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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화
Subject   MBC 창사40주년 기념 교양프로그램史 - 인간, 자연, 문화, 역사 그리고 시사(時事)

MBC 가이드 2001년 9월호
문화방송 창사 40주년 특집 기획시리즈 제3편 교양프로그램


인간, 자연, 문화, 역사 그리고 시사(時事)

1. 교양 프로그램의 전개와 교양제작국의 등장

MBC 시사교양국의 전신은 교양제작국이다. MBC 교양 프로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주로 이 교양제작국과 시사교양국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는 일이 된다. 물론 TV 개국 초기인 1969년부터 방송된 아침 생활정보 프로그램의 효시인 '임택근 모닝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1973년 이른바 오일쇼크의 여파로 이후 8년여 동안 아침방송이 중단되면서 교양 프로그램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동안 방송법에 규정된 '교양방송 편성비율 준수'는 보도국의 다큐멘터리성 기획 프로그램이나 TV제작국의 가족오락 프로그램과 어린이 프로그램, 그리고 편성국의 외화와 캠페인 프로그램 등이 맡아 주었다.

여기서 잠깐 교양 프로그램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인 '방송순서의 편성기준'에 관한 변천사를 돌아보자. 1964년 제정된 방송법 시행령에서는 교육/교양방송을 묶어 20% 이상으로 편성기준을 두었고, 이것이 1973년 교육방송의 개시와 함께 교육 항목이 빠지고 교양방송으로 단일화하면서 30%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후 1981년 언론기본법 시행령에서는 교양방송 편성기준이 40% 이상으로 늘었다. 이렇듯 교양 프로그램이 편성기준이 확대 일로에 있었지만 아직 사내에 전담 부서를 따로 두는 단계는 아니었다.

기실 보도·교양·오락의 3분법은 방송의 지도이념일 수는 있으나 프로그램의 질과 양을 재는 자로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김우룡). 방송대사전(방송문화진흥회편, 1990)에서도 방송의 존재이유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교양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교양성이 없을 수 없으므로, 교양 프로그램이란 결국 상대적 개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정이 이와 같았던 터라 상당 기간 동안 MBC의 교양 프로그램은 보도국, TV제작국, 편성국 등이 분담했던 것 같다. 해마다 개편 후 방송위원회에 결과 보고를 할 때 편성국의 담당자는 편성표를 들여다보며 비교적 '교양성'이 높은 프로그램을 골라 모아 '교양 편성기준을 지켰다'는 보고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어떻든 시간이 좀 흐른 뒤인 1981년 아침방송이 재개되면서 '모닝쇼'는 '안녕하십니까 변웅전입니다'로 다시 태어났다. 전형적인 교양 프로그램의 원조가 부활된 것이었다. 이 무렵을 전후해 TV의 전면적인 컬러방송이 실시됐고(1980년 12월), 1981년 10월엔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방송시간의 확대, 컬러TV 수상기의 기하급수적인 보급, TV의 위력을 보여줄 세계적인 이벤트의 도래... 그 이전까지 한국 TV방송의 역사는 20년 남짓이었고 MBC의 그것은 10년을 갓 넘은 것이었는데, 바야흐로 종전과는 차원이 다른 세월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교양제작국은 1984년에 만들어졌다. 한해 전인 1983년 8월에 TV제작국(지금의 드라마국과 예능국의 모태) 내에 일개 단위 부서의 형태로 교양제작부가 만들어졌었고, 이것이 10개월 후에 기존의 TV제작3부와 통합되면서 국으로 확대개편돼 활동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1991년에 펴낸 '문화방송 30년사'에서는 MBC가 주도했던 1982년의 '독립기념관 건립 모금 캠페인 방송'과 저 유명한 1983년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136일간 생방송 등 양대 방송의 특집기획물 경쟁에서 교양제작국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를 찾고 있다. 가로되, "이전까지만 해도 계기성 또는 교양·문화성 프로그램은 몇 명의 프로듀서들에 의해 급조 방송됐으나, 이제는 방송사의 얼굴 프로그램을 제작해내어야만 하는 부서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1983년 KBS가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텔레톤(teleton) 방송을 하자, MBC도 서둘러 교양제작국을 신설하고 일일정보물, 대형특집 기획물, 다큐멘터리물을 전담, 본격적으로 제작하게 했다......"

