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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해 가는 네오콘과 손잡을 것인가”
부시 낙선, 네오콘 퇴출 / 정세분석
민경우
지난 200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승리했다. 그러나 부시는 전체 투표수에서 민주당의 엘 고어에게 뒤져 그 해 12월 15일 연방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논란이 많은 승리였다. 2001년 1월 20일 부시는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다.
부시 집권 이후 이른바 네오콘이라 불리는 ‘악당’들이 미 행정부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21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기 위한 위험천만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은밀히 추진하다 부시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네오콘의 계획과 활동방식은 소형 핵폭탄 개발, MD 등 군사력 확장, UN마저 공공연하게 무시하는 일방주의, 선제 공격으로 무장한 공격적인 교리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취임 이후 9·11 이전까지 네오콘의 구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부시의 정책은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혔고 네오콘이 주창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등장은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했다. 9·11은 네오콘의 입장에서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최근엔 ‘9·11 음모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네오콘이 9·11을 난관에 봉착했던 세계 패권 구상을 전면화하는 계기로 악용했다는 것이다.
히틀러 이후 최대 학살자는 부시
9·11 직후 네오콘은 테러에 대한 대응과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한 제압이라는, 차원이 다른 두 가지 문제를 인위적으로 결합시켰다.
1988년 알카에다를 창건한 오사마 빈 라덴이 1996년 미국에 대한 성전을 선포하고 케냐, 탄자니아 등의 미 대사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대미 테러 공격은 현실적 위험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불량국가로 지목하고 1990년대 모든 기간 동안 봉쇄와 위협을 가했던 대표적인 두 나라 이라크와 북은 위(테러)와는 상황이 달랐다. 이라크는 10년 이상 계속된 미국의 경제 봉쇄로 국민경제 지반이 와해되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이후 최대 규모의 학살로 기록될 1990년대 미국의 대이라크 경제 봉쇄는 1백50만 명 이상의 사망자(거기에는 5세 미만의 5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다)를 낸 채 세계 2위의 산유국가 이라크를 빈사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라크는 미국을 위협할 만한 힘은커녕 제 한 몸 주체하기도 힘든 상태였다.
북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는 극단적인 경제적 곤경에 직면했다. 이 기간 동안 북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은 평화였다.
고전하리라 예상했던 아프간 전쟁이 두 달이 채 못 되어 마무리되자 네오콘은 감추어 두었던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2년 1월 29일 ‘악의 축’(부시의 미 의회 연설)으로 정리된 미국의 정책은 중동(이란과 이라크)과 한반도에서 미국의 세계 구상에 걸림돌이 되는 이른바 불량국가를 제거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라크에 대한 군사 공격은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2001년 하반기 고이즈미 내각이 호전적인 대북정책(괴선박 파동이나 총련계 신용조합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구사하며 미국의 대북 붕괴정책에 동조하기 시작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네오콘을 대표하는 미국의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 침공의 정지작업으로 중동을 순방한 것은 2002년 봄이었다. 그러나 중동 국가들은 냉담했다.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중동 전역에 분쟁과 갈등이 확산되는 것으로 중동의 친미 정부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였던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저지했던 뜻밖의 사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이었다.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력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이 시기 일본의 고이즈미도 테러대책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지스함을 인도양까지 파견한다. 큰 깡패의 힘을 배경으로 작은 깡패들이 설치는 형국이었다.
2002년 3월 29일엔 방벽작전(operation defensive shield)으로 명명된 이스라엘군의 군사행동이 시작되었다. 요르단강 서안의 소도시로 진격한 이스라엘군은 아라파트가 집무하는 라말라를 봉쇄하고 인구 1만3천 명의 소도시 예닌을 피로 물들였다. 아라파트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포위된 집무실에 갇혔고 이스라엘군은 예닌을 방문한 UN 진상조사단의 조사마저 거부했다. 천인공노할 만행 앞에 전세계가 몸을 떨었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집중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을 지체시킨 것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희생이었다.
미국이 지목한 또 하나의 불량국가 북의 경우는 다소 달랐다. 부시 대통령이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자 북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대치하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2002년 남측에서 진행된 반미운동이다.
