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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글화
Subject   “방송 팔십 년, 국민과 함께 미래로”



“방송 80년, 국민과 함께 미래로”

   2007년은 방송 80년을 맞는 해다. 두루 알다시피 1927년 2월 16일 일제하 조선총독부 경성방송국 호출부호 JODK로 한반도의 첫 방송이 이루어졌다. 이를 한국방송의 효시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우리 방송학계와 방송업계의 묵은 숙제다. 소장학자들은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실시된 일제하 방송을 우리 방송사에 편입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기존의 학설은 비록 일제하 방송이지만 국민계몽 등에 이바지했고 무엇보다 1927년에 이 땅에 방송이 시작되었다는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양자를 아우를 수 있는 안으로 “근대방송 80년 한국방송 60년”의 변증법적 통합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서울대 강명구 교수). 솔직히 말하면 ‘그냥 방송’은 80년이지만 ‘한국방송’은 60년이 맞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최근 FTA 국면에서 방송개방을 반대하며 "방송은 우리의 혼이며 정체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방송 현업계의 목소리를 보아도 이것이 일이관지(一以貫之)다. 조선총독부의 방송을 한국방송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논쟁의 본격적인 시발은 유신 치하인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공부는 1927년부터 기산하여 이 해를 방송 50년으로 잡고 ‘한국방송 50년사’를 발간하는 등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했다. 이 당시에 방송의 날은 10월 2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이는 해방 후 1947년 새로이 호출부호 HL로 방송을 처음 시작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된 것이다. 이듬해 1978년부터는 방송의 날을 HL부호를 처음 지정받은 날인 9월 3일로 바꾸었다 - 1977년에는 생뚱맞게도 방송 50년 기념행사를 2월 16일 전후에 실시했다.

  가장 선의로 해석하면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그냥 연수(年數)가 많은 쪽인 반세기 50년을 기리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엄격하게 따졌다면 1977년은 한국방송 30년의 해에 불과하다). 아마도 친일의 원죄를 안고 있는 박정희 정권이 이런 부분에 대해 가졌을 역사 인식은 상당히 박약했을 것으로 보인다. 첫 단추가 중요한 것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1977년에 한국방송 50주년을 기리고 나니 그 후 10년 단위로 기념 행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올해는 ‘방송 80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행사를 주관하는 방송협회가 작금의 그런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올해는 ‘한국’을 떼고 그냥 ‘방송 80년’으로 이 행사를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과 현실을 고려한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고민이라도 한 것 같아 위안을 삼는다.  

  방송협회가 2007년 올해 방송 80주년을 맞아 최근 제정, 발표한 방송의 날 표어는 “방송 80년 국민과 함께 미래로”이다. 지나간 세월의 역사성을 껴안으면서 미래지향적인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바로 국민 즉 시청자가 있다. 지난 80여 성상을 돌아보면 방송이 국민과 함께 했을 때는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지지와 성원이 있었고 그렇지 못했을 때에는 배척과 분노가 있었다. 그 원칙만큼은 한결같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제하 방송만 하더라도 그렇다. 당시의 방송이 기본적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래도 이때에 청취자 대중을 위해 노력하는 초창기 방송인들의 숭고한 헌신이 있었다. 특히 1942년 단파방송수신사건은 사실상의 반일운동으로서 조선인(한국인) 방송인들의 민족의식과 기개를 보여주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우리 방송 또한 영욕의 부침을 되풀이했지만 역시 그 원칙은 불변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이제 정치집단과 시장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새로운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근대방송 80년 한국방송 60년. 이리 재고 저리 재어도 더 보탤 것 없이 이제 우리 방송의 연륜은 충분히 웅숭깊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미디어 난개발’ 속에서 한국방송의 대명사인 지상파 방송의 오늘은 위태롭고 내일은 불안하다. 그러나 정녕 “국민과 함께 미래로” 가고자 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장차의 성원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바야흐로 방송 80년의 무게를 엄중히 느낄 때다.  

 
<피디저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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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6.13 - 00:45
LAST UPDATE: 2008.03.04 -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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