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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살아남은 자들의 우울한 해프닝 - 「PD수첩」 "추적! 전두환슬라이드..." 제작기
"이거 방송 나가는 거 맞아요?"

지난 96년 7월 16일.80년대 5공 시절도 아닌. 명색이 '문민시대'를 구가하던 때의 TV 정규 방송시간에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이 전파를 타고 있었다.

"「횃불」은 나라를 크게 발전시킨 최고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의 일대기입니다. 어머니 김점분 여사는 웅덩이에서 광채를 뿜는 달덩이를 연신 치마폭에 담는 태몽을 꾸고 아들 두환이를 얻었습니다.......소위시절부터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명예를 중시해온 그는 두 번이나 월남전에 참가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인이었습니다. ...... 민족대화합의 정치를 펼친 대통령, 그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오로지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눈을 의심하실 필요는 없다. 이 황당무계한 나래이션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시의 각종 비리로 구속된 지 오래되지 않은 그 시각 대한민국 굴지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자부하는 <PD수첩>의 정규 방송시간에 나간 방송내용의 일부이다. 그것도 5공 때 전두환씨가 공식 행사장에 입장하기 직전에 흘러나오곤 했던 엘가의 <위풍당당>을 전과 다름없이 배경음악으로 깔면서......

「추적! 전두환 슬라이드 102장의 진실」은 그렇게 시작했다. 다분히 시청자들에 대한 충격요법을 염두에 두었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린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그 시점에서 슬라이드의 내용은 꽤 당혹스러웠나 보다. 사전 제작을 위해 나래이션 작업을 할 때 더빙실의 엔지니어는 고개를 한참이나 갸웃거리더니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마침내 내게 물어왔다.

"이거 <PD수첩> 맞아요? 방송 나가는 거 맞아요?"

슬라이드 의뢰인 X를 찾아라.

이처럼 지금 보면 삼척동자라도 웃을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바로 전두환 일대기 슬라이드 「횃불」이다. 이 「횃불」은 5공 시절 전두환 우상화를 목적으로 극비리에 제작되었는데, 당시 원화(原畵)를 그린 화백이 뒤늦게 이를 폭로했다는 '특종기'가 96년 7월 시사월간지 『WIN』에 실렸다.

이 기사는 전두환 일대기 슬라이드 「횃불」의 원화 102점을 공개하면서, "82년 5월 '대통령 측근'이라고만 밝힌 정체모를 사람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착수해 83년 초 원화를 완성했다. 이 그림들은 슬라이드로 제작됐는데 나레이션은 전두환 대통령 전기『황강에서 북악까지』를 쓴 작가 천금성씨가 대사를 쓰고 유명 성우 이창환, 고은정씨가 녹음했다. 슬라이드 완제품 「횃불」의 제작 목적은 교육용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퇴임 후 일해재단을 방문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상영하기 위한 용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는 원화 화가 K모씨의 증언을 폭로하고 있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소식이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더니 김일성 우상화를 뺨치는 기막힌 내용에 분노가 치밀었다. 얼른 연보(年譜)를 뒤져보니 '정체 모를 사람들'이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했다는 82년 5월은 이철희, 장영자 부부의 거액 어음사기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희대의 부패 스캔들이었고, 이는 정권의 존립을 위협하는 큰 사건이었다. 나는 내심 나름대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오호라! 통치권력이 위기에 몰리자 측근의 누군가가 국면전환용 혹은 충성과시용으로 일을 꾸몄음에 틀림없군. 그렇다면 이만한 일을 저지를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WIN』지는 기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대기 「횃불」은 그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고 진단하고,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힌 법정에 선 그의 요즘 모습을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과 망상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그림을 주문한 '대통령 측근'이 누구인지(앞으로 그를 편의상 X라 부르기로 하자), 혹은 슬라이드 완제품의 행방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말하자면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빠져 있어 특종기사로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보자(원화를 그린 화가 K씨)가 확실하고 물증(102장의 슬라이드 원화)이 확고하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WIN』지 기사의 공백을 채우는 심정으로, 마치 릴레이 주자가 바톤을 넘겨받는 기분으로 예의 '정체 모를 측근(X)' 을 추적하기로 했다.

