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민주화 발자취>무장군인 고려대 난입 사건(한국일보)
이      름: 노르웨이숲
작성일자: 2003.09.29 - 22:38
<민주화 발자취>

"부패 3원흉" 대자보가 촉발…새벽 학생5명 연행


<12>무장군인 고려대 난입 사건

1971년 10월 5일 새벽 1시 30분쯤 군용 짚차 1대와 트럭 3대가 고려대학에 난입, 총학생회관 4층에 머무르고 있던 재학생 5명을 중구 필동 수도경비사령부로 연행했다.
연행된 학생은 윤재근(尹在根ㆍ국문과3ㆍ현 학원강사) 함상근(咸相根ㆍ법학과3ㆍ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사무총장) 강승규(교육학과3ㆍ현 우석대학 교수) 정승옥(丁承鈺ㆍ불문학과3ㆍ현 강원대 교수) 심강일(교육학과2ㆍ현 학원강사)이었다. 이들은 고대 이념서클 ‘한맥회’ 간부들이었다. 군인들은 수경사 제5헌병대 소속으로 최모 소령이 그들을 인솔했다.

이후락ㆍ윤필용ㆍ박종규 실명 처음으로 거론
수경사, 이념서클 한맥회 간부5명 기습연행


새벽에 학교측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받은 김상협(金相浹) 고대 총장은 즉각 ‘강력한 항의의 뜻’을 요로를 통해 전달했다. 수경사 제5헌병대는 오전 6시쯤 학생들을 김 총장 집으로 데려가 직접 인계했다.

이 자리서 학생들을 데려온 모 대령은 “학생들이 저희 사령관을 모욕하는 벽보(대자보)를 붙인데 대해 격분, 부하들이 상관의 명령 없이 학생들을 연행하러 학교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10월 4일 고대 정문 기둥에는 “부정부패의 원흉 이후락 윤필용 박종규를 처단하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고대 ‘한맥회’ 회원들이 작성한 이 대자보는 그동안 ‘R, Y, B’라든지 ‘3 원흉’ 등 익명으로 씌어졌으나 이날 처음으로 실명이 거론됐다. 또 교내 곳곳에 게시되던 것이 교문 바깥쪽으로 나붙었다.

이 사건은 대학가는 물론 정치권에까지 큰 파문을 던졌다. 8일 민관식(閔寬植) 문교장관은 유재흥(劉載興) 국방장관에게 항의서를 전달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이에 윤필용(尹泌鏞) 수도경비사령관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경비사 군인들이 저지른 사건”이라며 “현재 육군 범죄수사대에 의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또 수경사는 7일 오후부터 제5헌병대 대원 전원에게 금족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8일 국회는 야당인 신민당 의원들의 요구로 국방위원회를 열었다. 이날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이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뤄졌다. 대학생들은 “국방 위한 군인이냐, 학생 잡는 군인이냐”는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가두진출을 시도하며 경찰과 격렬한 투석전을 벌였다.

11일 국방장관은 문교장관에게 사과문을 보내고 주모자급 군인들의 처벌을 다짐했다. 14일 신민당은 자체 진상조사단 만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군의 대학 난입에 관한 의견을 묻는 질의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 다음날 아침 위수령이 발표됐다.

<10월 8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ㆍ요약>


▦국방장관=10월 5일 새벽 1시 10분 수경사 제5헌병대 소령 최○○ 이하 22명이 사령부를 출발, 고려대에서 학생 5명을 연행해 왔다. 원인은 학생들이 현역 교관의 화형식을 갖는 등 교련을 맡고 있는 장교들을 모욕했기 때문이다.

특히 9월 30일 고려대에서 교련복 화형식을 하고, 이후락(李厚洛ㆍ중앙정보부장) 윤필용(수도경비사령관) 박종규(朴鍾圭ㆍ대통령경호실장) 등 현역 장교의 이름을 벽보로 붙여 고의적으로 모욕함으로써 장병들이 격분했다.

수경사 참모장 손○○ 대령과 제5헌병대장 지○○ 대령이 서울시 경찰국장을 방문해 명예훼손죄로 조치해 달라고 구두로 요구 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한맥회에 있는 5명이 학교 안에서 기거하고 밖에 나오지 않아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10월 4일 다시 이 같은 벽보가 나붙었다.

이튿날 새벽 일부 장교가 대학 수위실에서 열쇠를 받아 들어가 학생들을 연행해 왔다. 당시 학생들은 학생회관에서 술을 마시고 잡담을 하고 있었다. 2시 40분 수경사에 동행해 왔다. 사령관과 참모총장, 나는 전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새벽 4시 반쯤 전화로 보고를 받았다.

나는 잘못했음을 지적하고 학생들을 학교에 돌려주라고 했고, 6시에 고대 총장 자택에 가서 이들을 인계했다. 10시경 고대 학생처장과 학생과장이 수경사를 방문, 학생 중 한명이 쓴 사과문을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군인들의 행동은 군기위반인 만큼 이들을 영내에 감금하고, 육군헌병감을 시켜 조사케 했으며, 응분의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

김상협 고대총장 강력항의에 당일아침 풀어줘
전국 대학 규탄시위…위수령 발표로 이어져


▦국방위원=군 정보부 차가 매일 대학 안에 주차하며 동향을 살피고 있다. 그러다가 군인이 플記?빼들고 학생과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이 일로 학생은 퇴학처분을 받았으나 그 군인에 대한 조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5일 새벽 군인들이 정식으로 무장한 채 정문 수위를 위협하고 일부는 담을 넘어 들어왔다. 또 학생 5명을 데려가 쇠뭉치로 무수히 구타했다. 총장 댁으로 돌아온 학생들을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화가 난다고 중견 장교들이 집단적으로 이럴 수 있는가. 과잉충성에 의한 테러임이 분명하다.

▦국방장관=군이 학원에 들어가 학생을 연행한 것은 잘못이다. 우선 전화로 문교당국에 사과했다. 하지만 학생들도 사과문에서 ‘애국심에 불타서 그랬다. 청렴결백한 사령관님을 모르고 벽보를 붙인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국방위원=군이 무슨 수사권 체포권 연행권이 있느냐. 다른 사건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학생의 감정에는 어떻게 그리 신속히 대응하는가. 수경사는 걸핏하면 행정부의 일을 대행하고 있다. 시경국장에게 의뢰를 했다면 두번 세번 촉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개 회의라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정치인에 대한 테러도 부지기수다. 정치 테러 부대를 없애야 한다.

▦국방장관=군의 정치적 테러를 발본색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2시간 32분간 진행)


정병진 편집위원 bjjung@hk.co.kr


입력시간 : 2003/07/10 1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