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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junglehwa
Subject   진정국면의 사스 이야기
5월 중순을 고비로 중국의 사스가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보건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신규 발생환자나 사망자가 연일 최소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산하기 이를 데 없던 거리도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
요식업소, 슈퍼마켓에도 손님이 몰리고 있다.
주고객인 한국인들이 대거 귀국하는 바람에 휴업에 들어갔던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신청의 한국식당들도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
아직 경기는 이전만 못해도 문을 연 것에서 매우 안도하는 눈치다.
베이징 시내 공원들도 시민들이 찾고 있다.
언론은 사스가 '만연'되었을 때와 비하면 입장객이 3, 4배나 많아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필자는 사스가 기승을 떨치던 5월초에 용감하게 원명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원명원은 1860년대에 서양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처절한 파괴를 당했던 청대 건륭제 때의 궁궐로, 지금은 파괴된 모습 그대로 공원이 되어 있다.
워낙 그곳은 평소에도 고즈넉한 곳이기도 하지만 사스의 통제구역으로 알려진 북경대와 청화대를 지척에 두고 있어 그날따라 유난히 썰렁하고 황량했다.
그랬는데 이런 공원에 다시 사람이 든다는 것이다.
천단공원, 북해공원 등은 유명 공원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시민들의 사스에 대한 공포심리도 뚜렷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에 따르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전화 조사에서 97%의 시민이 사스로 인한 긴장된 심리에서 벗어났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방송을 보면 공원에서 뱃놀이를 하는 시민,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의 생활을 경쾌한 음악과 함께 보여주고 "사스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육성을 들려준다. 적어도 텔레비전상으로는 이제 중국의 사스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
중국의 방송을 보면 중국이 보인다. 아니 적어도 중국 당국이 원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사태의 초기에는 사스가 별 것이 아니며 '원발성보다는 수입성이 많다'(사스가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기보다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얘기, 즉 발생 원인에서 중국의 책임 부분을 배제하려는 의도였던 듯)는 식의 납득이 가지 않는 얘기를 하던 것이 중국 당국의 입장이었고 언론의 태도였다. 그랬는데 4월초 사스의 심각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후진타오가 사스 발표에 은폐가 없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은 후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방송은 사스 문제를 가장 주요한 뉴스로 다루었고, 특집을 편성하여 사스 보도를 대폭 확대했다. 사스 특집 생방송과 의학관련 특별기획을 방영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사스 관련 방송에는 사스 예방법, 위생 대책 등에 관한 계몽성 보도를 필두로 치료에 헌신적인 의료진의 활약상을 다루는 <천직(天職)> 같은 프로그램이 나왔다. 실제로 사스 환자의 30%가 사스를 치료하던 의료진이라고 할 정도로 이들은 위험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들 의료진이 없다면 중국의 사스 방역은 붕괴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사스 치료에 임하는 그들에 대한 경의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이들은‘진심영웅(眞心英雄)'으로 불리며 왕년의 노동영웅 레이펑을 연상시킬 정도로 칭송을 받는다. CCTV 1의 <미엔뚜에이미엔(面對面)>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의사나 간호사를 출연시키는 인터뷰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여기에는 다들 기피하는 사스 근무를 자원하였다는 고참 간호사, 퇴직을 했음에도 사스 사태가 발발하자 현장으로 달려간 고령의 여의사.....등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어려운 결정을 한 뒤 위험한 치료현장에서 겪었던 얘기를 하던 출연자는 눈물을 짓고 대담 기자도 눈시울을 적신다.
사스가 가닥이 잡히는 시점에서 중국 방송에는 사스 치료를 받다가 꽃다발을 받으며 퇴원하는 환자, 의심지역으로 격리되어 있다가 해제되는 거주지의 축제 분위기가 화면에 계속 나오고 있다(한때 베이징 시민 수만 명이 거주지에서 격리된 채 잠복기가 지난 때까지 통제된 생활을 해야 했다). 베이징 교외 샤오탕산에 있는 사스 전담 병원 의료진과 환자를 위문하는 공연모습도 단골 그림이다. 사스 기금을 모금하는 프로그램, 사스 퇴치를 주제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과 연예인이 참여하는 캠페인 프로그램도 등장하였다. 그 사이사이로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중국의 고위 지도자들이 현장을 방문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방송된다. 중국인들은 한국의 IMF 사태 때에 한국인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이번 사스를 계기로 국가주의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호기로 이를 활용하는 모양이다.
요즘 중국방송의 사스 관련 특집이나 캠페인 프로그램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萬衆一心 抗 非典’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사스를 물리치자'는 뜻이다. 글중에 나오는 '非典(페이디엔)'은 중국에서 사스(SARS)를 부르는 말로 '비전형성 폐렴(非典型性 肺炎)'을 줄여서 비전(非典) 즉 페이디엔이라고 한다. '사스'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그 발음이 중국어의 '殺死' 즉 '죽이다'란 말과 발음이 비슷해서 일부러 페이디엔으로 부른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만중일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98년 장강(양쯔강) 홍수 때에 중국 방송은 수해에 직면한 상황에서 '만중일심' 캠페인 프로그램으로 중국국민의 정체성을 전세계에 알리고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어떻든 사회주의 체제하 관영언론인 중국 방송은 건국 이래 미증유의 위난으로 떠오른 페이디엔을 계기로 국가적 단합을 '성실하게' 도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대중이 당의 강령, 노선, 지도, 활동 방식에 빠르고 폭넓게 부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언론의 위력이요, 기능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개혁 개방 이후 다소 변화의 모습을 보인 중국의 언론이라고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왕년의 그 본연의 자세 - 선전저널리즘 - 로 쉽사리 돌아가는 것 같다. 중국의 초기 사스 은폐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중국 언론의 그런 상황을 보는 심정은 불가해다. 사스 사태에 대처하는 고위 지도부에 대한 검증, 보건 당국의 방역 체계상의 문제, 축소 조작을 감행한 실체가 있는지에 대한 규명, 국민들의 위생과 문명 수준에 대한 질타 등이 나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데 그런 보도나 프로그램은 만나기 힘들다. 중국에는 언론을 비판하는 시민단체나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없어서 그런가....
5월 19일 현재 중국의 사스 사망자수는 289명, 감염자수는 5천236명이다. 베이징의 경우 사망자 수는 150명, 진성환자 수는 2천437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중국 내륙의 경우 사스 신규 감염자 수가 5월 말까지 하루 10명 이내로, 6월 10일까지는 5명 이내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WHO 관계자들은 10일 전만 해도 하루 100여명에 달했던 신규환자 숫자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중국의 발표를 불신하고 '사스 진정 국면' 판정을 유보했다. 사스 초기에 사태를 은폐 축소한 것으로 의심받는 중국으로서는 자업자득이다. 그래서 지금 발표하고 있는 통계수치에 대한 시비도 여전하다. 숨겨두었던 환자수를 지금 맞추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한국언론재단의 해외연수자로서 21세기 벽두의 문명사적 사건을 현장에서 겪는 필자는 요즘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그동안 자비연수자를 포함해 베이징에서 연수를 받는 기자와 피디가 모두 8명에 달했는데 이들 중 5명이 연수를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이 애매해서 일단 '현진지 고수'를 선언했지만 기분이 석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가장 위험한 시기는 지난 듯하다. 물론 사람일은 알 수 없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일어나는 일들이 그렇듯이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다. 그래도 눈에 띄게 변하는 기류에서 유시유종(有時有終)을 느낀다.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하여간 중국 연수 한번 확실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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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05.20 - 13:40
LAST UPDATE: 2003.09.30 -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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