'특종'과 '하이에나 저널리즘' 사이

통상 다른 매체에서 먼저 다뤘을 경우 여간해서는 따라붙지 않는 것이 저널리즘계의 관행이자 타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피디수첩에서 이 소재로 방송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WIN』지의 기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을 추적, 포착할 경우 또 다른 특종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고(솔직하게 말하면, 3허씨 중의 한 사람 혹은 당시의 문공부 장관, 청와대 대변인, 방송사 사장 중의 누구 하나 '걸려들'줄 알았다), 원화 슬라이드, 나래이션 등으로 구성된 '횃불'의 소재 자체가 너무도 TV적이었기 때문이다.(대본을 되살려 성우 더빙을 하고 배경음악을 넣어 재연기법으로 슬라이드 완제품을 되살리면 최소 2~3분은 그냥 먹을 수 있겠고, 난데없는 전두환 우상화 내용에 시청자들이 영문을 몰라 TV를 볼 테니 흡인력도 상당하겠지...라는 얄팍한 계산이 작용했다는 얘기)

그러나 고백하겠다. 그것만은 아니었다. 당시(지금도 그렇지만)전두환 대통령은 12.12쿠데타에 대한 단죄로 구속 재판중이었다. 5공 군사정권기에 이불 밑에서 만세 부르던 자들이 '공룡'의 시체를 확인하곤 모두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필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하이에나 저널리즘이라고 했던가. 여론에 편승해서 시체에 칼꽂는 의도가 정녕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추적! 전두환 슬라이드 102장의 진실」이란 이 아이템의 어처구니없는 결말과 연관지을 때 특히 그러하다. 두고 보시라.

「횃불」의 배후 추적은 확실하고 노출된 것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나래이션의 대본 작가로 알려진 천금성씨. 『황강에서 북악까지』로 한때 '필명'을 드높인 그는 5공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모처에서 어느 군소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슬라이드의 그림과 기사를 본 그는 대뜸 소리쳤다. " 이거 내 책을 그대로 베꼈구만." 즉「횃불」슬라이드는 자기와 관련없다는 얘기였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이런 일을 꾸며낼 사람은 허모밖에 없소. 한번 알아 보시오. 내말이 틀림없을거요."

그는 한술 더떠 당시 이런 일을 엄두라도 낼 만한 곳은 청와대, 민정당, 문공부, 정보계통 등이 있을 수 있으나, 이철희, 장영자 사건으로 권력 내부의 서열에 부침이 심했고 그만큼 암투도 치열했던 때라 공식적인 업무 분담을 초월하는 비선 조직이 가동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며 그럴듯한 정세분석까지 뒷받침해 주었다. 그의 추론은 어쩐지 비약이 심한 듯해 곧이곧대로 믿을수는 없었느나, 허모씨에 대한 검증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전두환씨의 골목길 성명때도 '꿋꿋이' 한 자리를 지켰던 허모씨와의 연락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강에서 북악까지』의 작가를 통해 핵심으로 곧바로 접근하려던 기도는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PD답게(?)「횃불」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접근해 보았다. 성우가 더빙을 하고 음악을 넣어 완제품을 만들었다면 필경 여기에도 연출자가 있었을 게 아닌가. 그 연출자는 기획자(실세?)와 자주 만나며 프로그램의 진도와 완성도를 점검하고 시사도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정체의 일단이 노출되지는 않았을까?

우선 더빙을 했다는 성우부터 찾았다. 그런데 이창완, 고은정씨 중 이창완씨는 이미 작고했다는 게 아닌가. 무언가 일이 꼬인다는 느낌을 받으며 고은정씨를 만났다. 고은정씨는 <PD수첩>의 취재에 난처해 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전연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라고 분명히 했다. "만약「횃불」슬라이드 작업을 했다면 메스껍기라도 했거나 감동을 받거나 했을텐데 그런 이미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녹음을 한 스튜디오도 어렵게 찾아냈다. 충무로의 유명했던 C스튜디오. 그러나 이곳도 그 사이 전업을 했고 은퇴한 사장은 그런 녹음을 한 기억은 나지만 누가 맡겼는지 누가 진행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미궁에 갇힌 취재

취재일자는 하루이틀 지나가는데 X의 정체에 관한 소득은 없고,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K화백은 말하기를 그림을 주문하고 진행한 사람은 3명이었고 자신들의 신분은 물론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며, 한 장면씩 글리 때마다 꼼꼼히 주문하는 메모를 수시로 보내와 자주 수정을 해야만 했다며 당시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전화번호만 하나 알려줬었고 정선생을 찾으라고 해 몇 번 내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한 적도 있다"고 얘기해 거의 기관원들 수준에서 일한 듯한 분위기를 짐짓 내비쳤다.

K화백은 그림이 끝난 후 이를 슬라이드로 찍고 원화는 합천의 전대통령 생가로 보낸 것으로 알로 있다고 덧붙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합천의 생가로 가보았다. 한때 방문객으로 들끓었던 생가는 문이 잠긴 채 비어 있었다. 전대통령의 구속에 한결같이 분개하는 생가 마을의 촌로들을 다독이며 그림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그들은 "그림 얘기는 금시초문이고 생가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을 자르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취재팀을 노려 보았다.

