접근을 시도할 경우 어려움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작업의 성패는 개인적인 능력과 노력 외에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흔히 말한다.
 한국 관련 문서가 많이 속한 RG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략 45개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는 앞선 연구자들이 지목한 것들에 불과하며, 연구자의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영역확대가 가능하다. 개별 문서군 내에서도 미개척분야가 많은 만큼 활동범위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 관련 주요 문서군

 아래에 소개된 문서군들은 앞서 말한 전체 45개중 흔히 한국과 관련해 비중 있는 자료들이 속해 있다고 언급되는 문서군이다. 
 
 (가) RG 59
 General Records and the Department of State 즉, 국무부 일반문서로, 외교문서도 일부 포함된다.
 국무부가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과 영사관 관리들에게 내린 지시 사항과 반대로 그들이 보낸 급송 전문, 국무성과 주미 외교관들 사이에 교환된 각서, 국무성 관리들에 의해 작성된 비망록, 행정부의 다른 부처들, 그리고 개인들과의 통신문 등이 있다. 
외교관이 파견된 국가의 정치적 현안이나 주요 동향, 주요 인물에 대한 평가 등이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흥미롭다. 이 RG에서 주목되는 것은 Lot File과 795,895 Series 등이다. 
 lot file은 말 그대로 누적된 파일로, 특정인물이 한 부서의 계장에서부터 국장까지 진급할 동안 관련기록을 누적한 자료 등을 뜻한다. 따라서 한 사안에 대해 경과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료의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국무부 문서는 십진 분류 체제를 취하고 있는데, 주제별로 0에서부터 8까지 숫자가 붙여져 있다. 예를 들어 숫자 7은 국내 정치, 국방 분야, 8은 경제, 사회 분야를 뜻하며 95는 한국 ‘일반’을 의미한다. 95의 경우 95A는 북한, 95B는 남한을 나타낸다.

 (나) RG 84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기록이 속한 문서 군이다. 문서군의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대사 등 해외 공관원들이 자신이 주재하는 국가의 정책이나 미국과 관련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입수한 정보기록들이다. 기록은 Diplomatic Posts와 Consular Posts로 대별된다. 그러나 RG 59의 기록과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1948년 한미원조협정 전문과 미국이 분석한 5.16 군사쿠데타의 원인과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과 관련한 보고서 등이 눈에 띈다.  

 (다) RG 218
 1942년부터 53년까지 미 합동참모부(The U.S. Joint Chief of Staff) 문서 군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대통령에게 방위편제에 관한 의견을 제시, 방위정책을 수행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한국 관계문서들은 주한 미군 사령관인 하지와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보고서를 토대로 한 군사점령정책의 전개상황을 보여준다. 
합참자료는 시기별로, 또 국가별 알파벳 순으로 정리돼 있으며 한국 관계 문서는 박스로 46개 가량이 소장돼 있는 것을 알려져 있다. 
 한국 문서는 주한미군정에 관련된 것과 전투작전 보고서 그리고 비 군사 보고서 일부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라) RG 226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즉 전략사무국 문서 군으로 합동참모본부 예하에 설치됐던 기구에서 생산한 문서가 속해 있다. OSS는 합동참모부가 요구하는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이를 위해 특수작전을 펴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 같은 활동은 45년 연말 종료됐으며 국무부와 전쟁부로 역할이 양분, 이관됐다. 기록의 분량은 1만200여 상자로 한국과 관련한 문서는 1천 항목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언론보도, 정치, 경제, 사회, 군사상황 및 지하조직의 활동 상황 등이다.    

 (마) RG 242
 노획 문서 군으로, 미군이 세계 각국에서 입수한 문서가 이 군에 속해 있으며 북한 문서도 그중 한 부분이다.
 북한 문서는 미군이 북진을 하면서 평양, 개성 등지에서 노획한 것이며 일반 행정기록이 전체의 약 70%, 군사기록이 30% 가량을 차지한다.
 문서의 양은 7천여 박스에 160만 건에 이른다. 242에는 1950년 9월 미군의 인천상륙에 대비한 인민군의 작전기록 등이 중요한 군사기록이 있다. 인민군이 남한에서 노획한 문서를 미군이 재 노획한 경우도 많아 충청도 지역의 호적이나 국민보도연맹 가입원서 등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문서 중 상당부분을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수집해 갔지만 문서의 전체가 들어간 것이 아니며, 이 문서 군에 대한 체계적인 색인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바) RG 263
 CIA 문서 군이다. CIA 문서의 분량은 기관이 창립된 1947년부터 이듬해까지 133 큐빅 피트 가량 된다. 현재 CIA는 NARA에 문서를 이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NARA 4층에 별도로 마련된 자료검색 컴퓨터를 통해서만 문서에 대한 접근이 허용된다. 모두 4대의 컴퓨터가 있으며 검색어를 입력해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컴퓨터에 입력된 검색어는 매일 CIA에 의해 체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접근이 까다로운 만큼 정보 역시 지극히 제한돼 있다. 

