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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웃음속의 진지파 박정문 조합원
"일천 동지 똘똘 뭉쳐 MBC 노조 사수하자!!" 사자후를 토하는 목청, 민주의 터를 울리는 소리가 우렁차다. 그의 함성은 1층 로비 천장의 샹들리에를 흔들 정도로 당차고 거칠 것이 없다.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그의 구호가 호탕한 것은 딱히 소리때문만이 아니다. 두손을 허리 받에 맏치고 척추를 뒤로 제끼면서 반동을 주는 그의 동작 또한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그 이전에 태권도 동작을 응용한 듯한 그의 안무(?)에 사람들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기에 개구일성(開口一聲) 흐드러지게 터져 나오는 그의 함성은 조합원별 구호경연대회를 지켜보는 청중을 매료시킬 수밖에 없다.

박정문 조합원(영상국 영상제2부). 아마도 집회장의 행사프로그램의 참여만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뚜렷이 남은 조합원으로 그를 지목하는 것에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확신과 자부심에 찬 행동. 거리낌없이 당당한 태도. 그러면서도 순발력과 기지에 차 유머스런 일거수일투족, 더더욱 그가 '91사번으로서 파업이라고는 난생 처음 해보는'새내기'여서 그에 대해 쏠리는 애정과 친근감은 각별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박정문 조합원은 당당히 "지금 그 사람은…"의 세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사실 박정문 조합원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이유는 많다. 부문별 구호경연대회에서 "내가 나를 미워하면 난들 니가 이쁘겠냐?!"고 가요 「타타타」를 원용한 구호로 조합원의 박장대소를 유발했던 이도 그였다(비록 구호 자체는 미술·영상부문 공동제작의 산물이기는 해도).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박정문 조합원을 이토록 기억되게 하는 것은 그의 화두(話頭)다. 예컨대 파업참가 소감을 묻는 질문에 "파업이 참 재미있다. 나는 파업 체질인가 한다."라는 식으로 의표를 찌르는 응답을 하여 사람들을 경악 또는 찬탄하게 하였다. 그로부터 박정문 조합원은 '파업재미론' 혹은 '파업체질론'의 태두(泰斗)로 군림하게 되었다.

- 나는 기본적으로 인생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신명을 바쳐서 살 수 잇게 하는 그 무엇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일도 사랑도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인생은 시쳇말로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그러한 인생관(거창하지만)의 연장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파업이란 걸 하게 되었다. 막상 해 보니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파업을 통해서 조합원들을 새롭게 만나고 서로의 다른 모습들을 진솔하게 만나게 되니 그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긴 하였지만 파업의 경험 속에서 그야말로 또 다른 '재미'를 느꼈다. 내가 말하는 재미란 내가 스스로 발견하고 체험한 파업의 의의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파업체질이 따로 있나. 파업에 참가하면 파업체질이 되는 것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파업이 체질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91사번이긴 해도 그의 나이는 중후한 삼십세. 어설픈 객기로 사물을 판단할 때는 아니다. 재기발랄한 개그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에 타고난 재주가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났지만(기실 그는 입사이후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사람들을 웃겼다. 오죽하면 TV카메라맨 수습사원 박 아무개는 개그맨실로 발령이 날 것'이라는 우스개가 동기들 사이에서 돌았겠는가.) 심각할 때 심각하고 진지할 때 진지하다. 그런 그가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파악해본 MBC노조의 상황은 어떠한 것일까.

- 나는 '87학번으로 이른바 6월 항쟁의 열기가 충만해 있을 무렵에 대학(한양대 연극영화과)을 다녔다. 그 덕분에(?) 나의 대학 동기들은 대학 2학년까지 기말고사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군 제대 이후에 입학한 이른바 예비역 출신이어서 복학생들이 흔히 그렇듯 시국에 대하여 뭐 그렇게 적극적인 처지는 아니었다. 심정적으로 관심은 가지되 뒷짐을 지고 있었다고나 할까. 당시 나의 모습은 전공공부에 열정을 가진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하였다.

그런 내가 MBC에 입사하여 노조에 가입했던 것은 별다른 고민이나 주저없이 이루어진 일이다. 굳이 말한다면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정서였다고나 할까. 다만 입사전부터 MBC노조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고, 어려운 여건에서 노조를 만들어 그때까지 방송민주화활동을 해온 MBC노조에 막연한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좋아진' 시대적 상황에서 노조 가입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기들과 함께 노조 가입을 했고 그래서 파업에도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거개의 조합원과 다를 바 없다. 박정문 조합원의 소속은 미술·영상부문.1992년 가을 MBC파업의 이슈가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확보를 전면에 내건 이른바 공정방송문제였기에 일부 부문에서는 중간간부들의 "「직접 관련」도 없는데 왜 파업에 참가하느야"는 회유 반, 협박 반의 시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본질을 호도하는 이러한 논의를 박정문 조합원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내가 실지로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올바른 말은 아니다. 입사 이후에도 뉴스나 일부 프로그램에서 분명히 불공정한 방송이 이루어지는 것을 짧은 연륜이지만 상식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바로잡는 것은 회사에 도움이 되는 길이고 이를 위해 노조 차원에서 행동할 때 노조원으로서 동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옳은 일을 하는 것에 비겁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시원스럽게 응답하는 박정문 조합원. 그도 이미 결혼을 하여 슬하에 20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이름「달나무」다. 성과 이름을 연결시켜 보자. 「박달나무」그 자체이다. 박달나무처럼 옹골차고 튼튼한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어릴 적부터 고생을 꽤 한편이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되고 보니 아비로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상은 그래서 좀 교과서적인 데가 있다 . 그것은 대화가 통하는 아버지. 비겁하지 않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들 「박달나무」 녀석이 말을 배우고 철이 들어 "아버지는 그때 무엇을 했어요?" 라고 물을 때 창피하지 않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파업 때 집사람과 아이와 함께 집회장 근처에서 사진도 같이 찍곤 했는데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91년 입사 이후 약 10개월간은 영상제작 1부에서 ENG 카메라를 맡아 야외촬영을 주로 하다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영상제작 2부 소속으로서 스튜디오 카메라를 담당하고 있는 박정문 조합원, 체질적으로는 야외촬영이 더 맞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카메라맨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스튜디오 일도 중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1월 1일의 마라도 출장, 연이어 벽지 분교의 졸업식 촬영 그리고 곧장 그 뒤를 이은 오대산 촬영…등 작년 겨울 한때 출장에서 출장으로 점철되었을 때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는 박정문 조합원. 무엇 하나를 해도 그렇게 철저하게 확실하게 자신을 신바람으로 몰아붙이는 '대머리' 아저씨다. (많이 과장된 감은 있지만 입사연수교육이래 그의 별명은 대머리다. 혹시 클 대자 대머리인지는 몰라도) 파업 '재미'가 다시 사라진 이즈음 그는 무엇으로 사는가.

- 일하는 재미로 산다. 나는 근무체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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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10 -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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