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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네티즌 여론의 명과 암

[경향신문 시론] 네티즌 여론의 명과 암


〈민경배/ 경희대사이버대 교수·NGO학〉

개똥녀에서 황우석까지 올 한해 인터넷 공간에는 네티즌 여론의 거센 폭풍이 끊임없이 불어닥쳤다. 지하철 공간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 하나를 온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증폭시킨 것도, 그리고 ‘PD수첩’ 광고의 전면 퇴출과 진달래꽃 흩뿌리며 모여든 난자기증 서약 행렬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이끌어낸 것도 모두 네티즌 여론이었다.

-정부와 언론 압도 ‘거대한 권력’-

어느새 네티즌은 거대한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에서 나오는 네티즌의 의사 표출이 새로운 넷피니언(Netizen+Opinion) 권력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힘이 정부나 언론을 압도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특히 오랜 권위주의 정권의 역사 속에서 민초들의 언로가 막혀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인지 한국 사회에서 네티즌 여론은 유난히 폭발적인 양상으로 분출되고는 한다.

네티즌 여론의 급부상은 두 개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것은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확장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 넣는다. 인터넷 공간에 쏟아지는 네티즌들의 성역 없는 비판의식, 그리고 여과 없이 표현되는 자유로운 발언과 수시로 펼쳐지는 온라인 토론의 향연은 곧 참여 민주주의를 위한 축복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동반하기도 한다.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선전과 선동의 난무,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근거 없는 유언비어 유포는 네티즌 여론을 통한 민주주의 확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사회악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란 그 참뜻을 바로 아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최상의 제도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대중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최악의 제도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네티즌 여론에서 나타나는 두 개의 얼굴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예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징표이다. 특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작용하듯 최근 잇달아 형성되고 있는 네티즌 여론의 흐름 속에는 몇 가지 우려스러운 모습들이 엿보인다.

그것은 첫째, 네티즌 여론이 사뭇 폭력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개똥녀나 ‘PD수첩’ 같은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공공의 적’으로 설정하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끝장이 날 때까지 공격해댄다. 네티즌 여론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차원을 넘어 폭력적인 여론재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네티즌 여론이 집단적 획일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은 다양한 의견들의 공존과 교류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공론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네티즌 여론 과정에서는 생각을 달리하는 소수 의견이 온전히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과도한 여론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원주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지금의 네티즌 여론은 다원주의의 정반대인 전체주의와 오히려 가깝다.

-최상의 여론·최악의 흉기 양면-

셋째, 이번 황우석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국익’ 논란에서도 드러났듯이 네티즌 여론의 밑바탕에는 항상 강한 민족주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동안 네티즌 여론을 강력하게 결집시켰던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했던 현안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물론 오랜 식민지 지배와 외세에 의한 분단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감안한다면 강한 민족주의 정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다른 모든 중요한 가치들을 압도하는 무조건적인 최우선 가치로 간주된다면, 나아가 민족의 이익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로 치닫는다면 사태는 아주 심각해진다.

폭력성, 집단적 획일성 그리고 배타적 민족주의는 과거 독일과 이탈리아에 광풍처럼 휘몰아쳤던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다. 최근 일련의 네티즌 여론 과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터넷 공간에 다시 적용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이란 그 참뜻을 바로 아는 네티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최상의 여론 매체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대중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최악의 흉기가 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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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2.27 -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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