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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1992년, 절반의 성공(?) - 낙관적 전예측의 중간평가
'낙관' 위해서는 노력과 실천 전제돼야
터널의 어둠 길지만 출구의 빛을 보아야

「낙관적 전예측」을 중간평가한다.

6개월여 전 「1992년, 그 낙관적 전예측」이라는 제하로 필자의 졸고가 <문화노보>에 실렸을 때 사람들이 말했다. "이제 완전히 '전예측'에 맛들였구만!"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해 「1991년 그 비관적 전예측」과 「1991년, 절반의 실패- 비관적 전예측을 중간평가한다」로 재미(?)를 보더니 '낙관적'이라고 말만 바꾸어 같은 시도를 했던지라 호사가들의 그러한 지적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오가며 한두마디 하는 말속에 필자를 뜨끔하게 한 것이 있었다. 가로되, "차제에 동화 작가로 나서 보시죠…"

독자 제위의 기억에 도움을 주고자 「문화노보」1991년 12월 27일자 본란에 실렸던 졸고 「1992년, 그 낙관적 전예측」을 잠깐 더듬어 보자. 예언의 재미는 그것의 결과와 견주는 데에 있고, 아나가 어찌하여 '동화 작가'의 작위(爵位)마저 거론되기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약술(略述), 「빛의세례」

"1992년 1월1일 몇십명의 야근자가 미명의 MBC사옥을 지키고 있었다. 건물 1층 로비 한쪽에서 아주 가느다란 빛줄기가 비치더니 그것이 점차 굵어졌다. 그 빛기둥은 점점 더 커지더니 두 개의 기둥으로 갈라진 다음 솟구쳤다. 그때 우연히 어느 사원이 이를 목격하였다. 장엄한 서기(瑞氣), 전율스런 귀기(鬼氣)어린 그 장면을 본 그는 그것을 은밀히 구전(口傳)하였다. 이를 사람들은 빛의 세례(洗禮)라고 명명하였다. (…)

「빛의 세례」이후 MBC 노조원들은 패배주의와 무력감, 적당주의와 타성의 길고긴 동면에서 깨어나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유인으로 거듭났다. 그리하여 뉴스 프로그램의 공정성 수호를 위한 모니터 활동이 재개되기 시작하였고 단위 노조의 생산적인 토론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다수 국민들의 우중화와 탈정치화 또는 정치적 무관심과 허무주의를 조장하게 하는 제작 프로그램의 교묘한 편성 기도가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결연한 의지로 임하였다. 이들 모두의 가슴에는 「빛의 세례」라는 문신이 형형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

방송매체를 장악하려 했던 자들의 기도는 「빛의 세례」정신으로 무장한 방송인들의 강고한 연대 앞에 여지없이 무산되고 말았다. 시시비비와 정론직필의 정공법은 범 국민적인 성원과 지지를 불렀고 마침내 그들의 음모와는 정반대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1992년 12월 9일 노조 창립기념식 자리. 두 개의 커다란 빛기둥이 모든 참석자들 머리위로 서서히 내려왔다. 경이와 찬탄의 시선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모든 사람들의 눈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장엄한 및의 세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문화방송의 사가(社歌)에 있는 'MBC 문화방송 빛의 메이리 …'는 바로 이것을 예견한 것이었다. "

사뭇 황당하기 그지 없다. 「빛의 세례」라니. 심령학자들의 글 속에서나 볼 수 있을 엉뚱한 내용이다. 변명 같지만 이 글을 쓸 당시 필자의 의도는 그러하였다. '1991년에 쓴 「비관적 전예측」의 경우 적중률(?)은 높았으나 사(社)측에게 노조 와해와 탄압의 방법론을 암시하는 등 사실상 반(反) 노조의 「교과서」로 활용되게 하였다는 원성과 질타가 드세었다. 그래서 예언자로서는 행복하였을지 모르되 MBC사원이자 노조원으로서는 불행과 좌절만을 안겨주지 않았는가. 어차피 사물은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컵 속의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하기 보다 반이나 남았다고 하는 것이 더 유쾌하다. (그러면 엔돌핀이 많이 나온다고 하던가…) 그러므로 비관적 예측을 하지 말고 낙관적 예측을 해보자.'

□ 어둡고 답답한 날들의 우화

그러나 막상 기술(記述)에 들어가려니 막막하였다. 예상 가능한 여러 개의 변수와 상황을 설정한 뒤 그것들이 가장 나쁜 방향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대로 상상력을 발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비관적 예측이다. 그와는 달리 낙관적 예측은 예상하는 그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정세헤 대한 정확한 분석을 요구하고 이것은 그에 앞서 풍부한 정보가 입력되어야 할 것은 전제로 한다. 나아가 종속변수와 독립변수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담보해야만 하는 것이다.

