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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열린 비평을 꿈꾸며 -「PD수첩」 - '위기의 한국신문...' 제작기
1. 'PD수첩-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오는가'의 후유증

필자는 올해 3월 'PD수첩-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오는가' 2부작을 제작 연출했다. 방송사(放送史)적으로는 방송에 위한 최초의 본격적인 매체 비평으로 기록될 이 프로그램으로 망외의 많은 찬사를 얻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전인수가 될지 모르지만 이 프로그램이 KBS의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50년-신문, 누구를 위한 언론 자유인가'나 '개혁리포트'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자평해 보기도 한다.

'PD수첩'의 이 프로그램으로 필자가 얻은 것은 또 있다. '시의적절한 기획, 과감한 취재'라고 학계와 언론단체, 시민단체로부터의 호평이 쏟아졌고 뜻밖에(?)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얻은 것은 상이요 잃은 것은 시청률이라고나 할까. 이 프로그램은 'PD수첩'의 여타 프로그램 보다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시청률로 사내에서 눈총을 받아야 했다('PD수첩'의 평균 시청률 18%에서 20%대인데 이들 프로그램은 10%내외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사 프로그램 시청자들은 통상 선정적 소재를 다루지 말고 구조적 본질적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심각한 주제에 대해서는 썰렁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낮은 시청률 정도는 상패로 얼굴을 가리면 흐르는 시간과 함께 어떻게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방송 후 오랫동안 일부 활자 매체의 '보복'에 시달린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 특히 C일보, J일보의 민감한 반응은 그렇지 않아도 신문의 공격에 취약한 방송사에 곤혹스러움을 안겨준 것 같다. 모 신문사 간부는 "기필코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고 공언해 MBC 고위층을 긴장시켰는가 하면 오비이락인지의 여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실제로 '경찰청 사람들'과 같은 인접 프로그램에 유탄이 날아가는 등 한동안 MBC의 '실정'에 대란 보도가 줄을 이었다.

특히 'PD수첩'이 '위기의 한국신문...' 방송 이후 시청률이 급락한 가운데 당시 대응편성된 SBS의 '뉴스추적'의 선정적 공세에 시달리다 못해 다급한 나머지 '원조교제' 따위로 잠깐 발을 삐끗한 때가 있었는데 신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MBC와 'PD수첩'을 융단 폭격했다. 이는 아무리 'PD수첩'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 해도 평소의 애정과 관심에 비하면(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그간 일부 신문을 빼놓고는 활자 매체에서 'PD수첩'의 성과와 활약에 대해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도해 준 것 같지는 않다) 지나친 감이 있다.

이런 심정을 언론계의 한 지인에게 토로했더니 다음과 같은 반응으로 돌아왔다. "아니 그럴 줄 모르고 감히 한국의 신문을 건드렸단 말이야?" 재미있는 것은 필자가 '위기의 한국신문...' 이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4년 여 동안 일하던 'PD수첩'을 떠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겼는데-옮길 만한 때가 돼서 옮긴 것이다- 그러자 '신문비판을 다룬 'PD수첩'의 정 모 PD가 방송 후 사내외의 논란에 휘말려 결국 'PD수첩'에서 짤렸다더라'는 진원불명의 소문까지 나돌았던 일도 있었다. 이때 필자는 호사가들의 절묘한 '통찰력'에 탄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문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이 직(職)을 걸어야 할 정도의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할 일로 비치는 풍토에 자못 숙연한 고민을 해보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PD수첩-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오는가'는 거품속에서 무한 경쟁으로 치닫던 한국의 신문들이 IMF 이후 겪는 미증유의 경영 위기를 진단하고 특히 선출되지 않는 권력으로 부상한 한국의 일부 족벌 재벌 신문들이 정권 정권창출에까지 나섰던 폐단을 비판한 프로그램이었다. 새로운 사실의 직시라기보다는 언론계에 이미 광범하게 제기돼 있던 문제들을 현장답사, 전현직 언론인들에 위한 증언, 근거 자료 제시, 전문가 분석 등으로 구체화한 정도였다. 방송에 의한 신문 비판의 효시라는 의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신문의 안보상업주의, 경영 편집권을 사실상 장악한 사주들에 위해 자행된 구조적 비리 등에 대해서는 진도를 나가지 못한, 부족함이 많은 프로그램이었다. 고작(?) 이 정도의 프로그램에 그런 파문이 나오니 정말 본격적인 신문 비판이 나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 방송이 그만한 프로그램을 내보낼 배포를 갖고 있는지가 먼저 걱정된다. 한국 방송에 미만한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를 알기 때문이다.

