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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퍼오미
Subject   화제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감독 인터뷰  

“박정희 18년, 100분짜리 영화 안에 다 담았다.”
 
화제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감독 인터뷰  
 
미디어다음 / 심규진 기자, 사진=김준진 기자  
 

화제의 중심에 선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사법부가 영화의 다큐 장면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임상수 감독은 본의 아니게 예술적 자유를 박탈당한 ‘투사’로 언론에 거론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과는 별도로 이 영화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좌우 구분할 것 없이 일부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이 영화가 역사적 물줄기를 바꾼 사건을 ‘꼴통 마초들의 저녁식사’로 조롱했다며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던진다. 역사에 대한 감독의 고민과 시각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작 임상수 감독은 정치적 냉소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평가받기를 거부하고, 이 영화를 임상수의 역사 해석이 담긴 ‘리얼리즘 영화’라고 규정했다. 그는 “박정희 18년의 역사를 100분 안에 담겠다는 야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며 “대통령이나 중정부장이라는 타이틀에 짓눌리지 않고 내가 발견한 예술적 진실을 담았을 뿐 희화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지만씨의 소송 문제에 대해서도 “창작의 자유가 개인의 인격에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내가 정말 명예를 훼손했는가를 따져야지 무조건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미디어다음이 임상수 감독을 만나 ‘그 때 그 사람들’이 나타내는 영화적 진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자신의 작품처럼 에둘러서 말하는 법이 없이 분명하고 직선적이며 자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나 인색한 평가에 있어서도 ‘쿨’한 모습을 보였다.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어”
“박지만씨의 소송은 정당한 권리, 이제는 법치의 질이 중요한 시대”
 
  

=작품의 특정 부분이 잘려 나갔다는 것은 감독 입장에서 매우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어떤가.

사실 다큐가 없으니 영화가 깔끔해져서 좋다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이슈만이 난무하고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조명이 되고 있지 않아 마음이 좋지 않다. 이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이 고민한 영화다. 정치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한국의 주 관객은 10대, 20대 아닌가? 그들을 공략하기 위해 많은 부분 공을 들인 전략적 영화다. 자꾸 정치적인 이야기로 알려져서 그렇지 기본적인 세팅은 중정(중앙정보부) 직원들이다. 물론 다큐 없이도 긴박한 사건을 다룬 액션 스릴러로서의 요건은 충족된다.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을 죽이려는 집단, 그리고 그에 맞서 대통령을 경호하는 집단간의 관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배신, 친한 친구를 죽인다는 것에 대한 갈등, 그리고 그 사건이 침탈하는 소시민적 일상, 그런 면을 아주 장르적이면서 재미있게 찍어내야 했다. 미술적인 측면에서도 대통령의 일상적 공간을 재창조해내는,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비주얼을 만들어 내겠다는 취지였다. 다큐 부분은 다른 면에서 의미가 있다. 다큐는 앞 타이틀과 뒤 타이틀이다. 영화의 처음과 시작이 잘려 나간 것이다.


=이 영화는 임상수가 재해석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이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김재규씨의 유가족들은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가.

나는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인격권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악의적인 명예훼손이었다면 벌금을 내든, 상영금지를 당하든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다만 공인의 경우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감수해야 할 게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생활도 보호 받아야 하는데 중정과 경호실이라는 공적인 기관을 이용한 사생활이었다면 이미 사생활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건 재판부에서 판단할 일이다. 박지만씨는 소송할 권리가 있다. 박지만씨에게 아무 불만이 없다. 오히려 좋게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전화 한 통으로 ‘영화 제작이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야 한다. 만약 내가 누굴 심각하게 명예훼손 했다면 상영중지 결정이 내려져도 상관없다. 하지만 가위질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너무 야만적이다. 한국에서 가위질 당하는 마지막 작품이길 기대한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찬반과는 별도로 처음과 마지막에 다큐 화면을 쓴 것은 감독이 너무 편하게 가려고 한 것 아닌가. 픽션으로 끝까지 정면 승부를 하든지, ‘화씨 911’처럼 자료 필름으로 죽 갔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것은 다큐가 아니라 자료 화면으로 불러야 한다. 예를 들어 김정일이 자신의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온갖 다큐들은 다 진실인가. 다큐도 어차피 자의적 사실이다.

