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검색

        HOME  

  Profile Photo 글마당 토론실 中國硏究 각종활동 게시판 자료실 사이버강의실

 Profile

 Photo

 글마당

 정길화칼럼

 취재제작기

언론비평 

 미셀러니

     토론실

 언론개혁

 현대사비평

中國硏究

 베이징통신

 중국이슈

 중국자료창

 포토차이나

각종활동

 방송노조활동

 PD연합회활동

자료실

클리핑뉴스

제작팀자료실

개인자료실

 시판

자유게시판

 방명록

  사이버강의실

 

 

120 16 통계카운터 보기   회원 가입 회원 로그인 관리자 접속 --+
전체 (120)
잠망경 (8)
정길화의좌충우돌 (5)
생활에세이 (19)
정길화칼럼 (56)
칼럼11 (8)
기타 (24)
Name   정길화
Subject   인문학적 상상력이 해법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해법이다
피디연합회 창립 20주년을 맞으며...

올해는 먼저 6월항쟁 20주년의 해다. 우리 사회가 독재와 폭력의 억압에서 벗어난 87년 체제 이후 이미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사회를 위하여 노력해 왔다. 그러나 냉정히 응시하면 지체와 혼선이 더 많다. 올해가 IMF 외환위기 10주년의 해임을 환기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겸손해야 할 일이다. 외환위기가 1997년 12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를 야기했던 지나간 오만과 낭비의 시간은 모두 우리들의 몫이다. 더욱이 예방저널리즘이 부재했던 언론의 후안무치와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요설(饒舌)의 정치가 주는 환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2007년에는 대선이 있다. 박빙의 대결을 두어 차례 겪은 이후 여야는 다시‘올 오어 나싱’의 건곤일척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으로 가는 축제가 아니라 패자에게는 승복하지 않는 증오를, 승자에게는 합법적인 교만을 부여하는 불행한 의례(儀禮)로 우리의 선거는 변질되고 있다. 올 한해 내내 불신과 대립을 일삼고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12월 어느 날에 벌어지는 거대한 한판의 ‘투전’을 감내할 여력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가.

작금 이같은 우리 사회의 중심없는 쏠림과 부유(浮游)에 방송의 책임은 막중하다. 방송이 좀더 잘 한다면 상황은 한결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돌이켜 보면 시민과 학생의 희생으로 성립된 87년 체제는 이 땅의 방송에게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신장할 소망스런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무임승차의 원죄는 컸다. 방송이 그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기도 전에 주변 환경은 급변하였다. 권력의 바람벽이 주는 안온함이 해체되고 다매체 다채널 속에서 이제는 스스로 생존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뉴 미디어에 대해 내보인 지상파의 오만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한다는 등의 명분 하에 추진되는 방통 융합은 보편적 서비스를 근간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의 핵심인 공익성마저 무너뜨릴지 모른다. 철학의 부재, 정책의 개념 상실이다. 도처에 지상파 때리기가 만연하고 있고 정파적인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공영방송 흔들기는 도를 넘어섰다. 살아남기에 급급한 방송은 시청률과 광고를 향해 부나비처럼 뛰어들고, 이는 다시 방송사간 소모적인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는 방송의 의제설정력을 현저히 손상함으로써 급기야 정체성의 혼란으로 비화될지도 모른다.

바로 그러한 가운데 올해는 피디연합회 창립 2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피디연합회도 87년 체제의 산물임을 인정해야 하겠다. 피디연합회 역시 사실상 무임승차를 했고 지난 20년의 ‘쏠림’과 ‘부유’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론 연합회가 그 동안 언론운동단체로서 나름대로 활동한 바의 성과는 없지 않을 것이다. 또한 피디들은 ‘방송문화의 생산자’를 자임하며 한류콘텐츠의 선풍을 선도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러나 어느 사이 거대 연예자본과 스타 마케팅의 잠식과 발호 속에서 이제는 초라한 위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뉴 미디어와 거대한 기술결정론의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작금 논의되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들이 시청자의 행복에 이바지할 것인지 혹은 정녕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인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고 있다. 생산요소의 과잉이나 중복 여부 또한 따져봐야 하건만 장밋빛 전망의 와중에서 업적에 목마른 정치권과 기술의 내적 논리로 일관하는 테크놀로지가 결합한 가운데 분별없이 질주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의 방송은 자본과 테크놀로지가 콘텐츠의 생산력을 위협하고 있고 피디와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에 포위되어 있다.

피디연합회 20년은 그 전락(轉落)의 과정을 엄중하게 성찰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이제는 빛바래어 정의조차 힘든 ‘인문학적 상상력’임을 믿어본다. 해법의 창구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너무나 잔혹하다. 상상력.. 정녕 우리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우리들은 자유롭게 상상하고 있는가.

(피디저널 2007년 신년호)


게시물을 이메일로 보내기 프린트출력을 위한 화면보기
DATE: 2007.01.03 - 01:36

 이전글 기록은 미래의 관건이다-<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
 다음글 ☞ 보유 편
글남기기삭제하기수정하기답변달기전체 목록 보기

                                Copyright © JUNDPD.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