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비평 아직 아시아를 말할 때가 아니다- MBC-TV 의 '아시아 아시아
- 원용진 교수>
1. 아시아 : 피동적 상상 공동체
아시아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대할 때 곧바로 공허함을 느낀다. '지식까지 찾아준다'는 네이버를 두들기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얼굴을 내민다. "아시아란 이름은 본래 그리스인(人)들이 그들 나라의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 '아수(asu:동쪽)'라는 아시리아어(語)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대의 동방, 즉 오리엔트를 가리켰으나 오늘날에는 우랄산맥과 카스피해(海)에서 동쪽으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부와 동부의 전대륙을 포괄한다." 왜 이 같은 사전적 정의를 두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이 같은 정의는 아시아적 관점이 아니란 점이다. 그리스인들 혹은 그 후예들이 정한 아시아의 정의법일 뿐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위치의 아시아를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이 보기에 동쪽일 뿐임에도 동쪽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아시아 지역을 설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공허한 이유 두 번째는 아시아가 균질적인 공간으로 처리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아시아일 뿐 그 안에서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거나 알아야 할 정보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모두 쿨리(coolie)이거나 국(gook)일 뿐이다. 유럽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면 균질적 처리로부터 얻는 공허감은 쉽게 동의될 것이다.
공허감은 기분 나쁨, 씁쓸함 이상을 포괄한다. 아시아에 대한 보편적 정의법들은 아시아를 지칭하는 것이기보다는 정의하는 자들의 이익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의도로 파악될 수 있다. 자신과의 차이를 내는 아시아이거나, 아시아를 통해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허함은 권력 작용에 대한 감지로 인해 생긴 감정일 수 있다. 미시적 권력 작용으로 인해 틀어지는 육체적 반응일 수도 있고, 불쾌함일 수도 있다.
아시아적 관점이 아님으로 해서 생긴 공허함은 개념 정의가 아시아에 대한 공격 혹은 대상화를 내포함을 근거로 한다. 그들이 본 아시아는 단순히 눈의 작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 쳐다보느냐'로 시비가 붙음을 미루어 보더라도 본다는 행위는 힘의 작용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를 감히 부릅뜬 눈으로 볼 생각을 하진 못한다. 강한 자 앞에선 눈을 내리까는 편이 온전한 몸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남성의 시선을 둘러싼 시비 또한 권력 관계를 늘 동반해 오지 않았던가. 사전적 정의에서 느꼈던 공허함은 어쩌면 공격, 권력 등이 무화되어 중립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의도를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언급이 자명하고, 진리인 것처럼 을러대려는 데 대한 반사적 감정일 수도 있겠다.
아시아를 균질적 공간으로 처리하려는 태도에 대한 불만은 아시아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자들의 내적 강화 의도를 엿본 데서 비롯된다. 아시아가 하나임을 알리는 일은 균질된 아시아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임을 알리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나 된 자신의 바깥은 다 똑 같은 타자(the other)임을 전하는 것이다. 중동이며, 동남 아시아며, 극동은 자신들의 위치에서의 원근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의미 있는 차이를 담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균질적 아시아는 내적으로 하나 된 자신들과 그 바깥의 차이가 강조되는 효과를 내기 위해 동원된 도구인 셈이다. 외부에 대한 무시를 통해 내적 강화를 꾀하는 고도의 전술일 수밖에 없다.
공허함을 내세우며 아시아에 대한 정의법에 반발하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이미 아시아는 그들이 내민 정의법과는 다른 아시아임을 오리엔탈리즘으로, 아시아의 시대로, 동아시아 건설 등으로 세계에 알리려 애써 왔다. 2)그러나 그들의 정의법에 대해 공허함을 표시하는 만큼의 비중으로 새롭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 아시아에 얹혀졌다.
