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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1992년 그 낙관적 전예측(全豫測) - 전망을 위한 우화(寓話)
1992년 임신년 새해가 밝아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대와 희망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암울과 절망을, 그리고 나머지 이들에게는 주저와 조바심을 안기는 그런 새해다. 그 어떤 부류에 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각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정확히 1년전 필자는 「1991년, 그 비관적 전예측」이라는 제하의 졸문을 본란에 기고한 바 있다. 「현실극복을 위한 의도적 비관」임을 빙자하여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경우를 중첩적으로 망라한, 지금 생각해도 비관적이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6개월 뒤에 중간 평가라는 이름으로 재탕되기에 이르렀지만 여하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거의 완벽하게 실증해 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 예언자(?)로서는 행복을, MBC사원으로서는 불행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비관적 예측 뒤엔 패배주의가 도사리고 있을진대 어찌 그 결과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밝아오는 임신년은 이제 「낙관적인 전예측」을 하고자 한다. 예측이라도 그리 하면 혹 나아지는 것이 있으려나 하고.

그럼에도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낙관론이 혹시 천박한 현실도피적인 백일몽은 아닌가 하여, 또는 이것이 구체화되기 위해서 지불해야하는 치열한 대가의 부담 때문에…

1. 임신년 1월의 전주(前奏)

1992년 1월 1일. 새해가 동트기 직전의 여의도동 31번지. 몇십 명의 야근 근무자가 미명(未明)의 MBC사옥을 지키고 있던 그 때였다. 보랏빛 MBC건물 1층 로비 한쪽에서부터 그 움직임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아주 가느다란 빛줄기가 비치더니 점차로 그것은 점차 굵어졌고 마침내는 커다란 원통형의 기둥으로 커졌다. 푸른 색조를 띤 그 빛 기둥은 점점 더 커지더니 두 개의 기등으로 갈라진 다음 용솟음쳤다. 10층 옥상 위로 오른 그것은 종당에 아직 어두운 여의도 하늘로 솟구쳐 올라 수직으로 창공에 수렴되었다. 상상해 보라. 서울의 하늘을 두 개의 푸른 빛 기둥이 직립하여 떠받치는 정경을.

그때 우연히 사옥 앞마당에 내려왔던 어느 사원이 그 광경을 보았다. 순간 어떤 감동이 그를 엄습하였다. 장엄한 서기(瑞氣)에다 자못 전율스런 귀기(鬼氣)까지 어린 그 빛의 기둥을 목도한 그는 그 깊은 인상을 자기만의 것으로 숨길 수가 없었고 그 결과 입에서 입으로 그 사연은 은밀히 전해졌다고 한다.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이 구전(口傳)의 과정에서 사람들의 상상력이 함께 빚어졌고 여기에 그들의 믿음과 기대 또한 더불어 더해졌다. 사람들은 이를 「빛의 세례(洗禮)」라고 명명하였다. 정녕 그 두 개의 빛기둥은 임신년을 기약하는 어떤 전조(前兆)임이 분명하며, 이 해 우리들의 삶은 그것을 위해 타오를 것이 틀림없었다.

2 「빛의 세례(洗禮)」 이후

「빛의 세례」이후 달라진 것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우선 MBC노조 조합원들의 눈빛이었다. 패배주의와 무력감 그리고 적당주의와 타성의 길고긴 동면 속에 잠들어 있던 그들의 눈동자에 예기가 감돌았다. 부릅뜬 눈매, 굳게 다문 입술은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유인의 그것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역사는 실천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 변화의 첫 조짐은 신년 하례식에서부터 나타났다. 「빛의 세례」가 현현된 MBC 1층 로비는 순식간에 기적의 성지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이 기적의 현장을 순례하고 탐사하려는 성도들이 줄을 잇자 신년 하례식은 D공개홀로 장소를 바꾸어 거행되었다. 하례식의 경건한 분위기와 보다 많은 참석자를 위해서나 또는 성지순례의 이적(異蹟)을 위해서나 그것은 바람직한 귀결이었다. 출근하는 모든 사원들은 「빛의 세례」성지 참배를 거쳐 D-공개홀로 향했다. 바야흐로 불신과 반목과 냉소의 지난 날이 청산되고 각성과 정진의 새해가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3. 10층을 흔들려도 1층은 의연하다.