여기서 말하는 '방송사의 얼굴 프로그램'이란 요즘 말로 하면 공영적 프로그램에 해당할 것이다.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MBC의 위상이 공영방송으로 규정되고 이것이 사내외에 체감되기 시작한 이래 교양 프로그램 전담부서의 등장은 이처럼 시대적인 소산이었다. 드라마와 쇼, 코미디, 뉴스 말고는 다른 프로그램이 없는 줄 알았던 불모의 시절에 등장한 교양 프로그램은 애초의 '구색맞추기' 아니면 '저질시비를 막는 방패막이' 구실(문화방송 30년사)을 넘어서, 회사의 존재근거임을 보여주거나 때로는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등판하는 구원투수의 역할을 요구받기도 했던 것 같다. 1983년 교양제작부에서 시작하면 어언 18년의 세월. 그 궤적을 정리하면 그것은 인간과 자연,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시사(時事)로 이어지는 꾸준한 역정이 될 것이다.

2. 인간에 대한 관심과 탐구

무릇 방송 프로그램 치고 인간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 프로그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MBC 교양 프로그램의 역사를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시대>를 필두로 한 이른바 '인간 프로그램'들이다. 그중 특히 <인간시대>는 1985년 5월 이래 만 8년간 400여 회가 방송되면서 오랜 기간 MBC 교양 프로그램의 대명사였다. 본격 휴먼다큐멘타리를 표방했던 이 프로그램은 1986년 가을부터 프라임타임인 저녁 8시 5분에 편성돼 MBC의 공영성을 과시하는 '간판'이기도 했다.

삼보 컴퓨터 이윤기 사장을 주인공으로 한 첫 방송 '청계천에서 세계로'(연출 김윤영)에서 시작해 '이거 보여요?'(안과 의사 이상욱 박사/연출 이긍희), '고운꿈 나빌레라'(비구니 희문 스님/연출 윤동혁), '청계천 또순이'(보일러 사장 박민선씨/연출 은희현) 등으로 이어지는 <인간시대>는 방송 초반부터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며 선풍을 일으켰다.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둔 사람, 한평생을 외길로 살아온 의지의 인물,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일관한 헌신적인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고귀한 삶을 통해 참사랑과 진실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교과서적인 기획의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인간시대>는 그런 모범답안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소재의 폭을 넓히려 애썼다. 또한 주인공의 은밀한 심리까지 들여다보려는 제작진과 출연자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끝내는 '무장해제'를 통해 진솔한 내면세계까지 탐구하는 차원높은 수작들을 내놓기도 하였다. <인간시대>는 사생활공간에까지 들어오는 TV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덜한 시기에 ENG 카메라와 무선 마이크와 같이 현장성과 기동성이 강한 장비의 등장에 힘입어 휴먼다큐메타리의 전형을 이루었을 정도로 일세를 풍미했다.

40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 속에서 몇 편을 고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겠으나 예의 '고운꿈 나빌레라'를 필두로 '방영치씨의 숨은 그림 찾기'(연출 이긍희), '기차길옆 아이(연출 황효선), '춤추는 도너츠'(연출 이석형),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연출 최우철), '선돌마을 권씨 부자전'(연출 유창영), '품바 아줌마의 깡통과 고구마'(연출 윤영관), '그 후 10년'(연출 정호식) 등의 프로그램을 기억할 수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부분 ABU상, 방송대상 등을 수상하면서 국내외적으로 그 완성도를 검증받기도 했다.

물론 <인간시대>에도 한계는 있었다. 흔히 '인간은 있되 시대는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한 개인이 처한 사회적인 모순구조 속에서의 존재는 배제한 채, 개인의 노력만을 미화하거나 특정한 현상에 대한 시청자의 엿보기 심리만 좇는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제작진 내부의 치열한 성찰이 있었고 이것은 이후 다른 프로그램의 동인(動因)이 되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인간 프로그램'이 MBC 교양 프로그램의 전통이 되어 주었다는 점이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인간 탐구의 노력은 <지구촌의 한국인>, <세상사는 이야기>, <신인간시대>, <현장인터뷰 이 사람>, <그 사람 그 후>, <휴먼다큐 우리는> 등으로 이어졌고, 그 유장한 자락 끝에 지금의 <성공시대>나 <우리시대>가 맥을 잇고 있다. 6미리 디지털 캠코더의 등장으로 무조명 근접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만들어진 <신생아 병동>과 같은 '생명 시리즈'(연출 이강국)도 밑바닥에는 인간존중의 휴머니즘이 깔려 있고 보면 그 기원은 <인간시대>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3. 자연 다큐멘타리의 발전과 성과