1·29 ‘악의 축’ 연설 직후 한국을 방문한 부시는 정치인, 종교인, 여성계, 노동자, 학생 등 전 국민적인 반미시위에 직면했다. ‘악의 축’ 연설과 부시 방한으로 시작된 반미운동은 때맞추어 터진 동계 올림픽 편파판정 시비, F-15K 전투기 강매, 전동록씨 사망 등을 계기로 전 국민적으로 확대되었고 2002년 하반기엔 거대한 촛불시위로 발전했다. 부시의 고압적인 대북공세는 역설적으로 한국민의 반미 정서에 불을 질렀던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2002년 하반기, 미국의 ‘불량국가 손보기’ 계획이 다시금 본격 추진되었다. 이 정책의 목표물인 이라크와 북은 유일 패권국가를 지향하는 네오콘을 맞아 국가 존망을 좌우하는 대격전에 직면했다. 같은 해 10월 초,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을 승인하는 미 의회 결의안이 채택되고 11월 8일엔 UN 안보리 결의안 1441호가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은 UN 사찰의 재개와 대량살상무기의 폐기 등을 담고 있었다. 전쟁을 목전에 둔 이라크는 어떻게든 미국의 공격을 피해 보려고 서둘러 UN 사찰단을 받아들이고 그나마 변변치 않은 미사일마저 폐기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의 수렁 속에 빠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간 순간 뜻밖의 복병이 출현했다.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반전운동이 그것이다. 중동과 유럽을 중심으로 거대한 반미와 반전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반전운동을 배경으로 외교적 각축 또한 본격화되었다. UN 사찰단의 보고서가 제출된 후 UN 결의를 통해 전쟁을 합법화하려는 미국과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며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의 외교전이 긴박하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반전의 목소리는 커지고 UN 안보리 통과마저 낙관할 수 없게 된 미국은 영국, 스페인 등과 함께 단독 공격을 감행했다. 올해 3월 19일의 일이다.
전쟁 초반 고전했던 미국은 4월 10일 바그다드에 입성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이어서 부시는 5월 1일에 항공모함에서 군복을 입은 채 종전을 선언했다. 5월 22일 UN 안보리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승인했다.
그러나 미국의 승전 무드는 오래 가지 않았다. 미국이 꼭두각시로 내정했던 찰라비는 이라크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라크인들의 뿌리깊은 반외세 정서는 미국의 꼭두각시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후세인 생사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저항이 줄을 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쟁의 주도권이 점차 후세인 잔당으로부터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으로 이전되기 시작했고 전쟁의 대상 또한 미군으로부터 UN 대표부, 석유시설, 미군을 추종하는 이라크인, 시아파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네오콘의 도발은 테러를 근절하기는커녕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세력에게 최적의 활동무대를 제공했다. 또한 이라크에 민주주의와 안정을 가져오기는커녕 종족, 종파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하루 1명 이상 나오는 희생자와 한 달 동안 50억달러가 넘게 들어가는 전쟁 경비였다. 전쟁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자국민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기묘한 나라 미군의 실체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군대가 아니라 기계와 돈에 의존해 싸우는 군대의 약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5·1 종전 선언 이후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미국 내 여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민의 입장에서 이라크 민간인의 죽음은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지만 미군의 희생은 자기 남편과 자식이 죽을 수도 있는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만 9천 명, 부상자는 2만 명에 달한다.) 5천 억 달러가 넘는 재정 적자 또한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부시에게는 악몽과 같은 난제였다.
부시는 어쩔 수 없이 지난 9월 8일 8백70억 달러에 달하는 전쟁 경비를 요청하고 UN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잊혀졌던 전쟁, 미국식 가치관에 찌들은 제도 언론이 잊으라고 강요했던 땅, 이라크는 이렇게 다시금 세계 전면에 부상했다.
비슷한 시기 북은 어땠을까? 부시가 미 의회로부터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 권한을 부여받은 2002년 10월 초 미 국무부 켈리 특사가 북을 방문하였다. 켈리 특사의 고압적인 자세에 대면한 북은 12월 핵동결 해제, 핵시설에 대한 봉인 및 카메라 제거, 국제원자력기구 요원 추방에 이어 2003년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맞섰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공 무렵인 지난 3월 초엔 미국이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8천 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 작업에 착수한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결국 바그다드 함락 직후인 4월 23~25일 북경에서 3자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미국이 이라크에서 총체적인 난관에 직면한 지난 9월 초, 미국은 6자회담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는 반면 북은 미국의 근본적인 입장 변화가 없으면 6자회담은 무의미하다고 뻗대고 있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결국은 힘 관계이다.
