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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오늘 '빛의 세례'가 역사하리니 - 1992 낙관적 전예측의 결산
쏜살같이 지난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이제 다시 세밑에 흐르렀다. 필자에게 있어 1년이란 시간은 전예측 한번, 중간평가 한번 그리고 총체적 평가 한번…에 의하여 정리되고 마감된다. 과연 우리들의 1992년은 어떠하였는가. 울분과 비감에 사로잡혀 낙담으로 자학했던 1991년과 어떻게 다른가 환호와 득의(得意)로 만만하여 오로지 자축과 자족으로 치닫는 승리의 한해인가. 「낙관적 전예측」에서 예견하고 규정했던 바와 얼마나 다른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한 마디로 형용하기에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임신년 한 해를 차분히 음미해 보기로 하자.

「빛의 세례」는 무엇인가

"우화의 세계는 현실 타개의 지혜를 간접적으로 암시해 줄 뿐 아니라 그것이 결코 현실세계일 수 없다. 그러나 '1992년 낙관적 전예측'은 예측 가능한 낙관적 상황 변수를 최대한 모아서 배치해 놓고 그 결과를 그려본 것이다. 여기서 상정한 낙관적 변수들이 모두 조성만 된다면 전예측은 우화가 아닌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낙관적 결과를 택할 것인가 91년처럼 암울한 결과를 또 감수할 것인가. 그것은 당신과 나, 우리의 선택이다. 우화속의 「빛의 세례(洗禮)」는 우리들 중 누구라도 의지만 있으면 만날 수 있는 신화이다."

정확히 1년전 필자는 바로 이 지면에 「1992년, 그 낙관적 전예측」이라는 제목으로 1992년 한 해의 전망을 나름대로 그려 보았다. 신화라기보다 우화, 우화라기보다 동화에 가까운 한 자락의 글발은 일부 호사가에게 얼마간의 안주거리를 제공했을지 모르나, 그 턱없는 비현실성?〕으로 말미암아 일과성 쓴 웃음의 대상 이상의 것이 아닌 채 조합원들의 뇌리에서 멀어져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필자는 그로부터 6개월 후 「1992년, 절반의 성공〔?〕-'낙관적 전예측'을 중간평가한다」는 제하로 사람들의 기억을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전예측」이 한갓 백일몽의 구도로 끝날 수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MBC노조의 노력과 실천 나아가 희생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렇듯 집요하게 필자가 「낙관적 전예측」을 환기시키고자 했던데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전예측」엔 올해의 MBC노조를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1992년의 낙관적 전예측」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핵심은 바로 「빛의 세례」신화다. 여기에서도 핵심은 두 개의 빛기둥으로 압축된다. 이 빛기둥이 안성일, 김평호 두 해고사원 또는 MBC 노조의 자성과 실천의 상징일 수 있음을 필자는 1992년 7월의 중간평가에서 풀이한 바 있다.

「빛기둥」이라는 장치는 하나의 상징적 기제로서 변용된 것이다. 그 원형은 성경의 창세기다. 성경에 이르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하였듯 천지창조 후 조물주가 최초로 만든 것이 바로 빛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듯 빛은 태초, 창조, 출발의 메타포로 보아 어김이 없다. 이로서 당시 〔「낙관적 전예측」을 기술했던 1991년 12월 현재〕 침체의 국면을 보였던 MBC노조의 거듭남과 새출발을 「빛」울 통해 세척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날 'MBC 1층 로비에서 두 개의 빛기둥이 솟구쳐 오른' 이후 이것이 MBC사원들에게 목격되어 구전하다가 사람들의 가슴에 문신으로 새겨진다고 「전예측」은 말하고 있다.

이 대목은 한두 사람의 초인적 결단과 선언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의 각성과 동참으로 이 신화가 실천되고 완결되는 것임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부분의 세부적 표현은 작가 이문열의 가상 역사소설 '장려했느니, 그 날의 낙일〔落日〕'에서 영향을 받아 구성된 것임을 고백한다.

3·24 총선의 제비 한 마리

어쨌든 형형한 두 개의 빛기둥이 노조원들의 가슴에 새겨졌기 때문인지, 돌이켜 보는 1992년은 회한과 자책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긍부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한해였다는 것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그 첫 증거로는 상반기 중 3·24총선 보도시 나타난 일이다.「전예측」에서의 "선거방송 보도에 여러 형태의 편파, 불공정 보도가 있따르자 보도국 시니어 기자 그룹에서 '선거보도 이대로 안 된다'고 성명을 내면서 후배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뒤따라 보도 제작 거부와 타 부문의 동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고참선배의 중재가 주효해 나름대로 공정성을 되찾았다"는 예견은 거의 완벽한 적중을 보였던 것이다. 선거 막판에 안기부 흑색선전 사건, 한맥회 사건, 군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양심선언 등의 이른바 3대 악재가 줄줄이 터졌을 때 축소, 은폐로 다급하게 이 상황을 호도하려 했던 10층의 노회한 기도에 보도국 조합원들이 보였던 노력은 비록 그 결과가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정녕 더 이상 밀릴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의 공감대 위에서 이루어진 자그마한 성과였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제비도 봄의 예감조차 없이 날개짓을 하지는 않는다. 3·24총선 당시 이루어진 작지만 힘찬 실천은 하반기 이 땅의 방송민주화에 불을 지폈던 MBC노조파업 투쟁의 중요한 조짐이 아니었을까.

