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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peomi
Subject   ‘피디의 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피디의 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피디저널 2월 7일자


피디연합회 창립 20주년을 맞는 올해, 기념사업의 하나로 ‘피디의 날’ 제정을 제안해 본 바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중추이자 방송문화 창달의 핵심으로서 피디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위상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해 보자는 취지다.

물론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해 제1회 ‘기자의 날’ 행사를 하고 ‘기자의 혼’상을 제정, 운영하는 것을 보면서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좋은 일은 벤치마킹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피디연합회도 어느 유서깊은 길일을 피디의 날로 삼아 “개개인의 현재와 미래를 의미있게 가꾸고 채워가기 위해 스스로 기념하는 날”(2006년 ‘기자의 날’에서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존경하는 선배를 모셔 ‘피디의 혼’상을 드리면 사뭇 뜻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난해 한국기자협회는 여러 의견을 수렴한 끝에 5월 20일을 ‘기자의 날’로 제정 선포했다. 계기가 된 날은 1980년 5월 20일로 이 날은 기자협회가 계엄과 언론 검열에 반대해 정식으로 제작 거부 운동을 벌인 날이다. 5·18 광주항쟁 발발 당시 이른바 신군부의 압력에 맞선 일선 기자들의 치열한 저항정신을 반영한 취지로 보인다.

‘기자의 날’ 제정을 논의할 때 ‘동아투위’의 기원이 된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일을 기념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10.24는) 전 언론사 차원의 운동으로 확산되지 않아 전 언론인들의 기념일로서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해서 토론 끝에 5월 20일로 정해졌다고 한다. 한국기자협회가 10.24보다 5.20이 ‘기자의 날’로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은 미상불 이해가 간다. 전국의 기자들을 아울러야 하는 입장에서 특정 신문 기자들의 엘리트적 운동보다 좀 더 전국적, 대중적, 현장적인 운동의 역사를 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5월 20일은 이 땅의 언론자유를 위한 지난한 투쟁을 선도해온 기자협회의 뼈대와 전통을 웅변하는 날인 것이다.

다시 ‘피디의 날’로 돌아온다. 피디연합회의 고민이라고 기자협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피디연합회는 회원들에게 부단히 피디정신을 설파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서 연합회가 피디들을 아우르고자 할 때 구심적인 공통의 상징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필요성에 대한 회원들의 충분한 공감대, 어떤 날을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피디연합회가 ‘피디의 날’을 만든다면 어떤 날을 삼을 수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1942년 12월의 ‘단파방송 청취사건’이다. 방송인의 민족의식과 기개를 보여주는 유명한 사건이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이승만 정권 말기 1960년 3.15 부정선거 전후의 부산MBC의 활약상이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시위현장을 거의 생중계해 4.19로 이어지는 들불을 당겼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들 수 있는 것은 이른바 <앵무새> 사건이다. 박정희 정권하인 1964년, 지금은 없어진 동아방송(DBS)에서 <앵무새>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는데, 6.3 사태 직후 이 프로그램이 정국이 혼란한 국면에서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작가, 담당 피디 등 제작진과 간부들이 구속되었다.(<한국언론 바로보기> p.284). 상기 사건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방송과 관련하여 손꼽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피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피디연합회가 ‘피디의 날’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 외에는 1987년전까지 피디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거나 희생한 기록은 유감스럽게도 별로 찾을 수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구태의연하게(?) 권력과의 길항적 관계 속에서만 ‘피디의 날’을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대중에게 문화적 풍요로움과 함께 꿈과 위안을 주면서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방송피디들과 각종 프로그램의 다양한 영역을 감안하여 선정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는 기억에도 선연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시작한 날,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오른 <모래시계>나 <대장금>을 시작한 날, 혹은 진실을 탐사하는 투혼을 보여준 <피디수첩> 황우석- 재검증 편이 방송된 날도 그 기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릇 피디는 프로그램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프로그램과 관련된 날을 ‘피디의 날’로 기리기에는 모든 방송피디들을 아우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논의는 쳇바퀴로 돌아온다. 피디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사업으로 ‘피디의 날’을 선정할 것인가. 한다면 어떤 날을 삼을 것인가. 그날 우리에게 ‘피디의 혼’상을 느꺼이 모시고 싶은 선배는 있는가. 없다면 우리 피디 사회는 무엇을 반성하고 앞으로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그날 그날의 아이템 기획에 여념이 없고, 매 프로그램의 시청률(청취율)에 일희일비하는 회원 여러분에게 이 주제를 던지며, 이 논의에 회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린다.


정길화(12대 연합회장, 연합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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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2.06 - 22:32
LAST UPDATE: 2007.02.07 -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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