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이제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때... 「PD수첩」 '조총련의 오늘'  제작기
이      름: 정길화
작성일자: 2002.03.20 - 11:24
직접 제작에 참여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힘듬'을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난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애쓰고 있는 제작인 들을 위한 난입니다. 이 달에는 'PD 수첩'에서 광복 50주년 특집으로 제작된 '조총련의 오늘'의 제작기입니다.<편집자주>

"당신들, 왜 그렇게 조총련을 미화(美化)하는 거야. 조총련은 빨갱이 아닌가. 그런데 걔들 잘 하는 거를 왜 보여줘!"

"이거 보슈. 조총련이 그런 거는 그렇다 치구, 민단이나 한국정부에서 재일동포들에게 해 주는 게 없다는데 그 얘기는 왜 안 하는 거유. 'PD 수첩'이라면 민단이 잘 못하는 것을 심층취재해야 될 거 아니요?"

"냉전식 사고를 못 벗어났구만, 교묘하게 조총련을 매도하고 있는데 말이지, 자꾸 그런 식으로 보도해서 조총련을 고립시키면 되겠어요?"…….

지난 8월 8일 밤 11시 광복 50주년 특집 'PD수첩-조총련의 오늘'이 방송됐을 때 우리 시청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프로그램이 나가고 있을 때 필자는 회사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사무실 전화통을 울린 수십 통의 전화는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예의 '반국가단체 미화 시비'가 60퍼센트, '민단 심층취재 요구'가 20퍼센트, '냉전식 사고로 조총련 매도'가 10퍼센트쯤에 해당되었다.

동일한 물건을 놓고 사람들은 자기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파악한다. 프로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또 하나의 세계와 만나는 것과 같다 할 때, 프로듀서는 프로그램을 매개로 텔레비전을 보는 시청자 한사람 한사람의 각기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것이니 서로 다른 평가를 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미화시비'에서 '매도시비'에 이르는 극과 극의 상반된 평가는 필자를 사뭇 당혹스럽게 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이것은 그동안 조총련의 실체가 어떻게 우리들에게 인식돼왔는지를 반영하는 단면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빨갱이 집단'에서 '재일동포를 위한 생활공동체'까지 조총련을 규정하는 평가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지만, 주로 우리들이 알고 있던 조총련의 면모는 전자쪽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광복 50주년 특집으로 '조총련의 오늘'을 준비하던 필자 또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상식적 수준을 넘지 않는다. 전후세대로서 반공교육을 착실히 받아 온 사상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그래서 '미화시비'에는 당황스러움과 야속함을, 그리고 '매도시비'에는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총련의 현실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그들의 성과가 있다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비판한다. 기본적으로 재일동포사회에서 조총련이 왜 존재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약세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한 때 재일동포 중 상당수가 조총련계였던 배경은 무엇인지를 따져본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총련과 민단의 대립적 구도가 아닌 재일동포의 문제로 조총련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이것이 'PD수첩-조총련의 오늘'을 준비한 필자의 입장이었다. 과연 8월 8일 밤의 프로그램이 여기에 충실했는지는 시청자들이 판단할 부분이다. 무릇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방송 이후의 이 같은 '저자직강(?)'은 어쩌면 PD의 변명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미화시비'로 필자를 곤욕스럽게 한 시청자들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프로그램에서는 조총련이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내세우는 민족학교의 민족교육이나 상공인회의 경제지원활동 등이 소상히 소개됐었다. 우리말, 우리글을 3,4세 재일동포 학생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치고, 주로 자영업자일 수밖에 없는 동포 상공인들을 위해 세무회계처리, 융자 등을 조치해주는 내용들이 취재됐었는데 조총련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런 부분이 거북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조총련이 그와 같은 활동을 통해 일본땅에서 차별을 받고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지금 남아있는 조총련계 동포들은 대부분 어떤 방식으로든 조총련 조직과 연계돼 있고 그들끼리 '독특한 방식'으로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조총련이 민족성을 볼모로 하면서(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일본내의 작은 공화국으로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조총련 조직의 속성을 진단하기도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그들의 민족교육이 사실상 북한의 교과과정을 바탕으로 한 사상교육, 이념교육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학생수의 감소가 이런 교육의 편향성과 무관하지 않고 최근 초·중급학교의 교과서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도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 것이라는 부분도 짚고 넘어갔다. 이를 위해 필자는 그들의 개정된 교과서를 입수해 김일성으로 도배된 70년대의 조총련 교과서와 직접 대비하면서 분석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매도시비'를 한 시청자들은 이런 점들이 못마땅했던 것일까.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지적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성숙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은 프로그램의 완성도 문제인가, 시청자들의 균형성 문제인가….

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났지만 오사카 지역을 제외하고는 취재가 쉽지 않았다. 북송교포의 인권 문제로 일본내에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북송선 출발지 니가타는 물론, 한덕수 의장 후계문제로 알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도쿄에서도 중앙본부, 조선대학들에 대한 취재진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몰래카메라와 같은 고전적 수법이 동원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언론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피해의식을 엿볼 수 있었지만 조총련의 폐쇄성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오사카지역에서 민족학교나 상공인회, 조선은행 등이 취재된 것은 정말 기대이상의 수확이었다. 물론 공식적 취재에서 오는 그 나름의 한계가 또 있었지만 어떻든 국내 최초로 카메라를 정식으로 들이댄 것의 성과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오사카 지역이 이례적으로 취재에 협조적이었던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 정확한 배경을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조총련의 변화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일종의 '선전술'로 보는 측면이 있지만 "해방 50년을 맞아 호상간의 이해증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오사카 지역 조총련 관계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다. 방송된 'PD수첩-조총련의 오늘'을 만약 그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미상불 궁금하다.

일제 식민지배와 분단조국이라는 광복 50년의 역사적 현실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는 재일동포 사회. 그 중에서도 조총련의 현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민단 동포든, 조총련 동포든 일본내의 민족차별과 동화정책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인(또는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의 위기가 거론되는 이 시점에서 조총련 문제를 재일동포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프로그램에서의 결론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월간 방송과 시청자 1995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