여의도동 31번지의 이러한 이채로운 변화와 달리 새해의 여러 국면들은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예측이 가능한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어느 정치인이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었건만 가능한 예측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정치판은 암수(暗手), 묘수(妙手), 허수(虛手), 마수(魔手)가 서로 뒤엉켜 혼미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외풍은 어김없이 여의도에도 휘몰아쳤고 그에 따라 좌고우면의 눈치보기가 횡행하였다. 바람이 셀수록 그 진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고층빌딩이 바람을 맞으면 상층부가 더 크게 움직인다. 여의도동 31번지의 10층은 사정없이 흔들려도 「빛의 세례」성지인 1층의 의연함 덕분으로 꿋꿋이 흘립(屹立)할 수 있었다.

뉴스 프로그램의 공정성 수호를 위한 모니터 활동이 재개되기 시작하였고 단위 소조의 생산적인 토론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외압과 부당한 간섭과 맞서는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즈음 다수 국민들의 우중화와 탈정치화 또는 정치적 무관심과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제작 프로그램의 교묘한 편성 기도가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결연한 의지로 임하였다. 나아가 전부문의 조합원들이 직종을 초월하여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아름다운 광경이 나타났는데 이들 모두의 가슴에 「빛의 세례」라는 형형한 문신이 아로새겨져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 도미노, 역도미노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정치 일정은 법정 시한이 박두함에 따라 서서히 마각을 드러냈다. 집권당의 복마전처럼 얽힌 파워게임은 추악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더욱 정치 혐오와 기피에 빠져 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총체적으로 보아 「빛의 세례」신화의 구현에 나름대로 기려를 하게 된다.

첫째로 변화에 대한 기대치의 증가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느껴지고 결핍과 부재의 상실감은 개혁에의 더 큰 열망으로 투사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드디어 오랜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와 여의도 하늘 위에 눈부시게 올라갔던 빛기둥의 신화를 이야기하였고 나아가 그것이 현재진행형임을 느꺼이 말하였가. 둘째로 그 내홍(內訌)을 이용한 기회공간의 확보다. 집안싸움에 정신을 못차린 그들은 여의도동 31번지에서 일어나는 장엄한 빛의 세례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고, 또 설사 눈치를 챘다 해도 그들로서는 하릴없었던 것이었다. 각인(各人)의 철저한 각성과 치열한 실천을 토대로하여 이루어진 그것을 그들인들 어찌하겠는가. 조합원들은 점차로 자신감을 되찾고 초기 노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변화의 초기 징후는 문화방송 사옥 5층에서 구체화되었다.

선거를 앞두고 강력한 여당지원 방송이 절실하다고 간파한 권력 핵심에서는 MBC 2명 KBS 8명의 해고를 통해 이미 방송은 완전한 노조 무력화가 이루어졌고 방송은 완전장악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양 방송사 보도책임자에게는 이미 모종의 조치를 취해둔 상태였다.

이사급 책임자들이 심지어 기자의 리포트를 화면 하나, 멘트 하나까지 방송전에 검열하는, 그래서 민실위의 비판이나 기자들의 개인적인 항의는 묻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쯤의 유리한 여건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우선 집권세력의 권력 암투 양상이 워낙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사 보도 책임자가 어느 쪽에 방향을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권력 누수 현상이 심화된 현 권력 핵심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것인지, 야당 지도자에서 하루 아침에 여당 보스로 변신한 정치인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그를 철저하게 견제하는 기존 정치 그룹도 있고, 게다가 5공 핵심들의 재등장도 예측 못할 변수였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고 정치 뉴스는 이제 그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뜨거운 감자를 피하고는 있었지만 민감한 정치뉴스 하나하나를 기자 개개인과 매일 부딪혀야 하는 그도 이제 지칠 만큼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분명한 것 한 가지, 매일매일 데스크의 기사통제 압박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똑같은 양의 저항정신이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도국에서는 이것을 '끓기 시작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불만은 젊은 기자들이 앞서 있었지만 정작 시니어 기자 그룹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4년전 노동조합 초창기에 애정을 갖고 혼신의 힘을 바쳤던 선배 그룹이었다.

