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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역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 2000 「이제는 말할 수 있다」프로그램 출사표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6월 18일 첫 방송 남북 관계에서 인권과 정의 사회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 15편 방송

감추진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사건들이 전파를 탄다. 많은 시청자들의 지원과 격려와 새로이 업그레이드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Ⅱ>를 통해, 지난해 13편의 시리즈로는 다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시청자들을 찾아가는 것.
2000년을 맞아 새로이 방송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Ⅱ>는 지난 방송에서의 성과를 거름 삼아 좀더 정리되고 일관된 흐름으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지난해 9월 12일부터 MBC 특별 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편향되게 인식되어온 우리 현대사의 미스터리를 정통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추적하겠다’고 선언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을 것이었다. 과연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변죽만 울리고 끝나지 않을까, 일부 시사지 등에서 이미 다룬 소재를 보수적인 매체인 텔레비전에서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를 기우로 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선전(善戰)은 빛나는 것이었다. 첫 작품인 제주 4·3 사건 편을 비롯해 동백림 사건,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 6·29 선언.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 인혁당 사건, 박동선과 코리아게이트, 박정희와 핵개발, 노근리 양민 학살, 김형욱 실종 미스터리, 언론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 해직, 실미도 특수부대, 이수근 사건 등으로 이어지는 13편의 시리즈는 다소간의 기복은 없지 않았지만 20세기를 정리하던 당시의 분위기와 어우러진 기획으로 평가받았다.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등 역사 다큐멘터리로서의 지평을 열었다. 특히 소장학자들의 진보적 입장을 적극 반영하고 미발굴, 미공개 자료를 대폭 활용함으로써 역사학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평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이 프로그램은 MBC의 공영성을 수호한다는 망외(望外)의 찬사를 얻었다.

1999년 12월 26일 시리즈가 끝난 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제작진에게는 뿌듯함과 허탈함이 교차하였다. 강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는 정녕 이제는 모두 다 말하였는가. 억눌린 자, 소외된 자, 패배한 자들의 항변과 하소연을 제대로 대변하였는가. 혹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이 특정한 한 시대에 대한 그저 ‘정치적인 옳음(Political Correctness)’으로만 머무른 것은 아닌가. 아니면 소재주의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가. 이 프로그램으로 행여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마무리됐다고 오해받게나 하지 않을까….

제작진의 이러한 반성은 자연스럽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이것으로 끝날 수는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불과 13편으로 이 시리즈를 마감하기에는 말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때마침 사내외의 여건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우호적인 지원과 격려로 나타났다. 여론 선도층과 시청자 단체들은 이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자, 무엇을 망설이는가. 멍석이 펼쳐졌는데 주저할 자가 그 누구인가. 바야흐로 새로운 진용을 갖추면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386세대에서 475세대까지, 야전에서 편집실에서, 서고에서 비장의 칼을 갈던 교양제작국 프로듀서들이 전격 투입된다. 그리하여 수차례의 난상토론 끝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새로운 버전이 만들어졌다.