'앞뒤가 안 맞는다. 녹음한 성우는 누구인가. 대본작가는 누구인가. 모두 거짓말을 하고있는 걸까. 하기야 그때는 신이 나서 했더라도 지금 와서 손들고 나올 수는 없겠지, 그래도 이상하다. 원화는 어디로 갔는가. 슬라이드 완제품은 어디로 갔는가. K화백은 진실한가. 그의 말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너무도 많다. 허모씨는 왜 연락이 안 되는 걸까. 아무래도 아이템을 잘못 잡은 것 같다. 큰일이다. 오늘이 목요일인데 X의 발자국도 못 찾고 있으니......목요일이면 D-5일. 돌아갈 수도 없는 시점인 7월11일의 내 취재노트에는 미궁에 갇힌 취재 PD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즈음 허모씨와 연결이 되었다. '광야에서 삭풍을 맞고 있다.' 고 전 대통령을 엄호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바로 그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간신히 전화 취재를 했으나 결과는 낙심천만이었다. 그는 단호히 "나는 꿈에도 듣지도 못한 얘기니깐 그리 아시고. 어차피 지금 감옥에 있는 사람인데 그림 그린 게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소. 실제 그런 게 있었다고 해도 적당히 좀 하십쇼"라고 일갈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 "대통령 그림 그리면 물건이 되겠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하는 말을 덧붙였다.

허모씨가 유력한 배후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었고 보면 참으로 실망스런(?)말이었다. 나중에 생각하면 그의 발언은 '전두환 우상화 슬라이드'의 정곡을 찔렀던 셈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쪽보다는 그가 그림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다고 편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정말 그가 배후가 아닌가 하고 헛된 생각에 한때 빠져들었으니 「횃불」귀신에 단단히 씌였음에 틀림없다.

특종 시나리오가 날아가다

7월 12일 금요일, 아이템은 기로에 접어들었다. 취재는 『WIN』지 기사에 비해 더 달라진 게 없었다. K화백이 거론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연루를 부인한다는 것 정도인데. 이래 가지고서야 아이템이 성립될 수 없었다. 일단 슬라이드가 있으니 여기에 「횃불」대본을 다시 만들고 (『황강에서 북악까지』란 텍스트가 있으니까), 성우 더빙을 한 BG(배경음악)을 깔아서 「횃불」슬라이드 완제품을 재연한다. BG로는 엘가의 <위풍당당>이 제격이겠지. 그리고 지금까지 추적한 것을 부족한 대로 정리한 뒤, X 의 실체는 규명되지 않았으나 5공 당시 이런일이 벌어졌음을 극명히 부각시키면서 정통성이 취약했던 5공정권이 마침내 우상화 작업까지 동원해 권력찬탈과 폭압정치를 미화하려 했다고 비분강개한다......뭐 그렇게 가 버릴까. 아니면 이실직고하고 나자빠질까?

그러던 그때, 기적처럼 그 전화가 왔다. 전화는 뜻밖에도 전두환 일대기 「횃불」제작 당시 원화를 촬영해 슬라이드로 제작했던 교육용 문구제작업체 D 사의 김모 사장으로부터였다. 「횃불」의 배후를 알기 위해 제작과정을 정밀탐사했다는 얘기는 앞서 한 바 있다. 그 당시 슬라이드 제작업체인 D제작사 또한 수배대상이었다. 연락이 두절돼 있던 D 사가 드디어 <PD수첩>의 무차별적 저인망 탐사에 포착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D 사는 「횃불」파동을 지면을 통해 알게 되어 (『WIN』지의 특종은 여러 신문에 인용 보도됐었다), 노심초사하던 중 제작진의 취재망이 죄어오자 말하자면 '자수'를 했던 셈이다.

D제작사의 김씨를 만나는 순간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씨는 항간에 「횃불」의 진상이 잘못 알려진 것 같다며, "(권력 측근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든지 해서 해봐라고 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고위층이 X의 배후에 있다고 보기에는 그렇게 고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여관비가 없어 우리 사무실에서 잔 적도 있다. 그 사람과 서로 연락하던 정선생의 연락처를 알려 주겠다"고 털어놓았다. '대통령 측근이 극비리에 진행하던 전두환 우상화 작업'의 특종 시나리오가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었다.

그 정선생은 K화백의 증언에서 등장하는 바로 그 정선생이었다. 정선생은 이미 다른 사회활동으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인사중의 한 분이었는데. 뜻밖의 자리에서 그를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는「횃불」슬라이드의 유력한 조력자였다. 그림 선정과 대본 수정 등에 나름대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는데, 문제의 X와는 지인 사이였다. 그는 어떻게 '그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그때는 시대가 그랬는지 몰라도 특별히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애써 태연해 하면서도,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고려해 얼굴을 화면 변조로 해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다.

