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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파업 기록 남긴 '노조 전속 사진사' 윤미현 조합원
'92년 파업투쟁 당시 여러 의미로 우리들에게 친근했던 이들을 만나 진솔했던 우리 자신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고 앞으로의 길을 겸허히 찾아 나아가자는 뜻으로 지난 1월26일의 <문화노보> 제 85호 이래 장기기획으로 연재하고 있는 <지금 그사람은..>. 오늘은 그 여섯 번째 순서로 교양 제작국 윤미현 조합원을 주인공으로 모신다.

이미 노동조합의 전속 사진사로서 다대한 활동을 하였고 바로 요전번 노보의 사진화보 특집 "MBC 는 잠들지 않는다"에서도 베테랑 사진솜씨를 유감 없이 발휘한 윤미현 조합원. 그녀를 이 자리에 초대한 것은 그야말로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기억의 시계바늘을 6개월전 (그렇다, 어언 반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으로 마구 돌리면 우리의 눈앞에는 뜨겁고 확고했던 1층 민주의 터 집회장이 펼쳐진다. 많을 때는 5백명 이상, 아무리 적어도 3백명은 족히 모였던 노조원들, 집회를 유려하고 재미있게 진행하려 애썼던 정찬형, 심재철 등 행사팀, 열심히 반주를 해가며 독전(督戰)의 의지를 불태웠던 노래패, 미술 1부 아홉 동지들이 그려 조합원의 두 눈을 가득 채워준 걸개그림, 해성같이 나타나 조합원들의 건승과 쾌투를 기원해준 박정근 기체조 사범.....눈에 잡힐 듯이 그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우리가 그려내는 풍경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화폭의 어느 한 부분에 적확히 묘사되어야 할 또 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민주의 터 이곳 저곳을 마구 헤집으며 집회에 여념이 없는 조합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찰나의 순간에 포착하여 뚜렷이 사진으로 각인해낸 윤미현 조합원이 바로 그다. 파업 집회장을 되살려내는 '재생 비디오'는 윤미현 조합원을 담아냄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이렇듯 그녀의 존재는 있어야 할 곳에 당연히 있는 모습으로 집회장이라는 하나의 세트를 이루게 하는 붙박이 그 자체였다.

그처럼 파업기간 시종일관 그녀의 행동 철저하고도 완벽하였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하듯 그녀가 남긴 사진으로 우리는 파업의 그때 그 순간을 선명히 조합(組合)해낼 수 있게 되었다.

- 사진공부는 MBC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PD로서 '영상'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자성으로 동아문화센터 사진반 초급 코스를 3개월간 이수한 게 전부다. 필름 감는 법도 모르다가 겨우 그 정도 배우고 끝났다. 그것도 실력이라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동료 선후배들을 찍어주기를 즐겼던 것이 오늘날 나를 '요모양 요꼴'로 만든 계기다. 파업에 돌입하기 직전 그러니까 8월말쯤이었을까 카메라 들고 왔다갔다하는 내 모습을 익히 봐두었던 손석희 선배가 절묘한 화술(?)로 나를 엮었다. 처음엔 의무감으로 나중에는 묘한 재미를 느끼며 '찍사' 투쟁에 임하였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파업이 그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순진한 착각 덕분에, 파업기간 중에는 조합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익힐 수 있었고 파업이 끝난 후에는 길이 간직할 추억의 갈피를 마음깊이 끼우게 되었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무기는 중고 니콘 FM카메라, 87년엔가 세운상가에서 거금 30여만원을 투자해 장만하여 지금껏 요긴하게 쓰고 있다고 한다. 렌즈는 원래 장착되어 있던 52미리 표준형에다 틈틈이 구입한 70-210, 28-80 줌 렌즈가 전부다. 세트를 다 갖추려면 엄청난 경비가 더 들었겠지만 그녀의 몸과 카메라는 조화로움 속에 어우러져 완전한 팀 플레이를 구사한다.