=사법부 결정이 영화 흥행을 돕고 있다는 반응도 있다.
꼭 그렇지는 않다. 누가 잘린 영화를 보고 싶어하겠나. 보는 사람들이 영화 보는데 별 문제 없더라고 하겠지만. 섣불리 상영 중지 시켰을 경우에는 제작사 쪽에서도 몇 백억 이상 손해를 보기 때문에 사법부로서는 다 고려를 해서 그렇게 판단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지만 쪽, 제작사 쪽을 모두 고려한 정치적 판결이라는 거다. 법리적 판결이 아닌.




“나는 좌도 우도 아니야”
“작가적 양심을 걸고 정파적 이익 아닌 역사적 진실을 얘기할 뿐”
 
  
그는 이 영화를 정치적 사건을 다룬 리얼리즘 영화로 규정했다. 역사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100분의 영화 안에 박정희 집권 18년을 담으려는 예술적 야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록도 살펴보고 실존 인물도 연구했다. 인물들의 묘사에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섣불리 자신의 주장을 들이밀어 정파적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우를 피했다. 매우 정치적인 영화지만 정파적이지는 않다는 변이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책임을 다한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좌파 상업주의에 편승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와 싸우고 민노당, 민언련이 우군으로 가세하니까 결과적으로 감독이 십자가를 진 모양새가 됐다.

좌파에서 전혀 환영 못 받고 있다. ‘임상수 커밍아웃 하라’고, 좌파들이 그러는데 그런 문 제는 나의 예술적 야심과는 상관없다. 나도 그런 거 반갑지 않다. 예술적 성취와 상관없이 굴러가는 얘기다.


=냉정히 말해 감독이 연민했던 인물은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진혼곡’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뭔가.

(웃음) 재판도 있고 해서… 그건 상업적 멘트였다. 마음에 드는 리뷰 중 하나가 ‘이 사건에 대해서 임상수는 어떤 입장을 취하지 않고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다. 혹은 모두를 동정한다’였다. 모든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나쁘게 그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우파는 불경스럽다고 하고 좌파에서는 박정희를 더 까야지 그런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쿨’한데 가끔 튀는 부분도 있더라. 관객들과 일정하게 거리두기를 하다가 갑자기 감독이 전면에 나타나 뒤통수를 갈기는 식이다. 이를 테면 내레이션으로 등장인물들을 직접적으로 “철딱서니 없다”고 조롱 하는 장면, 애국가를 들으면서 ‘가야 되나 말아야 하나’ 우왕좌왕 하는 학생들, 국가 보안법을 조롱하는 중정 경비원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직설적인 공격성이 느껴지던데. 감독의 시점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락가락 한다는 느낌도 든다.

감독이 이도 저도 아니고 중심을 못 잡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다. 나는 아주 확고한 중심이 있고, 하려는 얘기도 분명했다. 박정희를 좋아하는 쪽 싫어하는 쪽 모두가 이 영화에 불만을 가질 것을 알았지만 작가적인 양심에 따라 어느 한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대한민국 만세 좋아하시네’라는 대사에서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한 번쯤 비웃고 지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어떤 평론가는 ‘철딱서니 없네’라는 대사 하나로 임상수는 악마가 된다고 하더라. 불쌍한 희생자까지 조롱했다는 건데 나름대로 내가 고민한 부분이다.

내가 그들에게 연민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피해자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도 누군가를 쏴서 죽였고, 당시 상황에서 중정은 무서운 집단,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중정의 주구와 같은 사람이었다. 잔인하게 얘기하자면 김재규가 정권을 잡으면 뭔가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이라고 장담 할 수 없다. 난 표면보다는 속마음을 더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을 한 없이 미화할 수 없었다. 영화 ‘송환’에 등장하는 양심수가 40년 만에 석방되고 나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노모에게 들은 말이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였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내레이션을 한 것이다.



“역사적 인물을 인간으로 그렸을 뿐, 희화화 아니야.”
 
