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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과 통한의 날들
"그날! 그때처럼!"
노동조합은 지난 9월 2일부터 파업1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고, 주지하다시피 "그날! 그때처럼"은 이 행사의 주제어이다. 혹자는 이 슬로건을 보고 MBC노조는 파업이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밤낮 그날 그때를 외치면서 법석을 떠느냐고 딴죽을 걸기도 하는 모양이다.
노조가 파업 1주년을 기리고 또 그 주제어를 "그날! 그때처럼!"이라고 내거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파업 당시의 MBC를 회고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PD수첩」 불방 이후 안성일, 김평호 두 동지의 해고, 「땅」의 생매장, 보도에서의 무수한 불공정 편파시비, 노사관계의 단절과 파행으로 이어졌던 그 암흑기는 다시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울분과 통한의 날들이었다.
절망속에서 부활한 서사시
전근대적인 노조관, 철학 없는 방송경영, 권위주의적인 행동체계 등이 당시의 시국에 편승해 몰이성적으로 행해졌던 것이 그 시기의 일이다.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동의와 참여 없이 강제와 일방통행만이 횡행하는 반문화적 행태가 자행됐던 것이 그 시기의 일이다. '92년의 MBC파업은 이같은 왜곡을 바로잡고자 했던 노조원들의 몸부림이었다. 절망과 좌절속에서 뜨겁게 부활했던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였다.
그 결과 불만족스러우나마 노사관계는 대등적 균형을 되찾았고, 시일이 다소 지난 후의 일이지만 안성일. 김평호 동지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절망하고 자학했던 우리의 노조원 동지-즉 방송현업의 중추들이 자존과 부활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파업의 의미는 실로 크다. 옥고를 치르며, 무노무임을 당하며, 인사상 불이익을 겪으면서 노조원들이 한뜻 한마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히 지난해의 파업을 기리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그날 그때처럼'그 순수함과 치열함을 되새기고자 선언한다. 지난해 파업은 오늘 MBC 노조의 모태인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눈흘김
그러나 항간에는 MBC파업의 숭고한 뜻을 깨닫지 못한 채 사시(斜視)의 눈흘김을 고집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들 중의 일부는 파업이 노조만의 책임인양 강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말이 났으니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당시 MBC노조의 그 누구도 파업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파업에 돌입하기 직전까지의 MBC노조의 행보가 합리와 유연성에 입각해 사태를 해결하고자 애썼던 것임은 만인 공지의 일이다. 누적된 노사관계의 파행에 대한 반성 없이 그 책임을 노조에 전가하는 작태는 지난해 파업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얘기일 뿐이다.
더욱이 사내 일각에서 입만 열면 파업으로 시청률이 저하됐다는 논의를 전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작년 9월경 파업과 때를 같이해 시청률의 감소추세가 통계에 나다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청률의 연중 추이를 보면 이미 그 이전에 '92년 5월부터 시청률은 하향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파업종료 직후 시청률은 회복추세로 반등한다. 오히려 MBC 시청률의 위기는 강성구 사장 취임 이후 노조를 비롯한 사내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올해의 4.12개편직후 가장 악화된 형태로 나다나고 있다.(MSK 자료 참조)
파업정신 되찾고자 하는 뜻
시청률 수치를 가지고 파업의 공과를 따지는 수법이 개탄스럽기도 하거니와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결과를 자꾸 강조하는 행위는 시청률을 다시금 조직통제용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백번 양보하여 그토록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시청률에 파업이 그처럼 나쁜 영향을 마친다면 그럴수록 파업을 막도록 애썼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노조가 파업을 기리고 파업정신을 되찾자고 하는 뜻은 달리 있지 않다. 그것은 순결한 정신의 발상지를 겸허히 순례하려 함이며, 노조의 실체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스러질 수 없음을 반 노조세력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함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에 근거한 정당한 권리인 파업이라는 최후수단을 가능한 아껴 쓸 수 있게 해달라 우회적인 암시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또다시 외칠 수밖에 없다.
"그날! 그때처럼!"
문화방송노보 199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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