당시 조합원들로서는 집회를 시작할 때 파업특보를 보고 휴식기간에는 사진 대자보를 보는 것이 일과요 낙이었다. 웃는 모습, 찡그린 모습, 하품하는 모습, 조는 모습, 구호를 열창하는 모습...어느 틈엔가 찍힌 자신의 사진을 보며, 그리고 그 아래에 재미있게 달아놓은 사진설명을 보며 희희낙락하였다. 윤미현 조합원이야말로 '진짜 몰래카메라 우먼'이라며.

그러나 그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우리의 사랑, 우리의 자랑, 쟁대위원15인"이라는 기획으로 쟁대위원들의 얼굴을 대자보에 일습으로 담아 두었었는데 경찰 난입시 구인 대상자를 색출해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이 사진이 공교롭게도 '이적행위'를 했으리라는 조합원들이 애교섞인 원망이 빗발쳤던 것이다.

- 사실 조금 당혹스러웠다. 문득 영화 '프리하의 봄'중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러나 정작 화가 나고 안타까웠던 것은 경찰이 난입했던 그날 결정적인 그 순간에 내가 사진을 너무 못 찍었다는 사실이다. 울분 탓일까 비통함 때문이었을까. 몸에 갑자기 경련이 일고 오한이 나 셔터를 제대로 누를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1992년 10월 2일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찍사'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일까. 이때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비장한 것이었다. 장외 투쟁 시각 탑골공원에서 그리고 재판이 열리는 법원 청사에서 그녀의 활약은 전문사진기자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집요하고 혹독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그녀의 분신- 사진첩에 담겨있다. 파업기간 중 그녀가 촬영한 필름은 약 3백통. 하루에 6통 꼴이고 커트수로는 7천 2백커트에 달한다. 그래서 나온 얘기는 "윤미현찍사에게 얼굴을 찍히지 않은 조합원은 간첩이다'라나.

깡마른 체구, 형형한 눈빛, 일체의 불필요한 분식(粉飾)을 거부하는 투명한 얼굴. 윤미현 조합원에게서 특별히 '여자이니까' 혹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의 단서를 기대하는 이가 있다면 필경 낭패를 당하리라. 강도 높은 노동이 요구되는 제작 현장에서 어설픈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통렬히 배반하고 부숴 나가는 것에 그녀의 또 다른 개성이 있다. 이게 그녀의 카메라는 닦고 조이고 기름쳐져 창고로 들어갔고, 그녀는 한 사람의 PD로 프로그램 앞에 서 있다.

- 뭔가 마음 한 구석이 텅빈 느낌이 있다. 파업 당시의 나 자신이 진짜인지 지금의 내가 진짜인지 아리송하다 .그 순수했던 열정이 프로그램이 생산과정에서 승화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장주호접'(莊周胡蝶)이 생각난다. 왜 그 있잖은가,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되었다가 꿈을 깨고 나니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지 꿈과 생시를 혼돈하게 되더라는 말, 파업과 파업으로 점철된 우리 노조, 그러나 공정방송과 방송민주화의 지난(至難)한 도정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노조로서, 파업이 진짜 현실인지 위장된 현재의 평화가 진짜 현실인지 혼란스럽다는 그녀의 착종(錯綜)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만약 다시 파업이 온다면 그녀는 역시 재산목록 1호 니콘 FM카메라를 들고 나설까.

- 재산목록 1호가 카메라라고? 당치도 않다. 나의 재산목록 1호는 우리 남편이다(!) 아 그리고 찍사를 하겠느냐고? 천만의 말씀 파업이 장기화될 거라면 나는 결코 카메라를 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때엔 나도 집회장 가운데쯤에 앉아 졸다가 그 모습이 찍혀 창피 당하는 쪽을 택하고 말겠다.

* 참고로 그녀의 남편은 동업자이자 경쟁자로서 KBS 교양국 정성욱 P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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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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