 (사) RG 319 
 육군참모(The Army Staff) 문서로, 1939년부터 55년까지 정보참모부 기록이 들어있다. 1941~1952년의 일반 통신문, 1939~1955년 정보문서, 1942~1954년 정보문고, 그리고 1943~54년 작전참모부 문서 등이 여기에 속해 있다. 이중 작전참모부 문서에는 46년부터 50년까지 주한 미군 작전참모부 보고서가 있다.  
 미국의 정보문서에는 `Who's Who'라는 타이틀로 한국전쟁을 전후한 남.북한의 주요 인물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 자료가 Personal File 형태로 보관돼 있다. 이승만, 신성모, 이범석, 윤보선, 정일권, 김백일, 권승렬, 이치영 모윤숙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 김창만, 박달, 강권 등의 이름도 보인다. 
 대부분이 거물급 정치인과 장성급 이상의 군인이며, 문화계 인사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있다. 문서의 내용이 개인적인 약력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 RG 338
 United States Army Commands 문서 군. 미군 사령부(Army Commands)는 1942년 전쟁부(War Department)에서 분리된 조직으로 미군의 조직이나 훈련, 무장 등 기본적인 조직 활동 외에 전략적 통제 역할도 수행했다. 1940년에서부터 60년까지 2만7천 큐빅 피트 가량이 소장돼 있다. 
이 문서 군이 주목을 받는 것은 전쟁범죄 기록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1,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일본 등 당시 미국의 적대국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기록이 매우 소상히 수록돼 있다. 또 한국전 당시 인민군에 의한 범죄 기록도 많다. 하지만 인민군에 의한 전쟁 범죄의 경우 피해 대상이 대부분 미군이며, 일반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사건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보기 힘들다. G-2 기록이 주종을 이룬다. 
  
 (자) RG 407
 부관참모부(The Adjutant General's Office) 문서로, 1만8천여 상자와 5천500여 개의 마이크로 필름이 있다. 이 문서 군에는 전쟁부의 문서들이 수납돼 있으며 1941~1954년 한국 내 미군 작전일지, 전투 사후 보고, 전쟁 일지 등이 든 한국지휘보고서가 포함돼 있다. 또 단위부대별 활동별 보고서가 별도의 문서철로 정리돼 있으며 미 971 방첩대 기록도 여기에 속해 있다. 방첩대 기록은 미개척 분야가 많아 후속 연구자들이 관심을 두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차) 554   
 한국 군사고문단(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문서 군으로, 미 군정이 한국군을 재편성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과 전쟁당시 작전 기록 등이 속해 있다. 타이틀은 '군사'고문단이지만 당시 한국 경찰에도 별도의 고문단이 있었던 만큼, 한국 경찰의 일일 활동보고서도 포함된다. 
경찰 활동보고서는 주로 빨치산 토벌과 관련된 기록이다. 시기는 51년 이후가 대부분이며 50년 기록은 분량도 작을 뿐 아니라 시기도 매우 한정돼 있어 사료로써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한국 군의 성립, 편성과정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554는 보고와 같은 존재다. 국방부 등에서 모든 문서가 이관된 것은 아니며 현재도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NARA의 문제점

1. 개요
 NARA에 소장된 문서의 분량과 관련해 수 년 전 한 보고서에 10억 페이지의 각종 정부기록과 600만 매의 사진, 10만 릴의 마이크로 필름, 8만점의 영화 등 영상물, 그리고 500만 점 가량의 지도와 도표가 있다고 소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어떤 기준에서 이 같은 수치가 나왔는지 또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 제시가 없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수치가 NARA에 이 정도로 방대한 자료가 축적돼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자료의 방대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원하는 자료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찾고자 하는 자료의 주제가 ‘베트남전 미군범죄’라든지 ‘한국전쟁 중 남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처럼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경우 ‘접근성’은 NARA의 존재가치와 직결된다.