그와 시비할 시간이 없었다. 번개처럼 X의 연고지로 날아갔다. 히틀러 우상화와 김일성 우상화를 능가하는 대중 조작의 귀재일줄 알고 추적했던 우리의 X, 그 X의 정체가 밝혀지게 됐기 때문이다.

'싱거운 음모'가 남겨준 페이소스

그 X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웃이었다. "이건 찍지 마요. 쑥스러워요" 필자를 보자 체념한 듯 말하는 X의 제일성.

대관절 무슨 연유인가. X의 전직은 모 중학교 국어교사. 그는 80년대 초반 교사직을 사직하고 뜻한 바 있어 교육용 문구제조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에서 이렇다 할 재미를 못 보고 있던 중 5공 정권이 출범하자 『황강에서 북악까지』와 같은 대통령전기나 신문의 기사, 방송의 보도 특집 같은 프로그램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교육용 슬라이드로 만들어 청와대와, 민정당, 문교부 등에 보여주면 칭찬과 함께 대량구매해 각급 학교로 보급해줄 것이라는 '옹기장수' 계산으로 「횃불」슬라이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있는 돈, 없는 재주를 다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놓고 보니 그의 기대와 달리 문전박대만 당하다가 깨끗이 들어먹고, 이제는 충북 모처에서 속셈학원을 근근히 운영하고 있었다.

X씨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란 말은 이런 때 하는 말일 터이다. 그는 「횃불」건을 한때의 일이라고 다 잊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터질 줄은 몰랐다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추적은 끝나고 수습이 남았다. X씨에게 물었다.

"주문할 때 K화백에게 어떤 식으로 대했길래 '대통령 측근' 운운하는 얘기가 나온 겁니까?"

"글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K화백)이 정해 놓은 시한까지 그림을 다 그리지 않고 굉장히 지지부진하게 그렸거든요. 그러면 빨리 그리게 하기 위해서 내가 그런 분위기를 풍겼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두환씨를 미화하는 슬라이드를 만들 수 있습니까? 그 시절에 용기가 없어 나서서 투쟁은 못했다 하더라도 이럴 것까지는 없었다고 보는데요?"

"정치적인 상황은 저는 잘 모르죠. 어쨌든 당시 국민들이 보던 신문이나 TV는 다 전두환 대통령이 난국을 수습한 걸로 나왔고 저도 그런 줄만 알았어요. 다 이제 와서야 떠드는 것 아닙니까?"

X씨의 마지막 말은 나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그의 말은 애초「횃불」의 배후를 추적하겠다며 시작한 나의 알량한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프로그램은 마무리를 해야 했다.「횃불」재연으로 시작해 전두환 슬라이드 102장의 진실을 추적한 대장정의 피날레는 다음과 같았다,

"5공 정권은 두 차례의 쿠데타와 간접선거를 통해 권력을 찬탈함으로써 정당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언론을 먼저 장악해 상징조작과 미화작업을 부단히 진행함으로써 취약한 정통성을 보충하려 했다."(성균관대 교수 이효성)

"신군부가 없는 정통성을 언론통제로 만들고 있을 때 그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언론이나 학자들도 많았다. 강제적 동원으로 또는 자발적 참여로 정통성이 조작됐고 국민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횃불」슬라이드는 정통성 없는 상징조작이 빚은 하나의 해프닝이다."(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강사 김동민)

그러나 『WIN』지 기사의 발단이 된 K화백에 대해선 한마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폭로는 거짓이라고까지 할 수 없으나 과장된 부분이 많았다.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주문을 받았다는 근거는 추적 결과에서 보듯 매우 빈약하다. 증언에서 '정체 모를 사람', '전화번호만 알려줘'등등의 표현을 구사하면서 뭔가 음모적 분위기를 풍겼는데, 배후에 무언가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의도한 느낌이 짙다. 어쩌면 K화백은 처음부터 X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전두환 일대기를 그렸다는 후광으로 리비아의 카다피 수상의 일대기 그림을 주문받은 적이 있기도 해 폭로의 동기 또한 명쾌하지 않았다.

또한 『WIN』지는 이「횃불」기사를 최초 독점 발굴했으나. <PD수첩>이 X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바람에 덧없게 되었다. 「횃불」슬라이드를 주문한 사람의 실체에 대한 확인 취재를 한 연후에 기사가 나왔어야 했으나, 시사월간지의 마감시간 때문에 먼저 일보부터 내고 본 것이 결과적으로 패착의 원인이 되고 만 것이다. 덕분에 나는 특종상을 받을 뻔했던『WIN』지의 후배 Y모 기자로부터 반농담 반진담의 원망을 들어야만 했다.

거꾸로 선 세상에도 카메라는 돌아간다, 도서출판 개마고원, 1997

오타 교정에 도움을 주신 이상국 님(sglee4@dwship.com)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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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3.20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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