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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아람찬
Subject   ◆ 한글과 겨렛말은 권력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

글자의 출현


글쓰기는 경험을 기록하고, 기록된 경험을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전달하는 대화체계를 제공한다. 글쓰기가 기록과 의사전달의 오로지 수단은 아니다. 말씀도 기록과 대화의 수단이고, 글쓰기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영속성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가 더 쓰임새 있는 방법이다. 글쓰기가 세계의 6개 지역에서 따로이 발명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글쓰기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글자는 그림글자 와 뜻글자와 소리글자로 나눌 수 있다. 그림글자는 말씀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글을 말하고, 뜻글자는 상징으로 나타내는 글을 말하며, 소리글자는 추상적 기호로 나타내는 글을 말한다.


그림으로 글쓰기

글쓰기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직까지 올곧이 밝히지 못하고 있다. 중앙 아프리카의 유적지에서 뼈에 규칙적인 자국이 새겨진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연대는 기원전 8천 년으로 측정되었다. 이것은 그림으로 글쓰기이거나 글쓰기의 발생 초기로 해석될 수 있다. 글쓰기의 출현에 성큼 다가서게 된 것은 상징의 개념 때문이었다. 물체를 나타내는 상징이 아니라, 여러 이름들의 소리를 상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보기)를 들면 눈과 톱을 그림으로써 "나는 보았다."라는 문장을 나타낼 수 있다.(eye+saw=I saw) 눈과 나라는 명사의 소리값이 같고(eye=I), 톱이라는 명사와 "보았다."라는 동사의 소리값이 같음(saw=saw)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를 "그림으로 글쓰기"(rebus writing)라고 한다. 그림으로 글쓰기는 점점 더 많은 상징들을 이용하게 되고, 그에 따라 상징들은 직접적으로 대상을 나타내는 비율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한자의 갯수가 한나라의『설문해자』(서기 100년)의 9천3백 여 개에서부터, 청나라의『강희자전』(1716년)의 4만 7천 여 개를 거쳐, 치나의『한어.대자전』(1986~1990년)의 5만 6천여 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것들에서 갈라진 글자(약자,이체, 등등 다 아우르면 그 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게 된 것도, 이와같이 그림글자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자와 그림글자의 차이점은 /그림처럼 그렸느냐/ 아니면 보다 추상적으로 그렸느냐/ 하는 차이 뿐이다.




그림글자

그림글자는 기원전 3500년에 수메르에서 발견되었다. 그림글자는 상형글자 보다 앞서 나타난 글자였던 것 같다. 그림글자는 대상을 나타내는 도형을 결합시킴으로써 하나의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림글자는 선사시대 유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고, 남북 어메리커 원주민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북어메리커 인디언들은 동물의 껍질, 뼈, 뿔, 나무조각, 바위 등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였다.
붉게 칠한 인체는 상처 입은 사람을 표시하고, 목이 없는 사람은 송장을 뜻하였다. 전쟁이나 수렵의 기간은 그 날짜만큼 해그림을 그려서 표시하였다. 흰색은 평화, 검정색은 죽음, 붉은은 승리, 파랑색은 패배 등을 의미했다. 동물의 그림이 사람의 그림 위에 그려진 경우에는 그 사람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멕시코의 아스텍 인디언들은 뱀의 산이면 뱀과 산을 합친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물 긷는 자리는 항아리와 물을 그림으로 표시하였다. 추상적 존재인 신은 반쪽 해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신의 땅은 이러한 신의 그림과 땅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어떤 대상을 그림으로써 특정의 이미지를 나타낼 때 이것을 그림글자라고 한다. 그림글자의 현대적 모양은 공중전화, 버스 정류장, 커피숍, 화장실 등을 나타낼 때 이용된다. 그림글자는 읽고 말할 수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





상형글자

상형글자는 기원전 3000년에 이용되었다. 상형글자란 사물을 상징화시켜 그 사물이나 그것과 관련 있는 개념을 나타내는 글자를 말한다. 고대에는 상형글자를 주로 제사장들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신성글자(신의 말씀)라고 불렀다. 상형글자는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3000년 동안 주로 왕의 업적이나 신과 사후세계에 관한 내용을 신전이나 묘지의 벽면 또는 기둥에 조각하는 형식으로 이용되었다. 상형글자는 회화적인 성격이 강하며 미술적 가치가 높은 것도 많다.

대표적인 상형글자는 고대 이집트에서 이용되던 글자와 초기의 한자 아래의 오른쪽 사진은 고대 이집트의 로제타돌인데,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덕행과 신에 대한 믿음을 찬양한 송덕비로서 상형글자로 씌어져 있다. 1822년 프랑스의 ‘샹폴리옹’은 로제타돌과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상형글자들을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을 실마리로 하여 비교연구하여 고대 이집트 상형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아래의 글자들은 샹폴리옹이 풀어 쓴 고대 이집트의 상형글자들이다.


가다.걷다.


눕다.
죽다.묻다.


먹다.
말하다.


의례.축제.


생각하다.


옮기다.
포옹하다.


집.


보다.


냄새 맡다.


듣다.


