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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시청률지상주의의 극복을 위한 시론2...
시청률 '강박'을 벗어나야 한다

강성구, 홍두표 사장이 한날 한시에 MBC, KBS에 취임한 이후 천명한 시청률 지상주의가 현장에서 어떤 영상으로 구체화되고 이것이 프로그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난호에 이어 논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시청률지상주의의 파고를 어떻게 헤져 나갈 것인지 더불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시청률 여부로 아이템 결정

K조합원은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작금 아침 생방송의 시청률은 저조하다. 전반적으로 들쑥날쑥하지만 '날쑥'보다는 '들쑥'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1백일작전'이니 '지금부터는 프로그램'이니 하는 표어가 잔뜩 붙어있는 그의 사무실은 고3 수험생 방이나 고시원을 연상케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K조합원은 고달프다. 아이템의 결정, 출연자의 섭외, 현장에서의 촬영 등은 오직 시청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해 재단된다. 생활정보 프로그램으로서의 올바른 지향, 변화하는 추세 속에서 삶의 건강성을 증진시키는데 이바지하는 방송 따위의 배부른(?)이상은 그에게서 떠난 지 오래다. 그가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나 환경운동 등에 관한 소재는 이미 상투적인 소재가 되었을 뿐 아니라 흥미 있는 볼거리로 구성해 내기가 힘들어 일찌감치 포기했다.

리포터의 섭외는 인기연예인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래야 시청흡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어가는 품에 비해 교양프로그램의 연예인 출연료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비해 턱없이 낮다. 돈에 관한 한 철저하기 그지없는 연여예인들이 안달하는 PD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애소, 읍소를 반복하다가 감사에 걸릴 것을 각오하고 야외촬영일수를 실제보다 늘려 출연료의 기회 손실분을 출연자에게 보조해주거나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사비를 털어 출연자에게 환심을 사는 등 '사례'한다.

노동환경 악화시키는 시청률

L조합원은 ENG카메라를 전담하는 영상제작 1부 카메라맨, 요즘 들어 야외촬영분량이 부쩍 늘어났다. 탈스튜디오붐 이래 ENG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현상은 유난스러울 정도다. 오랜 지방출장 후의 「대휴」내기도 버겁다. 인원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일이 마구 밀려드는데 쉬는 날을 챙기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날로 심해지는 서울의 교통체증, 장소 이동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실제 작업시간보다 더 많다. 여러 형태의 프로그램에 대한 충분한 준비나 검토 없이 몸으로 때우기가 비일비재다. 12Kg이 넘는 ENG카메라를 장시간 어깨 위에 놓고 촬영하다보면 한쪽 어깨가 기울어지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같은 방의 동료들은 이런 저런 지병을 한가지씩 다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시청률을 의식하는 PD가 설정하는 상황은 더 정교한 앵글, 더 세밀한 커트, 과감하고 박진감 있는 영상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여건에서 카메라맨으로서의 영상만족감을 얻으며 제대로 작업하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욕심만큼 그의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한건주의'의 엄습

또다른 L조합원은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편성의 중심 축이자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도 작품의 선정에서부터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1년 전만 해도 MBC의 드라마의 점유율이 40%를 넘는 것은 당연지사였는데 지금은 30%만 넘어도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유가 있을 땐 기획에 융통성이 있어 새로운 주제, 실험적인 소재에도 눈을 돌릴 수 있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로 만들 것인가, 내 시간대의 상대사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이런 것만 생각한다.

제작여건은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는데 시청률 압력만 가중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출연자의 땀구멍이 보일 지경인 어느 스튜디오 카메라, 고칠 여유가 없어 그냥 녹화는 진행되고 그 바람에 현장에서 카메라 콘티를 바꾸어야 했다. 각 스텝의 총화를 연출해야 하는 PD이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반복되는 작업으로 지쳐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그에게로 전이된다. 장기제작은 구호에 불과하고 그때그때 어떻게 해서 터뜨리면 된다는 한건주의가 저도 모르게 엄습해 들어온다. 한마디로 피곤하다.

