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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기획좌담 /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언론의 역할
피디연합회보

■ 기획좌담 /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언론의 역할
“언론, 이젠 ‘중국 바로보기’ 나설 때”


사회 : 정길화 (MBC 시사교양국 부장대우 '옛땅 만주벌을 찾아서', ‘만주의 친일파’,  '중국과 6·25참전’ 등 연출)

토론 :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기획실장)
이연식 (KBS <일요스페셜> 한·중 역사 전쟁-고구려는 중국사인가'연출)
박찬모 (EBS <서길수의 ‘고구려의 혼을 깨운다’> 연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외교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고구려사를 자국의 변방사로 묘사하는 등 한국 고대사의 일부를 편입시켜려다 한국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 것이다. PD연합회는 이 시점에서 동북공정의 본질을 짚어보고 이와 관련해 앞으로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긴급좌담을 통해 알아봤다. <편집자>


사회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온 나라를 달구고 있다. 고구려의 역사나 문화적 기반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뤄왔는데 이것이 부정당하는 것에 대해 교양 PD로서 또 무엇보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분노가 일기도 했다. 오늘 이 자리엔 고구려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와 전문가가 참석했다. 우선 지난해 고구려 유적지 현장을 다녀온 이연식 PD가 상황이 어떤지 말씀해주셨으면 한다. 동북공정에 대해 지금까지 설왕설래하던 것을 집대성한 것은 이 PD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연식= 애초엔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인 국내성 천도 2000년을 맞아 취재하려 했으나 고구려 유적 취재 중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기획을 바꾸게 됐다. 대부분 유적지에서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중국의 동북공정 현장을 포착했다. 고구려 유적지 대부분이 공식적 취재가 안돼 어려움이 많았다. 공안들이 지키고 있고 경계가 삼엄했다.

그래서 중국 현지 스태프와 함께 들어가야 했는데 중국 현지 스태프가 3시간 동안 감금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특히 연변에 있는 조선족 학자들의 경우 우리와의 인터뷰를 일절 거부하고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렸다.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당해 상황의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고구려사왜곡 90년대초부터 감지

사회= 박 PD는 고구려 관련 프로그램을 어떻게 준비하게 됐나.
박찬모= 지난해 가을 신문보도를 통해 동북공정을 접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이 문제를 다룰 강좌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래서 고구려 역사와 문화를 전할 전문가를 찾던 중 서경대 서길수 교수를 알게 돼 브라운관에 모시게 됐다. 서 교수의 경우 TV 강의에 필요한 동영상이나 사진 등 축적된 자료가 많아 강좌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 임기환 실장께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이른바 동북공정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임기환= 동북공정은 프로젝트 차원에서 2002년 2월 시작됐다. 동북공정이란 표현은 프로젝트 자체는 아니고 그것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고구려사, 발해사 등 역사왜곡을 일컫는 것이지만 좁혀서 프로젝트 자체를 말할 때 쓰이기도 한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문제는 지난 96년부터 시작됐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중국고구려역사총론’이란 핵심과제를 설정하고 대규모 학술회의를 진행하는 등 기초적인 준비과정을 마쳤다고 판단한 중국이 본격적인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 국제환경 자체가 핵위기 등 북한의 불안정성, 동북아 정세의 변화 때문에 중국 내에서 이런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회= 이전에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나?
임= 그렇진 않다. 실제 중국학계 내에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80년대부터다. 대표적으로 요녕지역 학자들 사이에서 고구려사가 한국사도 되고 중국사도 된다는 일사양용론에 입각한 견해가 있었고 이런 의견이 점차 확산됐다. 90년대에 들어서부터 이미 상당수 중국학자들이 이와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1993년 집안(集安)에서 열린 고구려 국제 학술회의에서 중국과 남측 학자들이 의견대립을 보였다고 한다. 더구나 고구려사 문제뿐 아니라 발해사에 대해서도 중국은 80년대 개혁개방 노선 이후 역사인식에 변화가 있었다. 국내 학계에선 이미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 중국이 90년대 들어 이와 같이 동북공정을 연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임= 중국에서 동북공정 다음으로 유명한 말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고 이 소수민족을 통합해야 하는 절실한 문제가 있다. 동구권의 붕괴, 소련의 붕괴 등이 중국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소수민족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동요가 위협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중국은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서 80년대 개혁개방 이후 다민족국가론에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정책전반에 담았다. 그래서 중국은 한족만이 아니라 50여개 소수민족들과 함께 중국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기 시작했고 중화민족적 개념에 의해 역사를 재구성한다. 한족중심의 중국 역사체계를 중화민족의 역사로 편입시켰다. 동북지역 역시 상대적으로 한국사와 연결고리가 적었다고 판단한 발해와 부여를 여기에 편입시키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그대로 둔 것이다.

사회= 작년에 베이징에서 연수를 할 때 중국에서는 ‘중국판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한족 중심 역사에서 영웅이었던 악비 장군(岳飛 금나라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나 모함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충신)을 더 이상 영웅으로 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중국은 이른바 ‘중고교 역사교육지침’을 개정하면서 ‘악비는 더이상 민족영웅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악비가 싸웠던 대상인 금나라가 현재의 관점에서는 타국이 아니라 바로 중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민족끼리 싸운 인물’을 영웅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종전에 한족의 배반자로 꼽히던 오삼계 장군(吳三桂 - 만주족이 명나라로 쳐들어올 당시 산해관의 문을 열어준 장군)을 중국의 통일영웅 내지는 선견지명을 가진 장군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나오고 있었다. 중국의 역사 왜곡 내지 재해석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동북공정은 중국역사 재구성의 완성

임= 고구려사의 경우 남한과 수교관계에 있고 고구려의 정통을 내세우는 북한과도 우호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엔 쉽게 언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입장에서 보면 역사체계를 세우는데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바로 동북지역의 역사다. 그들 입장에서는 동북지역을 마무리해야 자기들의 역사인식이 완결되는 것이다.