더욱이 「낙관적 전예측」을 하려던 1991년 12월 하순의 방송가에는 불확실성과 암울함이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드리워져 있던 때였다. 단체 교섭은 상견례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안성일, 김평호 조합원의 해고 상황은 해를 넘기려 하고 있었다. 드라마 「땅」이 매장된지는 이미 오래였고, 지방 MBC가 학생과 시민들의 화염병에 피습되기도 하였다. 수서비리사건, 보사부기자단 촌지 수수사건 등 언론계 내부의 자정 의지를 회의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태는 내적 결속력과 유대감, 나아가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기 국면이 대두하게 만들었다. 어둡고 답답한 날들이었다.

현실의 출구가 닫히면 억눌린 우리들의 자아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초현실의 상상으로 날개를 편다. 우화(寓話)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억압과 구석이 강했던 시대일수록 알레고리와 상징의 기법에 호소하는 글이 많은 것은 다 그같은 이치에서이다. 유약한 문객(文客)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위안을 삼는다. 노회한 사가(史家)들은 은성했던 지난 날에 대한 향수에 젖거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장미빛 섞인 상념에 사로 잡힌다. "지금 이곳에서의" 실천과 행동에 대한 치열한 논증은 버거운 것이다.

야사(野史), 설화, 신화 등은 현실에서 거세된 희망이 다른 방법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한쪽 귀퉁이에 「낙관적 전예측」이라는 이름의 어설픈 동화(童話)가 자리잡는 것이다.

□ 「전예측」의 뜻, 중간 평가의 의의는?

사실상 지금의 이 글은 「낙관적 전예측」의 6개월 후에 중간 평가를 해 보자는 의도로 출발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노스트라다무스도 토정선생도 아닌 바에야 그것이 모양 좋게 적중할리도 없고 또 그것을 따지는 것이 그리 의미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므로 「전예측」의 더 깊은 의도로 한번 돌아가 보는 것이 훨씬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예측하는 행위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바람과 자세의 점검이다. 우리는 왜 앞날을 그려보고 희망하는가. 그것은 오늘의 우리 모습을 따지고 내일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보자는 것이 아닌가. 그러지 못할 경우 「전예측」은 한갓 백일몽의 구토(嘔吐)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1992년, 그 낙관적 전예측」중에서 신년하례식 장소가 1층 로비에서 D공개홀로 바뀔 것이라든지 혹은 두 해고사원에 대한 전격적인 복직발표가 있을 것이라든지 하는 예측이 빗나간 것을 두고 그 적중률을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아가 "선거방송 보도시 시니어 기지 그룹에서 '선거 보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성명을 내면서 후배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뒤따라 보도 제작 거부와 타 부문의 동조 파업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고참 선배의 중재가 주효해 나름대로 공정성을 되찾았다"는 예측에서의 부분적인 적중을 두고 환호하면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축하는 것은 자칫 위험하기까지 하다. 「전예측」은 스포츠 신문에서 보는 「올해의 운수」도 아니고 점성술도 아니고 바이오리듬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자가진단서이며 작전계획서이다. 나아가 우리들의 꿈을 X-선으로 찍어낸 인체 해부도인 것이다.

□ 터널 끝의 출구를 보자

다시 「1992년, 그 낙관적 전예측」으로 돌아가자. 서두에 나오는 두 개의 빛기둥은 글자 그대로 상징이다. 사람에 따라서 이를 MBC노조의 자성과 실천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노조와 사(社)라는 두 지주(支柱)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해고된 안성일과 김평호 두 사원으로 구체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당직 근무자에 의해 발견되었다가 구전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문신으로 새겨진다는 의미는 그것의 각성을 뜻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빛기둥이 내려와서 사람들의 눈에 스며들어가는 것은 이 상징의 총체적인 완성을 말한다. 이로써 "주인공의 고난과 희생→계기에 의한 각성과 실천→제(諸) 장애와 문제의 극복 → 복원과 완성"이라는 전형적인 신화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각성과 실천의 단계에 있는가 혹은 장애와 문제의 극복과정에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고난과 희생의 단계에 있는가.

「전예측」을 평가하는 주체는 물론 우리들 자신이다. 그렇다면 그 평가의 대상은 무엇인가. 그 역시 우리들 자신이다. 비관주의자는 그 터널 끝 출구의 밝음을 본다고 하였다. 비록 지금은 그 밝기가 실날같다고 하더라도 터널은 언젠가 끝나고야 만다. 그가 터널을 빠져 나가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결국 「1992년, 그 낙관적 전예측」의 평가는 이제부터이고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문화방송 노보 1992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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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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