농사 짓다.


열다.닫다.


울다.


자르다.


주다.




 

 



표의글자


치나의 한자는 그림글자에서 출발하여 표의글자가 되었다. 치나인들은 소리값이 아니라 뜻을 나타내는 표의글자를 만들었다. 위의 오른쪽 그림은 치나 은나라의 갑골글자이다. 갑골글자는 그림글자이다. 그림글자가고정된 상징적 모양로 되어가는 방법이 관습화되면 지시대상과 표현간의 완전한 일치는 점점 필요 없게 된다. 그래서 표시 방법도 점차 간략해지고 추상화되어 글자로서 다양성을 갖추게 된다.

그림글자와 표의글자의 차이는 글자가 나타내는 실체와 상징의 차이 뿐이다. 좀 더 그림에 가까운 모양이 그림글자이고, 좀 더 추상적이고 파생적인 모양은 표의글자이다. 그림글자와 표의글자의 공통된 핵심적인 속성은 둘 모두 소리값이나 낱글자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언어에서 이용되는 많은 상징들이 그림글자나 표의글자에 그 뿌리을 두고 있다. 어떤 언어에서 상징이 낱글자를 뜻하고 있으면 그것은 표어글자, 곧 기호로 취급된다. 보기)를 들면 달러화를 $ 로 나타내고, 원화를 \ 로 나타낸다.




음절글자

표음글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글자와 소리를 음절 단위로 표시하는 음절글자이고, 또 하나는 글자와 소리를 음소단위로 표시하는 음소글자이다. 대표적인 음절글자는 니혼의 가나이다.

니혼의 가나는 치나의 한자가 가지고 있는 표의글자의 음절글자적 성격을 표음글자의 음절글자적 성격으로 바꾼 것이다.

가나의 カ•キ•ク•ケ•コ 는 첫소리가 모두 동일한 음 소인 [ㄲ]이다. 그러나 [ㄲ+ㅏ]•[ㄲ+ㅣ]•[ㄲ+ㅜ]•[ㄲ+ㅔ]•[ㄲ+ㅗ]로 표시되지 않고, 공통된 음소인 [ㄲ]은 무시되고 각각 다른 글자인 [カ]•[キ]•[ク]•[ケ]•[コ] 로 표시된다. 즉 가나는 음소는 표시되지 않고 음절만 표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글자를 음절글자라고 한다.


최초의 음절글자는 기원전 1000년 경에 페니키아인들이 이용했다. 19세기에 북어메리커 체로키-인디언들이 발명해서 이용한 글자도 음절글자였다.





 



음소글자

음소글자란 글자와 소리가 음소단위로 표시되는 글자를 말한다. 한글로마자음소글자이다. 한글과 로마자는 각 기호들이 단 하나의 음소를 나타내는 기호들의 뭉치이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아라비아어와 헤브라이어에서 시작된 것 같다. 고대 그리스어는 그리스 알파벳에 모음의 기호들을 보탰다. 현대 유럽어의 로마자는 그 기원을 이집트에서 페니키아로 그리고 고대 그리스로 마침내 로마 알파벳으로 이어져 왔던 것을 추적할 수 있다.




숫자의 출현

글자와 함께 숫자와 산수도 출현하게 되었다.

오른쪽의 그림판은 이집트에서 타이에 이르기까지 숫자의 모양들을 나타낸다.

아시아에서는 주판이 출현했고, 수학적 계산을 하는데 매우 효율적이다.


주판은 오늘날까지도 쓰이고 있다.











매듭숫자



페루의 잉카 인디언들은 매듭의 끈으로써 숫자를 기록하는 키푸라는 방법을 이용했는데, 우리의 십진법과 비슷하다. 오른쪽 사진은 잉카-인디언들의 키푸이고, 위의 왼쪽 그림은 키푸의 계산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과 함께 중앙 어메리커의 마야 인디언들도 달력을 만들어 내었다. 마야 인디언들은 중요한 행사들을 일정에 따라서큰 돌에 그림으로 새겼다.

글쓰기는 신대륙에도 존재했었으나 이제 더 이상 연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메리커를 정복한 유럽의 정복자들과 선교사들은 멕시코와 중앙 어메리커에서 방대한 양의 기록된 문서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정복자들과 선교사들은 이 문서들을 악마의 글이라고 생각했고, 모두 불태워 버렸다. 어메리커 원주민들의 글이 불태워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 있어서 신대륙에도 글쓰기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문명의 파괴 행위 때문에 한 문명의 기록된 글들을 더 이상 연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중앙 어메리커의 마야 문명에서 서기 500년 경에 이용했던 글쓰기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글들이 더 이상 발전한 것 같지는 않고, 남•어메리커 페루의 잉카 문명에서 빌려온 글 같지도 않다.




