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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1991년 절반의 실패-「비관적 전예측」을 중간평가한다
□ 프롤로그 □

지난해 12월 6일자 문화노보에서 필자는 「현실극복을 위한 의도적 비관」이라는 부제를 달고 「1991년, 그 비관적 전예측(全預測)」이라는 제목의 역설적인 전망기를 발표한 바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방송가의 전도를 앞두고 불가측과 불투명의 한 해로 다가오는 1991년을 예견해 본, 말하자면 믿거나 말거나의 「신미년 방송계 운수풀이」라고나 할까.

상정 가능한 여러 개의 변수를 늘어 놓고 그것들이 가장 나쁜 방향으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이러저러한 양상으로 전개되리라고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동해본 것이 바로 예의 「1991년, 그 비관적 전예측」(이하 「전예측」이라 약칭)이었던 것이다. 설마 하니 이렇게 까지야 될라구… 마음 한 구석으로 애써 도리질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설마가 사람잡고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떠올리며 부디 이 어설픈 토정비결이 적중하지 않기만을 고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형국이 어째 낱낱이 그 「전예측」에 일부러 맞추려는 듯 전개되는 모양새일 뿐 아니라 어느 부분에서는 한술 더 뜨려는 듯한 조짐도 있다.

누군가가 이 「전예측」을 텍스트로 하여 우리의 현실을 주물(鑄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1991년의 절반이 지나려하는 이즈음 묵은 스크랩을 펼쳐들고 그 「전예측」의 중간 평가를 해보기로 하자.

「전예측」의 예언이 들어맞을수록 예언자로서의 필자에게 행복이 있을지 모르나 MBC 사원으로서는 불행과 슬픔이 있을 뿐이다.

1. 민방 설립과 신(신(新)) 엑소더스

「전예측」에서 필자는 새해(즉 1991년)에 들어서면 사영상업방송인 서울방송의 설립작업이 순풍에 돛단 듯이 전개될 것으로 보았다. 지자제 선거 등 예쩡된 정치 일정에 발맞추어 실기(失機)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며, 당시 라디오는 1991년 5∼6월 경 TV는 1- 11월경 개국 예정이었으나 고위층과 실세의 엄호 하에 공정을 3∼4개월씩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TV의 경우야 좀더 두고 보기로 한다면 나머지 경우는 거의 시기가 적중하고 있다.

아울러 스카우트 작업에 따른 연쇄적인 인사이동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어제의 상사, 선배, 동료, 후배가 다른 솥밥을 먹기 위해 따블백(정확히는 더플백)을 매고 여의도 광장을 응용 포복 또는 신속한 약진으로 건너가는 「MBC족(族) 대이동」의 정경은 그날 이후 우리가 익히 보던 바요 지금도 보고 있다. 「전예측」을 더듬어 보자.

" 수면하에서 부산한 탐색을 하던 민방잠입파는 관망을 하다가 하나둘씩 여의도 광장을 횡단하여 새로운 대열에 가담하였다. 민방으로 「전향」하는 신종방법 중의 하나는 일단 제3의 프로덕션으로 옮겼다가, 일정기간 경과 후 민방으로 가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 그 무렵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 것은 항상 근엄한 얼굴로 사원들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던 사내 유력 인사들의 「여의도 광장 건너가기」였다. 단체 협약 체결시나 노동 쟁의시 항상 'n년차밖에 안되는 것들이 회사를 어쩌려 한다'느니 'MBC의 기둥은 내 손으로 만든 것이다'라느니 하며 개국공신을 자처하기에 주저함이 없던 그들의 전향은 MBC정신의 실종을 단적으로 드러낼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예언이 얼마나 들어맞았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굳이 해당 인사들의 실명(實名)을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자리에서 고백할 것은 원래 필자의 초기안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그런 가운데 광장을 횡단하는 그 대열의 곳곳에서 바로 엊그제 동지들과 더불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엄숙히 「방송 민주화」와 「방송법 개악 반대」를 외치던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2. MBC號의 무기력과 불감증

이제 SBS로 적(籍)을 옮기는 따위의 일은 화제거리도 되지 않는 듯하다. 무슨 변절이나 배신처럼 여기며 쉬쉬하던 초창기의 노릇이 오히려 우습기까지 하다. 여러 가지 이유와 변명이 가능할 것이다.
"어차피 전문직업인으로서 보다 좋은 여건을 찾아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가 아닌가. 혹은 거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여기가 싫어서 떠난다는 데에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그러기에 진작 방만한 경영,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조직체계를 쇄신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어차피 SBS의 출범이 기정사실이라면 외면하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느껍게 껴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 가서 일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 SBS방송민주화의 교두보가 되겠다(그런 사람이 과연 있는지 모르지만) …" 등등

그러나 그 어떤 경우이든 1990년 그 해 여름과 가을의 치열함과 순수함을 애써 망각한 채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자기합리화의 굳은 각질 속으로 도피하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남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MBC호(號)」의 무기력과 불감증이다. MBC를 사랑해서 떠나지 않았든 아니면 막말로 전화 한 통 오지 않아서 못 떠났든 심리적 외상(外傷)으로 멍든 가슴들을 부여안고 뜨겁고도 신명나게 일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3. 노조 무력화

거듭되는 노조 무력화 기도와 그 연장에서 벌어지는 제(諸) 프로그램들의 위축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예감할 수 있는 이것을 「전예측」서는 다음과 같이 내다 보았다.