아시아가 아시아를 정의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아시아를 대상으로, 그리고 균질적 공간으로 파악하는 혐의는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로 아시아 내부에서 일었던 유교 자본주의론 등을 들 수 있겠다. 일본을 선두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들이 부상하고, 그 뒤를 동남 아시아의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잇자 유교 자본주의론이 제기되었다. 이어 중국이 시장경제에 뛰어들어 새로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자 유교 자본주의론은 그 정점에 이른다. 크루그만(P. Krugman) 등이 아시아 모델은 값싼 노동력의 양적 팽창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비판을 제기했지만 그 기를 꺾진 못했다. 유교 자본주의론은 베버의 아시아에 대한 논의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서구의 프로테스탄티즘과 달리 유교는 자본주의 발전의 내적 계기가 결여되어 있다는 베버의 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것이다. 뚜웨이밍(杜維明)은 일본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을 구미 자본주의의 유형이나 소련 및 동구의 사회주의 유형과 구별된다며 아시아 모델이 후기 유가사회라는 문화적 공통 기반 위에 구축되었다고 보았다. 또 다른 아시아 균질론인 유교 자본주의론은 아시아 국가 내부의 불균질 테제(동남 아시아의 화교 문제) 등에 막히어 그 기세가 꺾이고 만다. IMF 사태를 맞자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나 아시아 또한 아시아를 균질적으로 보고자 하는 사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한 바탕 지식담론 해프닝이었다.
대상으로서 아시아를 규정짓는 정의법 또한 아시아 내부에서 빈번히 답습되고 있었다. 아시아는 늘 대상이었으되 균질된 형태로서 대상이었다. 공격의 대상이었고, 문제를 안고 있는 대상(yellow peril), 찾아가는 대상이었으며, 타자로서 대상이었다. 영국,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의 대상이었다. 심지어는 서구의 대상화를 종식하자며 서구를 흉내낸 일본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의 내적 강화를 위해 희생될 수도 있고, 희생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서구를 흉내낸 일본도 일본의 내적 강화를 위해 아시아는 하나라는 아시아 공영권의 논리를 펼쳤다). 오랜 대상의 역사 탓일까. 아시아를 균질적인 대상으로 파악한 것은 일정 효과를 낳고 있었다. 피동적 상상 공동체. 아시아가 스스로 상상하여 만든 아시아라는 공동체에 붙일 수 있는 명칭이다. 아시아는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지 못하고 서구가 규정한 방식의 프리즘을 통해 자신을 규정한다는 말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대상화됨으로써 얻게 된 일종의 '노예 정체성'이다. 겐지에가 말했듯이 결코 주체적이지 않으며 종속적인 정체성이다. "나는 타자에 의해 소유된다.
타자의 시선은 나의 몸을 속속들이 주형하고, 나의 몸이 태어나게 하고, 그것을 조각하고, 그것을 현재의 모습대로 생산하고, 나는 결코 보지 못할 방식으로 그것을 본다. 그 타자가 비밀―나의 존재의 비밀―을 쥐고 있다." 3)노예 정체성은 스스로를 희생자 혹은 약자로 규정짓게 해주고, 동시에 도덕적 우월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게 해준다. 도덕적 우월성은 '강자는 악하다'라는 언명을 만들어 내며 상상적 복수의 기반이 된다. 도덕적 우월성이나 남에 빗댄 행동(상상적 복수)은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없게 만든다. 존재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노예 거부, 주인에 대한 인정 거부를 어렵게 만든다.
2. 유색 오리엔탈리즘(the colored orientalism)
아시아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통해 형성된 피동적 상상 공동체, 노예 도덕, 노예 정체성이 아시아를 늘 이미 그대로 있는 것으로 파악케 만들어 준다. 스스로 노예(선한 자)로 범주화하면서 노예 거부는 물론이고 주인에 대한 인정 거부를 행하지 않는다. 아시아를 균질적 대상으로 놓음으로써 발생한 상흔인 노예 도덕, 노예 정체성, 피동적 상상 공동체는 연쇄적으로 또 다른 효과를 낳는다. 아시아 내부의 차이를 아시아 스스로가 주인의 눈으로 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효과가 그것이다. 주인이 형성해 놓은 오리엔탈리즘을 답습해 낸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유색(colored)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효과다.
아시아인들이 스스로 내부적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일은 근대화 이후라 하겠다. 애초의 아시아 근대화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일본이 아시아를 근대화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의 근대화 가속을 위해 아시아가 이용됐다는 말이다. 이 계기를 통해 엘리트층의 이주와 노동자의 강제 이주(징용, 징병 등)가 시작된다.