무력감과 냉소주의의 늪에 빠져 있던 MBC노조원들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전열을 추스르기 시작했던 것은 그로부터의 일이다. 10층 인사들이 노조 내부의 이러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전혀 몰랐거나 알았다고 해도 무심히 간과해버렸음이 분명한데. 그것은 사실 노조를 위해서는 어쩌면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실천, 우리들의 사랑

그 다음의 흐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방관하거나 비판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참여하고 실천하며 더불어 아파하고 흐느낀 자로서 요컨대 온몸으로 달려갔기에 낱낱이 알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다.

지난 91년4월 15일 이래 378일만에 열린 92년 4월 28일의 노사 단체교섭 상견례, 교착 상태의 교섭, 그리고 파업, 경찰 난입, 50일간에 걸친 강고한 파업투쟁, 마침내 비대위 체제에 의한 협상 타결…,몇 줄의 연대기적 사실의 나열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우리들의 고통, 우리들의 단결, 우리들의 실천, 우리들의 깨달음,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

쟁의발생 신고만 해도 다행이라던, 파업결의만 해도 다행이라던, 파업투쟁 돌입만해도 다행이라던, 경찰 난입 후 집회의 명맥만 유지해도 다행이라던, 비대위가 결성되기만 해도 다행이라던,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기만 해도 다행이라던…그 모든 패배주의가 일소하고 조합의 살아있음을…조합의 단결력과 조합원의 양심과 이성이 살아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실천했던 1992년 9월과 10월의 공정방송 대투쟁은 그만큼 놀랍고 값진 것이었다.

물론 불완전한 투쟁, 불확실한 승리임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복직원칙이 확인되었다고는 하나 노조의 숙원(宿願)인 안성일·김평호 동지의 복직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이른바 「보직변경 요구제」로 합의된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노사간의 세력 균형 위에 근거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노조의 단결이 취약할 경우 그 실현 여부가 매우 불투명해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더욱이 프로그램 진행자 원상회복의 건의나 탄원서 제출 건 등 단체협약에 합의한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벌써부터 위약과 기만을 일삼는 10층의 공작이 갈수록 노골적이다.

「빛의 세례」는 마음 속에

그러나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다. 우리는 여기서 겸허하게 '쟁의발생신고만 해도 다행'이라던 어둡고 답답했던 날의 울분을 기억해내야 한다. 50일간 파업 투쟁이라는 투쟁의 외형적 성과에 안주하며 외화내빈, 허장성세의 오류를 되풀이할 수 없다. 개개인의 자성과 실천을 낱낱의 벽돌로 하여 견고하게 축성된 바람벽이 아니라면 또 어떤 외풍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앉을지 모른다. 파업의 거센 열기에 현업에서 느낀 부끄러움과 잘못을 띄워 날려버리고, 몇 사람의 희생양 뒤에 자신을 숨긴다면 MBC노조가 벌인 파업투쟁의 정당성과 그노력은 절대로 구현될 수 없다.

여기서 다시 「빛의 세례」신화로 돌아가자. 그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다. "하여, 1992년 12월 9일 오후 6시, MBC1층 로비「빛의 세례」성지, 조촐한 잔치상이 차려졌고 주식회사 문화방송의 사장님과 문화방송 노조 위원장이 함께 서 있다. 1년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임신년 한해 「빛의 세례」가 타올랐던 그 자리엔 화기애애한 따뜻함과 해내고야 말았다는 만족감에 흐드러지게 어우러졌다. 바로 그때 두 개의 커다란 빛의 기둥이 모든 참석자들 머리 위로 서서히 내려왔다. 경이와 찬탄의 시선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다. 그 빛기둥은 번지듯이 퍼져 나가더니 곧 모든 사람들의 눈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장엄한 빛의 세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오늘(1992년 12월 9일)이 그날이다. 하오 6시 우리 1층 로비에 모두 모여서 천정을 한번쯤 주시해 보자. 이것이 다미 선교회의 휴거 예언이 아닌 바에야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눈있는 자 볼 수 있고, 귀 있는 자 들을 것이니 「빛의 세례」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여 꿋꿋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문화방송 노보 1992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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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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