네오콘에게 남은 것은 ‘패배의 인정’
이라크의 입장에서 목표는 전쟁을 막는 것이었다. 반면 북은 미국에게 평화를 강제하는 것이다. 한편 팔레스타인은 세계인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평화와 정의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것은 팔레스타인이다.) 이라크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UN이 개입해야 한다. 반면 북은 UN의 개입을 반대하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 땅에서 UN은 미국의 거부권과 이스라엘군에 밀려 처량하게 돌아서고 말았다. 이라크, 북, 팔레스타인에서 조성된 역관계의 차이가 미국의 대응의 차이를 불러 온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미국, 특히 네오콘의 입장에서 이라크와 북은 불량국가이고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동정책의 주요 장애물이다. 미국은 이라크와 북, 팔레스타인을 하나의 프리즘으로 보고 힘의 관계에 따라 달리 대응할 뿐이다.
이라크와 북에서 최후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향후 전망은 어떠할까? 지난 4~5개월의 양상을 보면 15만 명 수준의 미군으로는 이라크의 치안 유지가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미군이 동원할 수 있는 추가 병력, 외국군대의 지원 또한 전황을 근본적으로 역전시킬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이라크는 점차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대미 성전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라크 사태의 핵심은 이라크 민중의 지지를 받는 친미적인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숨쉬고 있는 유서 깊은 땅, 이라크의 민중은 네오콘의 중동 지배를 뿌리로부터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친미 정부의 수립, 이라크 석유 자원에 대한 안정적인 통제, 중동 전역을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교두보의 확보 등 네오콘의 구상은 이미 현실적으로 실패했다. 향후 이라크에서는 후세인 잔존 세력,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대미 공격이 다소 완만하고 중장기적인 형태로 지속될 수 있다. 한편 이라크 민생의 악화에 따른 이라크 민중의 저항이 대미 군사공격과 결합하거나 팔레스타인, 이란 등 중동 전체로 네오콘, 시오니즘에 대한 저항이 확대되면서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다.
한반도는 어떨까? 북미 공방에서 북의 입장은 상수이다. 근본적인 평화체제가 형성되는 시점에서 핵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다. 네오콘이 발목을 잡고 미 국무부의 속칭 온건파가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입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되고 있다.
대안은 부시와 네오콘의 정치적 퇴출
8월 27~29일의 6자회담에서 북은 나름대로 일관된 협상안을 제출했다. 반면 미국은 아무런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껏 내놓은 발언이 다음과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대화와 협상은 계속한다. 그러나 자체 협상안은 없고 북의 제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북의 핵 위협이 위험한 것이긴 하지만 대화를 중단할 마음은 없다. 북의 핵 개발의 실체 여부는 모르겠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황당한 행보의 진상은 부시 행정부 내의 자중지란의 결과이다. 여기서도 네오콘은 별다른 대안도 없으면서 상황을 지연·악화시키고 있다.
이라크와 한반도는 9·11 이후 네오콘의 세계제패 구상에서 핵심적인 걸림돌이었다. 이라크와 한반도는 지구 반 바퀴 정도 떨어져 있는 먼 지역이지만 네오콘의 세계전략이라는 하나의 프리즘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전장이다.
이 두 개의 전장에서 부시와 네오콘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패배를 인정치 않고 중동과 한반도에서 대결과 격돌, 파란과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클린턴과 민주당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온건파라 지칭되는 콜린 파월은 1991년 1차 한반도 위기 당시 합참의장을 지냈던 강성 인물이다. 오늘날의 미국에서 절대적인 의미의 온건파는 없다. 그러나 부시와 네오콘의 정치적 퇴출은 9·11 이후 지구적인 규모의 대결을 그나마 관리가능한 협상의 영역으로 돌려세울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한반도는 2000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약속했던 북미 공동성명의 수준으로 복귀하고, 이라크는 외세가 물러간 자리에서 후세인 이후의 정치체제를 둘러싼 건설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와 한반도의 미래를 약속하는 대안은 부시와 네오콘의 정치적 퇴출이다. 그 첫 번째 계기는 미 대통령 선거전일 것이다. 점증하는 미국 내 여론의 악화와 네오콘의 위상 약화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하반기의 미국 사회는 이라크 민중의 희생을 통해 주어진 진지한 반성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이 공방전의 끝에는 2004년 11월로 예정되어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부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9·11 이후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결과는 미 대통령 선거전의 향방이겠지만 그 동력은 평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모두이다.
이라크 파병은 몰락해 가는 네오콘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치적 패착이 될 것이다. 파병은 실리외교를 표방했던 광해군이 아니라 명분과 관념에 집착하여 몰락해 가는 명에 기대 한반도를 전란으로 몰아넣었던 서인의 선택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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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우 : 통일연대 사무처장
제 209 호 2003 년 11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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