강제 이주의 성격을 띤 초기에는 민족주의를 수반한 차이의 인식도 발생하지만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모토로 내건 근대화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유색 오리엔탈리즘도 동시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을 유학했거나 경험한 엘리트층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윌리엄 맥닐(W. MacNeil)이 규정했던 대중적 이주와 엘리트 이주가 이 시기에 같이 이루어졌지만 식민 이후 이주를 택했던 엘리트들이 아시아 사회를 이끌어 가면서 유색 오리엔탈리즘은 사회 깊숙이 자리를 잡게 된다(한국에서의 '엽전'이란 말의 상용도 그 일환이 아닐까).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후에는 일시적으로 민족주의를 수반한 차이의 인식이 더 강하게 작용했겠지만 결코 유색 오리엔탈리즘을 탈색시키진 못했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벗어난 인도, 일본의 혹독한 식민통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서구 향수를 지니게 된 동남아 일부 국가, 일본으로부터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탈아입구에 기댄 채 민족주의적 근대화를 추구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은 유색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식민 이후의 민족주의적 근대화를 추구하긴 했지만 유색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안은 채 이루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샐먼 루시디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은4) 그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설 초반부에 아미나 시나이는 나링카 박사의 조산원에서 분만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조산원의 한 구석에서는 바니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아이를 낳는 고통을 치르고 있었다. 바니타가 막 낳으려는 아이는 윌리엄 메스월드라는 한 영국인과의 정사에서 뜻하지 않게 생긴 결과였다. 메스월드는 동인도회사 간부의 직계 후손임을 뽐내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아이를 순산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출생하자마자 마리 페레이라라는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산파에 의해 뒤바뀌게 된다. 네루가 독립 인도의 아이라며 환호했던 살림 시나이는 실은 마지못해 인도땅을 떠나는 식민 지배자의 아들이었던 셈이다. 이 소설적 사건은 식민 직후의 근대화를 사는 아시아인들의 알레고리적 조건이었다.
유색 오리엔탈리즘은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아시아 국가간 경제적 차이가 크게 벌어짐으로써 더욱 힘을 얻게 된다. 일본, 한국, 대만, 홍콩 등으로 이주해 가는 노동자가 늘면서 아시아 내부의 차이에 대한 인식은 일상으로 다가가게 된다. 이주 노동자들이 형성해 가는 가시적 공간(이주 노동자 공동체)과 그들이 가져오는 비가시적 문화가 유입국 대중들에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평적 차이로 인식되지 않고 여전히 수직적 차별로 인식되고 있다. 차이를 인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탓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당장 필요한 인력에만 주목했을 뿐 그에 맞춘 공공정책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캐슬과 밀러는 각국의 시민권 모델을 네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5) 이는 이민정책, 귀화정책 등의 이주에 대한 공공정책의 양상을 기반으로 나눈 것이다. 첫번째는 이민에 대한 비 실체적 태도를 가리키는데 이는 시민권 모델이라기보다는 이주 공동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주 노동자의 주변화와 배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의도적 비결정(non-decision)인 셈이며 정치적으로 침묵을 지킨다. 이로써 유입국 내부에서 국지적 인종주의, 차별주의가 성행하도록 하는 태도다. 둘째 모델은 배타적 모델이다. 이는 이주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이민 유입국의 시민보다 낮은 위치에 둔다. 귀화와 시민권 취득의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며, 이주자와 유입국 사회간의 공식, 비공식 문화교류는 불평등하고 소원한 관계를 이룬다. 세 번째는 공화국-제국적 모델인데 이는 혼성적인 형태를 띤다. 이 모델은 유입국에서 태어난 이주 2세대와 외국인 노동자보다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구식민지로부터 식민 모국으로 이주해 온 시민들에게 특히 해당된다. 마지막 모델은 다문화적 모델인데 토앙적으로 이주가 영구적으로 이루어지고 시민권 취득이 보장되는 모델이다.