2. 문제점

1) 자국 이기주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문서의 이관, 비밀해제 등에 관한 권한은 기본적으로 생산기관이 갖고 있다. 따라서 생산기관이 어떤 이유를 달아 문서를 내놓지 않으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NARA는 문서의 보관 관리기능을 수행하지 문서의 비밀해제 여부에 대해선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한다. 특히 생산기관이 국가안보나 개인정보 등 이유를 달아 기밀로 묶은 문서의 경우 수 십 년이 지났건 말건 비밀은 풀릴 줄을 모른다.
특히 부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미국 정부정책이 매우 경직됐고 그 여파가 NARA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전에는 누구나 볼 수 있던 문서가 갑자기 기밀로 묶이고, 인덱스 자체를 정보기관이 가져가 버리는가 하면 비밀해제 신청을 하더라도 예전에 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안보나 개인정보라는 잣대도 매우 주관적이다. 기관의 성격에 따라 잣대의 적용 강도에 큰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나치게 민감한 CIA와 상대적으로 개방된 국무성이다.
전범 문제와 관련한 자료의 실태를 보면 이 상황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어떤 전쟁이든 전쟁범죄는 있어왔다. 그러나 NARA에는 독일, 일본, 북한에 의한 전범기록만 있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NARA 2층 Research Room에는 연구자들의 편의를 위해 독일, 일본 등의 전범기록은 책자로 보관돼 있다. 전범기록이 집중된 RG 153에도 적대국들이 행한 범죄기록은 총괄적으로 정리돼 있다. 별도의 검색작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개인정보 등의 잣대는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신상정보가 담겨있고 인물 사진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유는 ‘흉악한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자신은 어떤가? 베트남전에서 혹은 한국전에서 저질러진 미군의 범죄행위는 이제 하나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NARA에 있는 자료들을 보면 미국은 오로지 피해자일 뿐이다.
한국전쟁 중 발생한 전쟁범죄와 관련해서도 인민군이나 중공군이 행한 행위에 대해선 일선 정보부대가 수집한 기초자료에서부터 이를 종합․분석한 최종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파일을 형성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기록은 없다. 잡다한 문서에 미군들의 개인적인 범죄행위, 예를 들어 절도행위라든지 교통사고를 냈다든지, 아니면 사람을 폭행했다는 정도의 기록 정도만 간혹 눈에 띌 정도다.
자료는 비단 문서 뿐 만 아니라 사진에서도 확연히 비교된다. 인민군에 의한 범죄행위의 경우 평양 대동강변을 가득 메운 시신이라든지 사람들을 집에 가둔 채 불을 질러 몰살을 당한 장면 등 잔혹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귀찮을 정도로 많다.
결국 미국의 정보공개 정책은 ‘불리한 내용은 숨기고 적국의 행위는 모조리 공개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으로부터 군 통수권을 넘겨받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의한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에 관한 중요한 기록도 모두 기밀로 묶어 놓았다. 군 정보기관인 G-2 기록이 많은 RG 319에 텅 빈 박스가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2) 비밀해제 신청의 한계
공개되지 않은 비밀문서에 대해서는 누구나 해제신청이 가능하다. 이는 1966년 공포된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률은 문서가 국가안보와 관련된 비밀문서이거나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연구자에게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료공개를 요구가 있으면 NARA는 10일 내에 회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NARA는 비밀분류 해제에 있어 아무런 권한도 없다. 문서는 이를 생산한 기관에서 비밀해제 여부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기관에 의해 기밀해제 요구가 기각됐을 경우 연구자는 해당 기관의 ‘심사위원회’(Review Committee)에 재심을 요구할 수 있고 이 마저 거부당하면 ‘부처간 비밀분류 심사위원회’(the Inter-Agency Classification Review Committee)에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절차는 합리적이지만 이런 권리는 영주권 이상의 신분이 있어야 가능하다.
외국인은 비밀해제 신청은 할 수 있지만 주면 다행이고 안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지난 11월 비밀해제 신청을 했지만 10일 후 회신만 있었을 뿐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부 여부에 대한 답변조차 듣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나은 점은 미국은 최소한 그러한 문서가 있다는 존재사실 정도는 연구자에게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3) 과도한 출혈
자료 분량이 엄청나고 검색작업도 쉽지 않아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니 무작정 달려 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우선 경제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든다. NARA가 위치한 곳이 워싱턴 근교로, 물가가 매우 비싸 호텔은 멀리 외곽으로 벗어나지 않는 한 하룻밤에 100달러 이하가 없다. 2~3일만 투자해 자료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한달, 아니 필자처럼 1년씩 있겠다고 작정하면 이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NARA에는 한국에서 역사학이나 정치학 등을 전공하는 교수가 방학이면 한 두 명씩 찾아 자료를 가져간다.
‘한 번 왔다 가면 3년은 먹고살 수 있다’는 농담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기록은 대부분 평이한 내용이라 작업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얼마 전 있은 김구 암살 관련 자료조사처럼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인 경우 사전에 충분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지난 2001년부터 3년 간 연구사를 한 명씩 파견해 자료수집을 했기 때문에 그곳에 문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이곳 Archivist에게 메일을 보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다든지 아니면 이 곳에서 개인적으로 문서검색 작업을 하고 있는 연구자에게 도움을 청해 검색의 범위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적은 비용으로 최단기간에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한국에서 절반 이상 준비를 하고 와야 한다. 어떤 연구자는 문서 찾는 일이 운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도박’ 같다고도 하지만 미국까지 와서 도박을 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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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1.06 -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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