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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날치기, 한보, 황장엽, 이한영...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이즈음의 대한민국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날치기 노동법, 안기부법 통과로 풍파를 일으켜 급기야 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벌어지더니 미증유의 한보사태로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깃털론, 몸체론에 일파만파가 어디로 튈지 몰라 삐걱거리던 국면은 때마침(?) 터져 나온 황장엽 비서 망명사태로 그림이 바뀐 뒤 한껏 달아올랐고 뒤이은 이한영씨 피살 사건은 가히 화룡점정의 끝내기인 것만 같다.

날치기, 파업, 한보, 황장엽, 이한영……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대소사건에 국민들은 그저TV와 신문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우리 언론의 조급증과 선정성, 그리고 건망증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죽끓듯 하는 냄비주의는 하이에나 저널리즘과 함께 우리언론을 규정하는 양대 정의(庭儀)가 되었다. 마치 시나리오를 짜놓고 벌이는 판세처럼 이것이 시작되면 저것, 저것이 너무 커지면 요것, 그 다음엔 조것…. 국민들을 자동인형처럼 잘도 부린다.

그 와중에 날치기의 본질적 잘못이 무엇인지, 안기부법·노동법의 개악성이 무엇인지, 노동자 파업의 불가피성이 어디에 있는지…와 같은 내용을 추적하는 진지한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단군이래 최대의 권력형 부패라는 한보사태 또한 음모론과 각본설의 무수한 설만 오갈 뿐이고 그조차도 북풍바람에 날아갈 지경이다. 이한영사건에서 초동수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언론은 그 자신이 자행한 초동보도의 오류는 느끼지도 못하는 것일까.

우리 언론이 무소불위의 능력으로 그 모든 사안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알아내고 엄정한 비판의 칼을 가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총체적 부조리의 한국에서 언론만이 독야청청 할 것을 기대할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가 국민들을 원격조종하려 할 때 또는 그런 의구심이 들 때 국면전화의 도구로 쓰이지 않으려는 경계만큼은 치열하게 해주기 바란다. 그것도 못하면 우리는 언론을 언론으로 부를 수 없다. 또 무엇으로 이 국면이 바뀔지 겁부터 난다.

1997년 2월 20일 프로듀서연합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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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4.09 -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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