MBC 자연 다큐멘타리의 원조는 말할 것도 없이 보도 부문에서 만든 <한국 야생화의 사계>나 <한국의 나비> 등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뛰어난 성과는 자연스럽게 교양제작국에서 만드는 자연 다큐멘타리의 좋은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모름지기 고집스런 천착과 작가정신으로 다큐멘타리 제작에 임하는 것은 PD의 덕목이 아니던가. 그 출발은 1986년 <지리산의 사계>(연출 김윤영)로부터 비롯됐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계절에 걸쳐 만든 이 프로그램이 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교양제작국의 자연 다큐멘타리는 가능성 있는 주요 장르가 되었다. 이로부터 <한강의 사계>(연출 박흥영), <다도해, 그 푸른 숨결>(연출 신언훈), <거미의 신비>(연출 이주갑), <해양 조류의 낙원, 무인도>(연출 홍종명), <곤충의 사랑>(연출 최삼규), <한국의 버섯>(연출 박정근) 등으로 그 노력은 이어졌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 프로그램은 사계절의 풍광을 담는 장기제작을 기본으로 해, 평균 250일 이상의 출장에 회수도 20회를 넘었다. 특히 그 내용을 보면 총론에서 각론으로, 거시적 접근에서 미시적 접근으로, 점차 구체성과 전문성을 지향하는 등 노하우가 날로 향상됐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94년의 <갯벌은 살아있다>(연출 장덕수)와 1995년의 <어미새의 사랑>(연출 최삼규)과 같은 빛나는 수작을 배출하기에 이른다. 이들 프로그램은 장인적인 끈기와 정선된 화면이 드높은 완성도로 승화된 것이었는데 국내외 각종 다큐멘타리 관련 상을 수십 개나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자연 다큐에 있어 사실상 '브랜드 피디'의 등장을 예고하는 일이었다.

이들 프로그램이 얻은 성과는 자연이 주는 신비와 생명에의 외경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것이다. 또한 촬영기법이나 장비의 발전을 견인하는 소득을 거두게 했다. 이러한 성과는 수준높은 생태 다큐멘타리의 제작도 더 이상 남의 나라일은 아님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자연 다큐멘타리의 전통은 이후에도 <황새>, <잡초>, <바다의 숲, 해조> 등이 만들어지면서 계속 이어졌다. 최근에는 현장의 생태전문가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 연장선에 2001년 8월 일본 JWF에서 수상한 <개똥벌레의 비밀>(연출 박상일)이나 <야생벌이 산사에 깃든 까닭은?>(연출 최삼규) 같은 프로그램이 영글었던 것이다.

4. 문화 그 다양성과 깊이를 위하여...

교양제작국이 의외로 품과 공을 들인 것이 문화 관련 프로그램이다. 가령 1985년부터 시작된 <명작의 고향>(연출 정명규, 박흥영)에 이어 <명곡의 고향>(연출 김윤영, 강철용), <명화의 고향>(연출 고장석, 윤영관 등)으로 이어지는 '고향'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세계 각국의 명작의 산실과 현장을 찾아 작품의 정수(精髓)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고급 시청자의 문화 향수 욕구에 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고향' 시리즈는 이후 동구권 개방과 북방외교에 맞물리면서 <러시아 동구의 문학과 예술>(연출 홍종명, 이상민 등), <중국문학기행>(연출 이진섭, 이상민)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천착은 그 중 <러시아 동구의 문학과 예술>이 1990년 방송대상 최우수작품상을 받는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또 시야를 우리 것으로 돌린 <우리시대의 명인>이나 <명작의 무대>와 같은 프로그램의 기획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도 나타나게 했다. 그리하여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21세기 음악의 주역>과 같은 한결 전문적인 음악다큐멘타리의 등장도 이루어졌다.

그런가 하면 문화계의 현상과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도 계속됐다. <문학산책>, , <문화저널>, , <문화집중>, <문화스페셜>, <문화특급>, <토요스페셜>, <이숙영의 수요스페셜> 등..... 시청자의 반응이 그리 뜨겁지 않음에도 부단히 시도됐던 것은 교양제작국이라는 자기 정체성에서 오는 지향 때문으로 볼 수 있겠다.

