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서울대 인터넷 뉴스 인터뷰
이      름: 정글화
홈페이지: http://jungpd.co.kr
작성일자: 2005.05.25 - 20:46
증언을 통해 재조명되는 한국 현대사
<이제는 말할…> 정길화PD에게 듣는 '이제는 들을 수 있다'

2005년 05월 15일   박정준

과거사 청산법이 국회에서 진통을 겪고, 친일과 독재 잔재 청산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높다. 하지만 빈약한 역사자료는 올바른 한국 현대사의 재정립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MBC의 역사증언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담은 당사자들의 증언은 현대사의 기초자료일 것이다. 스누나우는 지난 몇 년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CP(책임프로듀서)를 맡다가 현재는 홍보심의국장으로 있는 정길화 피디를 만나보았다. 정길화 피디는 오래도록 다시 역사 쓰기를 했던 피디로서 최근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영상사회학> 수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 정길화 PD는

1984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정길화 피디는, 그동안 <인간시대>, <피디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네껜> 등을 연출했으며, 통일언론상, 한국청년대상, 한국언론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들로는 <거꾸로 선 세상에도 카메라는 돌아간다>, <3인 3색 중국기> 등을 집필했다.
 



승자와 강자에 의해 재단되어온 역사의 복원

스누나우|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동안 한국현대사에서 묻혀지며 왜곡된 성역을 과감하게 건드리는 성과를 올려왔다. 그럼으로써 새로 쓰는 현대사, 혹은 지배층 위주의 역사에서 저만치 비켜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추구했던 가치는 어떤 것이었나.

정길화| 무엇보다 역사의 복원을 추구했다. 승자와 강자에 의해 재단되어온 역사의 뒤편에 침묵을 강요당해온 사람들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마침내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탓에 편파성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비난 앞에서, 수 십 년간 일방적인 한 쪽의 말만으로 기록된 제도권 역사의 누적된 편파성에 대한 지적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 © imbc.com



스누나우|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면 세대론적인 관점에서, 특히 이른바 '386'의 상처와 희망이 동시에 포개져 있는 것 같다. 1980년대 대학과 노동현장에서 사회변혁을 위해 애쓴 사람들의 소박한 꿈과 좌절이 비일비재하게 그려지는데,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도 똑같은 세대에 속하기에 가능한 것인가.

정길화| 아무래도 무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소설가도 자신이 자세히 알고 치열하게 겪은 체험을 중심으로 작품을 쓰기 마련이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피디들이 소위 475, 386세대인 바, 그들이 직접 목도한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다루고 싶었을 테다. 그 가운데는 역사의 현장에 치열하게 동참한 사람들도 있었고, 직접적인 투쟁의 현장에서 비켜서 있는 이들도 섞여 있다. 하지만 동시대의 진실을 끈질기게 찾고자 하는 의지만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입사 시에는 제도권 방송사에 입사한다는 점이 흔쾌히 받아들여지지만은 않았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무임승차한 격으로, 방송민주화 운동이 봇물 터지듯 불타올랐다. 당시 방송인들은 떳떳하게 말해야할 때 침묵을 고수했던 부끄러움을 떨쳐야 한다는 자의식 어린 고민이 짙었다. 노조활동이나 제작 거부를 비롯한 파업에 동참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정력적으로 만들어나갔다. '피디수첩'이나 '추적60분', '다큐멘터리극장'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마침내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나올 수 있었던 밑바탕이 생성됐다고 생각한다.


구술사는 진실을 향한 시행착오이자 1차적인 자료 수집  

스누나우|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면 많은 부분이 인터뷰로 채워지는데 인터뷰 섭외는 어떻게 하는가.

 
▲정길화 피디 © 스누나우
정길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이 언급하는 것처럼 '증언 프로그램'이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하는 것이 급선무다. 섭외에 앞서 집요한 자료조사를 통해, 해당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은 뒤 생존유무를 확인한다. 만일 생존해 있을 시에는 반복해서 설득하고 사정하는 수밖에 없다. 삼고초려도 불사한다. 프로그램이 오래 되다 보니 나름대로 신뢰감이 축적된 편이어서 덕을 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편견 때문에 인터뷰 섭외가 더욱 난관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최우선으로는 사건의 직접 당사자를 찾고, 만일 그가 이미 죽었을 경우 가까운 관련자들을 차선책으로 찾으며 역사를 복원해나간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시대와 당시 사건의 대표자로서 대표성과 전형성과 신뢰성을 어느 정도 갖추었는지 치밀하게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오류의 가능성과 한계가 당연히 나올 수 있다. 일종의 구술사인 만큼 갈수록 점점 더 촘촘해지는 진실에의 접근을 향한 시행착오이자 1차적인 자료수집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공론화의 단초가 조성될 수도 있고 의제화가 될 수 있는 계기로 흐를 수도 있다. 양적이고 기능적인 편파성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는 있지만, 역사적 편파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스누나우| 첨예한 논쟁이 붙을 수 있는 현대사를 다루다보니 외압뿐만 아니라, 오보나 명예훼손의 시비도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정길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과 관련된 시비는 종종 있었지만,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오보는 아직껏 없었다. 제작진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노력도 컸지만,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진 반증이라고 본다.

