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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장외투쟁의 모태가 된 '모퉁이 호프' 견윤경씨
지난해 강렬했던 파업의 뜻을 음미하고 그 정신을 실천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파업투쟁 당시 우리들에게 친근했던 이들을 만나는 기획 시리즈 <지금 그사람은..>. 이번 호에는 눈길을 MBC 바깥으로 돌린다.

오늘 만나보는 견윤경씨(33·당시 공작상가 '모퉁이 호프'의 주인)는 그러할 때 가장 먼저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MBC 사원들이 애용하는 단란주점이면서 동시에 노조원들이 즐겨찾는 염가의 호프집 '모퉁이'. 푸근함으로 반기며 '내 누님 같은' 미소로 노조원들을 대한 MBC 노조 야사(野史)의 산 증인. 제일 먼저 성금을 보내 우정을 과시했고 경찰력 투입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한 사람. 그녀를 모르는 조합원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견윤경씨와 그녀의 일터인 '모퉁이'는 MBC 파업투쟁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궁금해 하실 분을 위해 과정을 좀더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1992년 10월 2일 오후 3시경, 쟁대위원 등 이른바 피고소인 15명을 강제구인하기 위해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경찰력을 동원해 MBC에 난입해 들어왔던 것은 만인주지의 사실이다. 일대 육박전 끝에 피고소인 11명과 187명의 조합원들이 끌려갔고 이들은 서울시내 13개 경찰서에 분산 수용됐다. 연행되었던 조합원들은 이날 밤 11시를 넘기면서 하나둘씩 '훈방' 되기에 이르렀다. 난생 처음 옥고(?)를 치르기도한 조합원들은 울분과 통한속에 치를 떨면서도 끌려간 동지들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의 투쟁 방향에 관한 의논을 위해 하나둘씩 회사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한 것은 굳게 닫힌 철문과 전투경찰의 군화발.
이때였다. 낙담해 있던 조합원들은 거의 이심전심으로 '모퉁이'를 떠올렸다. "그렇다.'모퉁이'다. 거기에 가면 동지들은 만날 수 있을 거야!" 경찰서에서 나오는 대로 이들은 삼삼오오 '모퉁이'를 찾아 들었다. 정원 35명에 불과한 '모퉁이'는 이날밤 발 디딜 곳도 없을 정도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연인원으로 1백여명이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조합원들은 감격적인 해후를 가졌고 비분강개의 통음(痛飮)으로 '음주투쟁'을 하였다.

이 무렵 이미 조직되어 있던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가 수면위로 떠올라 활동을 개시했다. 비대위는 우여곡절 끝에 KBS 노조에 임시 사무실을 개설하였다. 비대위가 처음으로 부닥친 사안은 조합원들과의 연락문제.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경찰투입이 있고 '민주의 터'집회가 봉쇄되자 말하자면 '선'이 끊어졌던 것. 그러나 이때에도 예의 이심전심이 가동되었다. '필경 조합원들은 모퉁이에 가 있을거야'. 비대위는 '모퉁이'로 전화를 했고 아니나 다를까 동지들은 그곳에 있었다.

비상 연락망이 점검되고 조직이 복구되었다. '모퉁이'에 있던 조합원 중 필수요원으로 찍힌 사람들은 징발(?)되어 KBS 노조 사무실로 직행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조합원들은 비대위의 확실한 출범에 안도하며 굳은 단결로 서로를 신뢰했다. 서서히 전의를 되살리며 투쟁의 대오를 갖춰 나갔다.

이렇게 해서 한국언론노동운동사에 길이 빛날 '20일 장외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난입 이후에도 굴하지 않고 강철 같은 단결을 유지하여 마침내 50일 파업을 사실상 승리로 이끈 그 신화가.