"여의도 MBC사옥 위의 하늘은 계속 우울한 보랏빛이었다. 단체협약 체결을 앞두고 회사측은 무의미한 소모전을 계속하였다. 이른바 노조위원장 대표성 시비에 관한 논란이 그것. 회사측은 끝까지 노조위원장의 자격에 관해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거부했다.(…) 심지어 단체협약 체결해 봤자 지키지 않을 것이며 그럴 경우 노조로서 아무런 방법이 없지 않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인원 유출로 대대적인 인사발령이 있어 사원들이 바뀐 업무에 정신이 없을 것까지 염두에 둔 조직적인 노조 무력화 작업이었다.

회사의 모든 정책과 결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토론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 중차대한 난국에 무슨 노조며 노사협의란 말이냐. 노조말 듣다가 지금까지 뭐 잘 된 일이 있느냐. 차제에 노조는 철저히 무시하여야 한다. 국장 추천제, 공영방송협의회는 거부되거나 무산되었다. 그 대신 전임자수 축소, 전임자에 대한 급여 시비, 해고 무효 소송 계류자의 출근 봉쇄 등 노조를 자극하는 전술적 도발이 줄을 이었다.…"

전율스럽다. 어쩌면 이렇게도 거의 그대로 들어 맞는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악마적 영감이 그 때 엄습했던 것인가. 아니면 일부 호사가들의 말처럼 공연히 객소리를 미리 늘어놓는 바람에 회사 측에 대(對)노조 작전의 범본을 보여준 결과가 되었다는 말인가.

게다가 지금의 형국은 「전예측」의 전망보다 훨씬 열악하다.

4. 프로그램의 침체

방송사와 방송 노조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조응관계에 있어야 한다.

회사가 노조를 건강한 동반자나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단순한 노사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송노조가 그런대로 제 역할을 하였을 때 이 땅의 방송 또한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때 방송 또는 특정 방송사는 왜곡과 파행의 길을 걸었다. 지난 6개월의 궤적은 '프로그램의 위축'이라는 상흔으로 남는다. 다시 「전예측」을 돌아보자.

"MBC를 둘러싼 외적 내적 조건과 환경의 악화는 고스란히 프로그램에 반영되었다. (…) 서슬이 시퍼런 이 마당에 내적으로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노조에서 추진하던 일체의 프로그램 관련 사항도 일제히 중단된다. 좋은 뉴스를 위한 건의서, 프로그램 개편시 의견개진 등이 모두 씨나라 까먹는 소리가 되고 만다. 뉴스데스크 속기록 작업도 실속이 없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중단되고 민실위의 프로그램 토론회는 회사측의 반대, 담당 제작부서 중간간부의 몰이해, 일부 제작자의 비협조로 사사건건 성원미달 유회된지 오래다.…"

「프로그램의 위축」에 관한 「전예측」의 내용은 상당부분이 미흡하다. 왜냐하면 지난 6개월에 걸친 프로그램들의 위축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도 설마 대하드라마 「땅」이 도중하차할 줄은, 무수한 프로그램들이 심의의 덫과 정체불명의 외압에서 헤어나지 못할 줄은, 더더욱 뉴스 프로그램에서 그토록 현저한 5공 회귀 현상이 드러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이 부분에서 「전예측」이 수준 미달의 등급을 보인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에필로그

예상할 수 있는 최대치로 비극적, 비관적 전망을 했던 것 이상으로 작금의 우리 현실은 우울하고 비감스럽다. 6개월전 필자는 설마 이 모든 「전예측」이 거의 들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항차 고작 단체 협상 테이블의 정상화를 위해 조합 집행부가 몇십일 째 농성을 할 줄은 몰랐다. 나아가 MBC사옥이 분노한 민중의 화염병에 피습될까봐 전투경찰이 '지켜주게' 될 줄은 정녕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6개월 우리들은 이토론 지난(至難)한 역정을 밟아왔다. 이미 「절반의 실패」로 지나가는 1991년! 이제 남은 6개월을 걱정해 볼 때다. 그 6개월 역시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지고 말 것인가? 아니면 5공화국의 마지막 계절과 마찬가지로 최악의 상황 뒤에 반드시 찾아오고야 말았던 그 여명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6개월, 그리고 그 후의 우리의 미래가 '실패'냐 '회생'이냐 하는 문제는 이제 필자의 예측 능력의 문제는 아니다.

지나온 6개월의 실패를 놓고 장탄식이나 하고 참담함을 과장하면서 고개를 묻고 산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짓밟힐 대로 짓밟혔고, 깨질 대로 깨진 상황이자만, 이제부터라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추스릴 경우에 그 실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문화방송 노보 1991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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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08
LAST UPDATE: 2002.04.10 -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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