문화 관련 프로그램에서 별도의 주목을 받아야 할 것은 한국문화와 연관된 집요할 정도의 작가정신이다. <한국의 장승>, <도깨비>, <아리랑>, <한국의 탈>과 같은 일련의 시리즈(연출 김진희)는 저력있는 깊이와 무게로 사계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농사의 사계>나 <한국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가야를 찾아서>, <해상왕 장보고>, <흑룡강>, <인디아>와 같은 프로그램의 기획과 제작이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이 대열엔 1995년 이래 계속된 <논픽션 30>, <다큐스페셜> 또는 <엠비시스페셜>과 같은 주간 편성된 정규 다큐멘타리물에서의 꾸준한 작업도 한몫을 했다. 이들은 '생활 다큐', '보는 다큐'를 표방하면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의 소재를 다양화시키는 것에 큰 기여를 했다.

5. 역사를 넘어, 시대를 향해

교양제작국이 출범한 84년은 5공 정권의 극성기. 권위주의 시대는 이땅의 공중파 방송에 치욕과 수모의 역사를 강요했다. 아마도 이 시기의 방송과 방송인을 태도에 따라 대별하면 적극적 동조, 순응, 침묵, 냉소주의, 이불밑 만세... 쯤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나 그 어디에 섰든 '순치'라는 딱지를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정권의 과녁에서 한발 비껴나 있긴 했어도 때때로 날아드는 '유탄'에 교양제작국 구성원 또한 참담해 하면서 자괴했다. 이러한 내상(內傷)과 울혈은 한편으로는 87년 6월 항쟁 이후 이른바 방민추 투쟁과 노조 운동의 원동력으로 분출했고, 제작 현장에서는 우리 현실의 모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응시하는 프로그램으로 승화됐다.

그 효시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1989년 2월의 <어머니의 노래>(연출 김윤영)로 꼽을 수 있다. 초기 MBC 노조의 생산적인 성과로 들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당시 정치적 기득권 세력과의 치열한 길항 끝에 방송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교양제작국 프로듀서들은 역사의 전환기에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무릇 이 땅의 방송인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체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후 역사의식과 비판정신을 담은 프로그램들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우리의 치부이기도 한 해외입양아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테마기획 우리는 지금- 해외입양아>편(연출 고장석)이 1989년 9월에 방송되었다. <해외입양아>는 이듬해 5월 캐나다 반프 국제 TV 페스티벌에서 다큐멘타리 정신의 표상으로 평가받으며 BBC와 NHK 등을 물리치고 다큐부문 최고상인 로키상을 수상했다. 또한 89년 12월부터 90년 3월까지 방송돼 백상예술대상을 받기도 한 <평화 - 멀지만 가야 할 길>(연출 윤동혁, 전영화, 조한선, 이채훈 등)은 문제인식의 범세계적인 확대를 위한 스트레칭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수난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1992년 <한민족 러시아 유민사>(연출 김현종), 1993년 <6.25 특집 76인의 포로>(연출 최진용)와 같은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러시아 유민사>는 방송대상 우수상을, <76인의 포로>는 방송대상의 대상을 받는 등의 큰 성과도 뒤따랐다. 현대사 프로그램은 한동안 주춤하더니 1998년 <건국 50주년 특집 격동, 반세기의 통치자들>로 저력을 드러냈고, 마침내 1999년 금기와 성역을 깨는 증언 다큐멘타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폭발했다. 역사에는 비약이 없듯 프로그램에도 비약은 없다. 꾸준한 시도와 부단한 투자만이 어떤 결과의 선행조건을 이루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의' 이슈와 정면승부를 한 <어머니의 노래>. 그 한 갈래가 역사의식으로 흘렀다면 다른 한 갈래는 현안에 대한 관심으로 흘렀다. 그 흐름의 한복판에 시사고발 프로그램 <피디수첩>이 있다. 1990년 5월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하여'를 모토로 내세운 이 <피디수첩>은 발표저널리즘이 아닌 발로 뛰는 역동성으로 지난 11년간 우리 사회 곳곳의 현장에 임한 결과 이제는 PD저널리즘의 기수가 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걸어온 뒤안길엔 온갖 풍상이 서려 있다. 기억에도 선연한 90년 9월의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는 없다' 불방 사태를 비롯, 조직과 힘을 갖춘 단체의 물리적인 시위와 압박, 종당에는 주조 난입과 같은 미증유의 만민교회 사건을 불러일으킨 <피디수첩>의 궤적은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향한 수난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도 '되짚어본 마포 어린이 살인사건'(연출 김세영), '긴급보고! 영생교 실종사건'(연출 백종문, 김태현), '소쩍새 마을의 진실'(연출 윤길룡), '사기피해에 쓰러지는 조선족 사회'(연출 송일준, 안택호, 노혁진), '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오는가'(연출 정길화, 김영호), '한국의 대형교회'(연출 최승호) 등은 <피디수첩>의 명성이 공연한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피디수첩> 역시 방송대상, 한국방송PD상, 앰네스티언론상, 한국언론학회대상, 한국기자상 특별상, 삼성언론상 등 숱한 상을 석권했다.

