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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지허
Subject   아, 카레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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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신문 칼럼



아, 카레이스키



착검을 한 군인 셋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등이 보이는 군인은 계급이 낮은 것 같은데 그도 착검을 하고 민간인들을 위압하고 있다. 화물차 앞에는 장교로 보이는 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는 듯하다. 그렇게 군인들이 버티고 있는데 사람들은 남부여대, 우왕좌왕하고 있다. 군인들의 서슬에 놀라 눈물을 훔치는 이,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이.... 모두들 기가 질린 주눅든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 70년 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한인들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화가 안일(러시아명 블라디미르 안)은 그의 작품 ‘화물차 - 강제이주’('카레이스키' 기념전,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에 놀랍도록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안일은 1929년 블라디보스토크 출생이다. 8살 때 그 참혹한 일을 당하고 그것이 원체험으로 오래도록 뇌리에 각인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발표연도가 1990년인 것에서 충분히 짐작된다. 같이 전시되는 그의 다른 작품 ‘낯선 땅 - 갈대숲’이나 ‘눈물젖은 두만강’ 등에서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망각은커녕 더욱 강고해지는 가위눌림을 읽을 수 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1세대 예술가로 세밀화와 초상화의 대가로 알려진 안일. 전시된 그의 작품 중 압권은 ‘고려인의 하늘’이다. 전면에 강팍한 얼굴의 남자가 손을 들고 얼굴을 위로 하고 절규하고 있다. 그 너머에는 정처잃은 사람들의 무리가 부유하고 있다. 흰 머리띠를 두른 것으로 보아 농사를 짓는 한민족의 모습이다. 칠흑같은 하늘, 그들의 등 뒤에 수상쩍은 새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오 하느님. 이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안일의 그림은 다소 직설적이지만 그러기에 작가의 경험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알 수 있다.


1937년 9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이주된 연해주의 한인들. 그 한 달 전 지식인이나 학생, 기술자 등 2천500여 명은 먼저 간첩혐의로 체포 총살됐다. 나머지 17만여 한인들은 졸지에 “검은 까마귀 같은 기차 안에 쑤셔 넣어져” 중앙아시아로 향해야 했다. 얼마나 고난에 찬 행로인지 이동 도중에 만 천 여 명이 객사했다. 살아남은 이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신산(辛酸)의 삶이 요구되었다.


그동안 다큐멘터리(MBC <러시아 유민사> 연출 김현종)나 드라마(MBC <카레이스키> 연출 장수봉), 소설(조정래의 <아리랑>) 등을 통해 이들의 모진 삶은 많이 알려졌다. 카레이스키는 20세기 벽두 이래 중국으로 일본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쿠바로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이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이산) 중의 하나다. 어느 것인들 통한(痛恨)의 것이 아니지 않으련만 고려인들의 유민은 특히 가슴 아프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대지에 강제로 내동댕이쳐졌던 것이다. 참으로 ‘멀고 험난했던 인생길’이다.


스탈린이 한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이유는 2차 대전 어간에 한인들의 친일 등 스파이 활동을 우려한 예방 차원이라고 하는데 터무니없다. 한인들의 강고한 반일의지를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만행이자 폭력이었다. 한인들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여러 문제들이 모두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일부에서는 새로운 차별과 불이익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러나 지난 70년 동안 만난(萬難)을 극복하고 살아온 카레이스키(정확히는 ‘카레예츠’)들이다. 언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살아남았다. 이들은 동토에서 벼농사를 성공한 기적의 주인공들이다. 희망을 일구고 꽃을 피웠다. 이번 강제이주 70주년 기념전에 같이 전시되는 2,3세대 작가의 작품들에는 붉고 화려한 색채, 꽃과 수목이 그득하다. 신순남, 안일 등 1세대의 작가는 유민의 고통과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은 후세대로부터 보람을 얻는다. 이들의 그림에서 한민족의 끈질기고 왕성한 생명력을 목도한다.


지난 세기 한민족의 수난과 극복 그리고 비전을 압축해 보여주는 ‘카레이스키’전이다. 숙연함과 처연함이 어우러진다. 그런데 무료입장인 이 전시회의 하루 평균 입장객은 200명 선이라고 한다. 서울 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전시장은 한산하다. 강제이주 70년 후, 2007년 대한민국에서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이 정도 선이다. 망각과 외면은 불행한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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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7.16 -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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