2. 방송의 패배주의와 콤플렉스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라니. 방송의 위력이 얼마나 엄청난데. 무슨 엄살이 그리 심하담...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살이 아니다.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 땅에서 방송은 편파 불공정의 대명사였고 선정 폭력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보도 뉴스는 권력의 나팔수, 앵무새라는 오명을 들으며 정통성과 상징의 대중조작을 위해 철저히 동원됐다. 제작 프로그램은 어떤가. 서커스 아니면 딴따라라는 말이 가능했다. 호화로운 대형 쇼, 현실 도피적인 드라마, 타성에 빠진 교양물이 시청취자들의 눈과 귀를 빼앗아 갔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왜곡된 의제설정과 기만적 사회 통합이 우리 방송의 본질이었다.

그 시절에 신문은 방송의 공격에서 권력 비판의 대리 만족을 느꼈다. 방송은 배후에서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자와 동일시되었고 방송을 공격하는 일은 권력을 비판하는 것으로 간주돼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언론시장에서 비약적 약진으로 인한 후발주자에 대한 견제, TV카메라가 와야 비로소 기자 회견이 시작되는 꼴을 숱하게 겪으면서 형성된 방송에 대한 질시가 뒤섞여 있긴 해도 뭐 어떤가. 직접 권력을 비판하는 것에서 오는 부담을 피해 가면서 분풀이도 하고 독자들도 좋아했으니.

이렇게 해서 '신문의 방송 때리기'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뿌린 만큼 거둔다고 신문으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는다고 해서 방송이 억울해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해 왔던 짓을 생각하면 알 일이다. 박정희 씨에게 충성을 바치고 텔리비전의 염가 대량 보급이란 당근을 얻었고, 칼라TV를 하사한 전두환 씨에게는 더 화끈한 충성을 보였다. 그리고 신문사를 거쳐 방송사 사장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몇 사람이 충성 경쟁 끝에 '발탁'됐다. 방송과 권력의 관계는 매사에 그런식이었다. 방송미디어는 권력의 필요에 의해 그것도 주로 테크놀러지 측면에서 확장됐고 그때마다 권력은 도구적으로 방송을 이용하고 순치시켰다.

게다가 방송은 머리까지 나빴던 것 같다. 나팔수 노릇도 좀 표시 안 나게 할 일이지. 박종철군 사건과 김만철 일가 탈출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나면 보란 듯이 김만철 사건을 키워 ' 이철제철'을 하려 한다.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이 나도 굳이 '땡전 뉴스'를 해 시청자들을 분노케 한다.

한마디로 미련하고 아둔했다. 방송은 정통성 부재라는 그 행실과 죄상으로 '신문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인과응보였다. 이것이 권력에는 안쓰러웠던 것일까. 언젠가는 이 아무개 문공부 장관이란 사람은 신문의 방송담당기자들이 모인 무슨 세미나에 나가 "그래도 방송이 국가에 기여하는 바가 많으니 신문에서 너무 씹지 말았으면 한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정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얘기다.