피해자들이 한 맺힌 증언을 고통스럽게 끄집어내는 것과 비교해서, 가해자들의 경우 삶의 양태가 더욱 복잡다단하다. 평생 자신의 삶이나 행위가 올바르다고 맹신하며 살아왔던 이른바 '확신범'들의 경우, 잘못을 인정한 이후 한 평생의 삶이 카오스에 빠지면서 인격적 파멸이 뒤따르기에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는 경우가 극히 희박하다.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대의명분에서 행동했기에, 살인이나 학살 같은 반인륜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곡된 가치의 신념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한다는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들 역시 일종의 시대의 피해자라고 본다.        


스누나우| 가장 기억에 남은 프로그램은 무엇이었나.

정길화| 첫 방송 후 호평을 받아 모두 5차례나 방송된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가 가장 먼저 기억에 남고, 내가 만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53년 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이 생각난다. 2004년에 만들어진 「만주의 친일파」나 「중국의 6.25 참전」도 각별히 아끼는 것들이다.  


스누나우| 현재 개혁프로그램이 적다는 비판도 들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는가.

정길화| 시청자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주입식으로 일방 통행할 수는 없다. 시대정신으로 시청자들의 필요욕구를 잘 반영하는 게 좋다.  


스누나우| 바람직한 인터넷 대안언론의 위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정길화| 인터넷이 기존 올드 매체의 권위를 파괴시켰다는 점은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탈권위, 쌍방향, 동시성 등 인터넷 언론의 장점은 막강하다. 그러나 책임성, 윤리의식, 전문성 등에서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일단 두고 볼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중요한 것은 종착지가 어쩌면 그다지 "행복의 나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스누나우| 프로그램 기획 시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정길화| 새로운가, 무엇보다도 말이 되는가, 시청자가 원하는가, 어떻게 하면 쉽게 전달할 수 있는가, 오래 남을 수 없을까 등등.  


스누나우| 최근의 "김대중의 숨겨진 딸과 게이트" 사건 보도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정길화| 국가기관이 개입했는가, 혹은 은퇴한 정치인의 사생활인가가 쟁점인 듯하다. 전자에 관해서 명백한 실체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자를 침범했다면 그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언론은 의혹을 제기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기된 의혹은 불확실했던 반면,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침해된 사생활은 지극히 확실했다고 본다. 이 사건보도에서 얻은 것은 의혹이었던 반면, 잃은 것은 이미 은퇴한 원로정치인의 사생활 침해였다고 생각한다.


 
▲MBC에서 만난 정길화 피디. 현재는 홍보심의국 국장을 맡고있다 © 스누나우



"사람과 세계에 대해 직접 말할 수 있는게 교양PD의 매력"

스누나우| PD가 되기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많다.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정길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애정과 폭넓은 관심, 쇼맨십이 아닌 진심으로 이웃과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 무엇보다도 먼저 방송 자체를 좋아하고 방송 안에 자신을 과감히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지망하기를 바란다. 또한 신춘문예에서 입선하는 과정 없이 곧바로 출판사를 통해 등단하는 작가들도 있는 만큼, 반드시 메이저 언론사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보인다.  


스누나우| PD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길화| 문학적 감수성, 상상력, 외국어 실력, 친화력, 체력 정도를 들 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자기 일을 열정적으로 도전해서 성취욕을 발휘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명민하게 피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인다.


스누나우| 교양PD의 매력은 어떤 게 있나.

정길화| 사람과 세계에 대해 직접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피드백이 한결 빠르다.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자신의 내면이 성장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지식과 정보가 꾸준히 축적된다. 하지만 전문지식을 얻어도 후속적인 연구를 진행해서 논문을 쓰기 힘들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종결과 함께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아쉽기도 하다.    


스누나우| 언론인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정길화|사회문제를 비판한 프로그램 방영 이후 즉각적으로 반영되거나 제도화로 치닫는 경과를 지켜보거나, 내가 정성껏 만든 프로그램을 몇 년 지난 후 우연히 만난 시청자들이 기억해줄 때나, 시청자들이 시민운동으로 나아갈 때 보람을 느낀다.  

 
 

©2005 SNUnow
Updated: 2005-05-15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