지난해 교양제작국의 명칭은 시사교양국으로 바뀌었다. 이는 아마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피디수첩>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것에 대한 '명실상부'한 브랜드네이밍 작업의 결과로 볼 수 있겠다.

6. 소구력과 실험정신 그리고 사회통합의 추구

그렇다고 해서 교양제각국 또는 시사교양국의 프로그램이 문화적 훈향으로 그윽하기만 하거나 시청자에게 주제를 엄숙하게 강조하는 프로그램만을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18년사를 돌아보면 시청자의 자못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프로그램들도 상당하다.

우선 <경찰청 사람들>이나 <이야기 속으로>와 같은 재연 프로그램들. <경찰청 사람들>은 93년 4월부터 방송돼 99년 1월까지 근 6년간 비교적 장수한 프로그램이었다. <경찰청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음지에서 활약하는 경찰의 사기를 진작하는 본격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표방했는데 매우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이후 유사 재연 프로그램의 선구자가 됐다. 그러나 재연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시비가 없지 않았고 특히 폭력 묘사와 모방범죄라는 역기능으로 자주 도마에 올랐다. <경찰청 사람들>은 1999년초에 들어 당시 통합방송법 논의를 의식한 회사의 '읍참마속'(?)으로 하차했다. 그러나 하나의 제작기법으로 재연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며, <경찰청 사람들>이 한때 MBC의 시청률이 고단할 때 톡톡히 효자 노릇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교양 프로그램 18년사에서의 한 자리는 차지할 자격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재연 프로그램의 전통은 목하 <성공시대>와 <우리시대>에 이어져 시청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기법상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소구력 높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는 부단한 노력은 <1318 힘을 내>나 <일상탈출 야호>, 그리고 <와! e 멋진 세상> 등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편으로 교양제작국의 프로그램 중엔 끊임없이 실험정신을 추구하거나 답사하고 탐험하는 등 이른바 어드벤춰 다큐멘타리로 분류해서 하나의 범주로 묶을 만한 것도 있다. 가령 초창기인 1985년에 방송된 <아름다운 한국의 남해안>(카약을 타고 남해안 절경을 탐사...연출 이석형, 홍성완)을 위시해, 임진왜란 때 사라진 화엄사 범종을 찾는 과정을 담은 <잃어버린 범종을 찾아서>(연출 정수웅> 등이 그것이다. 수량으로는 많지 않으나 이 프로그램의 전통은 계속 이어져 <에스키모와의 100일>(연출 장덕수) 등으로 나타나다가 신안 해저 유물선의 복원과 항로 탐사 과정을 철저히 재현한 1996년 <700년전의 약속>(연출 김윤영)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앞서 말한 <신생아병동>과 같은 '생명시리즈'(연출 이강국)는 6미리 디지털 캠코더를 실험적으로 운용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외에도 통일 한국 이후의 모습을 그리며 이에 대비하는 취지로 제작된 5부작 <통일> (연출 박신서, 김학영, 정호식)은 드물게 가상 다큐멘터리기법을 사용해 방송계 내외의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강연 형식의 프로그램도 통상 TV에서는 소구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잘 쓰지 않는 포맷이다. 그런데 역발상의 파격으로 이 방식을 도입해 선풍을 일으킨 프로그램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에 방송된 <구성애의 아우성>(연출 최병륜)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엄숙주의라는 수면 하에 있던 성에 관한 담론을 공개리에 끌어올려 파문을 일으킨 화제작이자 문제작이었다.