  
=영화가 블랙코미디와 리얼리즘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적 진실, 자의적 진실을 추구하고 싶었다면 당시 인물들에 대한 스터디도 중요했을 텐데. 실존 인물인 심수봉씨가 영화의 묘사가 불쾌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김재규가 ‘다카키 마사오’ 하면서 죽이는 장면이나 ‘많이 묵었다’ 하는 장면도 의도적 희화화라고들 하는데 어떤가?
기자적 사실과 예술적 사실은 다르다. 물론 그 때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박정희가 다카키 마사오인 것은 진실이다. 난 정파적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한 학자가 임상수는 박정희 18년의 역사를 100분 안에 담으려 했다고 지적해서 사실 뜨끔하면서도 반가웠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나의 예술적 야심이었다. 박정희 시대의 영욕을 모두 담으려고 했다. 헬기 타면서 삽교천을 둘러보는 것은 박정희 시대의 공적을 나타낸 거다. 다카키 마사오, 심수봉의 엔카, 이런 것들은 그 시절에 있었던 진실이다.

=임상수가 발견한 역사적 진실 속에서 박정희는 ‘나이스’한 신사였나.

나는 박정희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절대로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나이스하게 그렸다. 그 상황에 놓인 인물이라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를 기준으로 박정희를 묘사했다. 사람들이 박정희를 숭배하든 경배하든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모든 것을 가진 제왕이라면 나이스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내가 입 뻥끗 하기도 전에 남들이 알아서 모셔주는데.


=김재규를 ‘또라이’로 냉소했다는 비판은 어떤가.
’냉소’, ‘또라이’라는 단어를 쓴 게 난 불만이다. 그런 단어 자체에 선입견이 있는 거다. 나는 인물들을 전혀 희화화 하지 않았다. 차지철? 미안하지만 실제 그런 인간이었다. 팬티만 입고 공손히 각하의 전화를 받는 인간. 나는 대통령, 중정부장이라는 타이틀에 억눌리지 않고 그들을 인간적으로 묘사했을 뿐이다. 박정희가 ‘많이 묵었다’ 하는 부분은 ‘친구’ 패러디로 이해가 되서 내가 실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박정희 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그 순간을 모면해서 목숨 구걸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나라면 더 구걸했을 것이다. 김재규가 병원에 가고, 변비에 시달린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재미있게 표현한 것에 대해서 왜들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 영화가 재미있는게 싫은가.(웃음)

=무책임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그 날의 죽음에 대해 모른 채 지나가는 것이야 말로 무책임한 태도다. 그 날의 진실이 그냥 묻혀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나더러 무책임하다고 하는 거다.


=그건 좀 위험한 생각 아닌가. 좌우 상관없이 무책임하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데. 역사에 대한 시각과 태도가 빈약하다는 지적이지, 모두들 박정희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고 싶어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내가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찍은 것은 박정희의 사생활이다. 18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미디어의 상징 조작에 당한 사람들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다큐에 등장한다. 18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거짓 정보가 나왔는데 그날 하루만은 진실 보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왜, 어떻게, 누구 총에 맞았는지 사실 보도를 해야 하니까. 그 사람의 진실이 미디어를 통해 유일하게 드러난 날이 그날이다. 그래서 거기까지만 보여줬다. 당시에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박정희가 죽었다고 사람들이 우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영화 외적인 얘기인데, 드러난 사실들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여대생이랑 가수 끼고 술먹고 부하의 총에 맞고. 당시 그는 부인도 없는 싱글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사람들이 그 사실들을 너무 숨기고 싶어하는 거다. 계속 캐보면 18년 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무슨 짓을 했는지 너무 끔찍하니까 덮어버린 거다.



”조선일보 하던 대로 해라”
 
=무책임하다, 버릇없다라는 조선일보 기자의 영화평에 대해 정치적 음모라고 했었는데? 조선일보 기자는 ‘영화 기자가 자신의 기준대로 영화에 대한 품평을 한 것인데 왜 영화의 리뷰조차도 음모론적으로 보냐’고 따졌다.

영화를 비평하는데도 객관적인 수준은 있다. 이 영화가 저 밑바닥 영화는 아니다. 세게 얘기하면 잘 만든 영화다. 그래도 씹을 건 씹을 수 있다. 나의 과민한 반응일 수도 있는데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씹었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 보장하라는 조선일보의 사설에 대해 ‘간교하다’고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조선일보 기자의 반론은 “영화를 비평하는 것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별개”라고 했는데.