이처럼 '모퉁이'는 MBC 파업투쟁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약간의 의미부여가 허용된다면 '모퉁이'가 차지하는 위치는 프랑스 혁명사의 '테니스 코트'에 비견할 만하다. 프랑스 혁명사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같은 평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1789년 5월 구제도의 모순에 대해 분출하던 프랑스 평민계급의 저항은 마침내 그들의 요구를 달성하여 베르사이유 왕궁에서 3부회의를 갖게 되었다. 이 3부회의는 평민계급의 주도로 곧 영국식의 국민의회로 개조된다. 기득권 보전에 위협을 느낀 당시 루이 14세의 궁정측은 제3신분 즉 평민계급을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을 봉쇄하기에 이른다. 미라보를 중심으로 한 평민계급의 대표들은 문이 닫히고 군인들이 에워싸자 재빨리 베르사이유 궁 한쪽에 있는 '테니스코트'로 모인다. 이곳에서 이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어디서나 모이겠다고 서약하자"고 결의하고 열광적으로 맹세한다. 이것이 저 유명한 '테니스코트의 서약'이다. 결국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서곡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테니스코트의 서약'은 '모퉁이의 서약'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마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지정학적으로 MBC와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실비 주점이 없지 않은데 '모퉁이'를 떠올리고 그곳으로 모여 들었을까. 이것을 알아보는 단초는 그날 그때 견윤경씨의 회고담에 있다.

-그날 노조원들이 끌려 가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 어떻게 되나 하고 참담해 있는데 밤 11시가 되면서 조합원들이 하나씩 둘씩 찾아오는 거였다. 너무너무 반가웠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어디서 오냐. 몇 명이 풀려났냐 하면서 한 무리가 올 때마다 부둥켜 안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곧 밤 12시가 되었지만 심야영업단속 같은 것은 걱정이 안 되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오늘 술은 내가 산다. 오늘은 장사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MBC 동지들을 혈육처럼 여기는 견윤경씨. 잠깐 그녀의 이력을 들여다보자.

1960년 서울출생. 5녀2남의 넷째 딸(딸 다섯을 내리둔 집안의 4녀이니 영락없는 드라마 <아들과 딸>의 '후남이'란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하고 카피라이터 일을 하기도 했다. 캠브리지 양복 광고의 "내게로 이어지는 정든 길이여"라는 카피로 광고상을 받기도 했던 전문직 여성이다. 프리랜서를 거친 후 세상을 더 잘 읽기 위해 홀로서기를 선언했으며 목하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임을 실천하는 중이다.

1989년 2월 '모퉁이'호프를 개설해 올해 2월까지 만 4년을 MBC 앞에 있다가 전세금의 폭등으로 말미암아 위치를 이전, 지금은 여의도의 다른 장소에 있다.(간접광고가 될까봐 이곳은 밝히지 않는다.)

-'모퉁이'에 있을 때 MBC 사원들 특히 조합원들이 많이 왔던 것은 술값이 싸기도 했지만(하기야 호프집이 얼마나 비싸겠는가만) 어줍잖으나마 나의 그런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도 이심전심이다)근처에 모 재벌기업의 사원들도 많이 왔지만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MBC 사람들은 애사심과 일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았다. 그쪽 사람들이 무슨 노는 얘기나 할 때 MBC 손님들은 한결같이 회사 이야기와 프로그램에 관한 열띤 토론을 했다.

말끝마다 MBC 사람들에 대한 예찬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MBC에서 멀리 떨어져, 한다리가 천리길이고 안 보면 멀어지는 세상인심 탓인지 요즘들어 찾아주지 않는 MBC 조합원 동지들을 자못 원망(?)하고 있다. 한때는 MBC 노조의 메카로서 거의 모든 조합 행사의 뒷풀이 장소였고 주머니사정이 변변치 않은 조합원들이 만만하게 한잔 걸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부상했던 지난 날의 전성기는 영영 사라지는 것인가. 그리하여 '모퉁이'에서 굳게 맹세했던 우리들의 결의 또한 잦아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그저 담담히 말할 뿐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도 똘똘 뭉쳐 굳세게 매진하던 MBC 노조원들의 모습은 지금도 감동적이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MBC 노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노조원들이 간절히 바라는 좋은 방송, 공정방송, 민주 MBC의 꿈은 반드시 실현되고야 말 것이다. 다만 함께 싸울 때의 그 순수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은 모르지만 평소에 '모퉁이'에 와서 털어놓는 울분을 들으면 평기자, 평PD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방송사내 현실이 막연히 짐작된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술자리의 카타르시스로만 끝나지 말고 현장에서 실천되었으면 하는 게 주제넘을지 모르나 내 생각이다.
아무튼 MBC사람들이 보고 싶을 따름이다. 훗날 '모퉁이'의 경험을 토대로 논픽션이나 소설을 한 편 쓰는 것이 지금의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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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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