필자가 방송에 입사한 것은 지난 1984년의 일이다. 입사지원서를 낼 때 그저 "신문은 기자요 방송은 PD"라는 친구의 말을 믿고 미래지향적인 직업 중의 하나라는 기대만으로 힘들게 방송사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내게 5공말기의 그 분위기는 참담한 것이었다. 뻑하면 위에서 '오더'로 내려오는 시국특집, 시도 때도 없는 평화의 댐 등 모금 앵벌이 방송, 대통령이 00지역 순방을 축원하고 88올림픽의 성공을 다짐하는 무수한 행사성 프로그램들... 이런 프로그램이 한 번나갔다 하면 도하 지상에는 연일 비난 기사가 도배됐다. 이를 참다 못한 방송에서 한소리라도 할라치면 신문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신문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특히 1985년 초 총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KBS와 동아일보간의 한판이 있었는데 편파 불공정 방송을 일삼던 KBS가 동아일보에 논리에서 여론에서 도덕성에서 '비참할 정도'로 깨졌다. 아마도 이런 것을 보면서 방송인들의 굴욕감과 패배주의는 내면화되고 확산됐을 것이다. 당시의 방송인들에게 자기부정의 분열적 징후가 강하게 패어 있었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런 오랜 '병력' 탓에 필자조차도 이 땅의 방송은 신문에 대해 영원히 아무 말도 못하게 될 줄 알았다. 민주화에 해독을 끼치고 권력의 주구가 돼 국민을 기만한 주범인 방송이 감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을 범접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땅의 신문에게 방송 못지 않은 아니 방송 이상 가는 폐해가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곧 왔다.

3. 신문의 폐해 그리고 매체 비평이 있기까지

그 확고한 첫 시발은 보도지침의 폭로였다. 1986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 등에 의한 이른바 보도지침 폭로는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가 얼마나 가혹하고 유례없는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등이 어떻게 은폐 조작되었는지를 만천하에 표출시켰던 것이다. 물론 자료를 보면 당시의 방송은 훨씬 철저하게 '낮은 포복'했음을 이 보도지침은 보여준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신문 또한 그 본질에 있어 방송 이상으로 굴복하고 타협하고 때로는 지침의 의도에 더욱 확실히 복무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평소 민주 언론의 화신인 양 폼을 잡거나(?) 더 없는 지사인 양하던 이 땅의 신문이 막말로 한술 더 뜨는 작태를 보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신문을 신뢰해 마지않던 독자로서 필자는 엄청난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그간 신문은 항용 방송을 비웃으며 언론으로서의 정도와 독립성은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이미지 관리를 하곤 했었는데 그 위선적 행태의 이면이 보도지침의 폭로로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사실 방송은 원래 그러려니 해서 시청자들이 보도 내용을 한수 접어서(?) 보는 경향마저 있었다. 그렇다면 신문의 왜곡 보도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는 노릇이다. 오히려 여론 선도 계층이나 지식인 사회에 해독성이 더 크고 기만적이다.

보도지침 이후 필자는 이 땅의 신문을 근본적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 물론 필자는 최민지 선생의 '일제하 한국언론사론'도 읽었으며 리영희 선생이나 송건호 선생 그리고 김삼웅 선생, 강준만 교수의 역저도 읽었던 터라 우리 언론의 곡필사에 관한 지식이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오래된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이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필자로 하여금 '비상한 통찰력'에 사로잡히게 해주었다.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정통성이 아예 없거나 정통성을 교묘한 방법으로 주조해냈거나 아니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국정 운영의 효율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이들 정권들은 어떻게든 신문의 어떻게든 신문의 덕을 보려했을 뿐 근본적인 개혁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방송은 이미 확실히 순치돼 있었으므로 따로 신경쓰지 않아도 좋았다?) 이 허점을 한국의 신문들은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채 책임도 지지 않는 '권력'이었다. 그들은 영원한 보수 기득권 세력이었고 유한한 정권을 '간택'하면서 그들의 지위를 극대화 영속화하려 하고 있었다. '밤의 대통령'에서 엿볼 수 있는 극에 달한 오만, 신문불패의 신화 속에 끝없이 부풀려진 거품.. 살인 사건으로까지 비화한 신문재벌과 재벌신문의 무한 경쟁. 그리고 권력 창출에까지 나선 유력 신문들의 국정농단.