일본, 한국, 홍콩 등은 실체적 태도 혹은 배타적 모델을 이주와 관련된 공공정책으로 택하고 있다. 이주 근로자들은 그 정책 속에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 같은 태도 혹은 모델 속에서 그들의 삶은 소수민족 공동체를 이루기보다는 소수민족 집단으로 꾸려진다. 흔히 이주 공동체는 민족집단(ethnic minority)과 소수민족 공동체(ethnic communities)로 나누어 설명된다. 6)전자의 경우 노동시장과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주류사회와 분리된다. 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 문화, 정치적 배제를 경험한다. 이들은 방어적 토착적인 기존 사회의 언저리에서 주변화된 집단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토착사회는 이주집단에게 온전한 시민권 또는 부분적 시민권마저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넓은 의미의 다문화국가 내에서 중요한 위치 또는 온전한 위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수민족 공동체는 이주자와 그 후손들이 다문화적 사회의 한 구성요소로 간주되며 그러한 다문화적 사회는 이주자들에 맞추어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형성할 용의가 있는 곳에서 존재한다. 아시아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이주, 그리고 주체인 이주민들은 대체로 비실체적 태도, 배타적 모델 그리고 소수민족 집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이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굳건한 기반은 역시 아시아의 이주 유입국들이 견지하고 있는 유색 오리엔탈리즘이다.
3. '아시아 아시아'
아시아는 아직 아시아를 차이를 두고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시아는 여전히 자신과 그 밖의 아시아로 이분화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도 유색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이분화에 가깝다. 비실체적 태도 혹은 배타적 모델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공공정책을 가지고 있는 한 아직은 아시아를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소수민족 공동체로 대하지 않고 소수민족 집단으로 대하는 태도를 지니는 한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MBC-TV가 행한 야심찬 오락 기획 프로그램 <!느낌표> 속의 '아시아, 아시아'는 그 같은 조건 속에서 풀이될 필요가 있다. 교양적 오락을 펼치겠다는 이 꼭지는 일단은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 바깥의 아시아를 둘러보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으며, 한국 속 아시아(이주 노동자)를 질문해 볼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그들의 인권, 노동환경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같은 아시아인으로 보자는 계몽적 언설들도 상당한 비중을 가진 채 공되고 있으며 동의를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외견상으로 교양적 오락이라는 슬로건의 이름값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시아를 다시 고민케 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홍보 문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로 전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힘! 세계 속의 한국!! 성숙한 대한민국을 위한 <박수홍·윤정수의 아시아! 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들어온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 총 33만 명!!! 그러나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현재까지 근로자로서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행한 인격적 차별을 반성하고,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인간적인 접근을 통해 차별과 편견이 아닌 관용과 배려로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합니다. 32억 아시아의 중심! 대한민국!! <박수홍·윤정수의 아시아! 아시아!>가 시작합니다."
홍보 문구로 엿보자면 MBC가 견지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역사적 조건은 매우 단순하다. 그들은 아시아의 중심인 한국에 와 있지만 제대로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인격적 차별을 당하고 있으므로 관용과 배려를 고민해 볼 시점에 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시아, 아시아'는 이제 더 이상 이주 노동자 문제를 미룰 수밖에 없는 임계점에 한국이 도달했다는 신호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미 한국에는 전에 없는 인종정경(ethno-scape)이 펼쳐지고 있다. 새로운 인종정경이라는 환경변화를 두고 언론이 무심했을 리가 없다. 이주 노동자들은 언론 속에서 범죄자로 다루어지거나 악덕 업주에 걸려 고생하는 동정의 대상으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지엽적인 에피소드를 엮어내 이주 노동자를 전달하는 일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주 노동자의 근로권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었듯이 말이다. 언론이 지금까지 이주 노동자를 다루어 온 방식이 더 이상 대중들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게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시아, 아시아'는 기존의 포맷에서 약간 비켜나면서 이주 노동자를 새롭게 다루고자 했다. 그들도 가족이 있으며, 예전의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다른 시각으로 보자며 권유하고 있다. 결코 제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이주 노동자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2002년 12월에 외국인 노동자의 집이 주최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한국인의 편견'이라는 토론회에서 담당 연출자는 "제도를 언급할 경우 역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감정에 호소하여 국민의 피부에 와 닿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가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감정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도 우리하고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줘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각을 바꾸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라고 발언했다. 다르게 말할 때는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제도를 말하고, 유색 오리엔탈리즘을 말할 때는 안 되었으므로 점진적 접근의 전술을 택했노라고 말하는 셈이다.
