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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그날 뜨겁게 오열한 황외진 조합원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 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호승 시집「슬픔이 기쁨에게」중 '슬픔을 위하여'에서)

걷잡을 수 없는 고통, 피할 수 없는 상실, 가슴을 난자하는 아픔 앞에서 우리는 슬퍼한다. 그리고 비통한 마음이 우리의 가슴을 적실 때 그 절실한 슬픔으로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은 인간의 순수함이 여울져 맺어지는 정서의 극치라는 점에서 스스로에게는 고결한 카타르시스를, 보는 이에게는 아름다운 감정이입을 제공한다. 요컨대 눈물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징표다. 그러기에 D.H 로렌스는 지상의 모든 언어 중에서 최고의 언어는 눈물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다시 1992년 10월2일로 돌아가자. 기억할 때마다 몸서리쳐지고 가슴이 빠개지는 그 날, 바로 그 날은 경찰이 난입했던 그 날이다.민주의 터가 육박전의 아수라장으로 돌변하고, 뜨겁게 믿으며 사랑했던 우리의 동지들이 하나 둘씩 닭장차에 실려갈 때, 안간힘으로 버틴 몸싸움이 오유(烏有)로 돌아가자 조합원들은 망연자실해져 있었다. 거대한 폭력의 실체-공권력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앞에 조합원들은 울분과 비통함만을 가질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던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가슴 저 깊은 바닥에서 하염없이 슬픔이 복받쳐 올랐고 그것은 방울방울 응결되어 눈물로 아롱졌다. 민주의 터는 뜨겁고 치열한 '오열(嗚咽)의 강'을 이루었다.

흐르고 흘러 거센 격류처럼 우리의 분노와 슬픔이 흐를 때 그 소용돌이의 중앙에 우리의 황외진 조합원(보도국 국제부, 당시 사회부)있었다. 안경 낀 그의 두 눈은 걷잡을 수 없는 쌍루종횡(雙淚縱橫)으로 얼룩졌다. 그 자리에서 눈물 흘린 사람이 그 혼자만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대열 앞에 앉아 통곡의 눈물을 흘리는 동안(童顔)의 황외진 조합원은 때마침 윤미현 찍사의 눈에 띄었고, 그녀의 카메라는 어김없이 그를 포착했다. 그 결과 우리는 10. 2 경찰난입을 표상하는 한 장면의 빛나는 기록사진을 잦게 되었다. 이 사진속에 나타나는 황외진 조합원의 얼굴에는 경찰난입이라는 상황과, 모름지기 눈물이 가지는 서정적인 상징성이 어우러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흔드는 그 무엇이 있다. 이제 와서 말하기는 좀 우습지만 그는 '눈물한번 멋있게 흘려' MBC 파업이 낳은 스타(?)가 되었다.

- 글쎄 좀 쑥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성인 남자가 우는 것이 뭐 그리 칭찬 받을 일이겠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고 내가 눈물이 헤픈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때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울음말고는,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인간방벽이 무너지고 쟁대위원, 선배, 동료들이 마구 끌려나간 뒤 민주의 터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무력감이 엄습하면서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깨지고야 마는가.' '우리가 하는 일이 분명 옳은데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구 눈물이 쏟아졌다 .도저히 나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눈물의 스타' 황외진 조합원, 그가 흘린 눈물의 이력(履歷)에는 1980년 광주 소식을 접하고는 '갑갑하고 분한' 생각에 눈물을 흘렸던 대학시절의 기억이 있다. 이런 일들이 남 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격정적인 성격을 가진 탓이라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적어도 철든 후에 개인적인 일로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는 고백에서 그의 순수성과 스스로에 대한 엄청난 견인(堅忍)을 엿볼 수 있다.

- 나중에 우는 모습이 찍힌 내 사진을 보았을 때 "내가 참 솔직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은 "황외진 완전히 '경기(驚氣)'했구만"하며 놀려대었다. 그러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지금도 나의 방 책상머리에는 그 사진이 부착돼 있다. 날마다 이것을 보며 각오를 되새긴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도 사진을 보면서 부끄러운 선배가 되지 않기를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이자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거침없이 스스로를 도마 위에 올리는 황외진 조합원. 그는 누구인가.

그는 91사번으로 보도국의 막내다. 그러나 우리나이로 31살, 일견 앳되 보이는 얼굴이지만 동기 중에서는 나이가 든 축에 속한다. '외'자가 들어가 특이한 인상을 주는 그의 이름은 외가 집에서 태어나면 '외'자를 넣곤 하는 경상도 지방의 내력에서 연유되었다는데, 기실 그가 자란 곳은 서울이다. 학부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원도 다녔다. J화재보험회사를 다닌 경력도 있다. 그러나 그는 '옆구리가 뻐근해질 만큼' 보람 있는 일이 없어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MBC에 입사하였다. 그는 이를 한마디로 '자기존중의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 입사 초기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서 더할 수 없이 좋았다. 그리고 일을 배운다는 일념에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짧은 연륜이지만 사회부 경찰 출입기자를 하며 열심히 뛰어 작은 사실 하나라도 캐내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체험으로 느낄 때 큰 기쁨을 얻곤 했다. 좋은 뉴스를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파업 참가 또한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선배들의 양심과 역량, 선의를 믿고 흐트러짐 없이 따랐다.

이런 그도 파업 이후 현업에 복귀했을 때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대선 전후 MBC의 뉴스는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까지 한 MBC'라고는 차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고 오히려 파업 이전보다 나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황외진 조합원은 술회한다. 보도국 기자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파업의 보람이 철저히 무력화되었음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그도 이즈음 보도국도 면모를 바꾸었으니 점차로 달라지지 않겠냐고 조심스런 전망을 해 보인다)

- 보지 않고 믿지 않는 방송, 뉴스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언론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파업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 시청자들은 우리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왜 노조를 하고 왜 파업을 하는지를 늘 기억하면서 불량상품이 아닌 좋은 상품 즉 공정방송을 공급하는 것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공정방송의 전위인 보도국의 첨병답게 그의 말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 황외진 조합원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앞으로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 동시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발견한다. 2백여일 전에 흘렸던 그의 뜨거운 눈물이 흥건히 땀을 적셔 굳건한 토양을 다졌음을. 정녕 슬픔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장 자양분 넘치는 거름이 되고 있음을, 그리하여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지난 슬픔 위에 더 이상 새로운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슬픔은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말을 실천해야 함을. 그 칼로 구태(舊態)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안일함을 결연히 끊고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베어 나가야 함을.

문화방송 노보 1993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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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7
LAST UPDATE: 2006.05.04 -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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