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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퍼오미
Subject   중국의 세계관과 최근 중국의 한국사 왜곡의 저의

    중국의 세계관과 최근 중국의 한국사 왜곡의 저의  

“중국은 유감이 많은 신흥 초강대국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서 자국의 정당한 지위를 되찾을 때를 기다리는 패권국 이다“
Steven W. Mosher, Hegemon: China's Plan to Dominate Asia and the World


1. 들어가는 말

중국이 고구려를 한국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중국의 변방에 있었던, 중국의 한 나라라고 주장해서 말썽이 생기고 있다. 한국 정부는 최근 중국 외교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타난 한국 고대사 왜곡을 항의했고, 중국은 아예 1948년 한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의 한국 역사를 모두 삭제해 버리는 황당한 조치를 취함으로서 한국 측의 항의에 응답 했다. 1948년 한국 정부 수립 이전의 역사를 모조리 무시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국제정치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인 관념과 중국인의 세계관을 살펴본다면 최근 한국에 대한 중국의 행동은 황당하기는커녕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중국은 강대국들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며 최근 중국의 국제정치적 행태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래 지난 1500년 동안 지구 전체에서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독점했던 그들의 역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 직후 새로 당선된 여당의 국회의원들 중 2/3 정도가 미국 보다 중국이 더 중요한 나라이며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우리의 맹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해 미국과의 동맹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해명성 설명이 있기는 했지만 상당수 한국인들이 미국을 미워하는 반면 중국에 대해 모종의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런 생각은 이제 정치 엘리트들에게 까지 파급 되었다.

지구상 그 어느 나라보다 열악한 지정학적(Geopolitical) 환경 때문에 거의 영원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국가의 생존을 염려해야만 하는 우리나라는 주변 강대국 하나, 하나의 국력과 그 나라들의 속성, 그리고 그 나라들의 국가전략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 영토를 탐하는 강대국과 동맹을 맺으면 안 되고, 훨씬 더 막강한 나라를 잠재 적국으로 삼는 동맹관계에 빠져들어도 안 된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호의적인 나라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앞으로 미국에 대항 할 때 우리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요즘 상당수 한국 사람들이 미국을 미워하는 한편 중국을 짝사랑 하고 있는 판인데 중국은 왜 우리를 그다지도 모욕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중국보다 열 배는 더 막강한 미국에게는 막 대들던 사람들이, 그리고 자주(自主)를 그토록 강조하는 사람들이 중국의 본질적인 한국 모독에 대해서는 왜 숨죽이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일까?


2. 중국적 세계질서관의 형성과 특징

중국은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온 영국 함대에게 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패배한지 (1842년, 아편전쟁) 몇 년 후 또 다시 영국과 프랑스 연합 함대에게 북경을 점령당하는 모욕을 당하기 이전까지는 (1860년) 서구적 국제 정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국제질서(World Order)의 관점을 가지고 있던 나라다. 현대적 의미에서 중국인들에게 국제정치(international politics)란 없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중국 주변의 국가들을 중국과 동등한 정치권력 혹은 독립국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국제관계(국제정치)란 독립, 주권국가들의 관계를 말한다. 중국 외에는 독립국가가 없었다는 의미에서 많은 서구의 학자들은 지난 1000년 이상 동북아시아에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간주한다.

중국의 황제에게 정기적으로 좋은 선물을 가득 가지고 가서, “코를 바닥에 대는 절”(Kowtow 고두)을 올리고, 그 댓가로 중국 황제로부터 통치권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조공(朝貢)-책봉(冊封)으로 상징되는 중국과 주변국의 국제관계가 현대적 의미에서 독립 국가끼리의 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중국도 역시 유럽의 경우처럼(그리고 현대 국제정치의 경우처럼) 독립된 국가들이 상호 경쟁하는 국제체제를 보유한 적이 있었다. 역사 이전의 하(夏)나라, 고고학적 연구로 나라의 존재가 확인된 은(殷)나라를 거쳐 기원 12세기경 형성된 주(周)나라는 기록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 최초의 이상주의적 왕조였다. 중앙에 주나라의 왕이 존재하고 주 나라의 주변에는 그 규모에 따라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식으로 계급을 달리하는 지도자들이 지배하는 제후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나라 시대는 제후국들이 주나라의 왕에 충성을 바칠 임무가 있었던 봉건 체제였다. 주나라 왕은 스스로를 천자(天子)라고 칭하며 마치 중세 유럽과 유사한 세상을 건설했다.

