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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평화친선음악회'와 MBC의 '민족통일음악회'가 거의 동시에 TV로 방영돼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물론 내용을 둘러싸고 일부 시비가 없지는 않다. SBS의 경우 우리측 공연단이 로저 클린턴의 일행 정도로 전락해 물의를 빚었다. MBC의 경우 애초의 생중계 계획이 녹화방송으로 바뀌었는가 하면 결정적으로는 가수 코리아나가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거액을 줘놓고서는 북측에 끌려 다녔다느니 북측이 안하무인으로 나왔는데 미봉책으로 타협하면서 공연 성사에 급급했다느니 하고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가혹한 평가인 것 같다. 남북간의 경협이나 북한 상품의 수입을 통상적인 거래나 무역행위로 보지 않는 것처럼 이번의 합동공연 또한 여느 외국과의 문화 이벤트로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14년만에 이루어진 행사이기에 서로를 잘 몰라서 발생한 일종의 '문화충격'의 요소로 보면 그만이다. 그보다는 이번 양방송사의 공연이 동결됐던 문화교류의 물꼬를 다시 튼 것으로 의미부여를 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남북간의 보다 본격적인 접촉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작용한다면 그만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그리 아까워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패티김과 최진희, 태진아, 설운도, 젝스키스, 핑클이 공연단으로 갔던 '평화친선음악회'와 신형원, 안치환, 김종환, 오정해, 현철이 공연한 '민족통일음악회'는 각각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측의 문화적 정서를 감안해볼 때 좀 '튄'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젝스키스와 핑클의 경우 북측으로부터 상당한 거부감을 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현재 남한에서 인기가 있는 대중문화인들과 그들의 노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주최측의 선의로 짐작이 가지만, 남북간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보다 공통점이나 동질성이 있는 대중문화인으로 구성하는 것이 어땠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을 통해서 실제로 남과 북 사이에 문화적 정서상의 현저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체감한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본다. 어떤 평자의 말대로 '한국 대중가요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생각하는 북한 가수들과 '북한가요에는 체제와 이념의 경직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가수들이 한자리에서 공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공연의 성과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북측의 의도가 향후 본격적인 교류와 접촉을 하겠다는 것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른바 '외화벌이' 차원에서 접근한 것인지는 미지수다. MBC의 경우 원칙적으로 합의된 서울공연이 성사되면 남북문화교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 그 자체보다도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따로 있다. SBS의 경우 음악회 실황에다 공연단의 북한에서의 일정을 밀착 촬영해 함께 방영했다. 그중의 한 대목이 참으로 처연하게 와 닿았다. 신세대 가수로 인기절정인 핑클이 북측 경로로 판문점엘 갔다. 바로 지척에 우리측 경비병사가 있고 그 사이에 군사분계선이 있다. 그 젊은 병사가 핑클을 모를 리 없다. 당장 달려와 사인이라도 받아야 그림이 되는 풍경이다. 그러나 미동도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보아야한다. 핑클의 옥주현이 울먹인다. “넘어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못간대요.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심각하게 느껴보지 못했을 핑클의 그 한마디는 반세기가 넘는 분단체제의 질곡에 서있는 우리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 자리엔 패티김도 있었다. 판문각에 동행한 미국 CNN기자가 한 말씀 해달라고 자꾸 조르자 마지못해 “몇발짝 가면 내 집인데 못 간다. 우리가 같은 민족인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다른 민족 같다”고 말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린다. 이 모든 장면을 촬영하던 카메라맨, 그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촬영해야 하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촬영하는 그를 패티김이 보고 소리쳤다. “카메라맨도 울고 있어요!”
그 장면을 보고 울었던 시청자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 뜨거운 눈물이 장엄히 흘러내려 이 고착된 분단의 빙벽을 녹일 수는 없을까. 신년벽두, 민족화해와 통일의 기운이 성큼 성큼 찾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판문점의 핑클과 패티김을 떠올려 보았다.
1999.12.31 뉴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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