마지막으로 시사교양국(교양제작국)의 남상(濫觴)인 생활정보 프로그램과 캠페인 프로그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말하였듯 1969년에서 1973년까지의 <임택근 모닝쇼>, 1981년의 <안녕하십니까 변웅전입니다> 그리고 1983년부터 89년까지의 <차인태의 아침살롱 또는 출발 새아침> 등은 교양 프로그램의 출발점이요 모태나 다름없었다. 이후 <아침을 달린다>, <생방송 새아침>, <생방송 아침만들기>, <아침이 좋다>, <생방송 10시 임성훈입니다>...... 등 무수한 프로그램이 명멸하다가 마침내 2001년 8월의 <생방송 아침 +>와 <생방송 화제집중>에까지 이르렀다. 이들 프로그램은 시청자들과 매일매일 접촉을 유지하며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인 생활정보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했다. 비록 그 동안 광채가 영롱히 빛나지 않았을 지는 모르나 그것으로 인하여 이들 프로그램이 오늘 이 반추와 기억의 자리에 빠져야 할 이유는 못된다.

캠페인 또는 이벤트 프로그램 또한 그러하다. <미아 찾아주기 특별생방송>, <사랑의 결혼대행진>, <자랑스런 나의 어머니>, <지리산을 살립시다>, <바다를 살립시다>, <경제를 살립시다>, <공해 이대로 둘 수 없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금모으기 특별생방송> 등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슈를 적시에 포착해 방송한 이들 프로그램 역시 사회통합의 기능에 이바지한 교양 프로그램의 주요한 부분이다. 물론 여기엔 온 나라가 기만과 광기에 휩싸였던 <평화의 댐 모금방송> 같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앵벌이 방송'도 들어 있다. 옥석은 마땅히 구분돼야 하며 세월이 지난 뒤 부끄럽지 않도록 여기에도 엄정한 의제설정이 있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7. 에필로그

모든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교양성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MBC 교양 프로그램의 역사는 TV 개국부터 따져 32년이다. 그런데 특정 프로그램을 표방한 단위 부서의 등장은 예산과 인원을 가진 한 조직이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고 주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MBC 교양 프로그램의 역사는 교양제작부가 만들어진 1983년부터 기산해서 18년이다. 위에서 돌아보았듯 그 18개 성상의 세월은 간단치 않다.

거칠게 보아 1980년대 중반은 <인간시대>가 휴먼다큐멘타리 전성기를 이끌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된 80년대의 끝자락에서 교양 프로듀서들은 역사를 알게 되고 사회와 만났다. 그 결과 90년대엔 <피디수첩>이 가세해 PD저널리즘을 개화시켰다. 그리고 2000년대엔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교양 프로그램의 드넓은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이사이 <갯벌은 살아있다>와 <어미새의 사랑> 같은 자연 다큐멘타리의 성과가 뚜렷하고, <해외입양아>나 <76인의 포로>, <러시아 동구의 문학과 예술> 등 개별 프로그램의 결실이 흘립(屹立)해 있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 자족하고 있기는 마땅치 않다. 시대정신을 관통하며 공동체의 발전을 지향하는 진지함과 건강함, 그러면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시청자와 함께 호흡을 할 줄 아는 그런 경쾌하고 생동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는지에 대한 반성은 언제나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2001년 3월에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양 프로그램은 "국민의 교양 향상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며, 어린이 청소년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의돼 있으며, 그 편성기준은 30% 이상으로 돼 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박제화된 교양, 틀이 정해진 교조성이 우리가 지향하는 교양 프로그램일 수는 없다. 과거의 교양 프로그램은 오락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뉴스도 아닌 나머지 즉 특정 장르를 가리고 난 뒤에 남은 그 무엇이었다. 그러한 네가티브한 접근의 결과는 교양 프로그램의 정체성 부족이었다. 이제는 주체와 목표를 분명히 하고 먼저 추동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때마침 오는 9월이면 시사교양국 사무실이 여의도 사옥 10층으로 이전을 한다. 종전의 4층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3층과 5층의 점이지대에 소극적으로 머물지 말라는 실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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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3.20 - 11:46
LAST UPDATE: 2003.02.04 -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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