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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서태지 포스터 그린 손노식 조합원
"지금 그 사람은…"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손노식 조합원(제작기술국 TV제작기술부)을 모신다. 손노식 조합원이라니…? 도대체 누구일까. 암튼 얼굴과 이름이 함께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으실 것이다. 영화배우 박노식이라면 몰라도.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그는 TV화면에 모습을 보이는 직종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휘황찬란한 쇼맨쉽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몰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집행부 경력이 있었다거나 열혈 노조원으로 회사측에 '찍힌' 바도 없었다.

선하고 성실한 인상. 여기에 덧붙인다면 섬세하고 여린 인상마저 주는 손노식 조합원. 그가 오늘 이 지면의 주인공이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2년 9월15일. 파업 14일째이던 그날 집회 프로그램에는 '포스터 경연대회'가 있었다. 조합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참여도를 높이려는 취지로 행사팀에서 고안했던 것. 부문별로 파업과 공정방송 실천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즉석에서 포스터 제작이 이루어졌고. 그는 그때 "난 알아요! 우리가 뭉치고 뭉치면 승리의 그날이 온다는 사실을 난 알아요." 라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개사한 멘트와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을 묘사한 듯한 기발한 그림으로 구성된 포스터를 제작해 당당 1위에 입상하였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무슨 심사위원단의 채점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상장이나 상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열화와 같은 박수에 의해 그의 작품이 그랑프리로 공인받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것도 미술부문 조합원들이 출품한 <미녀와 야수Ⅱ>를 당당히 물리치고..)

- 글쎄 너무 뜻밖이었다. 나는 전형적인 평조합원의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나 자신의 이야기가 이렇게 노보에까지 실리게 된다니 어리둥절하다. 지난 호에서 "지금 그 사람은…"의 연재물이 시작된다는 것과 첫 편으로 박정근 조합원에 관한 내용이 실린 것을 보기는 했다. 불과 서너 달전의 일들을 파업이 끝난 이후 거의 잊고 있었는데 그것 보니 옛날 생각이 나고 감개무량하였다. 그런데 나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니 당혹스럽다. 내게 그럴 만한 의미가 있는지 주저된다.

그날 그때 그 그림에 대하여 묻는 필자의 질문에 손노식 조합원은 말머리를 돌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금 그 사람은…"의 기획의도와 인물 선정 경위를 재삼 설명한다. 일반 조합원들의 진솔한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자는 것이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다. 특정인에 대한 미화나 과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파업 투쟁 끝났어도 파업 정신 잊지 말자"는 교훈을 구체적으로 환기(喚起)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손노식 조합원이 그린 그 포스터는 지금도 조합원들의 기억에 새롭다. 게다가 손조합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손노식 조합원은 전형적인 평조합원, 보통 조합원이 아닌가.……그제서야 그는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 그때 함께 앉아 있던 기술부문 조합원들이 종이와 필기구를 전달하며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였다. 얼떨결에 그것들을 받아들게 되었는데 아마도 내가 그동안 기술인협회에서 발행하는 회보의 만평같은 것을 가끔 그렸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려 나갔다. 한 5분쯤 걸렸을까.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소재로 한 것은 그때 한참 그 노래가 뜨고 있었기 때문인데, <여러분의 인기가요>나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보았던 그들의 동작을 머리 속에서 생각하며 나름대로 구도를 잡아 보았다. 3명으로 이루어지는 삼각형구도는 완전함, 안정감을 주는 단단한 구도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단결을 통하여 승리에 이르자는 뜻을 그렇게 표현해 보았다. 맨 왼쪽의 사람(양현석?)이 팔짱을 낀 것은 굳센 단결을, 맨 오른쪽 사람(이주노?)의 내지르고 있는 주먹은 강렬한 힘을, 그리고 가운데 사람(서태지?)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것은 글자 그대로 승리를 뜻한다. 머리 위에 빛나는 것은 스튜디오 조명등을 그린 것이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노조가 지향해야 될 이상(理想), 파업의 구심점 뭐 그런 것을 표현한 것이다.

입을 한번 열기 시작하자 청산유수와 같은 저자 직강(著者直講)이 펼쳐진다. 그의 말을 듣고 포스터를 다시 한번 본다. 막연히 인기가수의 후광에 편승하여 상업적인(?) 착상에 의해 그린 포스터인줄 알았더니 동작 하나하나, 필치와 구도 곳곳에 심오한 뜻이 어려 있다. 이쯤되면 하나의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그 짧은 시간에.

- 중고교 시절에 미술 대회 나가서 상을 몇 번 받아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펴내는 간행물의 삽화를 맡은 때도 있었다. 그림에 관해서는 평소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그 때 그런 포스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것보다도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으로서 가지고 있던 어떤 생각, 말하자면 파업이 성과있게 잘 끝나야 된다는 기대와 희망 같은 것이 머리 속에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래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본인이 말하듯 지극히 평범한 조합원인 손노식 조합원, 50일간의 MBC파업 투쟁이 지고(至高)롭고 순수한 성전(聖戰)이었음을 우리는 여기서도 발견한다. "뭉치고 뭉치면 승리한다."는 한마디로 압축되어 있는 그의 믿음에는 어떠한 계산도 회의(懷疑)도 들어있지 않다.

이같은 작품을 만들어낸 손노식 조합원, 그는 누구인가. 그림 얘기부터 하다보니 늦었지만 이제 그의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만 해 보자.

1963년생, 1987년 5월 MBC입사 그 한해 전인 1986년에 결혼을 하였고 슬하에 5살된 아들(손병욱군)이 있다. 입사 이래 영상기술부, TV제작기술부 등을 거치며 질 좋은 MBC화면을 만드는 것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노조가입은 1992년 7월 경, 입사시기에 비해 약간 늦은(?) 편이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 무언가 정서적으로 안 맞는 것도 같았고 그래서 노조 가입을 하지 않았었다. 밖에서 볼 때는 노조의 주장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것도 있었고, 추상적인 구호만 가득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파업이 시작되기 한 달 전쯤이었던 그 무렵 내가 보기에 노조가 존폐 위기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정을 보고 있자니 회사의 발전이나 건강성을 위해 노조는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갔고 그래서 미약한 힘이나마 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결정하고 가입을 했다. 소속 부서에서도 놀라고 동료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그 다음 파업에 참가하고 집회장에 나오고…했던 것은 노조원의 한사람으로서 의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명동, 남산, 연세대 등 조합차원에서 이루어진 거의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협상이 잘 안 될 때, 특히 경찰이 진입하고 많은 선배와 동료들이 구속될 때 참으로 안타가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 자신과 이웃들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 구체화되었다.소극적이고 방관적이던 내 생활태도도 바뀌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 파업에 참가하기 전, 노조에 가입하기 전엔 우리 회사에 개인주의가 팽배에 있다고 피상적으로 느꼈는데 생각 이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우리 조합원들이 파업정신을 잊지 않고 방송일에서 그리고 개인 생활에서도 이를 실천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손노식 조합원은 파업 이후 그런 점에서 달라진 것은 없는가.

- 글쎄, 뭐 이런 것이 그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술을 덜 먹게 되었다. 그전에는 술을 별로 잘 먹지도 못하면서 2차, 3차 끝까지 같이 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술은 한두 잔이면 끝이다. 술취한 상태에서 함부로 말을 남발하는 것을 절제하게 되었다. 인생은 말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천하고 그 다음에 말해야 한다.

말을 마친 그는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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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3
LAST UPDATE: 2006.05.04 -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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