그러나 제후들의 힘이 차차 강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BC 8세기 무렵부터 제후국들은 주나라 왕의 눈치를 보지 않은 채 자신들끼리 세력 확장을 위해 경쟁하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주나라의 중앙적 권위가 무시되기 시작하고 고대 국가들 사이에 본격적인 국제정치가 시작된 시대를 춘추시대(BC 772-BC 481)라고 부른다. 이 무렵을 살았던 공자와 맹자는 국가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깨져서 혼란스러워 진 세상을 개탄했다. 그러나 중국의 고대 국가들은 오히려 더욱 치열한 국제정치를 전개, 힘이 강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집어 삼키는 일도 비일 비재하게 되었다. BC 5세기 이후의 중국은 문자 그대로 전쟁으로 날이 시작하고 전쟁으로 날이 새는 전국시대(戰國時代)였다. 서양학자들은 이 시기를 영어로는 Warring States Period 라 부른다. 이시기의 중국은 현대 국제정치학 최고의 이론인 세력균형 이론의 역사적인 실험실이기도 하다.

춘추좌씨전은 291년간 지속된 춘추시대동안 약 483회의전쟁이 발발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춘추시대동안에는 적어도 주나라의 우월한 지위는 인정되고 존중 되었다. 그러나 주나라가 다른 제후국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전국 시대이며 춘추시대 이전 수 백 개 이상의 국가들은 전국시대에는 단 7개국으로 줄어들었고(戰國七雄) 이들 7대강국은 궁극적으로 진(秦)에 의해 하나로 통일 되었다. 진나라는 여러 민족과 국가들 통합한 중국 최초의 제국(帝國)이 되었고 처음으로 황제의 칭호를 시작 하였다.(진시황제 秦始皇帝)통합된 제국을 건설함으로서 중국 사상 수 백 년 지속되었던 전쟁 시대가 비로소 평화의 시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중국의 국제정치적 관점은 바로 잔학(殘虐)했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국가들이 서로 독립적이며,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경우 그것은 아주 나쁜 결과( 끊임없는 전쟁) 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거의 신념 수준의 국제정치적 관점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혹은 국가)이 서로 동등하다고 인정 될 때 그 사회에 평화가 있을 것이라 가정하며 그것이 서구적 평화관의 기초가 되었다. 반면 중국인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등은 오히려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국제 관계에서도 역시 국가들이 서로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경우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초래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 이 같은 생각은 이미 기원전 5세기 이래 중국의 기본적 사회 윤리가 되었던 유교적 관점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사회속의 인간은 수평적으로 평등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나이든 사람과 어린 사람 등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있으며 이 위계질서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잘 지켜질 때 질서, 발전. 평화가 가능한 것이다.

유교적 가르침은 한(漢)나라에 이르러 중국제국의 공식적 이념이 되었으며(한무제 당시 BC 136년) 바로 같은 시대 중국인들은 역시 유교에 기초한 "유교적 국제정치 질서관"(Confucian International Order)을 수립하게 된다. 국내의 인간 사회에 위계질서가 있듯이 국가 사이에도 위계질서가 있으며, 국가들이 위계질서를 스스로 인정하고 자기의 위계에 해당되는 임무와 행동을 성실히 따를 때 세상에는 질서와 평화가 온다는 생각이다. 위에 있는 사람(나라)은 아랫사람(나라)에게 모범과 자비심을 보이고 아랫사람(나라)들은 윗사람(나라)에게 공경심과 예의를 갖출 때 즉 자소사대(字小事大)의 예가 행해질 때 그 사회(국제관계)는 질서와 화평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국제적 위계질서의 최상층에 위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철칙으로 삼는다. 중국은 문명의 상징이며, 그래서 중국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빛나는(中華)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황제는 하늘의 아들(天子) 이며 하늘에 해가 하나 뿐이 듯 천자도 하나다. 주변의 나라들은 스스로 황제라 칭할 수 없고 천자의 책봉을 받음으로서 왕이라 칭할 수 있다.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가 되어야 하며 이는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의 의례를 통해 공식화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형성된 중국과 주변국의 국제관계는 당연히 현대적 의미의 국제관계는 아니다.