내가 재판부로부터 박해를 받기 때문에 도와주겠다는 말인 거 같은데 그렇다면 고맙다고 얘기를 해야 하나.(웃음) 하지만 그 정도 박해는 나 혼자 컨트롤 할 수 있다. 하던 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다. 조선일보 도움까지 받을 정도로 심하게 박해 받은 것은 아니다. (웃음)


“박정희 집권 18년, 100분안에 담았다.”
“나는 예술적 야심이 큰 감독”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영화가 ‘쿨’하다고 말한다. 한국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작위적 웃음, 짠한 신파, 벅차오르는 감동 등을 그는 외면한다. 손쉽게 흥행 코드를 따라가는 대신 그는 섬세한 디테일과 꽉 짜여진 내러티브로 정면 승부를 한다. 그의 영화는 잘 만든 상업영화로서 손색이 없지만 강우석이나 강제규 영화처럼 엄청난 흡인력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홍상수나 김기덕처럼 관객보다는 자신을 우선하는 독한 고집도 피우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박찬욱식 웰메이드’로 분류하기도 모호한 구석이 있다. 그의 말대로, 좌우 어느 진영에도 속하기를 거부한다는 삶의 태도처럼 그의 영화도 어정쩡한 회색 지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스스로를 “보기보다 예술적 야심이 크다”고 설명하며 대중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코미디라는 장르적 관습을 차용한 상업 영화에 역사적 진실을 담아내겠다는 것은 너무 큰 야심 아니었나.

내가 보기보다는 내게 예술적 야심이 있다. 대중들이 미묘한 감정만 느낀다면 한국 대중들에게 표현 잘 했다라고 만족할 수 있었다. 또 한 편으로는 고수들끼리의 싸움이 있다. 감독끼리 혹은 세계 일류 평론가들과의 싸움. 잘 나가는 감독들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리그가 두 개인 거다. 참 갈등이 된다. 한 리그만 집중하면 다른 리그에서는 실패하고 쓰레기 취급 받을 수도 있으니까.



”여성성 그리워하는 나는 쿨 하지 않아”
 
=갑자기 윤여정씨가 마지막 내레이션을 하는 대목이 뜬금없다고들 하는데.

오해가 있다. 내 실수로 비롯된 오해다. 맨 나중에 내레이션이 흐르는데 그게 처음에 등장한 배우 윤여정과 동일한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다만 여자일 필요는 있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마초적 문화를 조롱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 같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쪽 김재규 쪽 할 것 없이 군사 문화, 마초 문화는 동일한 멘탈리티였다.

=여성성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는 ‘쿨’하지 않은 것 같다. 마초적인 사회와 문화로부터 벗어나와서 그런 멘탈리티를 공격하고 싶었나.

(내 입장에서는) 반성하고 싶은 거다. 나는 세지도 않고 사실 쿨하지도 않다. 쿨하다는 것은 기자들이 붙여준 레이블인 거지. 난 순하고 온화하게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을 가슴 아파한다. 센티멘탈이 싫은 것 뿐이지 냉정하고 쿨한 사람은 아니다. 사실 마지막 윤여정씨의 내레이션에서 나는 필요 없다. 어머니적인 말투, 어머니적인 목소리, 군사적이고 마초적인 것을 따뜻하게 비웃을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했던 거다.


=그러니까 임상수 영화는 모성을 그리워하는 마초 영화라고도 하는데? 여성과 남성을 이분화해 보지 않나.

그렇다. 남성과 여성은 이분화 돼 있으니까. 난 쿨하지 않다니까. (웃음)

=거침없는 성담론, 가족 해체이야기, 비주류 청소년 이야기 등 임감독이 비주류를 위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요즘 시대에 그런 게 어디 있나. 이제는 소시민이나 경비원이 더 주류다. 세상이 변했다. 나는 몇 십억 투자를 받아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영화를 만든다. 모두들 묻어두고 싶어하지만, 냉정하게 책임있게 문제를 제기하는 주류다. 나는 주류적 시각에서 이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한 번도 운동권, 좌파랑 친해 본 적도 없고 조직에 속해 본 적 없다. 오히려 우파에 가깝다. 단 거짓말 하는 썩은 우파가 아닐 뿐이지. 서구적인 면도 많아서 더 우파에 가깝다. 내가 공격하는 지점은 딱 하나다. 진실을 얘기하지 않고, 진실을 회피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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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2.08 -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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