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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정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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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어떤 병상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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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병상 수필
병은 모든 사람의 주인이다. 사람의 자유는 병에 지배당한다. <영국 속담>
본의 아니게 병으로 입원 치료를 했다. 갑작스런 고열이 엄습해 열이 40도를 넘고 왼쪽다리가 임파선부터 아파오더니 종아리쪽이 퉁퉁 부었다. 열과 오한이 심할 때는 그저 환절기에 지나가는 감기몸살이라 지레짐작하고 집에 둔 해열제를 먹었으나 차도가 없다. 주사라도 한 대 맞으면 나으리라 하고 동네 의원을 가니 노련한 의사는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며 큰 병원을 가랜다. 때는 바야흐로 금요일 오후... 하는 수 없어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들어가는데 이미 왼쪽다리의 붓기와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정형외과, 감염내과, 피부과 의료진들이 왔다갔다 하며 “조금만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기를 죽이더니 당장 입원을 하랜다. 허걱...그로부터 16일간을 꼼짝없이 병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병명의 진단부터 심상치 않다.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오한, 다리의 부종과 홍반, 수포, 발진...등을 보더니 최근에 등산을 가서 상처난 적이 없냐고 물었고(등산 기원설), 어패류를 날로 잘못먹지 않았는지(음식 기원설), 혹은 발이나 다리에 상처가 난 적은 없는지(상처 기원설)... 의사들은 심각하게 감염 경로를 찾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저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 것 같은데 달리 말하면 이 나라의 경제활동인구가 대부분 그러하듯 평소에 건강을 괘념하지 않고 오만방자하게 살아가는 무신경증이 원인의 첫째가 될 법하다.
유사한 증상이 많아서인지 감염경로와 병명을 찾는데는 의외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쓰쓰가무시병(유행성출혈열, 렙토스피라와 함께 가을철 3대 열병 중 하나)에서 패혈증(이는 심하면, 특히 음주가 잦고 과로하는 직업에 있는 사람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병이다) 등의 병명이 오가며 병상의 환자를 심란하게 하였다. 대체로 진단은 봉소염(蜂巢炎)으로 기울어진다. 봉소염(또는 봉와직염)이라니....나로서는 처음 보는 병명이다. 사전을 찾아 보니 벌 蜂자에 집 巢자. 벌집 근처에 가본 일도 없고 근자에 꿀차 한잔 먹은 일 없는데 무슨 봉소염?
감염 경로는 아마도 상처기원설로 좁혀지는 듯했다. 봉소염은 연쇄상 구균과 같은 박테리아가 작은 상처를 통해 감염되는 병이라는데 사람 몸에 나는 사소한 상처는 생활 중에 무시로 있는 것이고 그 정도(?)의 박테리아는 지금 눈앞의 공기 중에도 있다. 그렇게 우리 일상이 병원(病源)에 노출되어 있는 것인데 이환(罹患)되는 사람 따로 있고 건강한 사람 따로 있는 것은 결국 각인의 신체 면역력의 문제라고 한다. 이쯤에서 늘 등장하는 얘기는 과로, 스트레스, 잦은 음주와 운동부족, 불규칙한 섭생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몸의 저항력을 떨어뜨려 사람에 따라 그냥 지나갈 병도 어떤 이는 덜커덕 걸린다는 것이다. 메아쿨파 메아쿨파 메아막시마쿨파....
일단 열을 잡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 투여가 시작된다. ‘염증의 활성화’를 막기 위해 다리에 부목을 댄 후 상처 부위를 심장보다 높게 해야 한다고 누운 채 다리를 들어야 하고 얼음찜질을 한다(활성화란 말이 이렇게 안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다...). 진단과 처방을 위해 무시로 피검사를 하고 조직검사를 하는 통에 팔뚝에 바늘 흔적이 늘어만 간다. 입원 직후엔 밀려 있는 각종 속세의 약속을 정리하느라 핸드폰이 바쁘다. 다행히 손은 멀쩡해 문명의 이기와 문자메시지의 편의성을 체감한다. “제가 사정상 약속을 지킬 수 없사오니 널리 해량하시옵고...”
갑작스런 입원에 병실 너머 올림픽 도로의 풍경조차 환자에게는 철학과 고뇌를 강요한다. 아무리 지독한 교통체증도 언젠가는 풀릴 것이니 이렇게 병상에 꼼짝없이 드러누워 기약없는 세월을 보내는 것보다는 행복한 것 아닌가. 다 나아서 나가면 차 막히더라도 내 다시는 불평하지 말아야지. 지금 이 병은 내게 건강의 중요성과 일상의 행복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는 시련일진저...흑흑... 견인주의자가 따로 없다....<행복론>의 사상가 칼 힐티가 이미 다 얘기했다. “강의 범람이 흙을 파서 맡을 갈 듯이 병은 사람의 마음을 파서 갈아준다. 병을 견디는 사람은 보다 깊게, 보다 강하게, 보다 크게 된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병실에서 하염없이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에 전전반측이다. 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 깊은 가을로 디졸브된다. 은행나무의 단풍 빛깔이 갈수록 짙어져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병실의 창은 세계와 교통하는 창구다. 오디오가 거세된 채 비디오만을 보여주는 풍경은 시간이 갈수록 낯익고 친근하다. 그런 낮과 달리 밤은 두렵다. 처음에는 고열과 통증에 신음하느라, 병세가 잡히고 난 뒤에는 무료함과 고적함으로...
밤의 어둠과 적막은 사유와 반성을 견인한다. 바야흐로 성찰의 시간이 밀려오는 것이다. 지나간 생의 국면에서 반추되는 온갖 자책과 회한이 심신을 압박해온다. 그것이 환자 특유의 우울함, 속상함과 만나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방출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아픈 꿀벌은 비로소 슬퍼할 기회와 만난다. 그리고 겸손으로 스스로를 육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돌아온 탕아’가 된다.
병실은 좁아도 거기 누운 사람이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막지 못 한다. 퇴원하기만 하면....병에 낫기만 하면...하고 그리는 그림이 수백 장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앞으로는 절대 안해야지 하는 일도 덩달아 늘어난다. 시인 남진우는 ‘바람이 인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를 패로디하여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했다. 이제 나는 ‘바람이 불든 아니든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말하고 싶다. 병에서 벗어나는 일은 인신의 자유와 행동의 의지를 되찾는 일이다. 나가면 제일 먼저 생두부를 먹어야지...
* * * * *
그로부터 필자는 퇴원해서 그렇게 소망하던 그 일상으로 돌아왔다. ‘병실 단상’을 이제 와서 다시 보니 과도한 감상주의에 젖어 있다. 심하게 말하면 ‘왕년에 안 아파 본 사람 있나. 웬 엄살에 개똥철학이냐..’는 말을 들을 것만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는 진지했고 심각했던 것 같다. 존경하는 한 지인께서 “치명적인 병이 아니라면 자기성찰을 위해서라도 한번쯤 아파볼 만하다...”고 하면 위로를 해주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병실에 있는 동안 많은 분이 격려와 성원을 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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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06.11.17 - 1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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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애니깽>과 진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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