시청률과 프로그램 질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작금의 시청률 경쟁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현장에 직격탄으로 밀려들어 일파만파를 이루고 있다.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요약하면 제작여건과 노동환경은 나아진 것은 없는데 '지금 당장'의 시청률 제고를 주문하는 시청률 드라이브로 말미암아 우선 스트레스와 피로가 가중되고 근본적으로는 프로그램의 소프트웨어에 영향을 미쳐 프로그램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문제는 방송노동자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감수할 수 있지만 후자의 문제는 심각하다. 프로그램에 임하는 신명을 감퇴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 싸움의 전선에 부득이하게 내몰릴 수밖에 없는 PD들의 입장은 자못 처연하기조차하다. 무릇 프로듀서 치고 시청률이 낮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프로그램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과 제작비, 장비의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호소는 뒷전으로 밀렸다. 대신 "'앞으로는'이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당장' 시청률을 올려라"고 몰아세우니 달리 대처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무리수를 '강요'받는다

그 결과 많은 무리수가 행해지고 있다. 인기 있는 출연자의 과다한 중복출연, '먹히는' 포맷의 무차별적 범람, 자극적이고 과감한 장면의 연출, 외국 프로그램의 여과 없는 모방, 선정적 폭력적 소재로의 경도...등은 상황적으로 당장의 시청률 제고를 강요받는 프로듀서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카드라는 점에서 구조적인 분석의 대상이다.

「전격! 팡팡쇼」의 극저공 수상 헬기 촬영 장면, 방송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PD수첩」의 어린이 성폭행 관련 프로그램,「특종! TV연예」의 과도한 액션 장면들은 담당제작진의 본 뜻과 상관없이 이러한 배경의 소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본인은 모르는 가운데 그런 분위기에 젖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물의를 일으킨 「아시안 항공기 추락사고」특종에서 여인구출 장면을 되풀이한 것은 시간대를 다투는 뉴스의 긴박함이라는 물리적인 직접 요인 외에 최근의 방송상황이 알게 모르게 잠재의식으로 제작진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률드라이브의 위험성

요컨대 시청률 지상주의로 인한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프로그램이다"와"보지 않는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다"라는 두 마디의 결합은 도처에서 그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 사려 깊고 합리적인 경영진이라면 레토릭으로 교묘한 상징조작과 의제설정을 해 현 업자들을 시청률 제고를 추구하려하더라도 근본적인 제작여건의 개선을 선행시키고 제작진들에게 최소한의 시간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당장 시청률을 올리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책임있는 위치의 '어른'이 취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른바 광란의 시청률 경쟁으로 일부 프로그램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관제 프로그램의 자정결의대회'를 조종해 화살을 피하고 문제 프로그램의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다는 식의 발명을 일삼는 것은 한층 볼썽 사나운 일이다.

더욱이 강성구 사장의 시청률 드라이브가 위험한 것은 현업의 중간 포스트에서 변질되거나 악용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조직지배, 내부통제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지적했거니와 일부 제작 부서에서는 민감한 아이템, 껄끄러운 소재, 예민한 주제를 기자나 PD가 다루고자 할 대 이를 따돌리고 배척하는 방편으로 "그런 프로그램을 해봤자 시청률에 도움이 안 된다"는 금과옥조를 동원한다는 것이다.(노조에서는 이와 관련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 중에 있다.) '지금 이곳에서'의 현안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시청률의 유지 향상에 도움이 안 될 것인지는 별도로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다해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획득되는 MBC채널의 공영성과 스테이션 이미지 제고는 시청률 몇 퍼센트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시청률지상주의가 거대한 도그마가 되어 일부 간부들의 보신주의, 기회주의적 처세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이 현실까지 강성구 사장의 "지금부터는 프로그램이다"선언에 포함된 것인지 묻고 싶다.

열린 지평 열어주어야

오늘날 시청률 경쟁은 사영상업방송 SBS의 출범이후 촉발됐고 지금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시청률 지상주의 적폐를 거론하면 꼭 제기되는 반론은 이 격류 속에서 어찌 MBC만이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현실에 근거한 이 논의는 일견 수긍할 만한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청률 경쟁이 곧 저질 경쟁일 수는 없다. '옳은 일'은 남이 안 한다고 같이 안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깨달았으면 먼저 실천할 일이다.

그러므로 시청률지상주의의 폐해를 시정하는 노력을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호의적 여론을 조성하는 '이사(利社)행위'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의 질적 제고를 명실상부하게 견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모색이 필요하다. 노보에서 연재하고 있는 「긴급진단, 제작환경 여기가 문제다」에서 지적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신속한 보완, 프로그램 사전제작제의 확대 등으로 제작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내부자율규제의 강화로 방송위 등 외부 심의기관의 지적을 예방해 사이미지 실추를 막고 시청자위원회를 활성화 시켜 움브즈맨 제도에 준하는 활동을 하게 함으로써 MBC 내부의 공익성 담보장치로 승화될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일선 제작진을 시청률지상주의의 '강박'에서 해방시켜 질 좋고 건강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시청률이라는 유일무이한 척도 외에 AI지수라든지 프로그램의 사회적 기여도를 평가기준에 포함시킴으로써 다양하고도 열린 지평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 '물리적인 시청률이 아닌 볼 가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것이 사장의 참뜻이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한낱 면피용 구두선에 불과하다.

문화방송노보 1993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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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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