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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노르웨이숲
Subject   <민주화 발자취>학원침투 간첩단 'NH회' 사건(한국일보)
<민주화 발자취>

<16> 학원침투 간첩단 'NH회' 사건

유신 이후 첫 대학공안사건…'한맥회' 뿌리뽀으려 조작

1972년 6월 22일 언론은 뜬금없이 공판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서울형사지법 합의8부는 21일 상오10시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고대노연) 사무국장 김낙중(金洛中ㆍ38)이 중심이 된 NH회의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첫 공판을 열고, 관련 피고인 11명에 대한 사실심리를 시작했다.
피고인들은 지난 5월 24일 국가보안법 반공법 내란선동ㆍ음모 등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구속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낙중은 55년 6월 월북, 약 1년간 간첩교육을 받고 남하, 고대 서클인 한맥회 회원을 포섭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다. 북괴의 지령에 따라 ‘NH회’라는 지하서클을 조직, 정부를 비방하는 유인물 ‘민우지’를 제작하여 뿌렸다”는 것이다.

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과업 착수’ 특별선언으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다. 국회가 해산되고, 대학 휴교, 언론 검열 등이 시행됐다. 12월 23일 박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새 대통령으로 뽑혔다. ‘10월 유신’은 위수령(71년)으로 서리를 맞은 대학가를 꽁꽁 얼어 붙게 만들었다.

NH회 사건은 유신 이후 첫 대학 공안사건이었다. 그것은 고대 이념서클 ‘한맥회’의 뿌리를 뽑기 위해 기획됐다. 한맥회는 위수령과 함께 해체됐으나 구성원들은 유신체제의 허구성을 알리기 위해 ‘민우’라는 유인물을 새로 만들었다. 10월 유신을 비판하면서 군사정권의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하는 것으로 처음엔 공단 주변에 뿌려졌다.

특별선언 직후 72년 12월 초 고대 정문에 ‘한국적 민주주의 이 땅에 뿌리 박자’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누군가 이를 불태워 버린 일이 있었다. 이듬해 3월 개학과 동시에 유인물 ‘민우’가 학내에 살포됐다. 현수막 소각과 유인물 배포 사건의 주범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중정은 전 한맥회 회장과 재학생 회원들을 검거했다.

유신을 논의ㆍ반대하는 자를 처벌하는 긴급조치가 생기기 전이었던만큼 이들을 엄벌하려면 ‘학생들이 북괴의 지령을 받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이들과 북괴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18년 전에 월북한 전과가 있는 김낙중씨가 고대노연 사무국장을 하고 있음에 착안한 중정은 거기서 고리를 발견했다.

한맥회 회원들이 방학에 강원 도계탄광으로 현장실습을 가면서 김낙중 노연 사무국장의 조언을 받았던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노연 관계자 2명, 탄광 관계자 1명, 학생 8명(제적생 포함)으로 이뤄진 학원 침투 간첩단이 형성됐다. 3월부터 학생들이 검거됐고, 5월에 김낙중씨가 끌려갔다.

수사 도중 ‘NH회’라는 지하조직의 이름도 만들어졌다. 한맥회는 회보 ‘한맥’을 발간하면서 제호 아래 ‘우리는 휴머니즘과 민족주의를 추구한다’는 모토를 항상 기재했다. 이 모토는 유인물 ‘민우’에도 이어졌다. 중정은 한맥회의 부활을 추구하는 학생들에게 휴머니즘(Humanism)과 민족주의(Nationalism)의 이니셜을 따서 ‘NH회’라는 멋들어진 조직을 만들어 주었다.

위수령으로 제적돼 도피생활을 하다 NH회 사건으로 징역5년을 선고받고 78년 5월 출소한 함상근(咸相根ㆍ53ㆍ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사무총장)씨의 증언. “위수령 이후 제적자 명단에 포함됐고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구로공단 주변에 방을 얻었다. 전태일 분신(70.11.13) 이후 휴학하고 공단에 (위장)취업한 친구와 후배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과 만나 근로자 야학을 시작했다. 한맥회 전 간부들이 모여 노동자를 위한 유인물을 만들었다. 민중의 벗, ‘민우(民友)’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맥회의 모토는 당연히 ‘민우’의 그것이었다.

노동문제 관련 자료를 접하기 위해 종종 노연에 들렀으며, 자연스럽게 김낙중 사무국장을 만나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73년 3월 30일 낮 국립도서관(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 ‘너 함상근이지.’

중정 남산 분실로 끌려갔다. 그들은 다짜고짜 양말을 벗기더니 발가락을 뒤집었다. 동상 자국을 찾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잠적한 동안 월북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번 겨울에 산을 타고 남하했으니 틀림없이 발가락에 동상 흔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던 것이다.

월북 하지 않았음을 한 그들은 ‘남파간첩과 접선한 사실을 불어라’ ‘북괴의 국내 세포조직을 대라’며 별별 고문을 다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2주일 정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4월 중순께 그들은 나를 경찰병원으로 끌고 가 억지로 링거 주사를 꽂았다. 4월 19일 다시 남산 대공분실로 왔다.

후배들도 銖舛?있었다. ‘왜 한맥회를 부활시키려 하느냐, 왜 유인물을 만들었느냐’는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 때 ‘NH회’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18년 전에 월북한 경험이 있는 김낙중씨와 NH회라는 새로운 지하조직을 엮어 ‘학원 침투 간첩단’이 조성된 것이다.”

정병진 편집위원 bjjung@hk.co.kr

입력시간 : 2003/08/2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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