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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정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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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주차장이 녹지대를 몰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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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오래된 아파트마다 주차난이 심각하다. 근 20년 전에 분양된 이들 아파트는 그 시절에 건립된 아파트들이 그렇듯이 주차공간이 태부족이다. 주차면적은 1가구당 1대꼴이 채 안 된다. 그럼에도 어떤 세대는 자가용이 2대, 3대씩에 달해 병렬 주차, 개구리 주차는 기본이고 야간에는 인근 대로변에까지 주차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러니 당연히 주차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간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아침마다 차를 빨리 빼달라는 경적이 울려퍼지기가 일쑤다. 밤새 도로변에 차를 주차시켰던 사람은 애지중지하는 자기 차-그것도 외제차-에 나 있는 긁힌 자국에 울화를 터뜨리고 어떤 때는 카오디오가 도난당해 졸지에 당직 경비가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자동차는 생활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우리는 차량이 없이는 꼼짝도 못한다. 도시생활은 차량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켰다. 공해를 유발하고 교통체증의 화근(禍根)인 줄 다 알면서도 차가 없는 생활은 이제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니 다들 기를 쓰고 차를 장만한다. 옆집에서 차를 한 대 더 두면 질세라 차를 한 대 더 구입한다. 그 결과 주차난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환경을 생각해서 '문명사적 결단'으로 보유차량을 처분해야 한다는 얘기는 공자님 말씀이 되고 만다.
주차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가. 새로 짓는 아파트라면 지하 주차장을 만들기라도 하겠지만 기존의 아파트는 재개발을 하기 전까진 뾰족한 방법이 없다. 대개 녹지나 화단 심지어 어린이놀이터를 갈아엎는다. 오래된 아파트에 가보면 아무 것도 없이 아스팔트로 뒤덮인 주차장만 있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는데 필경 이같은 소치로 보면 된다. 아파트 입주자 3분의 2의 동의만 있으면 용도변경 공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아파트엔 녹지대 철거를 놓고 저층 주민과 고층 주민간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저층 주민의 경우 매일 눈 높이에서 녹지공간의 수목과 잔디를 대하면서 살아간다. 자연히 녹지에 대한 애착과 효용성에 대한 체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녹지대를 바라보면서 어차피 모두가 함께 겪는 주차불편은 감내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고층 주민에겐 이 녹지대가 별로 실감이 안 난다. 이들은 저멀리 보이는 남산과 한강을 더 사랑할 것이다. 이들은 이웃에 이 전망을 가리는 건조물이 들어설 경우 조망권이 위협된다고 띠를 두를 것이다.
결국 녹지대를 물리치고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것은 저층 주민에겐 환경권과 생활권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 되는 반면, 고층 주민에겐 이런 저층 주민들이 이기적으로 비치며 주차난 해소를 위한 그나마의 방안을 가로막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 고층 주민들에게 녹지공간은 저층 주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 모두를 위한 것이며, 녹지대는 우리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고 산소공급원이기도 하며, 강변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을 막아주는 차단벽 역할을 한다는 따위의 말은 시쳇말로 씨알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저층 주민은 소수고 고층 주민은 다수다. 수의 논리,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면 결과는 자명하다.
그러나 사람이 자가용차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주차 불편에 녹지대와 놀이터를 갈아엎었다가 썰렁한 아파트 마당을 보며 이내 후회할 것이다. 있을 때는 모르고 없어져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 우리 주변에 많은데 아마도 녹지공간도 그중의 하나일 듯하다. 그래도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지저귀는 새소리가 있고, 저물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놀고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의 익숙한 풍경이건만 이들이 사라진 아파트 단지엔 자동차가 쏟아내는 매연, 분진, 소음 만이 그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녹지대와 놀이터를 갈아엎는다고 해서 주차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로를 아무리 확장해도 잠시 그때뿐이듯 주차공간 또한 곧 모자라게 될 수밖에 없다. 이때 공동체 정신에 입각해 차량보유를 삼가자는 호소가 먹힐 것이라면 애초에 이 문제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공간이 없을 때 이제 더 무엇을 갈아엎을 것인가. 아마도 삭막하고 황량한 우리 가슴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로, 짐작 하셨겠지만 필자는 1층에 살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과 의견을 겸허히 기다리고자 한다. )
1999.11.05 뉴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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