글자의 학문적 목적과 사회적 목적

남•어메리커의 남비크와라족은 글을 모른다. 그리고 그림도 그릴 줄 모른다.
그들에게 연필과 종이를 나누어줘 봤으나 처음에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종이에다가 물결치는 듯한 곡선을 그리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자 했던가? 그들은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연필을 나와 같은 용도로 쓰고자 애썼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러나 무리의 우두머리는 글자의 기능을 이해했다. 그는 내게 메모지를 달라고 했다. 그는 내가 묻는 질문에 말로써 답하는 것이 아니라 메모지에 구불구불한 선을 몇 개 그어 마치 내가 그 답을 읽을 수 있다는 듯이 내게 메모지를 내밀었다. 우리 사이에는 암암리에 묵계가 이루어져 그의 글에 어떤 의미가 있는 듯이 내가 그것을 읽는 시늉을 하면, 이어서 그는 그 것을 말로 설명했다. 그런데 거래하는 곳에 가서 사람들이 모이자 그는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구불구불한 선을 읽는 체 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머뭇거리면서 내가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거래의 댓가로 줄 물건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이런 희극이 장장 두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는 거래 상대들을 놀라게 하고, 그 거래가 자기의 중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기는 백인들과 통한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우두머리의 천재성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글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즉각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글자라는 발명품의 가치를 파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글은 남비크와라족에게도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셈이다. 글자는 학문적인 목적보다는 사회적인 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알거나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고 무엇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위에 서서 한 개인 혹은 한 기능의 권위와 특권을 뽐낼 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직도 석기 시대에 살고 있는 남비크와라족은 사람들 끼리 이해를 위한 위대한 도구(글자)의 쓰임새를 알지 못했던 탓으로 응큼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이렇듯 알고보니 글자의 이용은 수천년의 힘든 수련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 아니였다.

파키스탄의 치타공에 있는 마을들은 모두 까막눈이였다. 마을에는 서기가 한 명씩 있어서 마을사람들을 위해 글을 써주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글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또 필요하다면 글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으로만 살아가는 그들에게 글자는 낯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마을의 서기는 관리도 아니고, 고용인도 아니었다. 마을에서 서기는 고리대금업까지 하고 있었고, 서기와 고리대금업자라는 사회적 위치는 글자를 통해서 마을사람들 위에 행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신석기 농업혁명은 글자 없이 이룩된 혁명이다.
이 농업혁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천 년 동안 관찰하고 실험하고 그 결과를 자손 또는 이웃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정보의 전달과정을 통해서 기원전 4000-3000년 쯤에 글자가 나타났다. 글자는 신석기 혁명의 간접적인 결실이라고 보아야 하며, 글자가 신석기 혁명의 필요조건은 아니었다.     글자의 발명과 현대과학 사이에 5천년의 세월이 가로 놓여 있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의 지식은 꾸준히 쌓여오지만은 않았고, 사회 변화에 따라서 덧빼기를 거듭 했다. 흔히들 그리스나 로마의 시민생활과 18세기 유럽의 부르조아의 생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렇듯 글자가 세계의 문명들을 오랜 정체로부터 구원해 주진 못했다. 만약, 글자가 없었다면 19세기와 20세기의 과학의 확대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글자가 있다는 것만으론 과학의 진전과 확대를 설명해줄 수 없다. 사람들은 신석기 때에 글자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커다란 진전(농업혁명)을 이루었다.


글자의 출현과 문명의 특성을 잇고자 한다면 다른 곳에서 그 연관성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도시와 제국의 형성이다. 도시와 제국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정치체계 속으로 통합되고, 계급과 위계서열로 나뉘었었다. 이러한 현상은 글자가 출현한 순간에 이집트에서부터 치나에 이르기까지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사람을 계몽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에 대한 약탈을 조장한 듯하다. 이 약탈은 노동자들을 수백 수천 명씩 모아서 체력이 닿는 데까지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 건축의 시작이 이 같은 약탈에 의존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의사소통의 걸쇠로서 글자의 본래 기능은 다른 사람들을 쉽게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과학이나 예술에서 글자의 이용이 정신의 만족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사회에서 공정한 목적에 글자를 이용하는 것은 글자의 발명의 이차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것은 글자의 원초적 기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거나 혹은 은폐시키는 방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법칙에는 예외들도 존재한다. 고대 아프리카에는 인구가 수만 명이나 되는 제국이 있었지만 글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이러한 제국들은 매우 불안정한 제국들이었다. 대규모의 정치집단들이 단기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글자가 있었다면 이집트나 치나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내가 한자박이들을 혐오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은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속셈을 까발려 보면, 그들은 남•어메리커 남비크와라족의 우두머리와 똑같은 사회적 지위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글과 우리말이 짓밟힌 까닭은 글자(한자)를 걸쇠로 한, 지배욕구(사회적) 때문이다.



이렇기에 나는 한글과 겨렛말이 권위를 갖추는 것이 무엇 보다도 중요하게 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한글과 겨렛말이 지배자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벌이고 있는, 법조문의 한글화는 매우 뜻 깊은 작업이며,
더불어 공기업과 그 제품에 한글,겨렛말을 넣은 것을 법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어서 빨리 한글세대가 이 나라 권력의 중심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국회 의사당과 헌법 재판소의 무궁화에서 國,憲자를 뽑아 내고 그 자리에 한글을 박아 넣는 그날까지....


임시 곳간:  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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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0.31 -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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