2000년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기획 화두는 첫째 6·25 재조명, 둘째 남북 관계, 셋째 한미·한일 등 대외 관계, 넷째 인권과 사회 정의 등이 기둥이다. 21세기의 벽두에서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될 것으로 의제를 모아 아이템이 결정됐다. 얼핏 지난해와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우리 역사의 시계는 20세기에 머물러있다. 2000년 버전 또한 여전히 말 못한 일들, 그럼에도 꼭 말해야 할 것들을 대상으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첫 번째는 6·25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데서 출발했다. 동족 상잔과 분단 고착화의 시발이 된 6·25.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진상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그 심리적 외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민 학살’, 6·25 당시 ‘미국의 세균전 의혹’ 등이 이 범주에 드는 주제들이다. ‘양민 학살’의 경우, 지금까지 알려진 거창 지역이 아닌 산청, 함평, 문경 등을 대상으로 새로운 사실을 주목한다. 이미 산청 외공리의 경우,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사실상 주도하였다. 무수한 유골이 출토됐음에도 정작 피해자의 신원조차 알 수 없는 이 희대의 ‘엽기적인’ 미스터리는 과연 햇빛하에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인가. 그리고 ‘미국의 세균전 의혹’은 최근에 기밀 해제된 미국의 비밀 문서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시도한다. 다음으로 남북 관계. ‘1994년 전쟁 위기론’이나 5·16 직후의 ‘간첩 황태성 사건’ 등이 그 대상이다. ‘전쟁 위기론’은 1994년 북한 영변 핵시설을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의심 나는 핵시설에 대한 폭격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 바, 이는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참화에 뒤덮일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한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 이 상황을 냉철히 되짚어보면서 한반도 위기 구조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황태성 사건’은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사상적 의혹을 제기한 사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적대적 의존 관계에 있던 남북 관계를 짚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외 관계는 ‘부산 미문화원 사건’, 대한 망언(妄言)의 원조가 되고 있는 ‘일본의 친한파’들에 대한 탐구 등이 주제다. 한미 관계와 한일 관계를 근본에서부터 더듬어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시청자들은 냉엄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의 대외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틀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친한파’는 한일 보수 기득권 정계 실력자간의 '유착'이 한일 문제 왜곡의 중요한 원인임을 지적하고 일본 망언의 역사적인 기원을 탐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 번째 장인 '인권과 사회 정의'에는 아직도 다룰 수 있는 많은 소재가 남아있다. 올해로 분신 30주년을 맞은 ‘전태일 열사 사건’, 국가 기관에 의한 공작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DJ 납치 사건’, 징병권을 가진 국가 권력의 무책임성을 보여주는 ‘베트남전의 한국군 실종자들’, 가진 자 위주의 무분별한 도시 개발 정책이 빚은 ‘광주 대단지 사건’, 80년대 초반 정권에 의해 '녹화 사업'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던 ‘강제 징집과 군 의문사 사건’ 등이 제작될 예정이다. 2000년에 들어서도 우리 사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가위눌림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이 아이템들은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금지곡과 건전 가요’ ‘민족일보 사건’ ‘정인숙 여인 사건’ ‘하나회 숙청’ 등이 제작진의 조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주로 지난 3월에 결정됐다. 여기에는 1999년에 방송된 13편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토대로 좀더 정리되고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자 한 제작진의 고민이 나름대로 배어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글자 그대로 말하는 프로그램이다. 말하자면 증언 다큐멘터리라고 할 만하다. 누가 말하는가. 우선 억눌렸던 상황에서 말 못했던 당시의 피해자들이 하는 폭로와 고발이다. 다음으로 가해자들의 변명과 사과 또는 오리발이다. 그리고 목격자들의 증언과 확인, 그 뒤를 이에 대해 천착한 연구자나 전문가의 진단이나 처방이 잇는다. 세월이 훨씬 지난 뒤에 사건과 상황의 관련자들을 추적 발굴해 진솔한 증언을 끌어내야 하는 것에 이 프로그램의 성패가 달려있다. 아직 때가 아니라며 입을 다무는 자, 혹은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자, 심지어 그 자리에 없는 이에게 뒤집어씌우며 진실을 호도하는 자…. 이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그들에게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제작진은 고민한다. 흔히 이해 당사자가 살아있어 미묘한 문제를 말할 때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는데 이번 아이템들은 어느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지난 시대에는 금기와 성역에 도전하는 소재의 과감성과 제작진의 용기만으로도 일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이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그 속도에는 만족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각 부문에서 가시적인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반세기만에 남북의 정상이 서로 만나는 이 시점이다. 2000년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제작진은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나설 뿐이다.

역사는 민중이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철저히 기득권자의 논리로 움직이는 현실은 마구 달려나간다. 그 현실은 과거의 케케묵은 얘기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비웃는 것도 같다. 그들은 진실을 알기도 전에 화해를 말하며 봉합을 음모한다. 현실의 광풍에 신음하고 있던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 고작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자위할 따름이다. MBC 특별 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이제 비로소 말할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처절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당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 정길화 <이제는 말할 수 있다Ⅱ> 책임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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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3.20 -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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