사회= 개인적인 생각인데, 중국은 역사적으로 만주, 동북지방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만주지역은 인구가 많지만 황하와 장강(양자강) 지역의 이른바 중원지역 일대에서 발전한 한족 중심의 중국에서는 만주 땅에 굳이 세력을 확대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상 동북지역은 별도의 헤게모니가 있는 지역이었다. 고조선을 비롯 고구려, 발해, 거란, 여진, 만주 등으로 이어오면서 그곳에는 독자적인 세력이 있었고 한족은 동북지역을 지배하지 못했다. 일제 때를 살펴보면 만주는 일본 손아귀에 넘어갔고 그 이후 그곳을 해방시킨 것은 소련이었다. 임 실장께서 지적했듯 동북공정이 중화민족주의라는 틀에서 나왔지만 동북지역의 역사적 특성 때문에 더욱더 첨예하고 왜곡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임= 옳은 말이다. 예를 들어 중국 서부는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이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동북공정은 상당히 정치성이 농후하다.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경우 모국이 따로 있다. 한중수교 이후 남한의 자본이 투입되면서 영향력이 생겨나고 코리언드림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 한편 국경에 인접한 북한의 경우 탈북자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중국은 동북지역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90년 이후 조선족이 동요되고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동북지역은 역사적으로 취약한 지역이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이곳을 긴밀히 연결해야 할 당위성이 생긴 것이다.

사회= 동북공정과 관련한 문제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대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한중 수교 10년이 지나면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몇해전 우리가 중국의 마늘 관세를 내리지 않자 중국이 핸드폰 수입을 거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정부차원에서 큰 소리를 못내는 게 이런 것 때문이 아닌가싶다. 대외수출량 1위가 중국이고 관광, 유학, 연수 등 중국 방문자수가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이= 무대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대응할 카드가 없지 않나 싶다. 최근 방송에선 동북공정에 대한 중국의 의도를 문제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짚어내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조선족에 대해 재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선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 고구려 역사에 대한 얘기만 할 게 아니라 동북공정이 중국의 패권주의와 동북아 전략과 맞물리는 만큼, 중국에 관해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학계에선 어느 정도 준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중국과의 갈등이 외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대외 홍보가 중요할 것으로 보이다. 방송에선 이런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 고대사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도록 투자와 연구가 아낌없이 이뤄져야 한다.

사회= 지금까지 언론 차원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한 문제제기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 언론은 냄비근성으로 고구려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일부 언론은 사소한 사안까지도 마치 특종인양 키우는 경향도 있다. 중국의 한 민간 사이트에 고구려가 한국사로 게재돼 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이런 부분적인 사안들마다 즉자적으로 대응하다보면 큰 틀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중국의 전반적 흐름, 전략 등을 역사적 접근뿐 아니라. 동북아의 환경 속에서 연구해야 한다.

사회= 그동안 동북공정과 관련되어 방송된 프로그램을 보면 고구려사 왜곡의 현상이나 현장, 중국의 의도나 목적에 해서는 충분히 다루어졌다. 이제는 실질적인 대응책을 논의하는 수준으로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중국이 동북공정을 96년부터 준비했다고 하는데, 엄밀히 보면 그 당시 언론이 미리 관심을 갖고 대응책을 촉구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였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경우는 보수적이고 실용적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데, 중국 관계에선 경제변수가 커 국민적 정서에 편승한 정책이나 대응을 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판단한 것 같고, 그런 사이에 지금 상황에 이른 것 같다. 중국의 의도와 목적을 아는 만큼 속전속결하려 하지 말고 세계적인 공신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는 수세적이 아니라 주도적, 공세적으로 그리고 중국만 상대할 게 아니라 세계적인 공신력과 설득력을 갖도록 학계나 언론 등이 역할해야 할 것이다.

임= 올해 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언론에선 문제를 감정화, 감상화시키는 경향이 짙었다. 이제는 차분히 정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막연하게 접근해선 안된다.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자료를 갖고 조목조목 접근해야 한다. 중국은 한족중심의 중국사를 기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최근 설훈 전 의원이 발굴한 것으로 보도된 50년대 당시의 주은래 발언은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그 외 협소한 문제에는 언론이 부화뇌동해서는 곤란하다.

사회=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중국에 영향을 주어 그들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것이 실질적인 대책이다. 중국을 상대해야 대책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스컴에서는 중국을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띄워온 게 사실이다. 동북공정이 대두되기 전까지 현재의 중국을 담은 르뽀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미국과 맞서는 잠재적인 경쟁국가로서의 위상만을 부각하는 등 이른바 중국 열풍을 조장한 것은 바로 언론이다. 동북공정을 넘어서 중국 바로보기를 하고 중국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우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문제와 정치문제를 결합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 중국전문가와 역사전문가가 결합해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된다. 동북공정의 왜곡 현장을 힘들게 어렵게 답사해서 보여주는 것은 이전까지의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고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정리= 이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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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8.19 -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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