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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지허
Subject   ☞ 압축본
탕산 대지진과 진성호 사건

1976년 7월 28일 인구 70만의 탕산(唐山)시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약 5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한다. 그런데 그런 참변 속에 놓인 시민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세계의 보도진이 전한 뉴스는 진한 감동을 전 세계에 던졌다고 한다. (리영희 ‘당산 시민을 위한 애도사’) 압권은 현장을 목격한 주중 일본대사가 귀국한 뒤 쓴 후일담이다.

땅은 흔들리고 건물은 계속 허물어진다. 화재는 연옥같이 건물을 태워나간다..... 그런 속에서 중국인들은 난동을 부리거나 남을 해치는 일이 없다. 진동과 파괴와 화재가 계속되는 속에서 불행한 이웃을 위해 달려 나가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은 바로 자기 가족을 위하는 것과 같아 보였다.......나는 큰 충격과 감동 속에 말없이 숙연하게 서있을 뿐이었다.(위의 글에서 재인용)

리영희 선생은 이 글에서, 몇 달 뒤 뉴욕시에서 12시간의 정전이 있었을 때를 당산 대지진 때의 그것과 비교를 했다. 뉴욕에 정전이 엄습했을 때 남이 자기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모든 인간이 밖으로 뛰어나와 약탈, 파괴, 방화, 강간, 난동을 했던 바 그것은 바로 ‘연옥’의 참상이었다는 것이다.

탕산과 뉴욕의 차이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인지, 중국과 미국의 차이인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인지 리영희 선생은 단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이후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이 코카콜라에 입맛을 들이고 미국식의 물질적 풍요에 탐닉하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제목이 ‘탕산 시민을 위한 애도사’다. 자본주의로 가는 중국이 범죄와 인간소외, 타락과 부패로 빠지고 있음을 슬퍼한 것이다. 1988년에 쓴 글이다.


30년도 지난 탕산 대지진과 이에 관한 리영희 선생의 글을 길게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짐작대로 그럴 만한 일이 있다. 지난 5월 12일 새벽 3시5분(현지시각. 한국시각은 4시5분)께 중국 보하이(渤海)만 해역에서 제주 선적 3천800t급 화물선 ‘골든로즈호’가 중국배 4천t급 화물선 ‘진성(金盛)호’와 충돌, 침몰하면서 한국인 7명을 포함한 선원 16명이 실종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 뒤로 지금(21일)까지 실종자의 생사는 알 수 없고 배도 시신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 먼저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한국 언론은 사건 직후부터 숨가쁘게 각종 뉴스를 토해냈다. ‘진성호’의 '뺑소니' 의혹을 필두로 '늑장신고'와 '발뺌' 비난이 그것이다. 한국 언론의 각종 의혹제기에 유감을 표명하던 중국 당국도 마침내 지난 16일 “마음 아프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실종자와 그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상 사고가 나면 즉시 신고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예외였다며 ‘진성호’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보도만으로 이 사건의 진상을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수색 과정에서 항공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조난신호자동발신장치(EPIRB) 등이 나오면 충돌에서 침몰까지의 경위도 확실히 파악될 것이다. 우리 외교부가 현재로서는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고 말하며 신중을 견지하는 것은 일단은 필요한 자세라고 본다. 사건 직후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한국 측도 잘한 것이 별로 없다. 지각수습에 늑장대응이다. 사고발생 후 21시간 만에야 대책본부가 꾸려진 것은 단적인 예다.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진성호’가 사고 이후 지연 신고를 한 것은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진성호’의 선원들은 왜 그랬을까. 정녕 사고 당일 짙은 해무 속에 “배가 부딪친 것을 몰랐다가 항구에 도착해 배의 파손을 목격한 뒤에야 충돌사실을 알고 해사국에 신고”했던 것일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옌타이 해사국이 신고를 받은 시간은 사고 뒤 7시간이 지난 12일 오전 11시40분, ‘진성호’의 다롄항 입항 시간은 오후 2시50분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입항 뒤 선체의 파손을 발견한 뒤 신고했다는 주장은 사실관계에서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중앙일보).

아직은 진상을 모른다. 어쩌면 선원들의 말이 액면 그대로 맞을 수도 있다. 경미한 사고인줄 알았다가 날이 밝고 보니 엄청난 대형 참사가 터진 것을 알고 놀란 마음에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충돌 과정에 ‘진성호’에 어떤 과실이 있어 이를 은폐하려고 한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래도 자신들이 돌보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빈사의 심야해상조난자를 두고 가버린 저간의 행위를 어림하기는 쉽지 않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했겠느냐...’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 때문이다.

결말이 어떻게 나더라도 이를 중국이나 중국인 전체로 섣불리 확대해석할 일은 아니다. 그래 봤자 13억 인구에 영점 몇 퍼센트도 안 되는 몇 사람의 ‘진성호’ 선원이다. 필자가 일찍이 말했듯 ‘중국은..’ 혹은 ‘중국인은...’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은 뒤에 어떻게 서술부가 오더라도 확률적으로 모두 맞는 말이며, 또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은 쉬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틀린 말이기도 하다.(졸저 <3인3색 중국기> 서문)

그래도 제비 한 마리로 봄이 왔음을 우리는 안다. 이번 ‘진성호’ 선원들의 행태가 개혁개방과 선부론 이후 시장경제를 발판으로 대국굴기(大國崛起)로 질주하는 작금의 중국에서 나타나는 멘탈리티의 어떤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러고 보니 ‘돈이 많다, 황금이 많다’는 ‘진성호(金盛號)’의 이름은 현대 중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강하게 시사하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골든로즈호’는 한국의 잃어버린 장밋빛 꿈인가?

이미 추진동력에 가속도가 붙은 거대 ‘중국호’는 항로에 장애물이 있으면 치고받아버리며 그 와중에 누가 조난당하더라도 알 바 없이 제갈길로 가겠다는 것인가. 자못 염려스럽고 어쩐지 불편해진다. 과장되었을지도 모를 여러 허점에도 불구하고 30년전 탕산시의 아름다운 그 신화를 애써 간직하고 싶은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탕산 신화’ 속의 중국은 정녕 사라졌는가. 원래부터 없었는가. 이제 우리는 ‘탕산 시민을 위한 애도사’가 아니라 ‘진성호를 위한 애도사’를 곡(哭)할 때인가, 아니면 ‘진성호격문(檄文)’을 토(討)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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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5.21 - 10:31
LAST UPDATE: 2007.05.21 -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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