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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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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특집-방송의 날 2제> 요원한 방송요람의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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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회관 설립을 제안하며
방송인의 요람이 없다.
호출부호 HL을 받은 1947년 9월 3일을 기준으로 해도 이제 한국방송의 역사는 불혹의 40세를 성큼 넘어선 45년의 연륜, 그동안 영욕과 애환이 교차하는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한발짝씩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자부하고 싶다. 그러한 한국의 방송계에 변변한 방송회관 하나 제대로 없는 것이다.
방송회관이 없다니, 초현대식 호화 빌딩의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타)이 있지 않은가. 프레스센타엔 방송위원회(위원장 고병익), 방송협회(회장 서기원)를 비롯한 방송 단체가 즐비하게 입주해 있다. 게다가 언론 연구원, 관훈클럽, 서울외신기자클럽, 대한언론인회 등 방송계 인사들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연구친목단체나 언론유관 단체가 가득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하는 반박이 대뜸 나올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옳은 지적이 아니다. 그 어떤 방송협회인을 붙잡고 얘길 걸어 보아도 한국언론회관이 언론상호간의 친목과 국제이해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건전한 언론 창달 및 국민문화 향상에 기여하는(한국언론회관 창립 목적) 기구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방송인들에게 만큼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5공화국이 언론을 순치할 목적으로 펼친 당근정책의 소산물로 일컬어지는 프레스센타. 이것의 존재는 방송광고 수수료를 '차압'하여 이른바 공익자금이라는 '비자금'을 조성하여 5공 언론정책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방송광고공사의 출현에서부터 설명해야 한다. 예술의 전당이니, 남한강 수련원이니 골프장이니 하는 정권 차원 체제강화 사업의 '공작금'을 빚어내던 방송광고공사는 중구 태평로1가 25번지 자리에 서울신문사와 건축비를 공동부담하여(총 공사비 4백 40억 중 47.9%인 2백13억원 부담) 건물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다수의 신문관련단체와 관변방송단체가 입주하여 오늘의 프레스센타가 된 것이다. 이것의 위상이 재정적으로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 정책적으로는 공보처에 예속되어 눈치를 보는 기구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진정 공익자금을 조성한 주체인 방송현업인과 방송사가 소외된 것에서 이미 한국언론회관이 방송인에 대한 그 역할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해도 좋겠다. 무엇보다 방송현업인들에 의한 직능단체의 핵심이랄 수 있는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마침내 이 건물에서 쫓겨나는(!) 것에서 한국언론회관과 방송인 간의 관계는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그러기에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타)이 방송인들과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은 분명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언론인을 대량 숙청했던 5공화국의 각별한 배려로 만들어지고 그 논리의 연장선에서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프레스센타는 정녕 방송인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방송회관과 같은 방송인의 요람에 대한 꿈마저 없을 수 없다. 방송인의 뜻에 부합되는 방송회관의 존재는 소망스러운 일이다.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방송직능단체들-기술인연합회, 아나운서연합회, 작가협회, 촬영인연합회, 성우협회, 연기자협회 등이 한 건물에 입주하여 상호 토의하고 연구하여 친목을 도모한다. 게다가 그 건물에 일정 수준의 연주소시설과 공연장, 영상기록 센타, 대소규모의 회의장 등 설비가 뒷받침된다면 내실 있는 방송회관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 좋아 불로초다. "막말로 공익자금이라는 거대한 떡을 만들어 놓고도 어엿한 방송회관 하나 짓지 못하거 더부살이를 하는 방송인들의 무능"(「프로듀서」 제38호 '언론회관과 공익자금이라는 구조악으로부터의 엑소더스')으로는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묶인 채로만 있을 것인가.
우선 유명무실한 '한국방송회관'의 복권(復權)을 생각할 수 있다. 지난 74년 KBS가 방송공사로 탈바꿈하기 전 지금의 한국방송협회가 하는 일을 하던 곳이 한국방송회관이었다. 이 기구는 KBS의 공사 발족 후 사실상 간판만 남게 되었다. 실질적인 기능은 한국방송협회로 이관되고 명목상 사단법인체제로 남았는데 지금은 임원이나 간부진 그리고 회원사까지 방송협회와 동일한 채 한국언론회관 15층 1504호라는 같은 주소에 적을 두고 있다.
이 한국방송회관에 주목을 하는 이유는 91년과 92년 두 차례에 걸쳐 방송회관 건립을 위한 공익자금 신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는 모두 기각이다.(감사원 감사에서 예산집행의 방만함을 지적받은 방송광고공사가 신규자산의 취득을 극도로 꺼린 것이 그 요인으로 알려진다. '막차'타는 사람이 당하는 비극이다) 그러나 법인 앞으로 시가 55억 상당의 땅이 있다는 점에서(마포구 신수동 국민일보 사옥 근처에 감정가 평당 7백50만원 정도의 대지 7백 40평이 있다고 함), 그리고 추진하고 있는 주체가 있다는 점에서(한국방송협회) 그나마 현실성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반면 공익자금의 지원(즉 공보처의 정치적·정책적 결정)이 있지 않고서는 현 보유 대지로는 적정규모(대지 1천5백평, 연건평 8천평, 건축비 4백∼5백억 예상)의 건물 건립이 힘들고, 추진 주체가 범방송계의 공감과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 있다. 방송현업인들로서는 방송회관의 물리적 건물보다는 친목과 연구의 장으로 승화되는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허울좋은 방송개발원의 전철을 밟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현실적인 선택의 여지는 더욱 줄어든다. 방송환경의 급변 속에서 회원사들의 출자를 기대할 수도 없다.(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게다가 세법상 까다로운 점이 많다고 한다) 5% 임금인상에 묶인 방송현업인들의 박봉에서 성금을 우려낼 것인가.
KBS 별관 매각설이 있던데 그 건물을 방송회관으로 쓴다면, MBC 일산 이동설이 있던데 그걸 경우 지금 MBC 사옥을 방송회관으로 쓴다면… 쓰잘데 없는 백일몽이 찾아든다. 방송인의 자발적인 화합과 백화제방의 난상토론이 무르익는 방송회관의 꿈은 요원한 것인가. 방송문화의 저변이 두텁고 가멸차게 살찌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그래서 힘든 일이 '방송회관' 뿐이랴.
1992. 9. 1 프로듀서연합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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