'선거보도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성명서가 나왔고 상당한 무게를 지닌 선배들의 이와 같은 행동에 신입사원까지 포함한 후배들의 전푹족인 지지가 뒤따랐다. 일부는 출입처에서 철수, 구수회의를 거듭했고, 보도제작 거부와 타 부문의 동조 파업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고참 선배의 중재가 주효했다. 객관적이고 진실된 선거보도에 관한 한 더 이상 이사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방송은 이제 나름대로 공정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 무렵 방송가에는 새로운 도미노 이론과 역도미노 이론이 전개되었다. 즉 신도미노이론이라 함은 한 방송사의 노조가 무력화되면 연쇄적으로 인접 방송사의 노조 또한 무력화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에 새로운 역도미노이론이 대두되었으니 한 방송사의 노조가 활성화되면 여타 방송사의 노조 또한 활성화된다는 내용이었다. MBC노조의 활성화는 곧장 KBS로 이어졌고 심지어 노조가 없던 신생 SBS에도 선의의 자극을 주어 민주노조의 깃발을 올리게 하였가. 이로써 방송법 개악저지투뱅 이래 형해화(形骸化)되었던 방송사 노조 연대가 복구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2월의 주총은 이러한 변화를 선도해 준 것이었다. 여러 가지 추측이 많이 돌았으나 그 결과는 다수의 조합원과 사원들이 바라던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주총의 내용을 알리는 방과 함께 게시된 두 해고사원의 복직 발표는 그것이 사측의 설명대로 사내 대화합의 차원이든 아니면 노조측의 분석대로 「빛의 세례」신화의 위력에 영향받은 것이든, MBC의 해묵은 숙제가 해결되는 전환점임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이로써 MBC는 심기일전의 바탕 위에 자발적 자생력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5. 신화가 완성되면 설화가 태어난다.

1992년은 선거의 해. 총선을 필두로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자치단체장, 대선 등의 선거가 줄을 이었다. 동시선거냐, 분리선거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사태를 직시하지 못한 집권당은 정략적으로 분리 선거를 강행했다. 선거에 앞서 방송 매체를 장악하려 했던 그들의 기도는 「빛의 세례」정신으로 무장한 방송인들의 강고한 연대 앞에 여지 없이 무산되고 말았다. 시시비비(是是非非)와 정론직필의 정공법은 범국민적인 성원과 지지를 불렀고 마침내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끝났다.

하여, 1992년 12월 9일 오후 6시, 다시 MBC 1층 로비「빛의 세례」성지. 조촐한 잔치상이 차려졌고 주식회사 문화방송의 사장님과 문화방송 노조 위원장이 환히 웃는 낯으로 함께 서 있다. 1년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임신년 한 해 「빛의 세례」가 타올랐던 그 자리엔 화개애애한 따뜻함과 해내고야 말았다는 만족감이 흐드러지게 어우러졌다. 바로 그 때 두 개의 커다란 빛의 기둥이 모든 참석자들 머리 위로 서서히 내려왔다. 경이와 찬탄의 시선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빛기둥이 번지듯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모든 사람들의 눈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장엄한 빛의 세례(洗禮)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세인들은 이 시기를 「빛의 세기(世紀)」라 일컫고 두 눈으로 그 빞을 빨아들인 사람들은 「빛의 인간」이라 명명하였다. 신화가 완성된 곳에서는 설화가 탄생한다. 문화방송 사가(社歌)에 있는 'MBC 문화방송 빛의 메아리'는 바로 이것을 예견한 것이라는 설화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의 일이다.

□ 에필로그 - 우리가 만날 신화 「빛의 세례」

우화의 세계는 현실 타개의 지혜를 간접적으로 암시해 줄 뿐 그것이 결코 현실 세계일 수 없다. 그러나 '1992년 낙관적 전예측'은 예측 가능한 낙관적 상황 변수를 최대한 모아서 배치해 놓고 그 결과를 그려본 것이다. 여기서 상정한 낙관적 변수들이 모두 조성만 된다면 전예측은 우화가 아닐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 낙관적 변수 중 일부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극히 외부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낙관적 변수중 상당 부분은 충분히, 그리고 분명히 우리의 주체적 의지와 실천 노력에 의해 획득 가능한 것이다.

외부 변수에 대한 예측은 상당 부분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자신의 변수는 결코 틀릴 수 없다. 틀려서도 안 된다.

91년의 비관적 결과의 상당부분이 바로 이 내부변수에 대한 불길한 예측을 바탕으로 이루었다. 92년 낙관적 전예측은 내부변수에 대한 신뢰를 전제조건으로 계산한 것이다.

낙관적 결과를 택할 것인가. 91년처럼 암울한 결과를 또 감수할 것인가. 그것은 당신과 나, 우리의 선택이다.

우화 속의 「빛의 세례」는 우리들 중 누구라도 의지만 있으면 만날 수 있는 신화이다.

문화방송 노보 1991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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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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