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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록 민주화 운동] 질풍노도, 승리를 거머쥐다
[실록민주화운동]질풍노도, 승리를 거머쥐다


때로 그 어떤 수사(修辭)도 거부한 기록이 그 자체로 세인의 가슴을 폭풍처럼 뒤흔든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은 1936년 파시스트 반란군에 맞서 공화국 정부를 수호하기 위한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한다. 2년 후 그는 자신의 참전 경험을 토대로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보고문학작품을 발표한다. 이는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함께 참전했던 앙드레 말로의 소설 ‘희망’,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더불어 20세기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최초의 전쟁을 생생하게 고발한 것으로 역사에 남았다.


우리에게는 광주항쟁을 기록한 보고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죽음을’)가 있다. 1985년 이 책의 출간이 가져온 후폭풍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재야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광주항쟁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시위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광주는 이제 지하에서만 은밀하게 회자되는 은어가 아니었다. 러시아혁명을 다룬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십일간’이나 중국혁명을 다룬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이 그러했듯이, ‘죽음을’도 바야흐로 한국 현대사를 새로 쓰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렇다, 5월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광주의 5월은 비극적 참사가 아니라 전 민족의 환희의 광장으로 나서는 출발점이며, 우리는 그 5월을 기념비나 신화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신화의 지평 위에 새로운 행동의 실천을 뿌리내려야 하며, 그런 뒤에야 죽은 이들의 피에 값하게 될 것이다. 정든 사람들, 빛나는 고향, 따사로운 이웃간의 피어린 사랑이 꽃 피었던 그 5월을 이제는 한반도의 곳곳에 되돌려주어야 한다. 광주의 5월항쟁을 운동선상의 정점이나 추억으로 축소시키지 말고 80년대 민족운동의 지평으로서 온몸으로 드러내는 일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책머리에서 소설가 황석영은 지은이가 아니라 ‘기록자’로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황석영 기록’으로 돼 있는 이 책의 실제 지은이는 누구일까?


85년 봄, 광주에서 올라온 두 명의 젊은이가 원고 뭉치를 들고 풀빛출판사 대표 나병식을 찾았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출판을 제의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이미 사형 선고까지 받은 바 있는 나병식은 쾌히 수락했다. 그 책의 발간이 지니는 의미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소설가 황석영을 찾아 글을 다듬어달라고 부탁했다. 원고를 들여다 본 황석영도 흔쾌히 동의했다. 나병식과 황석영은 너무 격정적인 그 초고를 좀더 ‘드라이’하게, 좀더 ‘객관적’으로 서술할 필요가 있다는 데도 합의했다.


원고가 확정되자 이번에는 서울 북아현동 풀빛출판사의 문을 걸어 잠그다시피 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육체적인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항쟁의 진실 그 자체였다. 편집부원들은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건 그야말로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이었다. 이렇게 책은 인쇄와 제본 과정으로 넘어갔다.


5월15일, 나병식은 집에 있다가 경찰의 습격을 받아 서울 중부경찰서로 끌려갔다.


“아니, 간도 크지? 이렇게 시뻘건 책을 만들어 어쩌자는 거야?”


그들은 나병식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는, 예를 들어 “엄연히 대한민국의 정부군(국군)이 있는데 시민군이라니!” “폭력으로 광주를 해방시킨다니, 그거 북괴하고 똑같은 생각 아냐?” 하는 식이었다. 나병식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소. 국가보안법으로 걸테면 거시오. 대신 재판에 가면 증인을 부르겠소. 당신들 말대로 당시 정부군의 대표였던 전두환 하고 시민군 대표를 함께 증인으로 부를 거요.”


경찰 관계자들은 경악했다. 그 즉시 여기저기 상부에 전화를 걸어보고 난리수선을 피웠다. 얼마 후 그들은 절묘한 타협책을 내놓았다.


“정식 재판까지 안 가도 될 것 같네. 즉심에서도 몰수형을 내릴 수 있대.”


나병식은 결국 즉심에 회부돼 구류 10일을 받고 제본 중이던 책 2만권을 전량 압수당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의 무시무시한 법망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런 사단이 있었지만, 며칠 후 국민들은 광주항쟁의 진실을 최초로 집대성한 ‘죽음을’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대학가의 이념 서점들은 삼엄한 감시의 눈을 피해 그 책들을 대량으로 유포시켰다. 경찰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다 빼앗았다고 생각한 책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것은 나병식의 철두철미한 준비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미리 지형(책을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인쇄용 판)을 두 벌 떠놓아 한 벌은 압수당했지만 다른 한 벌을 예비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정식 인쇄소에는 이미 당국의 손이 다 뻗어 있는 상태였다. 나병식은 할 수 없이 마스터(일종의 간이인쇄)를 떠서 책을 찍어야 했다. 마스터 인쇄로는 한꺼번에 많은 책을 찍어낼 수 없었고 품질도 훨씬 떨어졌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쯤은 책이 지니는 의의와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당초 이 책의 초고를 서울로 가져온 사람은 광주의 운동권 정용화·이재의였다. 그러나 자료 수집과 정리 과정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시민군 출신 전용호의 기억에 따르면, 항쟁 이후 자료 수집은 크게 두 쪽에서 진행됐다. 한쪽은 주로 기독교 관계 단체 일을 보던 조봉훈 쪽, 다른 한쪽은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이 한때 주도하던 현대문화연구소 쪽이었다. 나중에 광주의 운동권은 이런 작업들을 하나로 통합해 출판할 것을 결의하는데, 지역운동단체의 연합체인 전남사회운동협의회를 출판의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는 황석영도, 전남사회운동협의회도, 정용화와 이재의도 아니다. 광주항쟁에 참가한 무수한 사람들이 지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수많은 국민들에게 읽혀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책이 인생을 바꾼 경우도 수두룩했다. 85년 안기부가 발표한 이른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세계 최연소 무기수’ ‘한국의 대표적 양심수’로 불리기도 했던 강용주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고교 선배에게 ‘죽음을’을 비롯한 책자들을 빌려준 것이 화근이 된 경우였다.


아무튼 광주항쟁은 이 책을 통해 정부당국의 끊임없는 거짓 선전에 속수무책이던 전국민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서, 그러나 그 때문에라도 반드시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결의의 진원으로서 새삼 기억되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이 마침내 역사를 바꾼 것이다.


- 대학가의 필독서 베스트셀러 금서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사실상 출판금지가 풀릴 때까지 6만부가량이 팔렸다. 재야와 대학가에서 은밀하게 복사판이 나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금서’로서는 베스트셀러였던 셈이다.


이 책은 1980년 5월18일부터 10일간의 광주항쟁을 시간대별로 생생하게 담았다. 특히 당시 시민들의 증언과 군 상황보고서 등 각종 자료를 분석해 신군부의 권력장악 음모를 낱낱이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망·부상·구속자 1,300여명의 명단도 책에 담아 이들을 기렸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전계량 대표는 발간사에서 “채 정리하지 못한 그날의 사건과 기록들은 다음의 일로 넘긴다”고 밝혔다.


이후 ‘풀빛’은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 ‘5·18 그 삶과 죽음의 기록’ 등 광주항쟁 관련서 10여권을 더 펴냈다. 87년 ‘한국민중사 사건’ 등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던 나병식은 정계에 입문했으나 16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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