아무도 그들을 견제하지 못했다. 정권은 정통성 부재의 업보나 통치력 부재의 무능으로, 학계나 시민단체는 어떻게든 거대 신문의 후광에 자신들을 편승시키려는 기회주의와 비굴로.

그나마 대거리라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방송은 앞에서 필자가 누누히 말한 바와 같은 지난날의 왜곡된 역사에서 오는 피해의식과 콤플렉스로 쉽사리 신문을 거론하려들지 않았다. 방송은 신문매체에 의해 차인표 신드롬이나 배용준 신드롬이 확대 재생산이 되면 그게 그렇게 황감스럽고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다. 어쩌다 방송사 사장에 관한 평판이나 뉴스에 대한 비평기사가 나오면 기사의 한 구절구절 표현을 두고 온 방송사가 일희일비했다.

방송의 경우 지난날의 오욕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방송노조나 PD연합회 등을 주도한 젊은 방송인들에 의해 경주돼왔다. 이것이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옛날같은 무식한 편파 불공정 방송은 없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92년, '97년 대선의 경우 방송은 적어도 양적 측면에서 공정성과 균형성을 확보하였으며 오히려 방송보다 불공정한 보도를 한 신문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편파 불공정성에 관한 한 방송도 과거의 심리적 멍에를 벗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PD수첩-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오는가'는 돌아보면 이러한 '심원한' 제작 배경을 안고 있다. 방송인으로서는 울분과 회한도 있었지만 그러한 한풀이 심리보다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거대한 권력이 된 유력신문을 방송이 아니면 이제 누구도 견제할 수 없다는 나름대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4. 에필로그

방송에서 신문을 비판하면 (시쳇말로 씹으면) 신문에서의 반응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직접 듣지는 못했으므로 추측이다- "아니 감히 우리를 건드려. 옛날에는 딴따라라고 기자실에 끼워 주지도 않았는데. 많이 컸다.", "짜식들, 권력의 품안에 있더니 무슨 암시라도 받은 거 아냐? 배후가 수상한데.", "좋아 맛 좀 보라구. 융단폭격식으로 갚아주지."

시청자들의 반응은 이런 식이다.-PC통신 등으로 실제 들어온 내용이다- "아 글쎄 통쾌하고 후련하네요. 진작에 좀 그러시지요.", "역시 'PD수첩'이구만요. 용기가 가상합니다. 그렇지만 신문들의 반격이 있을텐데 걱정됩니다.", "정권이 바뀌니까 방송이 알아서 챙기는 것 아닌가요.", "편파 불공정의 원죄를 안고 있는 방송에서 그럴 자격이 있는 거요?"

언론학자들의 분석은 다음과 같은 식이다. "방송에 의한 신문비판은 우선 동종업자간에 담합으로 유지돼 왔던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렸다. 그리고 매체간 상호비판의 물꼬를 텄다. 당연히 신문 매체의 보복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온 세상의 눈이 있는데 그 비판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찌 분풀이 보도만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신문비판을 저지른(?) 방송은 몸조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파 뉴스도 선정 폭력물도 줄어들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늘어날 것이다. 방송의 신문 비판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며 앞으로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고 정례화해서 매체간의 건전한 상호비평으로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성균관대 이효성 교수)

마지막으로 'PD수첩'을 한 필자는 말한다. "프로그램이 나간 후 방송에서 감히 신문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말이 제일 가슴 아팠다.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방송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방송인들은 이런 오욕을 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켜봐 달라. 방송의 과거를 자꾸 들먹이는 것은 방송의 새로운 출발을 막는 것밖에 안 된다. 특히 신문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음모가 숨어 있는 얘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문의 폐해를 방송이 아니면 제대로 검증할 데가 없다는 점이다. 작금의 매체 비평은 단순히 매체간의 경쟁이 아니다. 신문 권력의 일탈을 막고 언론다운 언론으로 만드는 언론 개혁의 길이다."

방송개발 1998년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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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3.20 -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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