이 같은 천하관(天下觀)과 세계관(世界觀)을 가진 중국인들에게 현대적 의미에서의 국경이란 개념, 전쟁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서구 국제정치학에서 국경이란 선이며 선을 불법적으로 넘을 경우 그것은 주권침해요 침략이기 때문에 전쟁 발발의 이유가 된다. 중국에게 국경선이란 없었다. 다반 변방(邊方)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변방은 중국이 힘이 강해지면 넓혀지는 것이고 중국의 힘이 약할 때는 좁혀지는 것이었다. 주변에 있는 야만족들이 중국을 침략할 경우 중국인들은 그 사건을 전쟁이라는 말로 쓰지도 않았다. 다만 오랑캐가 들어 왔다는 뜻에서 입구(入寇)라고 표시하였다. 중국인은 동서남북 모두에 오랑캐가 살고 있다고 보았고 이들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북적(北狄), 남만(南蠻) 이라고 불렀다. 특히 북쪽, 남쪽 오랑캐를 더욱 비하하여 북의 오랑캐를 지칭하는 적(狄)자에는 개를 상징하는 변이 붙어있고 남의 오랑캐를 지칭하는 만(蠻)자에는 벌레를 의미하는 충 자가 포함 되어있을 정도다.

중국은 자신의 문명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그 결과 중국과 조공 책봉관계를 체결하는 주변의 오랑캐들을 우호적으로 대접하였다. 속국들이 조공으로 가져온 물품보다 더 많은 하사품을 내리기도 하고 종주국에 대해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나 부모와 같은 자비심을 베풀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중국 문명을 인정한 오랑캐들을 사해동포(四海同胞)라 칭함으로서 주변의 이민족들을 중국인처럼 대우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해동포(四海同胞)주의란 주변 이민족들의 민족을 중국에 동화시켜 버리는 고도의 문화적 제국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종, 문화,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나라들이 중국이라는 우산 아래 하나로 포괄 될 수 있다는 사상 그 자체가 민족주의에 기반 한 현대 국가의 주권, 독립이란 개념과 양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충실한 조공 국이 되어 중국 문명권에 포함 되었다는 사실을 자부하며, 일본을 야만족으로 비하했던 조선 왕조는 중국의 문화적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일 것이다.

물론 자신만을 세계의 최 정점에 올려놓는 중국인의 세계질서관은 중국의 국력이 뒷바침 됨으로서 가능한 것이었다. 북방에서 출현한 요, 금, 원, 만주 등의 침략 앞에 유교적 국제질서가 파탄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중국을 점령한 북방의 야만족은 중국적 세계관을 역으로 적용, 중국의 황제에게 자신을 큰아버지(伯父)라 부르라는 모욕적인 조약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힘이 회복 될 때마다 중국은 중국을 국가서열의 최 정점에 놓고 다른 주변나라들의 주권과 독립을 제약하는 “유교적 국제질서”를 다시 확립하곤 했다. 주변의 약한 나라들은 주권과 독립을 희생하는 대가로 자치(自治)를 보장 받았던 것이다.

