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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걸개그림 제작한 미술1부 조합원
파업을 시작한지 20일이 지났을 때쯤이었을까. 민주의 터를 찌르던 열기가 그런대로 뜨거웠었지만 어쩐지 장기화의 국면을 보여 안타까운 시점이었다. 이 때 무언가 활력소를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였다. 집회 후 회사 근처 호프집에서, 주병도 조합원과 술을 들면서 울분과 비탄을 안주로 삼고 '음주투쟁'을 하였다. 그때 주병도씨로부터 그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솟아났다. 걸개그림을 만들어 집회장 앞에 걸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걸개그림을 공동으로 만들자. 배운 도둑질(?)이 그건데 이럴 때 한번 해 보자. 그날 밤에 두 사람이 에스키스(下圖,바탕그림)를 그려 대강의 설계를 끝낸 다음 이튿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유현상 조합원)

-미술1부 조합원 9명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쳤다. 캔버스, 물감 들 재료를 노조의 지원으로 구입하고 (약 삼십만원 정도 들었다) 작업장으로는 유현상조합원의 친구가 하는 미술학원을 협찬받았다. 걸개그림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리는 그림이니만치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인물, 배경, 선묘(線描), 채색 등 적절히 분담하여 작업을 해나갔다. 우리들은 나름대로 「화풍」이 모두 다르지만 개인적인 심성의 표현은 유보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그리고자 하였다.(주병도 조합원)

-기획에서 생산까지 완전한 자급자족이었다. 특히 집회장에 읹아 있을 때 왠지 앞이 비어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하였다. 아마 그것은 세트 디자이너로서의 직업의식이 발동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비어 있으니 채워보자"라고 할까. 예술성 이전에 절실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말하자면 '원초적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동명 조합원)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신 분은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지난 해 가을, 파업 집회장 1층 민주의 터에 어느 날 갑자기 선연하고 강렬한 빛깔로 내걸렸던 걸개그림을. "가자! 국민의 방송으로, 굴종을 깨고"라는 격문과 함께 각부문의 조합원들이 서로 어깨를 걸어 강고하고 굳센 단결로 전진해 나가는 모습을, 부릅뜬 눈, 억센 주먹, 목울대가 튀어나오도록 절규하는 함성, 질곡(桎梏)을 부수는 이두박근, 삼두박근의 그 단단하고 튼튼한 팔뚝...... 바로 그 그림이다. 미술1부 디자이너 조합원 9명의 공동작업으로 제작된 이 걸개그림은 파업 21일때이던 9월23일 1층 현관 자동문 위쪽에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MBC 파업을 압축하는 또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구인회(九人會)」라 명명해도 좋은 이들은 이인규, 김동명, 배월이, 송재희, 백성흠, 주병도, 정종훈, 서영오, 유현상 조합원이다.(이상 미술1부 소속, 입사연도순) 앞에서 말한 그대로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걸개그림을 기획하여 극비리의(?)작업후 파업집회장에 이를 내걸어 작년 파업투쟁에서 한 획을 그었다. 이들이 그린 걸개그림은 도착 즉시 미술1부의 장치조(裝置組) 조합원들 -손진우, 이도형, 홍순홍 등- 에 의하여 민주의 터에 신속히 설치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팀플레이의 산물이다. 이렇게 현관자동문 위를 번 듯이 채우고 조합원의 가슴을 꽉 채웠던 그 걸개그림의 파급효과는 자못 컸었다.

물론 MBC 파업에서 걸개그림이 걸렸던 것은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걸개그림들은 민미협 등으로부터 직·간접의 지원을 받았던 것이었던 데에 비해 구인회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가자! 국민의 방송으로"는 완전히 독자 생산 된 '순수 국산품' 이었던 것이다. 특히 "수동적으로 끌려 간다는 느낌을 자격지심으로 갖기 쉬웠던 미술부문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 나서서 행동한 일이라는 측면에서"(김동명 조합원), 부문간 직종간의 벽을 넘어 공정방송을 향한 열망을 경주해 나갔던 MBC 파업의 저변을 확인시켜주는 일대 사건이었었다.

그래서일까. 이 후 걸개그림은 회사측의 눈엣가시가 된다. 회사측이 노조 부착물을 전격적으로 철거하려 할 때 제일의 타게트였고(원천봉쇄되었지만), 10.2 경찰 난입 후 압수 수색작전시 제일 먼저 뜯겨나가는 운명에 처한 것도 이 걸개그림이었다. (그 결과 이 그림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의 압수수색품목목록에도 기재되지 않은 채 실종되고 말았다.) 그러나 가로 7m 세로 1m60cm, 굳이 호수로 치자면 500호쯤에 해당되는 이 걸개그림을 우리 조합원의 뇌리에서, 무엇보다 신명나는 공동작업으로 직접 창조한 이들 구인회의 뜨거운 가슴에서 어떻게 지울 수 있으랴.

-개인적으로 미술이, 그림이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정말 실감하였다. 집회장에 나와 그 그림을 쳐다보며 앉아있기만 해도 파업에 대한 의지가 다져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림은 글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영오 조합원)

-걸개그림의 기원은 우리 민족의 민화나 불화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떠나서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직설적 표현, 실제의 삶과 연결된 단순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우리의 걸개그림은 한마디로 1992년 MBC 파업이라는 상황의 소산이다.(백성흠 조합원)

-미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그림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아홉 사람이 '하나'를 같이 그려서 선명하게 보여지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배월이 조합원)

-그렇다. 우리들은 전문가로서 또한 독립적인 세트 디자이너로서 현업에서 일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개인적인 고집을 죽이면서 공동작업을 입사 이후 처음 해보았다. 뭐랄까. 신선한 경험 , 즐거운 기억이 되었다, 서로를 절제하며 서로를 위하여 생각하는 방법을 깨쳐 나갔다. 그것을 쉽게 표현하면 '단결'이라고 할까….(유현상 조합원)

모두 미대를 졸업하고 그것도 서양화를 전공하였다는 공통점 외에는 전혀 다를 예술관을 가진 구인회. 소름끼치는(?) 투쟁가 따라 부르는 게 힘들어 집회 참석을 꺼렸다는 이들. 이제 ’92년 가을의 그 시절을 자연스럽게 회고하며 그때의 단합심과 공동체 의식을 일상에 연결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배타성을 띠지 않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비조합원에 대한 '섭섭함' 또한 대승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할 줄 아는 이들 노조의 정서가 주변에 왜곡되어 인식된 점이 없지 않은데 이를 편안히 바로 잡아 나갔으면 한다는 이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시대의 예술가가 아닐까.

사람좋은 이들이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숙제가 있다. 걸개그림에서 흰 얼굴로 그렸던 두 사람. 익명의 전사(戰士)이기도 하고 백의종군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그 두 사람 -안성일, 김평호 동지가 얼굴을 되찾는 일이다. 두 동지가 돌아오면 그 빈 자리에 낯익은 얼굴을 그려 넣으려 했던 구인회의 아름다운 소망은 지금은 사라진 걸개그림의 화폭을 안타까이 넘나들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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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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