아시아가 아직 자신 내 차이를 전향적으로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좀 억울한 비평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펼쳐지는 온정의 눈길이나 동정은 노예 도덕을 수반한다. 1960년대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던 광부, 간호원(당시에는 그렇게 불리었다), 1970년대 중동으로 갔던 노동자들의 경험이 늘 프로그램에 반영된다(아니 숨겨져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미주 이민 100년을 맞은 탓에 한국의 과거는 늘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에 오버 랩되고 있다. 7)악덕 기업주에 맞춰지는 포커스 또한 노예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될 수 있는 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를 찾으려 하고, 그 안에서 한국의 정서와 부합될 수 있는 점을 구하는 작업에서는 민족은 버티고 서 있으며, 이주 노동자들은 한민족이 겪었던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동정받는 존재가 된다.
노예 도덕, 노예 정체성, 유색 오리엔탈리즘에 걸치고 있는 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시선, 아시아에 대한 시선은 엉뚱한 방향으로 모두를 인도할 위험을 안는다.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답을 엉뚱한 데서 얻은 결과로 인해 더욱 힘들게 실마리를 찾게 할 공산이 크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공공정책의 엄청난 수정을 위한 인식의 수정을 감안한다면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여전히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억울한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다. 시사보도, 교양 프로그램에 던질 질문을 오락 프로그램에 던지고 있다면서 반발할 수도 있다. 그 반발은 장르에 대한 오독에서 비롯된다. 시사보도, 교양 프로그램과 오락 프로그램은 수평적 관계에 있을 뿐 수직적 관계 속에서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장르적 원칙은 없다. 오히려 오락 프로그램은 전해 주는 방식 탓에 더 많은 이야기를 펼치고, 정서적 자극을 전할 수도 있다. 오락적 재미로 채색되면서 깊이 생각지 않은 아시아 정의법은 영원히 아시아를 노예 도덕 속에서 고민토록 이끄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데 큰 우려를 표시하는 것이다.
아시아를 더 잘 말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를 아는 준비가 더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에는 인종문제로 고통받는 중국인들이 있으며, 인도인의 아시아 이주로 힌두교가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필리핀의 모슬렘은 전쟁의 분위기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 등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윤정수와 박수홍이 그 일을 못할 리가 없다. '가여운' 이주 노동자를 내세워 할 일도 아니다. 아시아를 아는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도 그들 속에서 살아야 하고, 그들도 한국 속에서 제대로 살고 싶어한다는 점으로 이어져야 할 것 같다. 남들이 정해 준 방식대로 아시아를 정의하고, 그를 통해 유색 오리엔탈리즘을 키워 낼 일이 아니라, 아시아 방식대로 아시아를 서로가 살아갈 수 있도록 규정해 나가는 일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아시아 담론일 것이다. 당연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노예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다고 생각했다면 그것 또한 오산일 수밖에 없다. 존재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노예 거부, 주인에 대한 인정 거부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시아, 아시아'도 이렇게 어려운 방식으로, 생소한 용어들로 에둘러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최원식(1993), "탈냉전 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창작과 비평>, 봄, 204∼225쪽.
S. Castles and M. Miller(1993), The Age of Migration : International Population Movements in the Modern World, London : Macmillan.
I. Gendzier(1973), Frantz Fanon : A Critical Study, New York : Pantheon.
W. McNeil(1978), "Human Migration : An Historical Overviews," in W. McNeil & R. Adams (eds.) Human Migration : Patterns and Policies, Bloomington : Indiana University Press.
S. Rushdie(1982), Midnight's Children, London : Picardor/Pan Books.
E. Said(1978), Orientalism, New York : Random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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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 Said (1978), Orientalism, New York : Random House.
2) 최원식(1993),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창작과 비평>, 봄, 204∼225쪽.
3) I. Gendzier(1973), Frantz Fanon : A Critical Study, New York : Pantheon.
4) S. Rushdie(1982), Midnight's Children, London : Picardor/Pan Books.
5) S. Castles and M. Miller(1993), The Age of Migration : International Population Movements in the Modern World, London : Macmillan.
6) W. McNeil(1978), "Human Migration : An Historical Overviews," in W. McNeil & R. Adams (eds.) Human Migration : Patterns and Policies, Bloomington : Indiana University Press.
7) MBC 게시판에 한 시청자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아시아 아시아를 보고 정말 감명 받았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께서도 해외파견 나가셔서 일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프로그램 보면서 우리 아버지도 저랬을 텐데 하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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