중국은 상호간 법적으로 동등하고 힘조차 비슷한 국가들이 다수 존재하는 세상은 끊임없는 전쟁이 지속 되는 세상이라는 세계관을 확립했고 이는 중국의 역사(춘추전국 시대)로부터 몸소 체험한 것이다. 자신들이 패권국이 될 경우 세상은 평화롭게 될 것이라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세계관은 국가들이 동등하게 취급되고, 세력 균형이 이루어 진 세상이 평화가 보장되는 세상이라고 보는 서양인들의 국제정치관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국은 비록 미국의 패권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패(覇)라는 말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며 중국 스스로 패자(覇者)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3. 중국의 한국사 왜곡 저의와 우리의 대책

중국의 한국사 왜곡은 중국의 전통적인 세계관의 정직한 반영이다. 중국이 서구적 국제정치 질서를 할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중국의 힘이 영국, 프랑스의 힘을 당 할 수 없게 되었던 무렵부터이다. 중국은 이후 100년을 ‘치욕의 시대’ 로 간주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치욕을 되갚음 할 때가 다시 도래했다고 믿고 있다. 중국의 국력 증강은 중국인들의 전통적 대국주의(大國主義)와 유교적 세계관을 다시 표면으로 끌어내고 있다.

주은래는 고구려를 한국사의 일부라고 말했었다는 보도가 최근 발표 되었다. 중국의 한국사 왜곡 논쟁 해결에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현재의 중국 정부와 주은래 시절의 중국 정부는 국제정치 서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대외 행태(foreign behavior) 가 달라지는 것이다. 수 십 년 전 국민소득 100불에도 미달하던 시대와 오늘 우리나라의 외교 행태가 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 역사를 왜곡하는 데에는 중국인들의 자국 국력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모종의 전략적 의미가 포함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의 한국사 왜곡은 우선 대미전략이다. 미국은 북한 문제의 해결을 중국에게 독촉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미국은 ‘중국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북한의 정권을 교체’하는 수준의 북한 문제 해결안을 말하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은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 ‘중국이 북한을 자국의 영향권에 두는 것을 인정 한다’ 는 의미가 될 것이다. 중국은 미국 측의 제의에 대해 ‘고구려는 중국 역사의 일부다’ 즉 ‘북한은 중국의 정당한 영향권속에 포함 된다’ 는 점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라 말하고 1948년 이후 한국의 역사를 다 지워버리는 황당한 역사 왜곡은 단기적, 장기전 전략의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영향권에 넣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중국은 본래 중국의 일부였던 한국을 일본과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이 떼어내었던 것이라고 선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의 한국사 왜곡이 노리는 것은 방어적인 측면도 있다. 아직 자신들과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 전체에 미치게 될 경우를 상정한 것이 중국의 한국 고대사 왜곡이다. 중국의 고구려 및 발해사 왜곡은 최악의 경우라도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게 되는 범위를 한반도에 한정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만주는 결코 한국(고구려)과 관련이 없었던 지역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중국이 다른 강대국 보다 특히 더 호전적이거나 또는 역으로 평화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한반도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의 행태와 세계관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국제정치상 자국 이외의 다른 나라를 (특히 약한 이웃인 경우) 동등한 실체로 간주하지 않는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다. 국경개념도 모호하여 이웃을 변방이라 칭하며 언제든 자국 역사에 포함 시킬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진 나라다. 반면 미국은 최소한 법적인 측면에서는 남의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해 주는 나라다. 중국은 한국의 영토 그 자체를 탐하는 나라인 반면 미국은 한국 영토에 대해 중국과 같은 수준의 관심은 없다.

미국, 중국 두 강대국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세계 정치는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미중 갈등 관계가 본격화 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막강한 강대국으로서 운명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일본은 이미,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대륙세력(중국)과 해양세력(미.일)의 균형 축을 해양세력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으로 변화 시켰다. 그렇다면 한국이 앞으로 택해야 할 국가전략은 무엇일까? 더 강한 편, 그리고 적어도 법적인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독립성과 주권을 인정하는 국제정치 전통을 가진 편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 기초적인 행동 수칙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정부는 이 같은 기초적인 외교 정책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가?

이춘근(政博, 자유기업원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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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8.19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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